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명혜망 통신원 흑룡강 보도) 흑룡강성 밀산시 흑태진 탑토촌의 판명승(樊明胜.37)은 16년 동안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견지해 오면서 온 청춘을 박해 중에서 살았는데, 그 삶은 참으로 혹독했다. 정신병원의 학대, 여러 차례 불법적인 구류, 노동교양소 감금 등의 온갖 핍박을 당했고, 처와 어린 자식을 데리고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정신병원에 감금돼 박해 당하다
판명승은 2001년 봄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밀산시 정신병원에 53일간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정신병원에서는 판명승에게 파룬궁수련을 포기시키기 위해 강제로 이름 모를 독극물을 주사했는데 전신이 나른해지고, 대소변을 가누지 못한 채 3일 밤낮을 혼미상태에 빠졌다. 그가 혼미상태에서 깨어나자, 신경에 손상을 입히는 중추신경억제 작용을 일으키는 ‘클로르프로마진’ 약물을 강제로 투여했다. 이 약물은 정신병자의 중추신경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정상적인 사람이 복용하면 오히려 실성해지는 독극물이다.
혹형 시범 – 독극물 주사(약명 미상)
현지 정부관계자는 독극물 투여로 정신이 혼미해진 판명승에게 소위 삼서(수련포기각서)에서명을 받고 또 가족을 기만하기도 했다. 그들 악인은 판명승이 파룬궁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중증 정신병 환자에게 하는 전기쇼크까지 가했는데, 이 전기충격 기술은 매우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경험이 많은 원장이 한다. 태양혈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수법으로 2, 3초를 경과하면 사람이 생명을 잃게 되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태양혈에 충격을 가하면 사지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 거품이 일게 되는데, 그때 대기 중이던 3, 4명이 돌아가며 인공호흡을 시킨다.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한 판명승은 전기충격과 각종 독극물로 훼손될 대로 훼손된 몸을 추스르기 위해 그곳 병원에서 연공을 견지했다. 그러자 병원 측은 가족 몰래 판명승에게 전압을 더 높여 전기 충격을 가했으므로 심각한 대뇌 손상을 받았다. 머리는 4분 5열로 빠개지는 듯한 고통이 지속되었고, 5, 6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꼼짝하지 못했으며, 두 눈은 꼿꼿한 채로 그렇게 반나절 동안 지속됐다.
혹형 그림- 전기고문
불법적인 2년의 노동교양처분
그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후 반년도 되기 전에 다시 지역 파출소로 납치됐는데, 밀산시 국보대대가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유치장에 감금했다. 판명승이 불법적인 박해에 단식으로 항의하자, 유치장 측에서 손가락 굵기의 호스를 며칠 동안 식도에 삽입시켜 놓고 고통을 가했다.
혹형 시연 –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당시는 7월이었는데 단 며칠 만에 판명승은 호흡이 곤란해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한 수감자가 너무 안타까워 몰래 물을 먹이기도 했다. 7일이 지난 후 탈수증으로 입술이 터지고, 말조차 할 수 없게 되면서 생명이 위험해지자, 판명승 가족에게 몇천 위안의 돈을 준비해서 판명승을 데려가라고 통지했다.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이 겨우 몇 백 위안을 마련해서 집으로 데려왔다. 판명승이 집으로 온 후 일이 마무리된 줄 알았지만, 사정은 그게 아니었다. 오전 중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오후가 되자 현지 파출소 경찰관 2명을 집에 배치하여 감시를 하고 있었으므로, 판명승은 피로한 몸을 무릅쓰고 감시가 소홀한 밤을 이용해 집을 탈출했다. 탈출 사실을 알게 된 경찰들이 마을 사람들을 전부 동원해 밤중에 소동을 부리며 난리를 쳤다. 그러나 허약한 몸의 판명승은 멀리 가지 못하고 이튿날 새벽에 다시 잡혀 파출소로 끌려갔으며, 즉시 어떤 행정적 법률적 절차도 없이 당일로 계서시 노동교양소로 압송됐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밀산 국보대에서 불법적으로 2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내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교양소의 시달림
혹형 시연 – 혹독한 구타
노동교양소에 감금된 지 며칠 안 되어 판명승과 함께 수감된 모든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강제전향이 시작됐다. 대법을 모욕하는 녹화영상과 거짓선전을 강제로 시청하게 했다. 판명승과 마춘청(马春成)、엽정후이(叶正辉)、사쩐워이(史振伟) 등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사람들에게 연속으로 진상을 알렸다. 악경(사악한 경찰)은 그들을 훈련대로 끌고 가서 방망이와 플라스틱 호스로 사정없이 구타했다. 살이 터지고 벗겨지며 피투성이가 됐다. 계서 노동교양소는 또한 변태적인 방식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했는데, 파룬궁수련생 간에는 서로 말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매일 아주 작은 의자에 고정해서 앉게 하는 고통을 주는 고문을 가했다. 죄수복도 강제로 입히고, 머리를 이상하게 깎아 몰골이 말이 아니게 만들었으며, 일체 수련을 못 하게 했다.
판명승은 고문으로 인한 상처가 1년이 넘도록 아물지 않았는데, 새로운 고문으로 또 새로운 상처를 입게 되었다. 주먹질과 발길질은 그래도 가벼운 것에 속했는데, 몽둥이를 휘두르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상처가 아물 틈이 없었다. 심할 경우는 작은 감금실 바닥 고리에 쇠사슬로 잠가 놓고 고문 박해를 가했다. 판명승은 노교소 정위와 소장에게 공개서신으로 고문 박해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그들은 판명승에게 2명을 따로 보내 박해를 가하도록 했는데, 노교소 경찰관 기민(祁敏) 장국화 (張國華) 2인은 7, 8명의 죄수를 지휘해서 판명승과 리영승을 위생실로 끌고 가서 머리를 한 줌씩 마구 잘라 꼴이 말이 아니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판명승 부친에게 머리를 깎은 칼날 값을 내라고 했다.
혹형 그림- 바닥 쇠사슬에 결박하기
한 번은 판명승과 리영승에게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악경이 새끼손가락보다 다소가는 끈으로 그들 두 사람의 손과 발을 함께 묶어서 힘껏 조여서 머리와 가슴이 겨우 바닥에 뜨게 조여 놨다. 발과 하체가 뒤로 묶어 바닥과 떨어졌는데, 끈을 잡아당길수록 머리와발이 가깝게 되면서 오직 배만이 바닥에 닿게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끈이 살 속을 파고들어몇 분 만에 호흡곤란이 오고 사지의 감각을 잃게 된다.
판면승은 고문 박해 항의로 여러 번 단식했다. 그럼 노교소 측은 호스를 식도에 삽입시키는 고문 학대를 가했는데, 손가락 굵기의 고무호스를 콧구멍을 통해 식도에서 위장에 삽입했다. 호스를 삽입시킨 후 즉시 음식물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고, “수련을 포기할 것인지”를 묻는다. 수련하겠다고 하면 호스를 빼낸 다음 다시 삽입한다. 판명승은 이렇게 7, 8회나 삽입하고 빼내는 고문을 당했다. 반항을 할 수 없도록 7, 8명의 죄수와 경찰관들이 손발을 잡고 누르는데, 가슴에 올라타기도 한다. 호스를 여러 차례 삽입했다가 빼면, 콧속과 식도에 상처를 입게 돼 피와 음식물을 함께 토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호스를 코로 삽입해서 입으로 잡아 뺀다. 판명승은 그런 잔인한 고문을 수도 없이 당했다.
그들 악인들이 호스를 통해 삽입시키는 음식물을 우유라고 하지만 사실은 소금물이다. 많은 소금이 녹지 않은 채 사발을 통해 그대로 호스로 주입된다. 그들 악인은 그런 악행의 소위 관식을 끝낸 후 죄수를 시켜 판명승을 끌고 대기실을 오락가락한다. 소금의 농도가 너무 심해서 판명승의 위 점막이 떨어져 나오고, 39.4도의 고온에 시달리며 피고름을 싸게 되는데, 하룻밤 새에 몇 번씩 화장실을 가야 했다. 결국 사경을 헤매게 되어 곧 죽게 되자, 급히 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도 노교소의 악경들은 판명승을 계속해서 쇠사슬로 침대에 묶어 놓았다.
그들 악인들은 판명승이 죽을 경우 책임회피를 위한 대비를 했는데, 판명승의 부친과 넷째삼촌을 불러서 여러 가지 기만적인 수법으로 ‘판명승 사망서’에 서명을 받으려고 했다.판명승 삼촌이 의심이 들어 서명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판명승의 부친이 돌아가자 말자 악경 장국화(張國華)는 감옥 의사에게 “와서 관식하라.”라고 전화로 연락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의 시달림을 받은 판명승은 2002년 4월 결국 실성했다. 그가 고함칠 것이 두려운 악경은 천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 두 손을 계단의 손잡이에 결박해 놓았다. 파룬궁수련생 궈준양(郭俊阳)이 너무 참혹해서 “당신들이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라고 말하자, 악경은 전기 봉으로 그를 전기 고문해서 다리에 온통 물집이 생기게 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악경 장국화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훼손된 판명승을 기만해서 소위 ‘회개서’에 서명하게 했다.
노동교양소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실적을 올려 포상금을 많이 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개서를 받는다. 2003년 봄 파룬궁수련생 강홍복(姜洪福)은 다른 수련생과 함께 상부에 공개서신을 보내 고문박해 사실을 알려 반박해를 위한 일을 했다. 노교소 측은 범죄진압 중대를 투입해서 경위실까지 총을 들고 삼엄한 경비를 펼친 후 수십 명의 악경을 동원해 사람을 끌어내 사정없이 구타했는데, 당시 강홍복은 구타로 몇 개의 발톱이 떨어져 나갔으며, 또 다른 사람을 끌어다가 마구잡이로 구타하는 바람에 대합실과 감방은 온통 피투성이로 낭자했다. 당시 노교소 측은 자신들의 죄상을 은폐하기 위해, 감금 기간 만료일이 10여 일 정도 남은 강홍복에 대해 3개월을 더 연장해서 감금했다.
2003년 7월 판명승은 2년 감금 기한이 만료돼 구사일생으로 석방되어 나왔지만, 그들 악인은 그래도 판명승을 온전하게 놔두지 않았다. 현지 파출소와 진정부에서는 여러 차례 판명승 집을 찾아가서 회개서를 쓰라고 핍박했다. 그의 할머니는 너무 놀라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의 부친은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뛰었으며, 그의 여동생은 공포심에 시달려 제대로 공부를 할 수가 없어서 대학진학도 어려웠다.
경찰이 고의적으로 차로 부닥쳐 장애인을 만들다
판명승은 2006년 8월 결혼한 후 채 1년이 안 된 상태에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중에,밀산시 이인반향 경찰관이 차를 몰아 네 번이나 충돌해서 어깨뼈와 발목에 복잡골절상을 입었고, 4개의 척추에 골절과 6개의 늑골에 골절, 그리고 가슴과 내장에 상해를 당해 심한 출혈로 매우 위중한 중상을 당했다. 병원으로 응급 호송될 때 그 악경은 차 안의 의사 앞에서 다른 경찰관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당초에 아예 더 심하게 부딪혀 현장에서 죽였으며 시끄러운 일이 없었을 터인데.”라고 말했다.
판명승은 똑바로 누운 채 움직일 수가 없고, 가래가 끓고 호흡도 곤란하고, 대소변도 모두 침대에서 처리해야 했으므로 혼자서는 생활할 수가 없게 됐다. “심한 복합골절상이라 수술한다고 해도 쉽게 낫지 않고, 반년 이상 침대 생활을 해야 하며, 상처가 아문다고 해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런데 밀산시 국보대대와 이인반향 파출소에서는 자신들의 범죄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가짜로 사고현장을 조작해서 병원 측에 설명한 후 모두 도망가 버렸다. 모든 건 판명승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했다.
그 몇 년 동안 끊임없는 박해의 시달림을 당한 판명승의 집안은 비싼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연로한 부모님들에게 자기로 인해 많은 빚을 지게 할 수가 없어서 아무런 수술도받지 않고 병원에서 8일간 그대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판명승은 집으로 온 후 5일 동안 법공부와 연공을 함으로써 일어날 수가 있었고,한 달 만에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는 40일 후 직접 계서시의 한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는 병원에 남아 있는 사진과 구체적인 정황을 알고는 감동해서 그의 사건을 맡았다(장쩌민은 파룬궁사건을 접수하지 못하게 했다.). 법률적으로 말하면 고의로 차를 몰아 사람을치었다면 민사적으로는 판명승에게 적어도 17만 위안(약 2,900만 원)을 배상해야 하고, 경찰직에서 면직돼야 하고, 또 형사책임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밀산 국보대대는 범죄자 경찰관을 법적 또는 행정적으로도 조치하지 않고, 이인반향경찰과 짜고 사건 현장을 조작해서, 위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 판명승에 대해 불법으로 노동교양처분을 결정했다. 판명승은 이 사실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처자식을 거느리고 유리걸식을 하게 됐다.
또 다시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당하다
판명승은 2009년 또 다시 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후, 수화 노동교양소에 감금되었고, 노교소 경찰에게, 다른 수감자가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는 걸 신고했다. 그러자 죄수 수감자가 4, 5명의 무리를 지어 판명승을 집단으로 구타했다. 그럼에도 노교소 경찰은 사람을구타한 죄수들은 그대로 두고 오히려 구타를 당한 판명승에게 1개월 연장 감금조치를 내렸다. 후에는 또 파룬궁 창시인을 모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3일을 연장시켰다.
가족친지들이 박해받다
판명승의 가족친지들도 박해를 받았는데, 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는 선량함과 인류 도덕에 대한 박해이다. 어떤 사람은 집이 망하고,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처와자식이 헤어지게 했다.
판명승의 처 김소화 2회 불법적인 구류처분
둘째 이모 장위란 불법구류를 2회, 노동교양처분 1회, 하얼빈 노교소에서 박해로 사망.
셋째 외삼촌 장위탕은 불법구류 4회, 노교처분 1회, 법원판결 2회, 출두 1회, 현재 치치하얼시 태래 감옥에 수감 중임.
큰외삼촌 장위칭 불법 구류 1회.둘째 이모네 이종형 행덕복은 노교처분 3회, 법원판결 1회.
둘째 이모 버융 불법구류 2회, 세뇌 1회.
둘째 이모네 이종3형 행덕록 불법판결 7년, 노교처분 1회.
셋째 이모네 셋째 아주머니 양효림 불법판결 12년형.
셋째 이모집 형 따이 군(戴军)은 노교처분 1회, 6년형 판결, 무단장 짼지산 감옥에서 박해로 2010년 사망.
세째 외삼촌 동생 장전복은 불법구류 2회, 노교처분 2회.
그들은 무엇 때문인가? 오직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고 양심을 속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고, 인류 최후의 도덕과 양심을 지켰기 때문이다.
더 많은 박해내용은 시간관계상 또 기억할 수 없거나 각종 원인으로 밝히지 않았다. 10여 년의 박해를 한편의 문장으로는 똑똑히 밝힐 수는 없는 일이다. 장쩌민이 발동한 박해는파룬궁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한 것이다. 중국의 공, 검, 법, 사와 위로는 국가주석, 아래로는 일반 백성을 납치한 것이다. 파룬궁을 제보하면 포상금을 주고, 경찰은 파룬궁을 박해한 실적에 따라 승급시키고 승진 시켰다. 전 인민을 협박하여 박해에 참여하게 한 것이다. 장쩌민은 진선인의 민중을 박해하기 위해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허용했고, 사람들의 위사위아 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각급 정부를 죄악으로 몰고 갔다. 그들은 선량함을 박해할 때 대부분 “상부의 명령이다.”라고 변명 했다. 10여 년 동안 판결 혹은 노교처분을 막론하고 그들은 “사회질서 교란” “사교를 이용해 법률실행을 반대” “국가정권 전복죄”라고 죄명을 뒤집어 씌웠다.
당신이 진선인을 믿으면 곧 공공질서를 교란한다고 말하고,파룬궁 박해진상을 말하면 그들은 곧 사교로 법률실행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당신이 그들의 기만과 가짜와 은폐한 사실과 그들의 죄상을 폭로하면, 그들은, 당신이 국가정권을 전복하려한다는 죄명을 씌운다.
장쩌민이 발동한 이번 박해는 대법제자만이 아니라, 전체 인류사회가 박해를 받는 것이다. 대법제자가 폭로한 것은 중공의 가짜와 사악, 투쟁의 진면목을 밝히는 것이고, 역사의 진상을 회복시켜, 사람의 양심과 인류의 도덕을 지키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6년 8월 14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8/14/3328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