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처리해 학살했다(상)
[밍후이왕] 파룬궁(法輪功)이 잔혹한 박해를 당하면서 수많은 수련생들이 괴롭힘과 죽임을당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중공) 공안은 학살당한 수련생의 시신을 영안실에 냉동처리하거나,아니면 바로 화장터로 옮겨 화장하고, 또는 직접 휘발유를 뿌려 소각해버린다. 그렇게 처리한 후 “파룬궁수련생들이 스스로 한 짓”이라고 누명을 씌우는데, 그 사악한 것들은 심지어살아있는 파룬궁수련생들의 몸에서 생체장기적출의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죽을 고비를 두 번 넘겼다
랴오닝성 둥강시(遼寧省東港市) 제3중학교 류얜쥔(劉延俊.女) 교사는 선양여자감옥에 감금되어 극히 잔혹한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심각한 위장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음에도 감옥 측에서는 ‘단순한 위염증세’라며 방치하여 오랜 기간 구토를 했는데, 음식물을 먹기만 하면 전부 토하는 바람에 건강상태가 갈수록 악화되다가 나중에는 자주 정신을 잃는 쇼크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2004년 11월 14일, 감옥지도원 쉬쵄(徐权)이 그녀가 뼈만 남은 몰골에 건강상태가 위중하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병원 측은 그녀의 남동생에게 “의료비 1만 위안(약 172만원)을 내지 않으면 류얜쥔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고 위협했다.
그 후 감옥지도원은 류얜쥔에게 말했다. “당신은 명이 정말 길다. 당신은 화장터로 직행할 뻔했다. 당신의 옷 등 소지품도 화장할 때 함께 소각하려고 준비했었다.” 당시의 상황을 알고 있던 죄수들도 후일 그런 사실을 말해줬다. “교도관들이 당신을 가족과 대면시킨 후 곧바로 화장시켜버리려고 했다.” 또 어떤 죄수들은 “만약 당신의 남동생이 오지 않았다면 당신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소각돼)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죽을 고비를 넘긴 류얜쥔은 그 후 박해를 덜 받았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 후에도 교도관들은 더욱 잔혹한 고문을 가해 죽음상태에 이르도록 박해를 가했던 것이다. 그때 류얜쥔은 3개월간 정상적으로 배변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신장 기능의 악화로 소변도 잘 보지 못했다. 병원장 왕니나(王妮娜)는 5~6명의 죄수에게 류얜쥔을 움직이지 못하게머리를 잡게 한 후 음식물주입용 플라스틱 호스를 강제로 삽입시키는 악행을 저질렀는데,호스가 너무 굵어 삽입이 되지 않았는데도 3일간 연속적으로 강제로 힘을 가해 억지로 삽입시켰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고, 또 식도와 기도 그리고 위가 찢어져콧구멍에서 선혈이 낭자하게 흘러내렸다. 소독이 안 된 호스를 강제로 삽입시켜 폐와 요도가 감염돼 기침을 동반한 심한 염증상태가 악화 되었는데, 죄수가 병원장 왕니나에게 그런위중한 상태를 보고하자, 왕니나 원장은 “죽거나말거나 상관하지 말고, 삽입돼 있는 호스를 절대로 뽑지 말라”고 지시했다. 원장은 류얜쥔을 감시하며 보살피는 죄수들에게 하루 세 차례 3리터의 옥수수 죽을 호스를 통해 주입시키라고 지시했다. 류얜쥔은 배변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당해 배뇨마저 할 수 없게 되어 배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음식물강제주입으로 공기가 꽉 차서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죄수들이 황급히 원장을 찾아가 주입량을 줄일 것을 제안했지만, 사악한 원장은 “조금이라도 주입량을 줄일 수 없다. 하루 3회 3리터씩 꼭 주입시켜야한다. 이것은 내가 말한 정량이다.”라고 악에 받쳐 소리쳤다. 사실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하는 행위는 잔혹한 고문 수단인 것이다. 죄수들은 원장에게 호통을 당하고 온 후 절반의 음식물만 주입시키고 나머지는 버렸다. 원장에게는“지시한 대로 정량을 주입시켰다.”고 허위로 보고했다.
하루에 3회, 한번에 3리터이니 도합 9리터인데, 무게로 치면 10.8kg에 달한다. 그렇게 강제주입을 당하면서도 배변을 못하는 상태이니, 어찌 감당해 낼 수 있으며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겠는가? 그건 그런 수법의 고문으로 그녀를 죽이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이다. 우리는 류얜쥔을 보살펴준 그 죄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한다. 만약 그들이 사악한 원장이 지시한 정량대로 옥수수 죽을 주입시켰다면, 류얜쥔은 분명 배가 터지거나 썩어서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양심적인 여자경찰이 그의 목숨을 구했다
2004년 8월 18일 후난 천저우 쟈허(湖南郴州嘉禾)현 스쵸우(石橋)진 스탕(石塘)촌 파룬궁수련생 레이징슝(雷井雄.24)은 장사탠신(長沙天心) 공안지국에 납치된 후 당일 오후 4시부터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저녁 때 혼수상태로 쓰러졌다. 공안들은 숨이 붙어있는 그를 곧 바로 화장터로 옮긴 후 소각처리하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한 여자경찰관이 레이징슝이가볍게 움직이는 것을 감지하고,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화장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남자 경찰관들이 모두 “실신해 있는 상태이고, 또 어차피 화장터까지 옮겨왔으니 태워버리자, 그렇게 하면 아무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여자경찰관은 “이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데 어떻게 태워버릴 수 있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나중에 책임문제가 발생하면 누가 책임지겠는가?” 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레이징슝은 다시 장사시 치료센터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고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구했다.
레이징슝이 살아난 경우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선량한 한 여자경찰관의 살아있는 의로운 양심에 의해 극적으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여자경찰관이 그 현장에 없었다면, 그리고 만약 그 여자경찰관도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묵인했다면 레이징슝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시체관리담당자의 양심이 그의 생명을 구했다
레이징슝과 극히 유사한 경우를 또 다른 파룬궁수련생도 겪었다. 전 후베이 성 샹판(襄樊) 한장(漢江) 기계공장(현 중국항공우주공업장비 유한공사) 자재학교 교사인 류웨이산(劉偉珊)은 2002년 10월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 우한(武漢)시 여자감옥에 감금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뒤로 두 손에 수갑이 채워져 끈으로 철창에 묶여 매달리는 등 혹심한 고문으로 생명이 위급해지자, 2006년 1월 31일 밤 몰래 항공우주공업분야에 소속되어 있는 364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입원명부에는 ‘무명 씨’라고 적혔고, 입원실 출입문에 ‘위중환자, 병문안사절’이란 팻말이 걸렸다. 류웨이산은 반신불수가 되어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는데, 근육이 위축되면서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다.
2011년 8월, 364항공병원은 교외에서 시내의 신축 건물로 이사하게 되어, 입원 중이던 류웨이산도 신축병원으로 이송돼 계속 박해를 받았는데, 그때 후베이 샹양(襄阳)시 ‘610’ 요원과 364항공병원 당서기 판즈융(樊智勇) 등의 지시에 따라 아직도 심장이 뛰고 있는 류웨이산을 시체실로 옮겨 화장처리하려고 했다. 그런데 시체소각로에 밀어 넣으려는 순간 시체실담당자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화장 집행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들도 어쩌지 못하고 류웨이산을 다시 364병원으로 이송하여 살아났다.
만약 시체실담당자가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또는 알고 있으면서도그자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모른 체했다면 류웨이산은 그대로 학살됐을 것이다. 정부당국자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을 시체실로 보내 화장처리 하라고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체실담당자가 그들 정부당국자들의 처리지시에 따른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그 시체실담당자가 양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류웨이산은 목숨을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두 사건들은 그래도 마지막순간에 천행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사례들이다.그렇다면 우리가 유추해 볼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었음에도 죽은 사람으로 처리되어, 시체소각장에 밀어 넣어져 학살되었겠는가?
그는 병원에서 강제로 화장터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장정강(張正剛)은 장쑤성 화이안시(淮安市) 공상은행원으로 파룬궁을 수련하며, 장쑤성 화이안 파룬궁 보도소 책임자 직을 맡고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 3월 2일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화이안 구치소에 감금되어, 온갖 구타와 고문을 당해 머리에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으며,화이안시 제일인민병원으로 후송돼 응급처치 후 머리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아 혼수상태에 빠졌다. 3월 30일 저녁 6시 30분 경 심전도검사를 했을 때 심장박동이 미약한 상태에서 그런대로 호흡은 하고 있었으나 계속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 시각 가족들은 다른 방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공안요원들은 환자의 위중한 사실을 가족에게 숨긴 채 즉각 병실과 병원복도를 폐쇄하여 사람의 통행을 금지시킨 후, 담당 의사를 위협해 산소마스크와 링거를 제거한 후 약명미상의 주사를 놓게 했다. 그런 후 수명의 경찰관들이 달려들어 아직도 심장이 약하게 뛰며 호흡을 하고 있는 장정강을 곧바로 화장터로 끌고 가서 즉각 화장시켜버렸다. 장정강은 36세의 젊은 나이로 억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산 사람을 화장시켜 살해한 그들은 짐승만도 못한 사악한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공안들은 장정강을 화장의 형식으로 살해하고 나서 가족친지들에게 화환은 물론 조문조차 하지 못하게 했고, 가족들이 당국에 제출한 억울한 진정조차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장터로 가는 길에서 숨을 거둔 국장
전 허난성 지위안(濟源)시 물자국장 위안성쥔(原勝軍)은 2005년 10월 7일 억울하게 6년형을 선고 받고 부당한 재판에 항의하며 단식하다가 인민병원에 입원조치 되었는데, 10월25일 오후 5시반 경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그곳을 빠져 나와 지원시 청류진 난토우촌 1촌 한 민가로 숨어들어갔다. 그렇지만 곧이어 위안성쥔이 몸을 숨긴 집은 경찰에 의해 포위되어 잡히고 말았다. 경찰은 난토우촌 촌간부들에게 살아 있는 위안성쥔이 사망했다는 허위확인증명서에 서명하도록 협박해서 서명을 받아낸 후, 즉시 위안성쥔을 화장터로 끌고 가면서 차안에서 혹독하게 구타해 죽게 만들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에 의하면위안성쥔은 사망 후에도 이틀 동안 눈을 뜨고, 입을 벌린 채 있었고, 한쪽 손과 팔, 손톱이 까맣게 죽어 있었고, 얼굴은 전부 상처자국이었으며, 등과 다리가 전부 자색의 멍이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경찰들은 위안성쥔을 검거하기 전, 이미 그를 죽이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정황상 공산당의 만행으로 볼 때 틀림없는 일이다. 그래서 책임면피용으로 그를 살해하기 전 촌의 간부들로부터 강제로 사망확인증명서까지 받아둔 것이다. 이 얼마나 사악한가! 살아있는 사람을 놓고 타인을 협박해 사망했다는 확인증명서까지 받은 다음 곧바로 화장터로끌고 가면서 차 안에서 때려죽이는 이 만행을…….
지위안시 당국은, “24시간 내에 위안성쥔의 시체를 화장하라. 만약 가족이 화장을 원치 않더라도 화장을 강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당시 중공악인들은 시체안치실 위안성쥔의 냉동냉관에 ‘무명 씨’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았다.
(다음호에 계속)
원문발표: 2015년 1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종합서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4/3035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