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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생명 위독한 허난성 교사, 장쩌민 고소해 또 5년 징역형 당해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허난 보도) 허난(河南)성 핑딩산(平頂山)시 파룬궁수련생 장쥔펑(蔣軍峰)은 여러 차례 납치를 당해, 예전에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진 적이 있다. 2015년, 법에 의거해 장쩌민을 고소했다가 11월 25일에 납치됐다. 그 후 핑딩산시 자현(郟縣) 구치소에 의해 불법 감금됐다. 2016년 5월 17일에 불법 재판을 당했는데 변호사는 유력하게 무죄 변호를 진행했지만 2016년 9월 26일에 갑자기 5년형 ‘형사판결문’을 받았다.

장쥔펑은 인정하지 않고 시 중급인민법원에 항소했다. 2심은 또 사실을 똑똑히 모르고 증거가 부족한데다 재판을 진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 판결을 유지했다.

장쥔펑은 1965년 5월 4일에 핑딩산시 예현(葉縣)에서 출생했고, 전 허난성 핑딩산시 직업전문학교 교사이자 학생 과장이었다. 1996년 6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진선인(眞ㆍ善ㆍ忍)’ 이념에 따라 수련하고 학생을 교육했으며, 근무 중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했으며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학교에서 공인하는 우수 교사다. 장쥔펑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오늘날 사회에서 보기 드믄 좋은 사람이며 성실하고 선량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1999년 7월에 파룬궁을 박해한 후, 17년 동안 정신에서 육체에 이르기까지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집안의 노인, 아내, 아이, 많은 친척은 심신에 시달림을 당했다. 특별히 연로하신 그의 아버지는 더구나 마음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파룬궁수련을 견지하고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적어도 5차례 납치,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으며 또 학교에서 이유 없이 제명당했다.

1999년 7월, 그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파룬궁을 위해 진실한 말을 했다가 베이징 공안에 의해 불법 단속을 받고 인신자유를 제한 당했다. 그리고 베이징 펑타이(豐台) 체육관으로 압송당해 무장경찰에게 강제로 쭈그려 앉히기 고문을 당했고, 물과 음식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대략 7시간 동안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1999년 7월 24일, 핑딩산시 웨이둥구(衛東區) 공안분국 정보계장(政保股长) 경찰 천다루(陳大錄), 왕마오(王毛) 등은 그에 대해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진행했고, 강제로 핑딩산시 기차역 북쪽에 위치한 핑딩산시 유치장으로 납치해 보름 동안 구류했다.

1999년 11월, 그는 베이징 융딩먼(永定門) 민원국으로 청원하러 갔다. 민원국 로비에서 강제로 로비 구석 시멘트 바닥 위에 쭈그려 앉혀졌는데, 대략 3시간 후 베이징 주재 핑딩산시 사무실로 압송돼 꼬박 하루 동안 구금당했다.

1999년 11월 10일, 경찰 천다루, 왕마오 등은 그에 대해 불법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게다가 시 광밍로(光明路)에 위치한 핑딩산시 구치소로 납치해 형사 구류처분을 내린 동시에 3년 노동교양 처분을 내렸다. 노동교양 기간에 24시간 동안 전문 밀착감시원에 의해 강제로 바닥에 앉혀 움직일 수 없었고 세워두기 고문을 당했다. 또 강제 군사훈련을 받았고 구덩이를 파고 담을 쌓았으며 겨울에 물에 뛰어들어 도랑을 쳐내야 했다. 그리고 강제로 현지 주식회사 선마주식공장(神馬股份廠) 구역에서 공장 기지를 파고 기차 차체를 해체해야 했으며, 시 잔허 도시건설 정비공정에서 수로 제방을 청소했고 자루 10톤을 하천 밑바닥에서 언덕까지 등에 지고 돌아왔는데 한 푼의 보수도 받지 못했다.

2001년 10월, 노동교양소 1광대대(一礦大隊)에서 그는 10여 명에게 사지가 눌려진 채로 강제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콧구멍은 호스에 찔려 피가 났다. 그 후 박해로 온밤 기침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고, 정상적으로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어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하지만 노동교양소에서는 여전히 강제로 법원 잡초를 제거하고 쓰레기를 청소시켰는데 생명이 위독해져서야 보석해 치료를 받도록 했다. 그는 시 결핵병원에 입원한 후, 꼬박 3일 동안 혼수상태에 처해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고액의 의료비 마련을 위해 사방으로 분주히 뛰어다녔다. 그러나 노동교양소, 학교, 상급 노동교양 인사국에서는 전혀 무관심했다.

 酷刑示意图:摧残性灌食

고문 설명도: 학대성 음식물 주입

2000년 3월부터 2002년 4월까지 핑딩산시 바이러우(柏樓) 노동교양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 그에게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포기시키기 위해 소장 쉬창(徐常), 부소장 류취안량(劉全良), 천(陳) 모씨, 과장 양훙타오(楊洪濤), 출입소 대장 교도원 사오빙(邵兵), 4대대 대장 천 모씨 등은 여러 차례 그에게 강제 체벌을 진행했다.

2014년 9월 23일, 핑딩산시 공안국 정보대대 부대장 허우바오량(侯保良), 핑딩산시 공안국 젠서로(建設路)분국 황롄수(黃楝樹), 지역사회의 경찰 린훙구이(林宏貴) 등 10여 명 경찰은 어떠한 증명서 및 수색영장도 보여주지 않은 채, 그가 운영하는 가게를 수색해 그의 델 노트북 한 대를 강탈하고 그를 광밍로 파출소로 납치했다. 그날 저녁 젠서로 분국 국가보안대대 부대장 천(陳)씨 등은 ‘사교, 회도문(會道門), 미신 활동을 이용해 사회에 해를 끼쳤다’는 죄명을 씌워 그를 12일간 불법 구류시켰다.

2015년 11월 25일, 몇 명의 사복 경찰은 어떠한 증명서도 보여주지 않은 채 장쥔펑이 경영하고 있는 가게 내에서 강제로 그를 시 시세(西斜)유치장으로 납치해 불법 구금했다. 게다가 그가 경영하고 있는 가게를 수색해 그의 컴퓨터, 진상자료, 사부님 설법, 달력 등을 강탈했다. 같은 해 12월 7일에 불법 행정 구류처분을 받았고, 같은 해 12월 21일에 불법 체포령을 선포했다. 그는 먼저 핑딩산시 시세유치장으로 납치돼 14일 동안 불법 구류를 당했다가 그 후 핑딩산시 자현 구치소로 납치돼 여태껏 불법 감금당했다.

(역주: 관련 부서와 개인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6년 11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29/338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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