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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억울한 판결 당한 안후이 보저우 바이제,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안후이 보도) 안후이성(安徽省) 보저우시(亳州市) 차오청구(譙城區) 파룬궁수련생 바이제(白傑)는 4월 14일에 쑤저우시(宿州市)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는데, 당시 나이 겨우 55세였다. 시신은 강제로 화장당해 가족이 가지고 돌아간 것은 바이제의 유골이다. 동료가 그에게 옷을 입힐 때 보니 평소에 178cm이고 몸무게가 170~180근이었던 그의 몸은 뼈만 앙상하고 얼굴이 여위어 변형되었음을 보았다. 보기에 너무 소름이 돋았는데 그인 것을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은 10여 일 동안 단지 가족에게 규정한 시간 내에 문과 창문의 유리를 사이에 두고 잠깐만 보게 했을 뿐이다. 응급처치하는 기간에도 여전히 족쇄가 채워져 침대에 있었으며, 사망해서야 발의 족쇄가 풀어졌다.

바이제(남)는 원래 보저우시 공산은행 직원으로 예전에 무술 애호가였다. 동시에 기공도 매우 흥미를 느꼈다. 1995년에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는데, 대법의 박대정심한 법리에 설복되었다. ‘眞(쩐)·善(싼)·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1]에서 깨달았다.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고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는 천리를 알게 되었다. 이로부터 그는 근무 중에서나 생활 중에서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타인을 선으로 대하고, 예의 있게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으며, 너그럽게 타인을 대해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으로 되기에 노력했다.

은행 업무에서 고객에게 업무를 처리해 주는 중에 고객이 일부 사례금을 선사해 감사의 뜻을 표시함을 피할 수 없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는 이러한 일에 마주칠 때면 그는 모두 완곡하게 사절했다. 직장 책임자, 동료, 친척과 친구, 이웃마저 그가 딴 사람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을 때, 그는 세상 모든 것을 하찮게 여겼는데,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는 난폭한 성격인 사람이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는 선량하고 각 방면에서 타인을 위해 고려해 주며, 무슨 일이든지 기꺼이 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대법은 바이제의 심신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켜 그에게 몸이 더욱더 건강하고 심정이 유쾌해지게 했다. 그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대법이 좋음을 말했고, 많은 사람을 인도해 파룬궁 수련에 들어서게 했다.

1999년 7월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8년 동안 바이제는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가택 수색, 구류를 당했으며, 강제로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불법 노동교양, 판결을 당했는데, 각종 박해를 당해 심신은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여러 차례 불법 감금 등 박해를 당하다

2001년 3월 1일 바이제가 출근하고 있었는데 ‘610’ 인원과 직장 책임자는 그를 유인해 농업 간부학교의 이른바 ‘파룬궁 법제학습반’으로 데려다가 강제로 세뇌전향을 시켰다.

2002년 6월의 어느 날 바이제는 저축소 출근 중에 쉐거(薛閣) 파출소의 경찰에게 파출소로 납치돼 2명의 경찰에게 마구 구타를 당했다. 그날 저녁에 또 그를 궈양(渦陽) 파출소로 보냈다. 그곳에서 경찰이 교사한 몇 명의 죄수는 윤번으로 그를 구타했다. 그들은 주먹으로 그의 흉부, 허리 부위를 사납게 쳤는데, 이로 인해 그는 몸 여러 곳에 내상을 입어 온몸이 아팠다. 이번에는 1개월이 넘게 박해를 가했다.

2002년 9월 천지를 뒤엎을 듯이 파룬궁을 탄압하는 강대한 권력 하에 직장 책임자는 강제로 바이제의 직장을 빼앗아 그는 생활 내원을 잃었다. 2003년 양력 1월 1일 바이제는 진상 메시지를 발송한 것 때문에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신고를 당했다. 여러 명의 경찰은 어떠한 절차도 없이 문을 비틀어 열고 방안에 들이닥쳐 납치를 실시하려 했다. 그는 다른 방으로 피해 가서 문을 잠갔다. 서로 양보 없이 맞서는 과정 중에 다행히 몇 명의 친척이 서둘러 와서 있는 힘을 다해 제지하였기에 납치당하지 않았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2004년 9월 17일 바이제는 시 제2중학교 문 앞에서 진상 시디를 배포하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경비에 의해 수갑에 채워져 구타당했다. 왼쪽 눈섭 위는 구타로 한 갈래의 상처가 생겨 온 얼굴에 피가 흘렀다. 쉐거 파출소 경찰이 길을 지나다가 이 상황을 보았는데, 상처 자국에 대해 어떠한 처리도 하지 않은 채 곧 그를 차오청구 국가보안대대에 넘겨 구치소에 보냈다. 구치소 안에서 교도관은 또 죄수를 교사해 그를 구타했다. 한 죄수는 주먹을 휘둘러 그의 앞가슴을 향해 사납게 쳤다. 그는 아파서 서 있을 수 없었고 선혈은 윗옷을 붉게 물들였다. 이럴지라도 그는 원망하지 않고 반항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그들에게 진상을 말해 선행을 권고했다. 그리고 선악에는 인과응보가 있다는 도리를 말해서야 그들은 그만두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바이제가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하자 교도관은 그에 대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하여 그는 몸에 심각한 상해를 입었다. 이렇게 보저우시 구치소에서 4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또 안후이성(安徽省) 난후(南湖)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그에 대해 2년의 노동교양을 시키려 했는데 그가 혈압이 높아 위험한 환자에 속했던 이유로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그 후 만 위안(약 160만 원)을 갈취당해서야 석방돼 집으로 돌아갔다.

대납치, 박해를 당해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다

2013년 9월 22일 저녁 11시쯤 국가보안대대에서는 바이제를 속여 문을 열게 하여 어떠한 적법한 절차도 없이 방안에 들어섰다. 그 후 불법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 당해 집안의 컴퓨터, 프린터, CD-RW, 대법 서적, 휴대폰, 현금 등을 깡그리 강탈당했다. 9월 22일, 23일, 26일, 보저우시 차오청구의 14명 파룬궁수련생도 차례로 납치당했다.

酷刑演示:铁椅子

고문 재연: 호랑이 의자

바이제는 쉐거 파출소로 납치돼 호랑의 의자 위에 꼬박 이틀 동안 채워서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이로 인해 그는 두 다리에 부종 증상이 나타났다. 그들은 또 그를 속여 독극물을 마시게 하려고 시도하다가 그가 음모임이 발견하였기에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장시간 동안의 박해 때문에 그는 혈압이 240에 달해서 인사불성이 되어 시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깨어난 후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세 차례나 그를 구치소로 보내려고 시도했다. 구치소에 의해 수감을 거부당한 후에도 여전히 단념하지 않고 가오(高) 시장을 찾아 “죽어도 구치소에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라고 서면으로 지시해 주도록 하여 강제로 구치소로 보냈다. 그중 한 경찰은 “당신이 죽는다 해도 안에서 죽어야 한다.”라고 소란을 피웠다.

가족이 여러 방면으로 호소하고 관련 부서에 편지를 써서 바이제의 박해 상황을 반영한 결과 바이제는 1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한 후에야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 박해로 그는 반신 마비 증상이 나타나 걷기가 불편했고 언어 장애가 나타나 발음이 똑똑하지 않았다.

돌아온 후 파출소·지역사회 ‘610’의 관련 인원은 늘 집으로 와서 교란했다. 법원에서는 여러 차례 그를 호출해 기소하려고 하였고, 그의 심신은 거듭 손상을 입었다. 또한, 2015년 3월 30일에 차오청구 법원에서는 14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개정을 진행할 때 여전히 그를 호출해 법정에 오게 했으나 그가 뇌혈전 증상이 나타난 이유로 법정에 출두하지 않았다.

구급차로 개정함에 보내 10년의 불법 판결을 당하다

2015년 12월 8일 차오청구 법원에서는 리둥메이(李冬梅), 왕순리(王順利), 바이제 3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개정을 진행했다. 바이제는 당시에 걷지도 못했고 정상적으로 말할 수 없었는데도 들것에 실려 법정에 들었다. 가족은 병원진단서와 관련된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여 바이제의 하소연을 들은 후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청장 처하이싼(車海三)은 병원진단서를 의심하여 오후에 판사 1명과 법정경찰 2명을 데리고 바이젠의 집으로 와서 그들이 지정한 병원에 가서 검사하도록 요구했다. 두 명의 법정경찰은 바이제 가족에게 병원으로 와서 검사하도록 하였으나 가족은 자신의 돈으로 검사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아 검사를 받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하이싼은 바이제에게 집에서 개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가족은 더는 참을 수 없고 화가 나서 법원으로 가서 “누가 우리 집으로 와서 개정을 하겠다고 말했습니까? 사람마저 박해로 이 모습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의 생사를 따지지 않고 당신들에게 넘겨주겠다. 파룬궁을 연마했을 뿐이 아닙니까? 신앙은 자유이며, 법을 위반한 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2016년 봄의 어느 날 집에는 단지 바이제 한 사람만이 몸조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문을 비틀어 열고 방안에 들어와 바이제를 구치소로 납치해 박해했다. 가족이 돌아온 후 곳곳에 문의하여 그가 구치소로 납치됐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차오청구 법원에서는 거듭 바이제에 대해 불법 법정심문을 진행했다. 개정하는 날 바이제는 화퉈(華佗) 한의원의 구급차로 들것에 들려 법정에 들어섰다.

2016년 4월 11일 보저우시 ‘610’은 법원에 지시해 비밀리에 14명 파룬궁수련생[바이제, 푸밍이(付明義), 리둥메이(李冬梅), 왕서우레(王守略), 주사오쥔(朱少軍), 리하이펑(李海峰), 추이융(崔勇), 왕쥔즈(王俊芝), 탕자링(唐家玲), 자오수란(趙素蘭), 장수메이(張素美), 장웨화(蔣月華), 구훙쥐안(賈紅娟), 주펑민(朱鳳敏)]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렸는데, 형기는 3년에서 10년까지 같지 않았는데 바이제는 억울하게 10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2016년 6월 18일 바이제와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은 함께 쑤저우시 감옥으로 보내져 박해를 당했다. 그곳에서 교도관은 죄수를 교사해 그를 구타했다. 본래 병이 중하던 그는 설상가상이 되었다. 감옥에서는 근본적으로 그가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았다. 그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린 것 때문에 그를 독방에 가둬 박해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2017년 4월 1일 가족은 감옥의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바이제가 3월 31일 저녁 8시에 뇌출혈 증상이 나타나 인사불성이 되어 오늘 오전 8시에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말했다. 가족이 서둘러 그곳으로 가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이제가 중병환자 보호실 안에서 응급처치를 받는 것을 보았는데 가족이 접근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도대체 바이제가 언제 병이 도졌고, 무엇 때문에 당시 병원으로 보내지 않았는지를 가족은 알 수 없었다.

4월 14일 오전 8시 바이제는 쑤저우 병원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사망한 후에야 발 위의 족쇄를 없앴다.

주해: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17년 4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1/3459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