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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하얼시 파룬궁수련생이 받은 성적 박해

– 17년간의 비바람 역정(5)

[밍후이왕] (전편에 이어서)

6. 인성을 파괴하는 성적 박해

사악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에 대한 박해는 인간성의 말살이고 조금의 양심도 없는 박해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가혹한 고문박해를 가했는데, 그중에서 남녀수련생 모두에게 가한 성적고문은 사람의 머리털이 모두 곤두서게 하는 끔찍한 고문이었다. 그 고문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0만 볼트 고압전기를 생식기에 대고 전기충격을 가하는 그런 고문을 자행했는데 그 사악한 자들의 변태적인 심리는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마귀부체가 작용을 한 것일 거다. 사악한 중공은 바로 마귀의 사교(邪教)인 것이다. 다음은 성기에 고문을 가한 많은 성적 고문 박해 중에서 일부 사례를 든 것이다.

(1) 인간성이 마비된 전기고문, 온 건물에 비명

1) 오웬룽, 치치하얼시 태펑(鐵鋒) 분국과 타이라이(泰來) 감옥에서 당한 고문을 말했다. 그는세인들에게 파룬궁이 중공에게 박해받는 내용의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되어, 태펑 분국에 납치되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받았다. 다음은 그가 침통하게 자술한 내용이다.

나는 2006년 3월 헤이룽장성 치치하얼 태펑 분국에 불법으로 체포되었다. 경찰은 머리에 두건을 씌우고 빈집으로 끌고 가서, 나의 옷을 전부 벗긴 후, 두 손을 결박해 높은 벽에 걸어놓고, 양손 엄지와 생식기에 전기선을 연결하여 전기충격을 가했다. 또 그들은 쇠 의자에 앉혀놓고 심문하면서 대답이 맘에 들지 않거나 늦게 대답하면 전기충격을 가했다. 당시 태펑 분국은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는데, 그들이 심문받을 때 온 건물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나는 박해 때문에 한동안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다. 2006년 3월 19일 내가부친의 집 계단을 내려오다가, 건물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승합차에서 정체불명의 괴한 3명이 뛰쳐나와 나를 납치해 강제로 차에 태웠는데, 납치범 두목은 신공지 파출소 경찰관 싱휘이민(邢惠民)이라는 걸 알게 됐다.

中共酷刑示意图:铁椅子

중공의 고문형구 – 쇠의자

그들은 나를 태펑 분국으로 끌고 가서 쇠 의자에 채워놓고 40여 분간 고통을 주었는데, 쇠 의자 중간에 있는 2개의 구멍에 양손을 넣어 채운 후 몸을 앞으로 끌어당겨 발은 바닥에 댄 채 몸은 의자에 앉지 못하게 달아매 놓은 것이다. 대략 10분 정도 지나면 누구도 견디지 못한다. 그렇게 고통을 준 후 의자에 앉혔다. 몸에는 땀이 비 오듯 했는데, 그런 고통을 3회씩이나 반복해서 당했다.

다음 날은 전문적인 고문 기술자가 와서 내 머리에 두건을 씌워 차에 태운 후 또 어디론가로 갔는데, 도착한 곳은 빈집이었다. 머리의 두건은 그대로 둔 채 옷을 몽땅 벗긴 후 두 손은 채워 벽에 걸어 놓고 엄지와 생식기에 전기선을 연결한 다음 손잡이를 돌려 전기충격을 가했다. 두 번째 그 고문을 당했을 땐 죽기보다 못한 혹심한 고통이었다. 그들은 방법을 바꿔서 고문했는데, 의자에 결박해 놓고 양손 식지에 전기선을 연결한 후 전기충격을 가하면서, 다른 수련생의 이름을 말하라고 강요했고, 듣지 않으면 계속 전기충격을 가했다.

나는 몇 차례 그런 고문을 당하고 나서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그들은 전기를 걸어 놓고, 심문하면서 조금이라도 대답이 늦으면 재빨리 전기를 돌렸다. 내가 화장실을 가면서 너무 고통스러워 머리를 벽에 부딪치자, 그들은 나를 바닥에 눌러놓고 비틀어 꼬집으며 구타했다. 당시 태펑 분국에서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했는데, 모두 그런 고문을 가했기 때문에 건물 안은 온통 비명으로 진동했다. 4월 7일 내가 간수소로 이송된 후, 이미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곳 간수소에 있을 때 그곳에 잡혀 온 마훙(馬紅)의 사촌누이가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다가 음식물 강제주입을 당하다가 치사 되었다.

2007년 2월 8일 나는 파룬궁수련생 리치(李奇), 류징밍(刘晶明), 쩡화춘(郑华春), 쪼원싼(赵文山), 츠하이(慈海), 런영춘(任英群), 싱엔량(邢延良) 등과 함께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되었다. 당시 합숙훈련대의 조장은 죄인으로 수감된 리하이영(李海泳)이었고, 부조장은 푸궈후이(付国辉)였다. 이자들은 한손으로 하늘을 가리듯이 경찰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제멋대로 악행을 저질렀다. 조장인 리하이영이 마음대로 사람을 구타해도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가 리치 수련생에게 “전환하라(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말하면서 리치의 솜옷을 빼앗아 얼게 하고 온갖 협박을 가하면서 ‘전환’을 요구했다. 리치가 응하지 않고 단식으로 항의하자, 그는 솜옷을 돌려주었다. 그렇지만 그는 감방의 다른 사람에게 모두 바람을 쐬라고 내보냈을 때 류징밍 수련생만 단독으로 남게 해서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리며 ‘전환’하겠다는 포기각서인 소위 ‘4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감옥 측에서 3월 27일 ‘전환’을 설득하는 악인의 강사를 초청해서 연설을 듣게 한 후, 조장 리하이영은 우리를 모아놓고 “회의에서 결정했는데, 우리 감옥의 모든 수련생이 전부 믿음을 포기하는 ‘단체전환’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에 응하지 않는 수련생에게는 응할 때까지 형벌(고문)을 가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바로 그 날 밤 류징밍 수련생을 고문치사 시킨 것이다. 그런 사단이 벌어지자, 감옥 측은, 당일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모두 각대로 분산 수감한 후 계속 부대별로 전환을 강행했다.

나는 오직 진선인(真善忍)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 뿐인데, 수년간 사악한 중공 악당에게 비인간적인 고문 박해를 받아, 2회 구류처분, 1회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4년형을 받고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되어 온갖 고문 박해를 당했다.

(2) 치치하얼 파룬궁수련생, 성적 박해받은 사례

1) 량찐위(梁金玉)는, 잔즈싼구 북방미전기공장의 직공으로 2002년 불법적인 10년 형을 선고 받았다. 살인마굴로 악명이 높은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되어, 파룬궁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격한 1급 수감자로 분류돼 각종 고문혹형의 고통을 당했다. 인간성이 마비된 사악한 교도관은 바늘로 생식기를 찔러 온통 바늘구멍을 만들어 놓았고, 2003년에는 혹심한 구타로 인한 뇌출혈로 병원에서 2개월간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 2005년에는 고문 박해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정신마저 분명치 못했고, 기억력이 상실되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대소변을 기리지 못하게 되어,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움직일 수 있는 폐인이 된 상태의 고통 속에서 2010년 2월 5일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2) 호오즈머이(郝治美, 61)는, 치치하얼시 잰화취이푸(建華區逸夫)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퇴직한 사람이다. 그녀는 2005년 3월 16일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치치하얼시 잰화취 형사경찰대대 악경에게 납치되어 제1간수소에 감금된 후 18일 저녁 심문을 받을 때 온갖 고문 혹형을 당했다. 고문은 두목의 진두지휘로 이루어졌는데, 몇십 가지가 넘는 온갖 방법으로 고문을 가했다. 그 고문 중에 가장 악독한 방법은 칫솔모가 밖으로 향하게 해서 4개의 칫솔을 묶어서 그걸 여자 생식기 안에 쑤셔 넣고 가하는 고문이었다. 그때 그 고문에 참여한 몇 명은 경찰학교 재학생들이었다. 그 고문사건이 있은 8일 후인 24일 잰화취씬쟝루 파출소는 가족에게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는 통지를 했는데, 악경은 “시신의 옷을 갈아입혀 내올 때 누구도 사진촬영을 해서는 안 되므로, 카메라나 휴대폰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酷刑演示:捅刷下身

여성생식기 고문에 사용한 칫솔

왕워이 화(王偉華)는 1979년 7월생 남자다. 그는 3차례나 불법으로 중공에 납치되어 고문을 당했는데, 추운 겨울 옷을 모두 벗겨 냉수를 퍼붓고, 높이 매달거나 쇠 의자에 채워 놓고 전기고문을 했고, 고환에 고통을 주는 고문 등 온갖 수법의 고문을 당한 후, 불법적인 4년 형을 선고 받아 2003년 6월 16일 하얼빈 감옥에 수감되어 고문 박해로 사망했는데, 당시 24세였다.

3) 리후이 펑(李惠豐), 짱쑤즈(張淑哲) 등은 2001년 1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잰화취형사 위즈챵(餘志強) 등에게 불법으로 납치당했다. 납치된 2명의 여자수련생은 한방에 감금됐는데, 그때 감방 벽 너머 옆방에서 남자수련생이 고문을 당하는 비명이 들렸다. 그녀들은 말했다. 밤중이 되자 경찰이 우리에게 순순히 자백하라고 위협하면서, 우리를 작은 방으로 끌고 갔는데, 그 방에 7, 8명의 경찰관이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소위 ‘소진배검(蘇秦背劍)’이라는 고문을 가했는데, 한 손은 위로, 한 손은 밑으로 해서 등 뒤로양손을 채웠다. 참으로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들이 이름을 묻자, 나는 “파룬궁수련생이다.”라고 대답했다.

中共酷刑示意图:电击

중공의 전기고문 충격기

그들은 또 나를 남편이 고문 받는 방으로 끌고 가서 보여줬다. 남편 리후이펑(李惠丰)은 털실 바지만 입은 채 발이 쇠사슬에 묶여 쇠 의자에 채워져 있었는데, 얼굴은 창백해 있었다. 그자들의 말로는, “남편의 생식기는 전기고문으로 시커멓게 탔다.”라고 했다. 그러고도 또 장기간 양팔을 달아매 놓는 혹독한 고문을 당해 반년 동안을 혼자 걷지 못했고, 스스로 활동할 수가 없었다.

中共酷刑示意图:性摧残

중공의 성기학대 고문

그들은 다시 나를 한 곳으로 끌고 가서 “이 여자는 노동교양소에도 수감됐던 사람이니 방 높은 곳에 매달아 놔라.”라고 말하면서, 내 양손을 뒤로 수갑을 채운 후, 물수건으로 손목을 결박하고, 끈으로 두 발을 쇠 의자에 묶어놓고, 다시 두 손을 철제 침대 아래위로 묶어 놓아 몸이 허공에 뜬 채 체중은 모두 손목으로 쏠리게 했다. 인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악인들은 그런 상태의 내 몸을 흔들었는데, 어떤 악인은 침대에 앉아서 힘껏 침대를 흔들어 고통을 주었다. 또 한 악경은 음흉한 모습으로 여자의 민감한 부위를 전기 봉으로 충격했다. 그때 다른 악경은 “어디가 민감한 부분인가? 바로 이곳××가 민감하겠군.”라며 전기 봉으로 충격을 가했는데, 직접 아래에는 충격을 가하지 않았지만, 미친 듯이 젖가슴을 전기로 지졌다. 그런 후 침대에서 끌어 내려 다시 쇠 의자에 채워놓았다. 그들은 “말하라! 말하지 않으면 또 매단다. 또 베이징에 가겠는가? 현수막을 걸겠는가?”라고 소리쳤다.

4) 왕찐판(王金范)은 2002년 4월 19일 오전 11시경 베이쥐자이 파출소로 끌려갔다. 그곳 경찰관들은 왕찐판에게 성적 모욕을 주면서 전신에 전기로 충격하는 고문을 가했고, 쇠 의자에 채워 앉힌 후 야위고 키가 큰 경찰관과 키 작은 경찰관 둘이서 더러운 걸레로 왕찐판의 입에 쑤셔 넣어 입을 막은 후 입을 잡고 당기고, 양 젖가슴을 꽉 잡고 방안을 돌며 모욕적인 고문을 가했다. 그러다가 물이 담긴 물병으로 눈을 때렸으며, 계속해서 의자에 앉혀놓고 머리카락을 앞 의자에 올려놓은 후 막대기와 신발로 다리와 발바닥을 구타했다. 키 작은 경찰관은 머리를 의자 뒤로 잡아챈 후 주먹으로 가격했으며, 키 큰 경찰은 여자 치골에 걸터앉아 앞뒤로 흔들면서 음란하고 해괴한 짓거리를 했는데, 다만 옷을 입었을 따름이었다.

5) 짱민(張民-가명)은 치치하얼시 모 구의 간부였다. 그가 당한 성적 고문은 참으로 치가 떨릴 정도였다. 그는 치치하얼시 룽싸취잰화(龍沙區建華) 형사경찰대에 잡혀가 고문을 당했는데, 사람들은 그 형사경찰대에 대해 “파시스트보다 더 악독한 왜놈의 집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들 악경은 짱민의 두 발을 위로, 머리는 아래로 매달아 놓고 아랫배와 아래 생식기를 동시에 사정없이 가격해서 혼절시켜 생식기가 크게 부어올랐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자전거 살을 퉁퉁 부은 음경 속 요도에 찔러 넣고는, 마성의 발작을 일으킨 듯이 크게 웃었는데, 인간성 말살의 완전한 변태였다.

中共酷刑示意图:“倒挂”

중공의 혹형 설명도- 거꾸로 매달기

6) 판훙뚱(潘洪東)은, 헤에룽장 치치하얼시 파룬궁수련생이다. 2001년 9월 4일 납치되어 태펑(鐵鋒) 형사경찰대에서 호랑이 의자와 전기 봉으로 생식기를 충격하는 고문을 당해, 얼굴 모습까지 변형되어 그 형편이 말이 아닐 정도가 됐다. 2002년 말 불법적인 10년 형을 선고 받고 치치하얼시 타이라이 감옥에 감금되어 온갖 고문 학대를 받다가 2005년 5월 15일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겨우 37세였다.

7) 리워이링(李威嶺)은, 치치하얼시 푸라얼지(富拉爾基) 파룬궁수련생이다. 그는 푸라얼지 형사경찰대에서 악독한 구타와 모욕을 당했다. 악경이 잡지를 말아 머리와 얼굴을 때렸고,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벽에 처박았으며, 쇠 의자와 호랑이 의자에 앉는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생식기에 모욕감을 주는 성적 고문을 당했다.

8) 짱리룽(張麗榮)은, 헤이룽장 치치하얼 룽사 분국에 잡혀가 온갖 고문을 당했는데, 그곳의 왕 과장이라는 자는 작은 키에 뾰족한 입으로 원숭이 형상을 닮았는데, 99년부터 몇 년간 파룬궁을 박해한 선봉자로 유명하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을 심문할 때 언제나 여자수련생들을 성적인 고문방법으로 박해를 했다. 1999년 10월 사악한 왕 과장은 짱리룽의 옷을 몽땅 벗긴 후 더러운 손을 생식기 안에 넣고는 마구 흔들었다. 그 고문을 당한 장리룽은 고통으로 서지도 걷지도 못했다. 생식기는 물론 자궁까지 다치게 했지만, 겉으로는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감금된 지 7일 후에는 걷지 못하게 되었다. 후에 쌍허 노동교양소에 감금됐다가 풀려났지만,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가택연금 상태에서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9) 리꾸이샌(李桂賢)의 말, 사악은 나를 2005년 3월 15일 밤 푸라얼지 간수소에 감금했다. 간수소의 소장 탠춘리(田春力)는, 나에게 “당신들, 파룬궁 여자수련생은 모두 남자 감방에 집어넣는다. 당신도 남자감방에 넣겠다!”라고 위협했다. 한 번은 파출소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나를 따라 온 탠춘리가 화장실 문 앞을 지키며 떠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 짓은 비열한 사악의 저속한 행태의 본성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이었다.

10) 푸위(富裕)의 한 여자수련생의 말, 1999년 10월 치치하얼시 푸위샌에서 베이징으로 법을 실증하려 가는 수련생이 많았다. 여자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어 모두 푸위샌 간수소에 불법으로 감금 되었다. 그중의 한 여자수련생은 강제로 옷이 전부 벗겨진 채 남자 감방에 처넣어져, 감방 남자 죄수들에게 윤간을 당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가족들은 그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더욱 혹심한 박해를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외부 사람과 접촉을 못하게 했고, 특히 파룬궁수련생과의 접촉을 철저히 막았다.

11) 류위메이(劉玉梅)의 말, 이안샌(依安縣)의 파룬궁수련생 21세 류위메이는 베이징으로 가서 상방(진정)하다 경찰에 납치되었는데, 신분을 밝히지 않자, 형벌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성적 모욕의 고문을 받았고, 뜨거운 물 또는 냉해의 박해를 받았다.

12) 마융(馬勇)의 말, 파룬궁 수련생인 그가 베이안(北安) 감옥에서 파룬궁 포기를 거절하자, 악도들이 “수련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쓰지 않으면, 동성애자 무리 속에 보내 성적 박해를 가하겠다.”라고 위협했다고 했다.

13) 왕위둥(王宇東)의 말, 헤이룽장 치치하얼시의 파룬궁수련생은 불법적으로 10년 형을 받고 하얼빈 감옥 작은방에 갇혔는데, 바닥 고리에 쇠사슬로 묶인 후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그중의 한 악인은 고환을 잡아당기는 고문을 가하면서 “네가 고문 받다 죽으면 정상적인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14) 한 남 수련생의 말, 치치하얼시 룽싸취잰화 형사경찰대가 고압 전기 봉으로 생식기에 전기 충격을 가하고 또 고환을 잡아당겨 고통을 주는 고문을 당했다.

15) 푸취(富區) 여자 수련생의 말, 헤이룽장 치치하얼 푸라지취훙안(富拉爾基區紅岸) 파출소의 남자경찰관 류뚱썽(劉冬生)은, 몸수색을 한다는 이유로 심문실의 전등불을 전부 끈 다음 여자의 은밀한 아랫도리를 마구 만진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당신에게 사는 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하게 만들 것이다. 당신의 집안사람들이 죽게 만들 것이고, 집안이 망하게 만들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이런 인간쓰레기들의 잔인함은 말 그대로 후안무치였다.

(계속)

원문발표: 2016년 12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5/33893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