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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여자감옥의 박해로 10년간 반신불수가 된, 야오위밍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종합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후마현(呼瑪縣) 한자위안(韓家園) 파룬궁수련생 야오위밍(姚玉明)은 여러 차례 불법 체포를 당했고 7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 당했으며 또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의 각종 고문을 당했다. 2005년에 박해로 대뇌에 어혈이 맺히고 정신이 흐리멍덩해졌으며, 말을 할 줄 모르고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 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았다. 결국 2016년 7월 20일에 산시(山西) 타이위안(太原)의 아들 집에서 억울하게 사망했다. 향년 64세였다.

야오위밍의 사망 후, 그녀의 호적부가 감옥에 의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가족은 어쩔 수 없이 돈을 써가며 가짜 증서와 수속을 밟았는데 시신은 화장당했다.

차례로 후마 구치소, 치치하얼 솽허(雙合)노동교양소, 산둥(山東)노동교양소, 하얼빈(哈爾濱)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야오위밍이 하얼빈 여자감옥에서 매우 심각하게 박해 당했던 이유로, 나올 때 몇 십 개의 숫자마저 알지 못했는데 박해로 인해 사람이 말이 아니었다. 뇌혈전 후유증으로 말을 할 수 없었고 반신불수가 되어 지팡이를 짚고 걸었다.

야오위밍 여사는 산둥 원덩(文登) 사람으로 1952년에 출생했다. 그 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한자위안쯔(韓家園子)금광으로 시집갔다.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20에 장쩌민(江澤民)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야오위밍은 여러 차례 불법 체포를 당해 차례로 후마구치소, 치치하얼(齊齊哈爾) 솽허(雙合)노동교양소, 산둥 룽청(榮成)노동교양소에서 박해를 당했다. 2002년에 막 노동교양소에서 나와 산둥 원덩의 고향집으로 곧 세상을 떠나게 될 아버지를 문안하러 갔다가, 원덩 스다오진(石島鎮)에 의해 납치됐다. 2002년 9월 16일, 후마 공안국 부국장 추이광핑(崔廣平)과 정보과 류밍인(劉明印) 등은 야오위밍을 차로 후란구치소로 납치했다. 2003년 3월 17일, 야오위밍에 대해 불법적으로 유기형 7년을 판결했다.

2003년 9월, 야오위밍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신체검사를 받을 때, 야오위밍의 혈압은 최고 260, 최저 140에 달했다. 정상적인 수속에 따르면 감옥에서는 받지 않는다. 그러나 후마현 경찰 우제(吳傑)는 뒷거래를 하며 억지로 야오위밍을 감옥에 넣었다. 야오위밍은 하얼빈 여자감옥에서 각종 고문을 당해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은 후, 친척과 아들딸들에게 극심한 고통과 상해를 가져다주었다.

아래의 내용은 야오위밍이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박해당한 몇 가지 사례이다.

2003년 9월 12일, 야오위밍은 하얼빈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야오위밍은 집중훈련대로 보내졌는데, 당시 야오위밍의 혈압이 260에 달했다. 의무실에서 야오위밍은 4~5명의 사람에게 눌려 넘어뜨려져 강제로 주사 한 대를 맞았는데, 영문을 모른 채 사흘 동안을 잤으며 겨우 깨어났다. 사흘 후, 또 야오위밍을 끌고나가 달리기를 시켰다. 게다가 모든 파룬궁수련생을 밖으로 불러다가 달리기를 시켰다. 주변은 죄수, 교도관, 폭동방지대대에서 지켰는데, 파룬궁수련생은 중간에서 훈련했다. 누가 늦게 달리면 곧 죄수에게 몽둥이로 구타를 당해야 했다. 나이가 많고 연약해 달리지 못하면, 곧 쭈그려 앉는 고문을 당했고 또 뒷짐을 져야 했다. 야오위밍은 뒷짐을 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량(王亮)에게 발길에 채여 바닥에 쓰러졌다. 부대장 왕샤오리(王小麗)의 지휘 하에 파룬궁수련생을 페인트칠을 한 큰길에서 뙤약볕을 쪼이게 했다. 현장에서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뙤약볕 아래 기절했다. 파룬궁수련생은 어떤 이는 구타로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어떤 이는 구타로 눈과 코가 시퍼렇게 멍들었다.

2004년 1월 8일, 야오위밍은 1감구역 2대대에 배치되어갔다. 2004년 3월 2일, 대대장 추이훙메이(崔紅梅), 부대장 샤펑잉(夏鳳英)은 야오위밍 등 30여 명을 핍박해 감방 사무실로 돌아오게 하여 마좌(碼坐)고문을 가했다. 10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 36명의 파룬궁수련생은 함께 비집고 앉아야 했는데, 단지 작은 걸상에 앉는 것만 허락되었을 뿐, 방석에 앉는 것은 불가했다. 매일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점호를 한다는 명목으로, 또 파룬궁수련생의 방석을 죄수들에게 들고 나가서 불에 태우도록 시켰다. 죄수 자오광(趙光)과 리추이링(李翠玲)이 야오위밍 등을 지켰는데, 리추이링은 늘 걸상을 걷어차며 파룬궁수련생으로 하여금 함께 비집고 앉도록 했다. 그녀의 마음에 내키지 않을 때면 끈으로 사람을 묶으려 했다. 어느 한 번은 장리핑(張立萍)을 묶으려 했다가 야오위밍에게 끈을 빼앗겼다. 야오위밍은 즉시 주먹으로 두 대를 구타당했다.

中共酷刑:吊铐

매달기 고문

2004년 3월 9일, 대장 추이훙메이, 샤펑잉과 교도관 저우잉(周瑩), 덩위(鄧羽) 등은 20여 명의 죄수를 거느리고 야오위밍 등을 온수 공급실, 화장실, 감방으로 끌고 가서 침상 주변, 스팀 파이프 위에 채워두었다. 그리고 죄수복을 입지 않은 16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서는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했다. 야오위밍은 학대로 기절했다. 감옥 측에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상용하는 일종의 고문인데, 두 손을 올리게 하여 뒷짐결박으로 채운 후 매달아 발이 땅에 (겨우) 닿게 했다.

2004년 3월 10일 아침,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는 또 배검식(背劍式) 고문으로 야오위밍과 장수펀을 침대 사다리에 채워두었다. 점심에 또 그들을 비행기식(飛機式)으로 침대의 위층 가장 높은 곳에 채워두었다. 장수펀은 키가 작았기에 매달려면 발이 땅에 닿지 않았는데, 몇 시간 동안 매달려 기절했다. 기절하면 풀어주었다가, 정신을 차리면 다시 매달았는데, 줄곧 저녁 7시까지 매달았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10시까지 매달려졌다. 5층의 15명의 파룬궁수련생은 전부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또 억지로 손을 눌러 지장을 찍게 했는데, 무엇을 썼는지는 모른다. 야오위밍은 학대로 기절했다. 전체 과정 중 모두 경찰 대대장 추이훙메이, 샤펑잉이 앞장서서 지시했고, 경찰 저우잉(周瑩), 덩위(鄧雨)가 악독한 죄수 사오훙링(邵紅玲), 한젠잉(韓建英), 리추이링(李翠玲), 만윈웨(滿運月), 왕위안위안(王圓圓), 류수샤(劉淑霞), 쉬수칭(徐樹青), 웨이춘메이(魏春梅), 탕훙웨이(唐紅偉)에게 지시해 악행을 저질렀다.

2003년 3월 18일, 또 12명의 파룬궁수련생이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당했는데, 합해서 28시간이다. 5월 15일, 야오위밍은 쭈그려 앉기를 하지 않고 출석 호명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수에게 구타를 당했다. 죄수 사오훙링은 야오위밍을 발밑에 밟았다. 이로 인해 야오위밍의 다리는 여러 곳이 밟혀 부상을 입었다. 5월 16일, 감옥장이 감방으로 왔는데, 야오위밍 등의 상황 반영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저질적인 말 몇 마디를 하고는 거들먹거리며 떠나갔다. 그 후 감옥장은 대장과 교도관에게 지시해 15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큰 괘에 올리기 고문을 가했다. 매달아 혼절한 후 약을 주입하고는, 오후에 다시 매달았다. 그런 다음 또 강제로 야오위밍 등에 대해 약값을 지불하도록 했다.

2004년 5월 14일, 10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악독한 죄수에게 구타를 당했다. 야오위밍은 죄수 사오훙링의 발밑에 밟혔는데, 다리와 발은 밟혀 피가 흘렀고 몸 위의 여러 곳은 밟혀 부상을 입었다. 5월 15일 점심, 악독한 경찰들은 야오위밍을 배보검식(背寶劍式)으로 매달아 놓았다. 점심 쯤 또 비행기식으로 위 (칸의) 침대 가장 높은 곳에 매달아놓았는데, 23시간에 달했다. 야오위밍 등 파룬궁수련생은, 어떤 사람은 구타로 코와 입에서 피가 흘렀고 어떤 사람은 구타로 머리가 깨졌다. 악독한 경찰은 화장실 가는 것도 막았다. 야오위밍은 설사를 했는데, 참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도 화장실 가는 것을 막았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야 야오위밍은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악행을 저지른 자는 악독한 경찰 샤펑잉, 양(楊) 과장, 장춘화(張春華), 악독한 죄수 사오훙링, 리추이링, 성차오메이(盛巧妹), 왕위안위안, 류수샤(劉淑霞) 등이다.

며칠 후 야오위밍은 경찰에게 사무실로 불려갔다. 방안에는 죄수가 꽉 차게 서있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의사가 있었는데, 그들은 다짜고짜로 벌떼처럼 들이닥쳐 야오위밍을 땅위에 넘어뜨리고 주사를 놓았다. 이것은 악독한 경찰 루헝(盧恆)이 죄수에게 지시해 한 것이었다. 야오위밍이 그를 질책하자, 그는 오히려 “그래, 내가 법을 위반했습니다. 당신이 신고하려 한다면 어디까지라도 신고하시오.”라고 말했다. 저녁에 또 이 몇 명의 죄수가 야오위밍을 눌러 넘어뜨리고 약을 주입했다. 어떤 사람은 코를 잡고 어떤 사람은 입을 비틀었으며, 어떤 사람은 문을 지켰고 어떤 사람은 약을 주입했다.

2005년 3월 17일, 형사죄수는 연속 며칠 동안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강제로 눌러 쭈그려 앉게 하는 박해 중 발광했다. 특별히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의 옷을 잡아 찢었고, 야오위밍의 머리카락을 잡고 벽에 ‘쿵쿵’ 사납게 부딪혔다. 사건이 발생한 후, 구타당한 파룬궁수련생은 감구역의 부대장 샤펑잉에게 상황을 반영했다. 샤펑잉은 뜻밖에 악독한 죄수에게 “벽에 감청기가 있습니까?”라고 암시하며 말했다. 구타한 죄수는 알아채고 즉시 “누가 당신을 구타했습니까? 누가 보았습니까?”고 말했다. 역시 이 형사죄수는 파룬궁수련생 쉬자위(徐家玉)의 감방에 들어갔을 때, 광적으로 쉬자위에 대해 기를 쓰며 땅위에 넘어뜨렸다. 다른 한 죄수는 손바닥으로 쉬자위의 입과 코를 막았는데, 쉬자위은 하마터면 숨이 막혀 기절할 뻔했다.

2005년 4월 14일, 15일에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눌러 쭈그려 앉히기(摁蹲)’ 고문을 ‘쭈그려 앉히기 연습’으로 변화 발전시켰다. 경찰들의 감시 중에 형사죄수가 명령하는 목소리 중에서 차례로 대법수련생들을 한 사람씩 눌렀다가 차례로 들었는데, 무차별폭력도 함께 진행했다. 파룬궁수련생 위슈잉(於秀英)은 형사죄수에 의해 넘어뜨려져 뒷머리가 직접 땅에 부딪혔는데, ‘쿵’하는 소리가 들렸고 온 복도의 사람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뒷머리에는 큰 혹이 생겨났고 메스꺼워하며 구토했다. 야오위밍, 장리핑, 판궈샤(范國霞), 가오구이전(高桂珍) 등은 모두 같지 않은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2005년 8월 5일 쯤, 야오위밍은 하얼빈 여자감옥의 박해로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다. 8월 7일, 야오위밍은 하얼빈 의과대학 부속 제2병원 뇌외과로 보내졌고, 잇따라 뇌 속에 나타난 증상으로 배농수술(引流術)을 받았다. 수술 후 야오위밍은 혼수상태에 처해 음식 및 대소변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8월 22일 쯤, 야오위밍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은 상황 하에 하얼빈 감옥에서는 갑자기 야오위밍을 여자감옥에서 관할하는 병원으로 옮겼다.

야오위밍이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하얼빈 여자감옥으로 납치당한 야오위밍이 박해당한 사실을 자술’, ‘다싱안링(大興安嶺)의 피비린내 나는 13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9월 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9/1/3338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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