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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팡 공안국장과 파출소 소장이 보응을 받은 사례

-파룬궁박해에 참여한 허베이성 랑팡시 악인들이 보응을 받은 사례(3)

[밍후이왕](상편 계속)

3. 공검법사(公檢法司: 공안, 검찰, 법원, 사법) 사람들의 보응 사례

(1)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공안국장과 파출소장이 보응을 받은 사례

◆양즈위안, 남, 2008년에 융칭현 공안국국장으로 됐다. 2016년 1월 바저우시 공안국국장, 부시장으로 됐다. 그는 임직기간에 적극적으로 사당(邪黨)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다. 2016년 8월에 보응을 받아 면직됐다.

◆차오위춘, 랑팡 다창현 공안국 부국장이다.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후 자오위춘은 장쩌민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했기에 재앙이 외동딸에게까지 미쳤다. 2005년 2월 7일, 그의 18세 딸이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발병원인 미상으로 약 일주일 후 혈액 암으로 사망했다. 차아위춘의 외동딸이 죽은 후 그의 아내는 장기간 불륜문제가 있었던 남편과 더는 유명무실한 부부관계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아 이혼했다. 2006년, 차오위춘은 공안국 부국장 겸 형사 대장으로 있는 기간 본 현의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가했다. 4명 수련생이 중형을 선고 받았고 10여명이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받았으며 10여명이 세뇌반에서 박해를 받았다. 2008년 12월, 차오위춘은 경제적인 안건 등으로 유기징역 11년을 선고 받고 투옥됐다. 인과응보로 그도 감옥의 맛을 보게 됐다.

◆쑨즈강, 남, 다창현 공안국 부국장으로 국보대대(전문으로 파룬궁을 박해함)와 구치소를 책임졌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쑨즈강이 부국장으로 있는 기간에 다창현에서 3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를 당했다. 그 중 두 사람이 불법적인 실형을 선고받았고, 7명이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당했으며, 23명이 랑팡 세뇌반에서 박해를 당했다.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파출소나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쑨즈강의 악행은 그의 부모에게 재앙을 불러왔다. 2008년, 그의 아버지는 폐암 진단을 받고 1년 후에 사망했고 그의 어머니도 곧 암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백약이 무효해 2011년 사망했다. 4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부모가 잇따라 사망했다. 쑨즈강은 부모가 사망해도 하늘이 그에게 내린 경고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계속 제멋대로 했다. 결국 2015년의 설 전후, 쑨즈강은 공안부서에서 쫓겨나 다창현 물가국에 가서 한직 하나를 얻었다.

◆한원화, 다창현 사법국장이다. 한원화는 1999년 ‘7.20’전에 본 현 공안국 정보과 과장으로 있었는데 이 기간에 적극적으로 악당의 내부 지령을 집행하면서 파룬궁수련생을 감시, 도청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7.20’후부터는 더욱 악당을 바싹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한원화가 과장에서 부국장으로 승진한 후부터 2006년 10월 사법국장으로 승진하기 전까지의 7년 동안에 그에 의해 노동교양과 실형을 받은 파룬궁수련생이 총 20명이 넘는다. 그중 류수잉(劉叔英), 리더쥔(李德軍) 부부는 모두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았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한원화는 폐부에서 음영(폐암으로 의심)이 발견돼 베이징 종양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자오밍즈, 남, 50대, 싼허시 공안국 부국장, 옌자오 치안분국 국장이다. 2015년 8월 28일 아침 8시, 공안국은 100여 명 경찰을 동원해 싼허 시내와 옌자오 진내의 파룬궁수련생의 집을 수색하고 사람을 붙잡아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자오밍즈는 옌자오 분국의 주요 책임자로서 파룬궁수련생 바이위원(白玉文)의 집을 불법 수색하고 사람을 붙잡았다. 마치 도둑처럼 담장을 뛰어넘어 민가를 약탈했다. 75세 파룬궁수련생 류융루(劉永祿)의 집을 불법 수색하고, 집에 위독한 환자가 있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10시간 넘게 소란을 피우고 강탈을 감행했다. 20명이 넘는 경찰들이 파룬궁수련생 저우짜이톈(周再田)의 개인병원에 뛰어들어 많은 물품을 약탈했다. 저우짜이톈은 위험에서 탈출했으나 병원은 온통 난장판이 됐다. 2015년 11월, 자오밍즈는 경고 처분을 당했다.

◆장상린, 남, 50대, 원래 싼허시 공안국 부국장으로 파룬궁박해를 주관하면서 파룬궁수련생 30여 명에 대한 불법적인 노동교양 처분에 참여했다. 장상린의 악행이 가족에게 재앙을 가져와 그의 가족은 자궁 종양수술을 했다.

◆먀오즈밍은 바저우시 탕얼리 파출소 부소장이다. 그는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하다가 폐암에 걸려 40세 넘는 나이에 사망했다. 병을 앓던 기간에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리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공산당원이요. 당신들은 당신들 사부의 말을 듣고 나는 공산당의 말을 들을 겁니다.”

◆류솬청은 랑팡시 바저우 난멍진 파출소 부소장이다. 그는 사악한 당을 바싹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그에 의해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이 20명이 넘는다. 2001년 12월, 그는 재차 한 파룬궁수련생을 2일간 불법 감금한 후 이 파출소의 관할 범위에 속하는 공사장 여성 기숙사에서 갑자기 죽었다. 류솬청이 죽은 후 마을 사람과 친구들은 모두 그를 욕했다.

◆왕루광은 원래 랑팡시 안츠구 처우좡향 파출소 소장이었다. 강간을 하려다 보응을 받아 급사했다.

2000년 정월, 처우좡향 정법위서기 류펑쥔은 사람을 거느리고 본 향의 파룬궁수련생을 향 정부로 납치해 박해한 후 구치소로 압송했다. 당시 향에는 임신한 여수련생 한 명만 남아있었다. 정월 11일 저녁 8시, 왕루광은 당직을 서는 기회를 타서 임신한 여수련생이 갇혀 있는 집안으로 뛰어들어 여수련생을 침대에 넘어뜨리고 악행을 저지르려 했다. 수련생이 완강하게 반항하자 왕루광은 수련생에게 수갑을 채우려 했다. 수련생은 그가 수갑을 가지려 간 틈을 타서 사무실로 달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지나 수련생의 남편이 도착했다. 왕루광은 급히 도망쳤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왕루광은 갑자기 중풍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악행에 대가를 치렀다.

◆류잉추, 남, 38세, 키 180㎝ 정도, 원래 싼허시 치신좡진 파출소 부소장으로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 그는 이미 ‘국제파왕 후이후이(國際法網恢恢)’ 악인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있다. 그가 싼허시 공안국 정보과 부과장으로 있던 기간 파룬궁수련생 신바오둥(辛寶東) 부부를 납치하고 이 수련생의 상점과 가택에 대해 불법적인 수사와 약탈을 했다. 어떠한 사실과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류잉추의 강력한 주장으로 신바오둥은 구치소에 감금되고, 9일 동안 구타당하면서 갈비 뼈 8대가 끊어졌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류추잉은 또 정월 초사흗날, 치신좡진 파룬궁구련생 장구이링(姜桂玲)을 납치해 노동교양소로 보냈고, 가족들은 크게 상처를 받게 됐다. 2008년 11월 22일 저녁 7시 경, 류잉추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바이먀오 고속도로 길목에서 벽돌을 실은 큰 트럭과 충돌해 현장에서 사망했다.

일찍 2007년에 그의 아버지 류샤오원은 급성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했는데 역시 류잉추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연루된 것이다. 친척과 동료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발병 전에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건강상태가 줄곧 아주 좋았는데 갑자기 병에 걸렸다. 베이징 병원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그의 폐부의 병리 변화는 2003년에 유행한 ‘사스(SARS)’ 때와 매우 비슷했다.

◆ 황이, 남, 40대, 전 황좡진 파출소 소장이다. 여러 차례 직접 혹은 부하를 시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고 폭행했다. 악인들은 파룬궁 수련생의 옷을 벗기고 속옷과 팬티만 입게 하고 혁띠로 갈겼고, 밧줄 전단부에 매듭을 만든 후 혹독하게 후려쳤다. 또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하고, 구둣발로 파룬궁수련생의 발목에 올라서서 밟았다. 또 파룬궁수련생을 진 정부 울안에 있는 전봇대 등에 달아맨 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등 그 수단이 극히 잔인했다. 황이는 2004년 3월에 췌장암에 걸렸고 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여러 병원을 찾아 치료하고 1년에 10만 위안이 넘는 돈을 썼지만 마지막에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2006년 3월 7일, 황이는 참기 어려운 고통에 시달리면서 죽었다.

◆자오융캉, 남, 50대, 전 베이청 파출소 소장이다. 재직기간 적극적으로 대법을 파괴하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참가했으며, 이미 ‘국제파왕 후이후이’ 악인 리스트에 올랐다. 자오융캉은 80세 되는 리룽후이(李榮輝) 할머니를 자전거에 수갑으로 채워놓은 후 뺨을 후려쳤다. 자오융캉은 파룬궁수련생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법을 위반한 것도 없는 그의 친척인 루춘양(魯春陽)을 붙잡아 혹독하게 구타해 온 몸에 부상을 입힌 후 랑팡 세뇌반에 보내 박해했다. 그 후 자오융캉은 폐병에 걸렸는데 폐암으로 의심된다.

◆멍훙리, 남, 50대, 싼허시 공안국 주임이다. 그는 쥐양진과 가오러우진 파출소 소장, 싼허시 구치소 소장으로 있는 기간 적극적으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참여했다. 2016년 3월, 멍훙리는 경고 처분을 받았다. 그의 악행은 그의 아내에게까지 피해를 끼쳤다. 그의 아내 마옌은 원래 베이청 수돗물회사에 출근했는데 2009년경에 담결석에 걸려 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신체가 허약해 출근하지 못한다.

◆판광중, 남, 41세, 원래 양좡진 파출소 부소장으로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고 혹독하게 구타하는데 참여했다. 2005년 10월 25일, 판광중은 싼허시 양좡진 부진장인 장옌성이 운전하는 차에 앉아 싼황로에서 중문신 마을까지 왔을 때 길옆에 있는 작은 나무에 차를 들이받았다. 나무는 작년에 심은 것으로 주먹정도 굵었기에 상식적으로 차가 들이박으면 나무가 부러져 넘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운전한 쑹화강 승합차는 나무를 들이 받으면서 차문이 열렸고 판광중은 차에서 떨어졌다. 자동차는 기울어진 나무줄기를 따라 앞으로 나갔다가 또 뒤로 돌아오면서 바로 판광중을 깔고 지나가 판관중은 사망하고 장옌성은 중상을 입었다.

◆장리우, 남, 40대, 옌자오 파출소 소장으로 재직기간에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적극 참여했다. 2015년 11월, 장리우는 경고 처분과 행정 처분을 받았다.

◆류하이강, 남, 40대, 싼허시 공안국 옌자오 파출소 대리소장으로 재직기간에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적극 참여했다. 2016년 3월, 류하이강은 경고 처분을 받았다.

◆자오쥔, 남, 싼허시 공안국 기율위원회 서기다. 쥐양진 파출소 소장으로 있을 때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적극 참여했다. 2015년 10월, 자오쥔은 경고 처분을 받았다.

◆멍젠궈, 남, 50대, 원래 싼허시 쥐양진 파출소장이다. 그는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고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다. 16, 7세 되는 소녀 파룬궁수련생을 참혹하게 구타했다. 이후에 한 선량한 여자를 이유 없이 때리고 욕하면서 모욕해 그 가족에서 고발하고 책임을 추궁했다. 결국 멍젠궈는 일체 직무에서 해임되고 공안 팀에서 축출됐다.

◆류푸바오, 남, 50대, 원래 양좡진 파출소 소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붙잡고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그는 이미 ‘국제파왕 후이후이’ 악인 리스트에 올라있다. 2003년 봄, 류푸바오는 교통사고로 골절됐고 나중에 신경계통에 병이 들어 밤잠을 자지 못했고 고통에 시달리면서 몇 년을 출근도 못했다.

◆리즈신, 남, 37세, 다창현 구치소 소장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공산사당(邪黨)을 따라 파룬궁을 박해하고,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발광적인 박해를 감행하고 돈과 재물을 갈취했으며 구치소의 사악한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구타하는 것을 용인했다. 리즈신은 파룬궁수련생 류수잉(劉淑英)이 불법 감금되어 있는 기간 앉아서 연공하는 것을 발견하고 구둣발로 류수잉의 가부좌한 다리를 짓밟고 사정없이 걷어찼다. 또 류수잉의 머리카락을 틀어쥐고 들어 올리면서 휘둘러 머리카락이 한 줌이나 뿌리째 뽑혔고, 몇 년 후에도 머리카락이 자라나지 않았다. 많은 수련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믿지 않고 계속 악행을 저질렀다. 결국 교통사고로 갈비뼈가 몇 대 부러졌다. 대략 2009년에 리즈신은 또 고관절 괴사에 걸려 다른 사람에게 업혀서 아파트를 오르내려야 했다. 몇 십만 위안으로 관직을 샀으나 이렇게 비참한 말로를 맞았다.

◆왕장인, 랑팡시 원안현 구치소 소장이다. 그는 사악한 경찰을 거느리고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으며, 파룬궁수련생을 핍박해 매일 열 몇 시간씩 붉은 팥을 고르게 하고 마대를 들어 올리게 했다. 또 굵은 고무호스로 파룬궁수련생을 때렸고 말을 듣지 않는 수련생에 대해서는 일주일씩 수갑을 채웠다. 파룬궁수련생은 왕장인에게 이렇게 잔혹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지 말라고 권고했고 보응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왕장인은 파룬궁수련생의 권고를 듣지 않아 갑작스레 보응을 받았다. 그는 2002년 4월에 원안현에 있는 집에서 머리를 땅에 박으며 넘어져 죽었다. 당시 나이는 마흔이 넘었다.

(계속)

원문발표: 2016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천인지간>업보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18/33764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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