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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 쑨성화가 법정 심문을 받으며 법정에서 진상을 알리다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12월 9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법정 경찰은 쑨성화(孫勝華)를 다스차오(大石橋) 법원으로 끌고 갔다. 최근에 잉커우(營口)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한 이유로, 노인은 특별히 수척해 보였다. 반백인 머리카락에 옷을 조금 얇게 입고 있었으며, 강제로 수갑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가족은 법원의 차디찬 대청에서 이미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또 5세인 어린 손자가 있었다. 아이는 할머니를 볼 때 가깝게 다가가려 하다가 법정 경찰에게 크게 꾸지람을 받아 어머니의 뒤에 숨었다. 쑨성화 노인이 거듭 힘껏 쟁취하여 겨우 그녀에게 손자를 만나는 것을 허락했다.

법정에서 리청썬(李成森)이라고 부르는 판사는 여러 차례 유도 심문하여 자백하게 하는 형식으로 노인에게 질문하여, 노인이 ‘의도적으로 전파했다’는 ‘죄명’을 성립되게 하려고 했다. 공소인 리아이핑(李愛萍)은 일종의 꼭 취조하려는 말투로 노인에게 ‘의도적으로 전파’했다는 말을 하도록 핍박했다. 게다가 법정 측에 쑨성화가 죄를 승인하지 않는다고 일깨워주었다.

쑨성화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 6개월 동안의 불법 감금은 대법을 굳게 믿는 노인의 의지를 없애지 못했다. 노인은 법정에서 정당하고 날카롭고 엄숙하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지 근 20년이 되는데 몸이 특별히 건강해, 약을 먹은 적이 없고 주사를 맞은 적도 없습니다. 나는 줄곧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에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명을 거부했다.

장 씨 집단이 파룬따파를 박해한 18년 이래, 쑨성화는 여러 차례 불법 납치와 방해를 받았다

1999년 9월 14일, 쑨성화와 3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수련생 장(張) 씨를 보러 갔다가 그곳의 대대 치보주임에게 신고를 당했다. 10여 일 동안 구류를 당한 후, 9월 25일에 풀려났다. 이후 스차오 분국의 경찰은 늘 쑨성화와 그의 가족에게 소란을 피워, 쑨성화는 부득이 안닝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줄곧 10여 년 동안 지속되었다.

2002년 2월 28일, 쑨성화는 한 수련생을 보러 갔는데, 그 수련생은 이미 납치됐다. 쑨 씨는 그곳에 잠복해 감시하던 경찰에게 납치돼 다스차오 분국에 불법 감금됐다. 밤중에 그녀는 ‘나는 진선인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려 한 사람으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화장실 2층 창문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는데, 요추, 흉추, 발의 뼈, 세 곳이 부러져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당직을 서는 사람이 발견하고 또 그녀를 붙잡아 돌아왔는데, 그녀의 여러 곳의 뼈가 부러진 것도 돌보지 않은 채 여전히 그곳에서 수갑을 채웠다. 이어진 하루 동안 그녀에게 밥을 주지 않고 물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후 퇴근 전에 그녀를 유치장으로 보내 넣었다. 유치장에서 보름 동안 감금하고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 3월 15일, 그녀는 랴오닝성 마싼자(馬三家) 교양원으로 보내졌는데, 당시 그녀의 발뒤축은 매우 심각하게 부어올라 걸을 수 없었다. 교양소에서 수감을 거부해 또 유치장으로 끌고 돌아왔다가, 23일 후에 풀어주었다.

2006년 정월 초이렛날 저녁 7시가 넘어서 스차오 분국의 경찰과 가도 주임 등은 이유 없이 쑨성화를 다스차오 유치장으로 납치해 또 1년의 노동교양을 판결했다. 그 후 쑨성화의 남편이 광적으로 가도로 가서 석방을 요구하고 공안국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해서야 맨 마지막에 그녀를 석방해 집에 돌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들은 또 늘 집으로 찾아와 소란을 피웠다.

사실 한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많은 경찰이 그중에 참여한다. 단지 불법으로 쑨성화 납치에 참여한 사람만 해도 30여 명이나 된다. 업무담당 직원은 스차오 분국, 다스차오 공안국, 다스차오 검찰원, 다스차오 법원, 잉커우(營口) 구치소 등 여러 개의 사건 처리부서와 연관이 된다. 빈주먹인, 마음에 선량함을 품은 노인을 겨냥해,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은 이와 같이 방대한 경찰력을 움직였는데, 장래에 반드시 세인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장즈신(張志新)이 문화대혁명 때의 한 마디 말을 사용하면, 다시 10년이 지나가면 당신들은 이 일체를 아주 가소롭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 대륙의 국민은,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철저히 깨닫지 못하며 무턱대고 따라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있다.

관련 박해 직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26/3394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