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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하얼시 파룬궁 어린 제자들이 당한 박해

〈‘치치하얼시 파룬궁수련생 17년 비바람의 역정(4)’에 이어지는 5번째 문장임〉

[밍후이왕]

[5] 수난 중의 어린 대법제자

어린 시절과 청춘은 인생에서 제일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시절이다. 99년 이전 각 연공장의 불광(佛光) 속에서 자란 어린이들은 행복한 어린 천사였다. 그러나 99년 장쩌민집단이 ‘진선인(眞善忍)’을 신앙하는 선량한 민중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중국대륙의 무수한 파룬궁수련생들은 불법적인 수단에 의해 판결, 노동교양처분, 유리걸식, 혹형치사, 생체장기적출 등을 당하였다. 동시에 포대 속의 아기, 말을 배우는 아동, 초, 중학생, 청소년들에 이르기까지 그들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심령의 상처를 받았다. 어떤 이는 가정을 잃고 고아가 됐고, 어떤 이는 부모와 함께 불법 감금당하여 경찰, 교사, 학생들의 멸시와 모욕과 핍박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유리걸식하거나 박해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목록

1. 쉬훙메이(徐宏梅)의 딸 탠탠(恬恬): ‘나의 엄마, 아빠를 돌려달라’

2. 판번위(潘本余)의 자식 쇠랜(雪莲)의 쓰라린 어린 시절

3. 왕찐파안(王金范)의 딸 춘메이(春梅)의 고난의 세월

4. 대법어린 제자 왕인핑(王胤平), 핍박으로 인해 정신이상

5. 모친의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아들의 대학교 입학 불허

1. 쉬훙메이(徐宏梅)의 딸 탠탠(恬恬): ‘나의 엄마, 아빠를 돌려 달라’

쉬훙메이는 1971년생이고 95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였다. 쑨워이민(孙维民)과 연공장에서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고 1998년 딸 탠탠이 태어났다. 99년 중공의 파룬궁박해로 인해 재난이 세 식구를 덮쳤다. 쉬훙메이는 5차례나 납치, 연금, 불법(不法) 노동교양처분(3년)으로 쐉허 여자노교소에 갇혔고 온갖 혹형과 박해를 당했다. 3년 동안 친인과 만나지 못하게 하였고 남편 쑨워이민도 불법적인 중형(13년)으로 타이라이(泰来) 감옥에 갇히게 됐다. 딸 탠탠은 불과 한 살 나이에 아빠 엄마와 함께 기계공장에서 버린 보온 설비가 없는 숙사시설에 감금당했는데 공포와 두려움과 멸시 속에서 부모의 사랑도 받지 못한 채 생활하였다.

일찍이 행복했던 세 사람의 가족

99년 9월 어느 날 경찰이 탠탠의 집에 들이닥쳐 아빠 엄마를 경찰차에 실었고 엄마는 아이가 놀랄까 봐 탠탠을 가슴에 품었다. 그때 탠탠은 10개월밖에 안 되었다. 경찰은 그들 셋을 불법으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헌 집에 가두고 4명이 매일 지키게 했는데 그 헌 집은 보온시설이 없어 아주 추웠으며 음침하고 몹시 두려운 곳이었다.

감시자들이 밤중에 자주 문과 창을 두드렸기 때문에 탠탠도 늘 놀랐고 깨어나 크게 울었다. 그 후로 문소리가 나면 우는 습관이 생겼다. 10월의 하루 날이 저물었는데 경찰 몇이서 갑자기 아빠를 데리고 갔다. 이튿날 날이 밝아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자 탠탠은 문을 향해 ‘아-빠’하고 불렀다. 엄마는 탠탠을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둘이서 이 헌 집에 두 달간 갇혀 있었는데 어떤 때는 먹을 것이 없어 탠탠이 참을 수 없게 되면 남은 차가운 만두를 입으로 핥았다. 그때 어린 것의 이는 8개가 나 있었다.

11월 어느 저녁 갑자기 많은 사람이 쳐들어와 묻기를 ‘파룬따파는 좋습니까?’라고 묻자 엄마는 ‘좋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들이 또 묻기를 ‘당신은 연공을 하겠는가?’라고 하자 역시 대답은 ‘연공하겠다.’였다. 탠탠이 놀라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경찰이 탠탠을 억지로 떼어놓자 아이는 ‘엄-마! 엄-마’하고 울부짖었다. 탠탠은 겨우 한 살인데 너무나 무서웠을 것이다. 경찰이 엄마를 경찰차에 태워 끌고 가고 탠탠은 외할머니 집으로 보내졌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는데 쉴 새 없이 눈물만을 흘렸다.

2001년 여름 아빠의 재판 때 외할머니는 탠탠을 안고 아빠를 보러 갔다. 탠탠이 손에 사과를 들고 아빠에게 ‘아빠 사과 드세요.’라고 했다. 아빠는 눈물을 머금은 채 바라보며 먹지 못했다. 이후 아빠는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2003년의 봄 듣는 말에 의하면 엄마가 노교소에서의 경찰의 박해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여 대수술을 했다고 한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급히 노교소에 가서 엄마를 보려고 했으나 경찰들이 만나지 못하게 했다. 여러 번 찾아가서야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사실 탠탠은 엄마를 볼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가 사진 속의 엄마만 보도록 했다. 마침내 엄마가 나오신다. 엄마는 계단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나오시는데 아주 힘들게 오고 있었다. 엄마가 탠탠을 안자 탠탠은 엄마를 바짝 끌어안았다. 얼마나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었을까!

여름에 엄마가 돌아왔다. 탠탠은 끝내 오랫동안 기다렸던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얼굴색이 창백하고 걸음이 아주 더뎠는데 다리에 상해를 입었다. 침대에 누운 엄마는 아주 쇠약했다. 탠탠은 엄마 옆에서 엄마를 지켰다. 어른들이 탠탠에게 노교소의 경찰이 엄마를 때렸다고 알려주면 탠탠은 매우 괴로워했다. 왜 선량한 엄마를 이렇게 대하는가? 엄마는 항상 탠탠에게 ‘진선인’에 부합하는 좋은 어린이가 되어야 하고 선량하게 다른 애들을 잘 대해주라고 알려주었다. 탠탠은 엄마 아빠와 같이 생활하는 다른 애들처럼 따듯한 집이 있기를 얼마나 기대하였겠는가? 학교에 오갈 때 엄마 아빠가 마중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엄마는 집으로 돌아올 수가 없었다.

아빠는 감옥에서 얼마나 고생할까? 탠탠은 아빠가 맞아서 귀가 먹고 허리도 다쳤다고 들었다. 그 안의 경찰은 왜 이렇게도 흉악한가?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당신들은 좋은 내 아빠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된다. 탠탠은 엄마 아빠를 애타게 생각하고 있다.

2. 판번위(潘本余)의 자식 쇠랜(雪莲)의 쓰라린 어린 시절

대법 어린 제자 쇠랜은 박해로 치사 당한 파룬궁수련생 판번위의 자식이다. 아빠가 불법으로 노교소, 감옥에 있는 기간 외롭고 처량했으며 또 사회와 학교, 학우들로부터도 각종의 압력을 받아야 했다.

1997년 여름 겨우 7세의 쇠랜은 아빠와 대법수련에 들어섰다. 더운 여름 엄동설한, 비바람풍설에도 아빠 따라 연공장에 가서 연공을 견지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꼈다.

99년 박해가 시작되면서 텔레비전과 방송에서 말하는 하늘땅을 뒤엎는 거짓과 모함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해 쇠랜은 9세였는데 아빠가 푸위 노교소에서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당하는 중 각종의 혹형에 시달렸다. 일 년이 지나도 아빠가 전향하지 않자 공직을 파면했고 엄마와도 핍박에 의해 갈라서게 됐다.

2002년 여름, 쇠랜과 아빠는 베이징에 법을 실증하러 갔다가 탠안먼에서 경찰에게 납치돼, 매를 맞았고 구류 당했다. 우리 고장 경찰에게 인계됐고 아빠는 본 지역에서 불법으로 감옥에 감금됐다.

그 후 쇠랜의 운명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 의지하던 아빠가 감금되자 의지할 데 없는 고독한 몸이 됐고 게다가 냉대에다 숱한 멸시를 받아야 했다. 학교에 돌아온 후 쇄랜이 문 앞에 서 있는데 교장과 교도주임 등이 와서 묻기를 “연공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고 했다. 쇠랜은 대답하기를 “다른 모든 것은 다 대답할 수 있어도 나보고 연공을 하지 말라면 대답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매일 학교에 가면 귀신이 문을 드나들 듯이 며칠 지나지 않아 교장, 주임, 기자, 파출소 경찰이 쇠랜을 사무실로 데리고 가서 대회를 열듯이 모든 교실에 방송하여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했다. ‘모모의 일로 회의를 하고, 반주임이 참석한다.’ 교도주임은 쇠랜의 앞가슴을 밀면서 소리친다. 복도에서 학생들이 ‘이는 파룬궁 연공 때문이다’ 매일 쇠랜의 가족이 학교에 오고 가는 것을 엄격하게 감시한다. 가족이 오면 학생들이 곧 ‘파룬궁 가족이 왔다’라고 한다. 몸이 편하지 못해 집에서 며칠 쉬면 학교의 교장, 주임이 집에 와서 관찰하는데 파룬궁수련생이 쇠랜을 데리고 가는 것을 방지한다고 한다.

하루는 아빠가 사람에게 편지를 부탁하여 학교로 보냈는데 선생이 이를 경찰국으로 보냈고 경찰이 학교에 와서 쇠랜을 파출소로 끌고 갔다. 7, 8명 경찰이 위협하면서 하나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7, 8번이나 묻는다. 하루는 어딘가에서 날아온 뾰쪽한 돌멩이가 쇠랜의 뒤통수를 찔렀는데 돌을 빼내자 피가 많이 흘러내렸다. 쇠랜은 압력으로 인해 숨쉬기도 어려웠고 마치 바람 속의 촛불처럼 처량하고 외로웠다. 정신과 육체가 거의 붕괴 상태에 이르렀다. 어디를 가도 쇠랜은 부담이었고 짐이었으며 괴물이나 다른 종류로 취급됐다. 고독하게 집에만 누워 눈물을 흘렸고 어떤 때는 며칠씩 굶기도 했다.

아빠 판번위는 2011년 7월 17일 박해로 치사 당했다. 쇠랜은 다시는 사랑하는 아빠를 볼 수 없었다.

3. 왕찐판(王金范)의 딸 춘메이(春梅)의 고난의 세월

어린 대법 제자 춘메이는 파룬궁수련생 왕찐판의 딸이다. 병 때문에 엄마와 수련에 들어섰는데 대법이 지혜를 열어주어 낙후한 학생에서 우수생이 되었다. 그러나 대법이 박해를 당하자 엄마도 불법으로 감금됐고 춘메이까지 고독한 생활을 해야 했다. 늘 쉰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요기하는 정도였고 15세 때는 엄마와 함께 간수소에 4개월이나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춘메이가 6세 때 엄마와 기차를 탔는데 도중에 기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복도의 보온기에 부딪쳐 거의 숨이 멎었으나 의사의 구급치료로 살아났다. 집으로 돌아왔으나 머리가 터지는 듯 아팠다. 의사의 진단은 뇌진탕이었다. 베이징 301의 병원에 의하면 오직 의료수단으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학교도 갈 수 없고 두뇌도 쓰지 못한다고 했다. 긴장하면 머리는 공백 상태가 됐고 소변도 가리지 못했다. 춘메이는 할 수 없이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와 베이징으로 치료하러 다녔는데 집에서는 빚을 많이 졌다.

치료비가 없을 때 친척이 전화로 아이를 데리고 연공하라고 권고하였다. 엄마가 연공하는 데 돈을 얼마 받는지 묻자 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딸을 데리고 집 근처의 파룬궁 연공장에 갔다. 연공장에서 엄마는 딸에게 “너는 가서 놀아라. 엄마가 배운 다음 집에 가서 너를 가르쳐주겠다.”라고 했다. 보도원이 걸어와서 “아이도 들어와서 배우게 하세요. 말을 알아들으면 됩니다. 공법은 간단하여 배우기 좋으며 주로는 심성을 수련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한 달간 연공하자 춘메이는 완전히 좋아졌다. 춘메이는 지혜가 열려 학과공부 성적이 선두였고 중점학교에 입학하였다. 작문 실력도 좋았고 피아노 실력도 좋아 칭찬을 받았다.

99년부터 (중공 정부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했다. 엄마가 외지의 정신병원에 갇혀 박해당할 때 춘메이는 13세였으며 혼자서 고독하게 생활했다. 한번 밥을 하면 이틀씩 먹었고 또 늘 굶기도 하고 때론 쉰밥을 먹었다. 학교에 진상 표어가 있으면 곧 춘메이가 한 일이라고 한다. 경찰이 학교에 찾아와 춘메이를 신문하며 핍박하면서 ‘전향’하라고 했다. 철로국의 6중학교 교장과 선생은 늘 춘메이를 찾아 핍박하고 수업도 듣지 못하게 하였다. 복도나 운동장에 벌을 세우고도 시험은 반드시 참여하게 했는데 성적이 좋지 못하면 곧 대법을 모욕했다.

2002년, 춘메이가 15세 되던 때다. 4월 19일 오전 11시 공안은 엄마를 납치하려고 미리 학교에서 춘메이를 찾아 집 열쇠로 문을 열게 하였다. 춘메이는 복도에 들어서자 위로 뛰면서 “엄마 문 열지 마세요, 경찰이 잡으러 왔어요.”라고 외쳤다. 경찰은 춘메이의 입을 막고 끌고 내려와 북주택 파출소에 구류하였다.

북주택 경찰은 놀란 춘메이를 간수소로 압송하였고 후에 엄마도 여기로 압송되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엄마를 보자 춘메이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엄마를 보고서도 감히 부를 수가 없었는데 엄마와 분리시킬까봐 왕 아주머니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었다. 춘메이가 엄마를 돌보면 모녀란 것이 발각될까봐 엄마는 항상 눈짓하며 춘메이에게 울지 말라고 했다. 밤중에는 모녀가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리지만, 또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였다.

한 달 후 춘메이와 엄마가 심사를 받았다. 소위 필적을 대조하고는 경찰이 간수소의 여경에게 물었다. “저 둘은 모녀인데 한방에 있지 않았는가?” 방으로 돌아오는데 간수소의 런위샤(任玉霞)가 “너 왜 엄마라고 말하지 않았어?”라며 춘메이의 뺨을 때렸다. 춘메이는 다른 감방으로 가게 됐고 불법감금 4개월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생활내원이 없어 곳곳에서 일했는데 어린이가 밤새도록 집집이 우유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다.

4. 대법 어린제자 왕인핑(王胤平), 핍박으로 정신이상

14살 때의 파룬궁수련생 왕인핑은 모친과 함께 파룬궁이 박해당하는 진상 자료를 사람들에게 나눠주다가 부챵(富强)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모자는 밤새 매달려서 혹독한 괴롭힘을 당했으며 또 불법적인 형벌을 선고당했다. 왕인핑은 핍박으로 실성했는데 지금도 생활을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

왕인핑은 전에 잔즈싼취(碾子山区) 제 30중학에서 공부했는데 건강하고 활발한 좋은 학생이었다. 2001년 12월,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박해한 사실을 밝히려고 모친을 따라 세인에게 진상 자료를 나눠주었다. 푸챵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당해 잔즈싼 공안 분국으로 보내졌다. 잔즈싼 ‘610‘과 공안 분국 국장 쉬앤중(徐延忠)의 지시 하에 쑈랜둥(肖连栋) 등 경찰이 이들 모자를 모질게 때리고 밤새 매달아 고문하였다. 그 다음 날 모친을 룽쟝샌 간수소로 압송하였다. 하룻밤 동안 고문과 시달림을 당한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 채 왕인핑은 부친에 이끌려 집으로 왔다.

룽쟝 간수소에서 왕인핑의 모친을 핍박해 다른 수련생을 일러바치게 하려고 했다. 2002년 4월 경찰 쑹궈쥔(宋国军)은 차를 몰고 학교에 가서는 왕인핑을 룽쟝 간수소에 납치했고 모자를 반달 동안이나 불법감금하고 위협하였다. 왕인핑의 앞에서 모친을 공갈 위협하면서 “만약 당신이 자료의 출처를 말하지 않으면 당신 아들을 노교소로 보내겠다.”라고 했다. 음모가 성공하지 못하자 그들은 그의 모친을 하얼빈 여자감옥으로 보냈다.

왕인핑을 잔즈싼 간수소로 납치하여 계속 박해하였다. 반달 후 왕인핑의 심신은 극도의 괴로움과 놀람으로 거의 붕괴 상태가 됐다. 그가 부친과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악경 관파둥(关法东)[전에 푸챵 파출소 소장임]은 여러 차례 집에 찾아와서 교란하며 강제로 손도장을 찍게 했다. 왕인핑은 평상시에도 우울증으로 멍했고 학교에 가서 학업을 할 수도 없게 됐다. 이렇게 그는 정신이 이상해졌고 생활도 자립하지 못하게 되었다.

5. 모친의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아들의 대학 입학을 거부

캉즈머이(康志美) 여사는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이유로 중공법원으로부터 불법적인 3년형을 당했고 옥중에서의 박해로 거의 죽어가는 형편이었다. 그의 아들이 대학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모친이 파룬궁 연공을 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는 입학을 거부하였다.

캉즈머이는 간수소에서 거의 2년을 불법으로 감금당한 다음 룽싸 법원은 또 3년의 불법적인 형을 선고했다. 2007년 1월 24일에 하얼빈 헤이룽장 여자 감옥에 수감했다. 2007년 캉즈머이의 아들은 총점수 597점으로 심양 이공대학 국방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모친은 파룬궁 수련을 한다는 이유로 불법 구류 당하고 아들은 또 공부할 자격을 박탈당했으며 핍박으로 인해 1년간이나 더 복습해야 했다. 중공의 박해는 아이들의 심령에 심각한 상해를 가져다주었다. 아들은 청춘기의 관건적 시기에 모친의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고 1천일이 넘는 시간을 밤낮 엄마를 그리워만 했다. 시달림으로 성격이 괴팍해져 한동안은 강물에 뛰어들 생각도 하였는데 앞날의 희망이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계속)

문장발표: 2016년 12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종합논술원문출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14/3387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