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룽장 보리현 퉁성천이 박해당한 경험
[밍후이왕] 헤이룽장(黑龍江)성 치타이허(七台河)시 보리(勃利)현 파룬궁수련생 퉁성천(佟勝臣)은 올해 62세로,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10년 전에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아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퉁성천은 박해를 당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1997년, 우리 전 가족은 차례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해 정신과 육체적으로 모두 적잖은 이로움을 얻었다. 파룬따파는 내 선천적인 본성을 깨우쳐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게 했다. 그리고 명리를 담담히 여기고 선의로 남을 도와주었으며 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원망과 증오가 없었으며 덕을 중히 여겼다. 수련 중에 행복함과 인생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국공산당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해 일체 형식을 이용해 파룬궁을 모욕, 비난했으며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납치 박해를 진행했다. 나는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소환되어 심문받았고 소란과 감시를 받았다. 직장에서는 직원 대회를 소집해 나에게 인식을 말하게 강요하며 파룬따파 신앙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평소에 특별히 ‘민감한 날’이거나 내가 휴가로 외출할 때면 관련인들이 모두 나를 찾아와 면담했고 사람을 파견해 감시 등을 진행해 내 신앙자유를 박탈했다.
가택 수색 진행한 두목 “돈이라면 가져야지!”
2005년 12월 21일 저녁, 치타이허시 ‘610’은 한 무리의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보리현 신화가(新華街) 파출소 구역 경찰 린(林) 모씨의 통솔 하에 총 10여 명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도둑떼 식으로 뒤지며 조사했다. 컴퓨터 전부, 라디오, 스피커, 대법 책, 자기 테이프 등 물품을 강탈했는데 인민폐로 환산하면 대략 3만 위안(약 500만원)이 된다.
그들은 또 내 아이의 학비인 현금 2천여 위안, 6만 위안의 저축통장(그 후 되돌려 받았음)을 강탈했다. 수사 과정 중 한 중년 남자가 “이곳에 일부 돈이 있는데, 5전, 2전짜리인데 필요해요?”라고 묻자 책임자는 “돈이라면 가져야지!”라고 말했다.
610두목 “도둑질, 부패, 강탈은 상관하지 않지만 진선인은 믿으면 안 돼!”
나는 먼저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다가 2006년 1월 6일에 또 형사구류로 옮겨졌는데 나를 중점 대상이라고 말했다. 나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기에 조사에 협력하지 않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 치타이허시 ‘610’두목은 내가 협력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당신이 도둑질하고 강탈하고 음란 프로그램을 보고 탐오하고 사람을 다치게 해도 공산당은 모두 상관하지 않아! 그러나 진선인을 믿으면 안 돼!”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른바 ‘610사무실’은 장쩌민이 끌어 모은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이다.
경찰은 내가 컴퓨터 위에서 밍후이왕을 보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수련생을 안다는 등 이유로 1월 19일에 나에게 2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내렸다.
쑤이화 노동교양소에서 세뇌, 노역을 당하다
쑤이화 노동교양소에서 교도관은 강제로 나에게 대법을 모독하는 텔레비전, 동영상을 보게 하고, 주기(週記: 일주일 동안의 기록)를 쓰며, 노래를 부르고, 대열을 따라 걷고, 감시원으로 나를 박해하며, 강도가 큰 노역을 하고, 가족과의 면회 등을 제한했다. 그리고 공포 분위기를 제조해 대법제자를 때리고 욕하는 등 정신과 육체적 손상을 입혔다. 특히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할 수 없었기에 내 건강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노동교양소에서는 늘 대량의 사업을 체결해 우리에게 노역을 시켰는데 늘 노동시간을 연장했고 강도를 높였다. 경찰 전원은 출동해 공사를 감독해 필사적으로 일하게 했다. 일반 죄수 중에 ‘차라리 징역 판결을 당할지언정 노동교양소로 가지 않는다’는 논법이 있는데 노동교양소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내가 있던 중대는 한 해 내내 대부분 옷을 만들었는데 노동교양소에서는 돈을 벌어서 공사비에 보탰다. 체결한 합동 수량이 많은 이유로 늘 특근을 했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잘못해 파손되고, 품질이 불합격이면 벌을 받아야 했다. 파룬궁수련생의 나이는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어서 눈, 손도 따라갈 수 없었다. 게다가 (전기)기계가 너무 빨라 늘 손을 부딪혀 다쳤다. 무단장(牡丹江) 스옌진(石岩鎭)에서 온 판바오허(范保和)의 식지는 기계에 끌려 들어가 연속 10여 바늘이나 찔려 피가 줄줄 흘렀다. 그러나 여전히 일해야 했고 휴식도 허락하지 않았다. 옷을 만드는 일이 없을 때에는 이쑤시개 등을 고르고 포장하는 등 일을 해야 했다. 한 번은 꽃을 붙이는 일을 했는데 외국인에게 수출한다고 했다. 꽃을 붙이는 고무풀은 독성이 매우 강해 피부에 닿기만 하면 물집이 생기고 가려웠고 오랜 시간 냄새를 맡으면 메스꺼웠다. 맨 마지막에 모두들 작업을 거부했다. 경찰들 자신들도 피해를 입자 그제야 이 일을 중단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무가 노동력으로 벌어온 가치 중 일부를 노동교양소에 내고 일부를 공제해 경찰에게 보너스로 주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주어야 할 그 부분을 노동교양소 경찰이표를 조작해 횡령했으며 한 푼도 노동교양 인원에게 주지 않았다.
40여 만 위안의 경제손실
장쩌민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는 박해를 진행한 상황에서 내가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자, 우리 직장에서는 내 월급 및 일체 자금 지급을 중단했고, 내 일체 직무와 행정 등급을 해제했으며, 내가 정상적으로 공무원으로 지냄을 금지했고 또 내 세무 집법자격(稅務執法資格) 등을 취소했다. 이는 나에게 30여 만 위안에 달하는 직접적인 경제 손실이 생기게 했다.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2008년부터 직장에서는 매달 2천 위안의 생활비만 주었다. 줄곧 2011년에 이르러서야 공무원 사업에 대한 관리를 편성함으로 새롭게 월급을 심사하여 지금까지 발급했다. 이것은 내가 박해를 당하지 않았을 때 마땅히 얻어야 할 실제 월급에 비하면 10여 만 위안이나 손실 받은 것이다.
현재까지 나에 대한 박해는 이미 가정, 친구 등에게도 정신적으로 극심한 상처를 조성했다. 나에 대한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40여 만 위안으로, 내 근무와 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조성했다.
원문발표: 2016년 12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2/8/3386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