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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칭창, 네이멍구 바오안자오 감옥에 의해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네이멍구 보도) 네이멍구(內蒙古) 싱안멍커(興安盟科) 유첸치(右前旗) 파룬궁수련생 팡칭창(房慶昌)은 2016년 6월 25일에 바오안자오 감옥에 의해 박해로 사망했다. 감옥 측은 가족이 사망자의 시신 전신을 보는 것을 가로막았다. 확실한 소식에 따르면, 팡칭창은 경찰과 죄수 바오자(包夾: 감시원)가 전기충격을 가하고 구타를 가해 사망했다고 한다.

6월 26일, 바오안자오 감옥에서는 팡칭창의 가족에게 통지를 내리며, 팡칭창이 25일 저녁 6시에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팡칭창의 가족은 통지를 받고 급히 감옥으로 갔다. 감옥 측은 장의사에 시신을 놓았다고 말했다. 가족은 또 장의사로 갔는데 팡칭창의 코 안은 전부 피였고 뒷머리에도 전부 피가 흘렀음을 보았다. 목부터 아래까지는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발은 무릎 아래만 보는 것을 허락했다. 가족이 어떻게 말하든지 막론하고 모두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팡칭창의 가족은 무엇 때문에 피가 있는지 문의하자 감옥 측은 너무 더워서 복부가 부풀어 올라 피가 흘러 나왔다며 ‘정상 현상’이라고 말했다.

팡칭창의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하고 검시관을 청해 검시하려 했다. 일체를 다 준비해 놓고 검시관이 업무를 시작하려 할 때 검찰원에서 발급한 증명서가 법률 절차에 부합되지 않음을 발견했다. 검시관은 곧 감옥 측과 말다툼을 했다. 사람이 사망한지 거의 1달이 되는데 각항 조사 진전은 아주 늦고 각 방면에서 저애를 받고 있다. 팡씨 가족은 줄곧 사망 원인을 찾고 있었으나 감옥 측은 줄곧 거짓말을 꾸미며 방법을 대 가로막으려 했고 또 변호사 3명과 고문을 찾았다. 감옥 측에서 퍼뜨린 소문에 의하면 팡칭창의 시신을 강제로 화장해 증거를 소각하려 한다.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 재연: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 가하기

팡칭창이 박해로 사망함은 양심이 있는 죄수와 경찰의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팡칭창은 바오안자오 감옥 제3감구(監區)에 감금당했다. 소식에 따르면, 6월 21일 감구장 리창장(李長江)은 팡칭창에게 일을 더 많이 하도록 핍박했고, 하루에 전기봉으로 그에게 2차례나 전기충격을 가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 죄수 바오자 리옌룽(李彥龍), 장훙위(張洪玉), 바오하오(包好)에게 지시해 온 힘을 다해 그를 두 차례 구타하게 했는데 전문적으로 흉부, 복부를 구타했다. 당시 구타로 입안에서 피가 흘러나왔는데 감시카메라 밑에서 구타해 카메라를 피했다. 그날 밥을 넘길 수 없게 됐고 이튿날 걸을 때도 휘청거렸다. 3일째 제2병원(감옥에서 20여 리 떨어져 있었음)에 보냈는데 병원에서는 병이 없다고 말했다. 4일째 저녁 10시가 넘어서 팡칭창이 기절해 7감구로 들려 갔는데, 5일째 저녁 6시에 링거를 맞으면서 사망했다.

지금 감옥 측은 사적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팡칭창의 가족들은 분명하게 책임지지 않으면 법에 의거해 바오안자오 감옥을 상급 기관에 고소하겠다고 했다.

팡칭칭은 예전에 체중이 85kg가 넘었고 몸이 매우 건장해 무슨 힘든 일이든지 다 할 수 있었다. 2014년 11월 7일, 커유첸치(科右前旗)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셰바오인(謝寶音)을 우두머리로 한 악인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체포를 진행했다. 그들은 먼저 팡칭창의 집으로 가서 붙잡으려고 했는데, 당시 팡칭창은 아얼산(阿爾山)시로 일처리 하러 갔기에 집에 없었다. 경찰은 곧 그의 아내 왕진화를 납치한 다음 또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그의 아내는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남편의 행방을 말했다. 경찰은 차를 몰고 5백 리 밖으로 가서 팡칭창을 첸유커치 공안국으로 납치해 돌아왔다. 잇달아 파룬궁수련생 중팅쉬안(宗廷選), 자오샤오룽(趙曉榮), 충란제(叢蘭傑), 후옌레이(胡延磊)가 납치당했다. 팡칭창, 중팅쉬안은 구치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고, 팡칭창은 고문 침대에서 꼬박 7일 동안 학대를 당했는데, 마음씨 좋은 경찰은 보고나서 모두 견디지 못했다.

2015년 10월 15일, 파룬궁수련생 팡칭창, 중팅쉬안, 자오샤오룽, 충란제, 후옌레이는 불법 재판을 받아 징역 판결을 당했다. 팡칭창, 중팅쉬안은 각각 4년 6개월 형을 선고 당했고, 자오샤오룽, 충란제, 후옌레이는 각각 3년형 판결을 당했다. 팡칭창은 2015년 12월에 극히 악명 높은 바오안자오 감옥으로 보내졌다.

팡칭창의 아내 왕진화는 2016년 4월 25일에 감옥으로 가서 면회수속을 밟았는데, 감구 대장은 먼저 왕진화와 면담했다. 면회 조건은 팡칭창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하고 안에서 연공함을 허락하지 않으며 일찍 전향해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면회가 어렵다고 했다. 왕진화는 “그는 연공을 해야 합니다. 연공을 하지 않으면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이곳 조건이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감구 대장은 들은 후 매우 화가 났다. 이어서 왕진화는 남편을 만났는데 팡칭창은 등이 굽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수척하고도 작아보였다. 몸 뒤의 경찰은 거의 그의 몸에 붙어 있었고, 왕진화 자신도 역시 한편에 경찰 한 명이 있었다. 기타 죄수 가족이 면회하면 경찰 한 명이 신변에 있었는데, 이것은 그들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가 심각함을 설명했다. 왕진화는 비통함을 억지로 참으며 남편과 말했다. 팡칭창은 아내에게 “내가 진선인을 믿음은 어떠한 잘못이 없고 나는 어떠한 나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즉시 저지하며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더 말하면 면회를 취소한다고 했다.

겨우 2개월 만에 팡칭창은 박해로 사망했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22/33171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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