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창춘 텔레비전 파룬궁 진상 삽입 방송 후 위수산이 당한 박해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길림보도) 길림 화전시 파룬궁수련생 위수산은 2002년 3월 창춘텔레비전에 파룬궁 진상을 삽입 방송한 후 납치당했고 불법적인 판결을 12년 받은 후 길림감옥 7감구에서 박해당했고 생사가 불분명하다.

위수산은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그의 삼촌이 키워주었다. 외지인인데 장춘에 와서 일하다 1998년 그곳의 수련생과 결혼했다. 1999년 민원으로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일 년 받았고 워자꼬 노동교양소에서 노동개조범의 옷을 입지 않는다고 사악한 노동교양소 대장이 전기곤봉으로 박해했으나 그는 여전히 입지 않았다.그곳 죄수들은 위수산이 대단하다고 말하였다. 죄수들이 노동할 때 위수산은 그들에게 ‘파룬궁’의 ‘논어’를 외워주어 몇 사람은 앞으로 감옥을 나가면 그와 같이 대법을 배우겠다고 말했다. 위수산의 불법적인 노동 기간이 11개월이나 됐고 그가 노동교양소에 개인 감수를 쓸 때 ‘나는 나간 후 계속 파룬따파을 수련하겠다. 대법은 초상적인 과학이고 사람을 구도하는 좋은 공법이란 것을 실증할 것이다.’고 했다.노동교양소는 그를 곧바로 싱룽싼 세뇌 반에 보내어 한 달 동안 박해를 가했다.

2002년 ‘3.05’ 창춘 유선 텔레비전 파룬궁 진상 삽입 방송 후 사악한 당의 악도들은 극도의 공포에 “천 명을 잘못 붙잡더라도 한 명도 놓치지 않는다.”는 식의 미친 듯한 대수색으로 위수산을 또 납치했고 감옥살이 12년을 불법적으로 판결했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시연 / 전기 충격

위수산은 2002년 10월 길림감옥에 갇혔다. 그는 옥중의 옥에 갇혀 인간 생존의 기본 권리를 박탈당했다. 악도들이 그에게 수련을 포기하는 소위 ‘3서’를 쓰라고 협박해도 그는 거절하고 항상 파룬궁의 경문을 외웠다. 감옥의 교육관 간사 리영생의 ‘담화’에서 그는 “대법이 좋다.”고 말하고 또 여러 번 전기곤봉으로 박해당했다. 흉악한 경찰은 여름에도 솜옷 솜바지를 입히고 밤낮으로 잠을 못 자게 했다. 또 얼굴은 벽을 향하고 4, 5명의 죄수를 시켜 돌아가면서 때리게 하여 매일 때리는데 손으로 그의 생식기를 꼬집고 그의 다리를 가부좌하게 하고 노끈으로 둥글게 온몸을 묶어 뿔처럼 만들고 이런 잔혹한 박해를 반년이나 계속했다.

酷刑演示:捆成球状

고문 시연 / 뿔모양으로 묶다

흉악한 경찰은 그가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게 하며 그의 밥그릇과 반찬, 만두에 침을 뱉었다. 죄수들은 이불로 그의 얼굴을 덮고 4, 5명이 그의 머리를 때려 뇌에 물이 고이고 고열을 앓았으며, 3, 4개월 동안 얼굴색은 백지 같고 걸음도 걷지 못해 병원으로 후송됐다. 감옥은 책임을 안 지려고 병보석으로 치료하라 했다. 그의 처도 흉악한 경찰이 박해하고 있었고 2003년 9월 감옥에서 박해로 죽었다.

소식에 의하면 2003년 10월 21일 위수산은 병원에 끌려갔는데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치사안건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8/3331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