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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다 9년의 감옥살이 당한 탄펑장, 또 7년의 억울한 판결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탄펑장(譚鳳江)은 헤이룽장(黑龍江) 이춘시(伊春市) 우잉구(五營區)의 한 일반 국민으로, 파룬궁 수련을 거쳐 좋은 사람이 되고, 타인에 대해 사회에 대해 이로운 사람이 되어야 함을 스스로 깨달았다.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단체가 광적으로 파룬궁을 모독하고 박해한 후, 탄펑장은 단지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국민에게 알려주었을 뿐이다. 이것도 역시 국민이 응당 있어야 할 권리와 응당 해야 할 의무다. 그러나 중공 사당의 세도 하에 이 정의롭고 선량한 행동은 박해를 당하는 구실이 되었다.

2001년, 탄펑장은 베이징으로 들어가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해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06년 4월에 탄펑장은 우잉구 ‘610’두목 왕런구이(王仁貴)와 5~6명이 집안에 들이닥쳐, 납치를 당해 7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는데, 자무쓰(佳木斯) 감옥에서 경찰과 죄수가 한패가 되어 진행한 혹독한 구타,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등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해 왼쪽 귀는 구타로 상처를 입었다.

2016년 9월 말, 하얼빈시에서 일하던 탄펑장은 은행으로 가서 계좌를 개설해 카드 수속을 하려다가 우잉구 공안분국으로 납치돼 돌아와 이춘시(伊春市) 하오유구(友好區) 구치소에 감금됐다. 2016년 10월 말에 또 이춘시 우잉구 법원에 의해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탄펑장은 이춘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고, 가족은 또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 자료를 건넸는데, 중급인민법원에서는 개정을 진행하지 않고 불법으로 원 판결을 유지해 7년의 판결을 내렸다. 2017년 2월 말, 탄펑장은 불법적으로 하얼빈시 후란(呼蘭) 감옥으로 보내졌다. 현재까지 가족은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다.

法轮功学员谭凤江

파룬궁수련생 탄펑장(譚鳳江)

탄펑장이 2년의 노동교양박해와 7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한 상세한 경험은 밍후이왕 2014년 4월 6일의 보도 ‘7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할 대로 당한 탄펑장, 당한 박해를 스스로 고소’를 보시기 바란다.

여러 차례 납치당하다

2013년 9월 9일 저녁 대략 8시경, 탄펑장과 파룬궁수련생 왕신춘(王新春)은 전동차를 타고 이춘구 차오베이(橋北)로 돌아왔다. 차오양(朝陽) 주택 단지 4동 1단원(單元)의 셋집 아래층에서 막 차를 완전히 멈추었는데, 곧 복도에서 세 사람이 뛰어나오더니 탄펑장을 붙잡고 길옆에 정차해 놓은 미니버스 위로 잡아끌었다.

탄펑장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무슨 이유로 나를 붙잡습니까?”라고 외치자, 그들 중 한 사람은 “우리는 진산툰(金山屯) 경찰입니다. 차 위에 오른 후 다시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탄펑장은 협력하지 않고 큰소리로, 강도가 사람을 납치합니다! 사람 살려주세요. 등을 외쳤다. 이때 그들은 또 2~3명이 덮쳐들어 강제로 탄펑장을 차안에 밀어 넣고 구타해 옷은 찢어졌다. 뒤이어 탄펑장은 몸수색을 당했고, 아울러 휴대폰 2대, 열쇠와 허리띠를 강탈당했다.

잠시 후, 한 경찰 두목이 오더니 “나는 진산툰 ‘610’ 사람입니다. 왕신춘을 찾는데, 당신과 관계없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협력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내일 오전 9시 전에 당신을 풀어 돌려보낼 것입니다. 나는 말한 대로 반드시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또 잠깐 후 왕신춘도 차 안으로 납치돼 왔다. 그 ‘610’ 두목은 이어서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으로 밥을 먹는 사람입니다. 내일 이춘의 그 파룬궁(수련생) 두 명의 개정이 끝나면 당신들을 풀어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탄펑장과 왕신춘이 “우리가 도와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건 것은 합리적이고 합법적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를 붙잡습니까? 당신들 이것은 위법이 아닙니까?!”라고 말하자, 그 경찰 두목은 “상부에서 하라고 했기에 우리도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탄펑장이 납치되던 과정 중, 탄펑장이 몸부림치며 외쳤기 때문에, 행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래서 탄펑장은 이춘구 차오양 파출소에 의해 불법적인 관할을 받았다. 탄펑장의 호구소재지는 우잉구였다. 이 때문에 우잉구 ‘610’은 밤새 이춘으로 급히 와서 불법으로 탄펑장의 집을 수색해서, 컴퓨터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고, 그날 저녁에 탄펑장을 우잉구로 납치했다. 왕신춘은 진산툰구로 납치됐다.

9월 10일, 우잉구 ‘610’은 이른바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보름 동안 구류시켜, 불법적으로 상간링(上甘嶺) 유치장에 감금했다.

9월 22일, 또 이른바 ‘불법 전파’했다는 명목으로 우잉 구치소에 옮겨 감금했다. 그날 탄펑장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기 시작했고, 약물 주사를 거부했다. 9월 29일, 탄펑장의 가족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9월 30일, 우잉구 ‘610’은 ‘보석’의 명목으로 탄펑장을 석방했다.

2014년 1월 17일 오전, 탄펑장은 납치당했고, 우잉구로 납치당해 돌아갔다.

2016년 10월, 탄펑장은 하얼빈시에서 일했는데, 은행에서 카드를 교환하다가 납치돼 이춘시 유하오구(友好區) 구치소에 감금당해 박해를 당했다. 탄펑장은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10월 9일, 우잉 공안은 탄펑장을 이춘 병원으로 보내 박해를 진행했는데, 가족의 말에 의하면 이춘시 정법위, 610, 국가보안대대에서 직접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참여했고, 말로는 상부에서 석방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상부 어느 곳인지 똑똑하지 않다고 했다. 당시 의사가 말하기를, “정말 놀랍다. 탄펑장은 이미 단식한지 10여 일이 되는데 모두 정상적이다”라고 했다.

두 번째 7년의 불법 판결 당하다

2016년 10월 27일 9시가 넘어서 이춘시 우잉구 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탄펑장에 대해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했다. 법정 심문은 3시간이 걸려 12시가 넘어서 끝났다. 두 명의 변호사가 몹시 상세하게 무죄 변호를 진행했다. 검찰관은 반박당해 할 말이 없었다. 맨 마지막에 조리 없이 “그들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두 명의 변호사의 변호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가리킴)라고 말했다.

탄펑장이 법정 심문을 받는 것은, 먼저 사람을 붙잡은 후 정죄하는 것에 속한다. 이번 납치 기소사건은 바로 법을 위반하고 헌법을 어긴 것이다. 그 원인은 2013년 9월 초, 탄펑장과 왕신춘이 파룬궁수련생 류옌화(劉豔華)와 우원진(吳文錦)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한 것이 이춘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부서를 화나게 했다. 그래서 9월 9일 저녁, 진산툰구 ‘610’에게 납치를 당했고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다. 납치에 참여한 경찰은 당시 곧 류옌화와 우원진 등에 대한 법정 심문이 끝난 후 당신들을 풀어주겠다고 말했다. 탄펑장은 보름 동안 불법 구류처분을 받아 상간링 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는데, 맨 마지막에 보석의 명목으로 석방 받았다. 당시 경찰이 탄펑장의 셋집을 수색할 때, 방안에서 수색당한 물품 중에 일부 대량으로 진상 메시지를 발송하는 휴대폰 한 대가 있었는데, 우잉구 공안에 의해 이른바 ‘죄증’으로 모함당했다.

근 3년 만인 2016년에 우잉구 공안은 인터넷에서 이른바 ‘지명수배령’을 내렸다. 하얼빈시에서 일하던 탄펑장은 2016년 9월 말에 은행으로 가서 카드 수속을 밟다가 이춘시 우잉구 공안분국으로 납치돼, 이춘시 유하오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우잉구 공안은 탄펑장의 명의가 아닌 이 휴대폰을 이른바 ‘죄증’으로 삼아 탄펑장을 검찰원에 모함했다.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서 두 명의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제출했다. 첫째, 이 휴대폰으로 사용한 모바일 카드 번호는 위조된 것이라고 질의한다. 둘째, 휴대폰 카드와 휴대폰은 모두 탄펑장 본인이 구매해 사용하고 관리한 것이 아니다. 셋째, 가택 수색을 할 때 수색해낸 휴대폰은 탄펑장이 지니고 있던 것이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이 휴대폰이 바로 탄펑장이 소유한 것임을 증명할 수 없다.

검찰관이 증거로 여긴 정보 기록표의 날짜와 시간은 전후로 여러 차례 뒤바뀐 적이 있다.

변호사는 검찰관이 증거로 제공한 휴대폰, 모바일 카드, 통화기록서의 전후가 맞지 않고, 시간과 날짜가 뒤바뀌었으므로, 휴대폰은 탄펑장이 소유한 것임을 증명할 수 없다고 질의했다. 그 후 검찰관은 또 휴대폰은 탄펑장 몸에서 수색한 것이다 등을 말했는데, 검찰관 자신도 똑똑히 말하지 못했다.

탄펑장이 자신의 수련, 박해당한 것과 파룬궁의 진상을 진술했을 때, 중지당해 말을 하지 못했다. 탄펑장은, 휴대폰은 이름을 모르는 외지 사람이 10월 7, 8일에 그의 집에 놓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탄펑장을 납치한 경찰은 자신도, 탄펑장의 셋집은 방안이 너무 무질서하고 셋집 주인의 물건을 옮겨가지 않았는데, 휴대폰은 바로 탄펑장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춘시 우잉구 법원의 법정 심문 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모두 공검법 및 지역사회 사람들이 방청했다. 30여 개의 좌석에 전부 꽉 차 앉아 단지 가족에게 몇 개의 좌석을 남겨주었을 뿐이다. 우잉구의 각 파출소 소장마저 법원으로 파견돼 왔는데, 방탄복을 입고 총을 받쳐 들고 폭동방지 특수경찰로 분장해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춘시 우잉구 법원에서는 불법으로 파룬궁수련생 탄펑장에 대해 법정 심문을 진행한 후, 2016년 10월 말에 1심에서 탄펑장에 대해 7년의 억울한 판결을 내렸다. 탄펑장은 이춘 중급인민법원에 상소를 제기했고, 가족은 또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 자료를 건넸다. 중급인민법원에서는 개정을 진행하지 않고 불법으로 원 판결을 유지해 7년의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2017년 2월 말에 탄펑장을 하얼빈시 후란 감옥으로 불법으로 압송했는데, 가족은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다.

역사상에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했다. 네로 황제는 궁전을 확장하기 위해 로마성을 불태워 버리고, 죄명을 기독교 신자에게 덮어씌웠다. 이로 인해 대량의 기독교 신자가 콜로세움에 던져져 야수에게 먹혔다. 기독교 신자는 3백 여 년 동안 박해를 당했다. 이 기간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해 하느님을 화나게 하여 로마 전역에는 전염병이 휩쓸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시간은 또 21세기로 돌아왔다. 오늘의 파룬궁수련생이 중공에 박해를 당한 것과 그해 기독교 신자가 로마제국에 의해 박해를 당한 것이 무슨 구별이 있는가? 단지 당대의 사람들이 당국의 일을 똑똑히 볼 수 없을 따름이다. 당년에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중공 고관들은 모두 잇달아 악보를 입어 낙마해 감옥에 들어갔다. 보시라이(薄熙來), 저우융캉(周永康), 쉬차이허우(徐才厚), 궈보슝(郭伯雄) 등 그들은 모두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자들이다. 2001년에 전국을 뒤흔든 중앙텔레비전에서 스스로 연출한 ‘텐안먼 분신자살 가짜사건’의 참여자는 위로는 국장(台長) 리둥성(李冬生)에서 아래로는 연출 천훙(陳虹), 메인 아나운서 뤄징(羅京), 진행자 팡징(方靜)에 이르기까지, 감옥에 들어갈 사람은 감옥에 들어갔고, 병으로 죽을 사람은 병으로 죽었다. 이러한 피의 교훈은 아직도 우리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하는가?

이 때문에 파룬궁수련생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려 하는데, 바로 사람들이 선악을 똑똑히 가려, 원칙과 직결되는 주요 문제에서 밝은 길을 선택해 자신과 가족에게 미래를 창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23/346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