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톈진 보도) 톈진(天津) 파룬궁수련생 화롄유(滑連有)는 재차 빈하이(濱海) 감옥으로 납치됐는데 벌써 꼬박 1년이 되었다. 신앙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화롄유는 줄곧 단식으로 불법 감금에 항의했다. 그는 감옥 바오자(包夾, 범죄자 중의 감시자)에 의해 자행된 과다한 양의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위가 터질 지경이 됐었다. 그 후 또 바오자로부터 심한 모욕을 당했는데 음부를 문질러 찢겨지게 했다. 또 대장 양한원(梁漢文)에게도 구타를 당했다고 아내와 딸에게 알려줬다.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상소하려고 하고 있다.
파룬궁수련생 화롄유는 톈진 베이천구(北辰區)에 거주하며 1962년에 출생했다. 전 톈진 브라운관공장의 직원으로, 1988년에 기업관리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에 조리회계사 자격을 취득했는데 주변으로부터 공인받는 좋은 사람이다.
2016년 4월 14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화롄유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자룽리(佳榮裏) 파출소의 경찰에게 납치됐고, 오후에 톈진 빈하이 감옥으로 납치됐다. 화롄유는 4월 14일부터 줄곧 단식을 했는데, 감옥 측은 그에게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했다. 밍후이왕에는 이미 여러 편의 추적 보도가 있는데, 가족들은 그의 생명의 안전을 몹시 걱정하고 있다.(‘화롄유-톈진빈하이 감옥에서 생명이 위급, 가족은 상소 제기’, ‘단식한 지 7개월 남짓, 화롄유가 톈진 신성(新生) 병원에서 바오자로부터 박해 당해’ 등을 참조하시기 바람)
2017년 3월 13일, 화롄유의 아내가 그를 면회할 때, 화롄유는 변호사를 만나겠다고 말했다.
화롄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2월 말에 그가 과다한 양의 음식물을 강제주입 당해 위가 곧 터질 정도가 됐고 신성 병원으로 보내져 음식물을 다시 뽑아냈으나 그 과정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또 3월 4일, 그는 마치 호랑이 의자에 앉은 것처럼 걸상 위에 묶여졌고, 3월 7일에는 구멍이 달린 휠체어에 묶여졌는데 키가 큰 두 명의 바오자가 난폭하게 그의 팔을 비틀었다고 했다.
3월 20일, 가족은 감옥관리국과 감옥 측에 등기우편을 부쳐 정보를 공개하고 화롄유가 무슨 약물을 주입 당했는지? 무슨 음식인지? 화롄유에 대한 고문학대는 누가 지시했는지? 또 누가 한 것인지?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감옥 측은 지금까지 답장을 주지 않고 있다. 감옥관리국은 단지 공개된 감옥의 전화번호를 주었을 뿐이다.
4월 10일, 아내와 딸이 거듭 면회했을 때, 화롄유는 여전히 휠체어에 의해 밀려나왔다. 그는, 바오자에게 업신여김을 당해 음부가 문질러져 찢겼고, 또 대장 양한원은 펜과 리모컨으로 입을 쳤다고 말했다. 또 자신이 벽에 부딪힌 것은 감옥의 박해와 핍박에 의한 것이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감옥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가족은 화롄유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했는데, 2월 27일 화롄유를 만난 이후 지금까지 화롄유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현재 변호사는 상소 고발문건을 준비하며 화롄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사건을 회고하다
2001년, 파룬따파(法輪大法)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화롄유는 5년의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았고 박해로 인해 정신은 흐리멍덩해졌다. 2012년 4월 24일, 화롄유는 경찰의 납치와 모함으로 7년의 억울한 형벌을 당했는데, 617일 동안을 단식하며 박해에 반대했다. 그 후, 2014년 1월 28일 빈하이 감옥 경찰에 의해 들것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2015년 6월, 화롄유는 박해 원흉 장쩌민을 최고인민검찰원에 고소했다. 그는 범죄 혐의자 장쩌민을 검찰이 공소하기를 바랐고 법에 따라 형사책임과 기타 관련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14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화롄유는 다시 톈진 빈하이 감옥으로 납치됐다. 4월 14일부터 지금까지 줄곧 불법 감금에 대해 단식으로 항의했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16/3457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