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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장시 의사 왕리옌, 4년 6개월의 억울한 형을 선고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성 보도) 무단장시(牡丹江市) 파룬궁수련생 왕리옌(王麗嬿)은 8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했는데, 일전에 시안구(西安區)법원에 의해 4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가족은 상소하겠다고 했다.

왕리옌은 무단장시 피부병 치료소의 의사였다. 그녀는 선량하고 마음이 어질어 각 방면에서 환자를 위해 고려했으며 고가의 약을 처방한 적도 없어 평판이 아주 좋았다.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왕리옌은 강한 책임감으로 열심히 근무했고 부단히 정성을 다해 부주임 의사 자격을 얻었다. 왕리옌은 한센병에 관한 이론과 실천 중에서 쌓은 보귀한 임상경험으로 국가급 논문 3편을 발표했는데 3만 자가 되는 한 부의 저술을 완성했다. ‘무단장시 1950—1999년 나병 예방치료 효과 평가’라는 문장은 무단장시 과학기술진보상을 획득했고 한센병 예방 치료자료를 보충하고 풍부하게 했다. 이는 시(市) 당국이 ‘국가의 한센병 퇴치 기본검사’ 업무를 순조롭게 통과하게 했다. 게다가 무단장시를 위해 163명의 의사를 양성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시험성적은 전부가 합격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무단장시에 걸출한 공헌을 한 선량한 사람이 ‘장쩌민(江澤民)의 파룬궁수련생 박해 포스터’를 붙였다는 이유로 오히려 경찰에게 납치되었다. 그녀는 2016년 4월 19일 저녁 대략 9시 쯤, 나이가 많은 루위펀 노인과 시안구 웨야후(月牙湖) 인근의 주택 단지에서 셴펑(先鋒)공안국 위안밍(圓明) 지역사회의 경찰실 부대장 뤼훙펑(呂洪峰) 등 5명에게 납치됐다.

루위펀과 왕리옌은 함께 납치됐고 각기 다른 방에 수감됐다. 셴펑 분국의 두 명의 젊은 경찰과 시 공안국 국가보안 부지대장 리쉐쥔(李學軍)은 루위펀을 1시간 넘게 불법 신문하며 쇠 의자에 앉혀 박해했다. 경찰에게 협력해야 하며 묻는 대로 답해야 한다며 위협했다. 루위펀이 “내가 어쨌다고 당신들은 나를 붙잡습니까?”라고 하자 리쉐쥔은 “녹화 영상을 그녀에게 보여주시오.”라고 말했다. 경찰은 루위펀에 대해 전화감청하고 미행하고 촬영한 것을 박해의 증거로 삼았다.

뒤이어 1시간도 되지 않아 경찰은 웨야후 인근의 수무국 주택 단지에 거주하는 가오이시(高一喜), 쑨펑샤(孫鳳霞) 부부도 위안밍 지역사회 경찰실로 납치했다. 게다가 가오이시의 가택을 불법으로 수색하여 프린터, 노트북과 몇 권의 대법 책을 강탈했다. 가오이시는 4월 29일 박해로 인해 사망했다. 사망할 때,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두 팔은 굳어진 채 좌우로 펴져 있었으며, 두 손목에는 쇠고랑의 흔적이 뚜렷했고 가슴 등 부위가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가오이시가 박해로 사망한 정황에 관해서는 밍후이왕의 보도 “가오이시의 시신이 강제로 해부당해”, “가오이시의 시신을 화장하려 시도, 경찰은 계속 그의 아내를 납치해 인질로 삼다”, “16세 소녀가 모친을 구출, 억울하게 사망한 부친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해”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왕리옌은 무단장 구치소로 납치됐는데 이미 불법 감금당한 지 8개월이 넘는다. 왕리옌을 모함한 ‘서류’는 셴펑 분국에서 무단장시 시안구 검찰원 체포비준과로 이송됐고 체포비준과 과장이 처리했는데, 또 무단장시 셴펑분국 리신(立新) 형사경찰지대로 전달하여 지대장 류췬(劉群)과 위양(於洋)이 책임 맡게 했다. 그 후 위양은 또 왕리옌의 사건을 셴펑 분국 법제과 리과장의 손에 넘겼다. 법정과에서는 무단장시 시안구 검찰원 공소과에 건넸고 공소과에서는 셴펑분국 위양에게 서류를 반송해 주었는데, 위양은 다시 서류를 시안구 검찰원 공소과에 건네주었다.

무단장시 시안구 법원에서는 원래 12월 13일에 파룬궁수련생 왕리옌에 대해 불법적인 법정 심문을 하기로 정했으나 가족들은 개정 날짜가 12월 20일로 고쳐진 통지를 받았던 것이다. 왕리옌은 4년 6개월의 무고한 형을 선고 당했고 가족은 즉시 상소를 제기하겠다고 했다.

박해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의 명단은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1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1/3/340347.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