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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마친 하얼빈의 왕훙빈, 또 9년의 무고한 판결 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하얼빈(哈爾濱)의 46세 파룬궁수련생 왕훙빈(哈爾濱)은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하고 막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10월 13일, 또 9년의 무고한 판결을 당했다.

이전 9월 13일, 하얼빈시 솽청구(雙城區)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왕훙빈(王宏濱, 王洪彬)에 대해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했다. 변호사는 정당하고 날카롭고 엄숙하게 무죄 변호를 진행했다. 공소인은 법정에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함부로 ‘증거’를 꾸몄다가 판사에게 질책을 받았다. 그러나 중공(중국공산당)은 또 증거를 상관하지 않고, 증거고 뭐고,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상관하지 않은 채 함부로 9년의 판결을 내렸다.

왕훙빈은 1970년 6월 24일 출생했고 하얼빈시 쑹베이구(松北區)에서 살고 있다. 진선인(真善忍) 믿음을 견지한 것 때문에, 1999년 중공 사당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후, 왕훙빈은 먼저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03년 2월엔 10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다.

2016년 5월 6일 저녁 9시경, 솽청구 공안국경찰이라고 자칭하는 한 무리 사람이 관할 구역을 넘어 왕훙빈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경찰복을 입지 않고 어떠한 법률 문서를 꺼내지 않은 채 왕훙빈을 납치했다. 동시에 집안의 파룬궁 서적, 대법 사부님의 법신상 및 컴퓨터 등 물품을 강탈했다. 왕훙빈은 솽청구 유치장으로 납치돼 불법 감금당했다. 소식에 따르면, 이른바 상부 공안에 의해 파견되어 법을 어겨 행했다는 것이다.

가족이 왕훙빈의 행방을 문의하자, 보름 동안 행정구류처분을 받았다며 5월 23일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가족은 23일 솽청 유치장으로 마중하러 갔는데, 다시 이미 형사 구류로 옮겼다고 말했다. 5월 31일 하얼빈시 솽청구 검찰원에선 법을 어기고 체포령을 내려 체포했다.

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왕훙빈에 대해 불법 법정 심문을 진행했다. 이른바 검찰원의 공소인 왕구이전(王桂珍), 장환장(姜煥章)은 법정 심문 중에서 증거 자료를 제공했다. 박해적인 법정 심문에 참여한 이른바 심판장은 솽청구 법원 후예린(胡業林)이고 대리 판사는 우수보(吳樹柏)이며, 대리 심판원은 쉬징(徐靜)이고 서기원은 판웨이(范威)이다.

법정 심문 과정 중 이른바 공소인 왕구이전과 장환장이 제공한 ‘증인’은 개인 정보가 없었고 본인 신분증이 없었으며, 전화 연락이 없었고 또 ‘증인’ 본인이 누른 지장도 없었다. 위조한 이른바 ‘증거’는 법률 효력 없음이 분명하다.

공소인 왕구이전은 준비해 놓은 한 무더기의 이른바 ‘증거’가 꼼짝할 수 없이 기각당하자, 엉겁결에 파룬궁수련생 왕훙빈이 집에서 1000G인 하드 디스크를 수색해냈다고 거짓말을 했다. 왕훙빈의 변호사는 “당신의 증거 자료 속에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다음 왕구이전은 또 컴퓨터 안의 하드 디스크라고 말을 바꿨는데, 여러 차례 이런 빈틈이 아주 많은 말은 판사 후예린에 의해 법정에서 질책을 받았다.

어떠한 증거 및 사실이 없는 상황이나 2016년 10월 13일 솽청구 법원에선 왕훙빈에게 9년의 무고한 판결을 내린 동시에 5천 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1999년 중공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왕훙빈은 진선인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003년 2월 12일 하얼빈시 타이핑구 법원에 의해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구실로 10년의 무고한 판결을 당했다. 막 억울한 옥살이 대문을 걸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무고한 판결을 받아 9년의 옥살이를 당했다.

원문위치: 2016년 11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3/3380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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