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보도) 베이징(北京) 차오양구(朝陽區) 파룬궁수련생 쉬화취안(徐化全, 남)은 1964년 6월에 출생했고 본적이 후베이(湖北)이다. 북경대학원을 졸업하고 외국어 번역을 했는데, 예전에 베이징 발전과 개혁위원회(發改委)에서 근무했고, 일본기업사장을 맡은 적이 있다.
쉬화취안은 1999년 ‘7·20’이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거듭 중국 공산당의 박해를 당했다. 2001년 1월에 1년의 강제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03년 9월에는 8년의 불법적인 판결을 당했으며, 2010년 11월 6일에 출소했다. 그리고 또 2011년 4월에는 2년 6개월의 강제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14년 1월에 지하철에서 시민에게 파룬궁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에게 납치당했으며, 2014년 9월 15일에 베이징시 시청구(西城區)법원에서 4년 6개월의 불법적인 판결을 당했다. 현재는 베이징 첸진감옥 3감구역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는데, 이미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쉬화취안이 박해당한 상황을 줄곧 그의 노모에게 감추고 있다.
경찰이 라이터로 그의 가슴 부위를 태우다
쉬화취안이 2001년에 첫 번째로 납치당했을 때, 하이뎬(海澱)파출소 경찰은 쉬화취안을 고문했다. 5~6명의 경찰은 그의 두 팔과 다리를 잡고 라이터로 그의 왼쪽 가슴을 태웠는데, 손바닥 만한 크기의 큰 상처가 생겼고 유두의 일부분이 모두 타서 없어졌다. 그 후 쉬화취안은 1년의 강제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중국 공산당 고문 설명도: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고문(火燒炮烙)
퇀허(團河)노동교양소에 강제로 감금당한 기간에, 쉬화취안은 예전에 핍박을 받을 때 뙤약볕 아래에 오랫동안 놓여있어 온몸에 물집이 생긴 적이 있다. 퇀허 노동교양소 2중대 중대장 저우(周)씨인 경찰은 전기봉 3개를 사용해 쉬화취안에게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그를 24시간 동안 침대 판자 위에 전신을 묶어놓고, 바오자(包夾,수감 감시자)에게 명령을 내려 잠을 못 자게 했는데, 반성문을 쓰도록 핍박했다. 쉬화취안을 지키는 죄수는 경찰이 지지해 주는 상황에서 거리낌 없이 함부로 쉬화취안에게 욕설을 퍼붓고 모욕하며 들볶았다. 그에게 ‘아오잉(熬鷹)’고문을 가할 때 눈을 감지 못하도록, 죄수는 고무 밴드로 그의 눈과 얼굴에 튕겨서 매우 고통스럽게 했다. 바오자가 악행으로 바꾸어오는 것은 경찰이 하사한 ‘특혜를 받는’ 우대였다.
8년의 억울한 형벌을 받고, 핍박에 의해 이혼하다
2002년 11월 7일 오후, 타이양궁(太陽宮) 파출소 경찰 예자청(葉嘉誠)은 형사경찰대를 거느리고 ‘방열기를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방문을 속여 열고, 사오야오쥐(芍藥居) 311층 9501실(室)에서 거주하고 있는 쉬화취안의 집에 들이닥쳐, 쉬화취안과 그의 전처 왕레이(王雷)를 차오양구치소로 강제 납치했다. 집안에 사람이 없을 때 경찰은 기회를 틈타 인민폐 현금 5천 위안(한화 약 82만원), 가치가 150위안(약 2만원)되는 우표를 강탈했다. 또한 컴퓨터, 프린터와 외국어 학습에 사용하는 라디오를 강탈했다.
이번에 쉬화취안은 납치되어 8년의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다. 중국공산당은 그의 가족마저도 가만두지 않고 쉬화취안의 아내 및 아들에게 세뇌반을 조직해 세뇌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아내 왕레이는 극심한 압력으로 그와 이혼했다.
베이징 첸진 감옥에서 쉬화취안은 12분감구역에 불법적으로 감금되었다. 교도관 천쥔(陳俊)은 거짓으로 ‘이 후베이의 한 고향 사람인 그를 인정’한다며 그를 도와주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쉬화취안이 타협하지 않자 곧 그를 ‘독방’에 가두겠다고 위협했다. 쉬화취안은 원한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진상을 알려 천쥔을 깨닫게 하려 했다. 그러나 줄곧 효과가 없었다. 그 후 쉬화취안은 결국 교도관 천쥔에 의해 계속 ‘독방’에 갇혔다. 2006년 1월, 쉬화취안은 신문 위의 성공(星空)에 관한 소식에 ‘과학자의 말이 옳지 않다’는 말을 했다가, ‘바오자’에게 신고당해 ‘엄한 관리’ 박해를 당했다.
한 번은 일하러 나갔는데, 모두 다 지쳐서 기진맥진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교도원 천훙빈(陳紅賓)은 여전히 쉬화취안에게 사정없이 호통 치며 그가 일을 하는 것이 늦고 잘 하지 못한다고 짜증을 냈다. 어느 수련생이 교도관의 눈에 이른바 ‘못’으로 되기만 하면, 그들은 큰 곳, 작은 곳 할 것 없이 온갖 방법으로 못살게 한다. 게다가 또 그가 다른 사람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또 어떠한 사람도 그와 말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010년 11월 6일, 쉬화취안은 출소한 후, 경제 능력이 없었고 또 거주할 곳도 없었다.
2차 강제 노동교양, 맨 마지막에 석방 된 사람
2011년 3월 초, 쉬화취안은 베이징 지하철에서 납치당했고, 아울러 거듭 강제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베이징 신안(新安)노동교양소에서 그는 장기간 단독으로 바오자 감시를 받았고 감금, 박해를 당했다. 쉬화취안은 정신적인 강압 때문에 한 번은 감금구역 문을 나서다가 부딪쳐 오른 쪽 눈가를 다쳤는데, 매우 심각하게 다쳐 살이 밖으로 뒤집혀 나왔다. 2013년 노동교양소를 해체했는데, 8월 8일에 쉬화취안은 신안 노동교양소에서 맨 마지막 한 사람으로 석방 된 파룬궁수련생이다.
쉬화취안은 신안노동교양소에서 나온 후, 늘 중국 공산당의 교란을 당했다. 교란을 피하기 위해 그는 부득이 셋집에서 거주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늘 지점과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거듭 불법적인 판결을 당해, 옥중에서 정신이상이 되다
2014년, 쉬화취안은 또 납치를 당했다. 베이징 시청구 구치소에 있던 시기에 날씨가 매우 추웠으나, 그는 여전히 홑옷만 입고 있었으며, 게다가 수갑, 족쇄를 차고 있었다.
쉬화취안은 불법적으로 4년 6개월의 판결을 당했고, 2015년 1월에 베이징 첸진감옥으로 납치 되었다. 그는 장기간 분감구역에서 단지 몇 제곱미터 되는 방안에 감금당했다. 2016년 7월에 첸진감옥에서 출소한 파룬궁수련생의 말에 의하면, 3분감구역의 감구역장 류광후이(劉光輝)는 예전에 형사범 바오자 구웨(谷月), 두윈펑(杜雲鵬), 자오둥린(趙東林) 등 3명을 시켜 쉬화취안에 대해 1시간 넘게 구타했으며, 그로 인해 쉬화취안의 늑골이 부러졌고 치아가 빠졌으며, 머리는 구타로 부어오르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두 손은 신경질적으로 끊임없이 떨렸는데 치료할 수 없는 불구가 되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났음에도 쉬화취안은 여전히 수시로 다른 바오자에게 발로 걷어차이기, 힘껏 밀치기, 걸상으로 내려치기 등 인신 모욕과 학대를 당했다. 바오자는 경찰의 비위를 맞춰 형기를 많이 줄이기 위해, 수단을 바꿔가며 쉬화취안을 괴롭혔다. 그들은 땅바닥에 침대판자를 놓고 윗면에 쉬화취인을 앉혀놓고 몸을 강제로 똑바르게 앉혔다. 악인은 쉬화취안이 잠을 못 자도록 했다. 새벽 5시에 붙잡혀 일어나면 계속 좌반 체벌을 받았다. 지금 쉬화취안은 몸이 매우 좋지 않고 머리카락도 희어졌다.
쉬화취안은 감구역 지도원 류광후이와 중대장 야오이핑(姚一平)에게 신고했는데, 류 씨, 야오 씨가 상대하지 않고 해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악인 구웨에 대해 칭찬했고, 아울러 반장으로 진급시켰다. 쉬화취안은 첸진감옥에 거주한 검찰원 사무실을 신고했다. 그는 이 사무실에서는 단지 건성으로 대응하며, 여전히 처리하지 않고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신고했다.
올해 막 50세가 넘은 쉬화취안은 머리카락이 전부 희어졌다. 지금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는데, 현재의 형편은 몹시 열악하다.
관련 박해 기관과 직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6일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6/3452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