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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 소녀, 모친을 구출하며 사망한 부친의 억울함을 호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단장시(牡丹江市) 파룬궁수련생 가오이시(高一喜)는 2016년 4월 19일에 집에서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열흘 후에 갑자기 사망했다. 경찰은 강제로 시신을 해부했고, 아울러 신속하게 시신을 화장하도록 가족을 거듭 핍박했다.

경찰은 가오이시의 딸이 시신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줄곧 소녀가 꿇어앉아 애걸해서야 그녀의 팔을 거꾸로 돌리게 한 채 부친의 모습을 보게 했는데 2분도 되지 않았다.

현재 16세인 가오이시의 딸 가오메이신(高美心)은 잠시 학업을 멈추고 아버지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게다가 여전히 불법 감금된 모친을 구출하고 있다.

高一喜

(사진 설명 1): 가오이시(高一喜)

가오이시의 딸은 무단장(牡丹江) 공안국 경찰이 가오이시를 납치·살해하고 또 강제로 시신을 해부한 경위를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 핍박을 이길 수 없어 학업을 그만두었고 지금 아버지를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나의 아버지는 경찰에게 납치돼 열흘 만에 박해로 사망했고, 시신은 강제로 해부됐다. 나의 불행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란다.

나는 가오메이신(高美心)이라고 부르며 올해 16세이다. 나의 아버지 가오이시(45세)는 무단장시 무링시(穆稜市) 무링진 허베이촌(河北村) 사람으로, 소박하고 선량하다. 예전에 호텔의 사장을 맡은 적이 있다. 어머니 쑨펑샤(孫鳳霞, 44세)는 무링시 샤청쯔(下城子) 기차역에 출근하고 있다.

2016년 4월 19일 저녁 10시쯤, 무단장(牡丹江) 공안국 셴펑(先鋒) 분국 셴펑 경찰업무대대 부대장 뤼훙펑(呂洪峰)은 한 무리의 경찰을 거느리고 밤중에 갑자기 나의 부친의 집안에 들이닥쳤다. 어떠한 증명서도 꺼내 보이지 않은 채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했고, 아울러 녹화했다. 동시에 나의 부모의 차량도 조사하여 몰수했는데, 또 차 문을 비틀어 망가뜨렸다. 경찰은 새벽 4시에야 떠나갔다. 게다가 나의 부모를 셴펑 경찰 업무실로 납치했다.

2016년 4월 21일, 업무담당 경찰 뤼훙펑(呂洪峰)은 전화를 걸어 나의 부모가 그들에 의해 구치소에 감금당했음을 알려주었다. 나와 할머니는 무링진에서 무단장으로 다그쳐 가 뤼훙펑을 찾아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면회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뤼훙펑은 면회를 못 하게 했다. 말로는 무슨 할 말이 있으면 그가 전해주겠다고 하고는 곧 총총히 떠나갔다.

4월 25일 오후, 뤼훙펑은 또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만나러 오도록 했는데 또 빨리 오라고 했다. 내가 가자 뤼훙펑은 “너의 집 차가 어디에 있어? 차를 끌어오지 않으면 차를 몰고 간 사람을 붙잡겠다.”라고 말했다. 내가 집으로 돌아와 보았는데 차는 집 문어귀에 있었다. 곧 뤼훙펑에게 전화를 걸어 차가 집에 있다고 말하자, 뤼훙펑은 “이틀 후에 소식을 기다려라.”라고 말했다. 그 후 공안국에서 사람이 와 차를 공안국으로 끌어다가 차량을 놓아두는 큰 정원에 두었다.

이틀 후 4월 28일 오전, 나는 뤼훙펑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면회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뤼훙펑은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할머니가 뤼훙펑을 찾아갔는데, 뤼훙펑은 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 경찰은, 뤼훙펑이 사건을 무단장 국가보안지대장 리쉐쥔(李學軍)과 리신(立新) 경찰사무실 형사정찰대대 부대장 위샹(於洋)에게 넘겼다고 알려주었다.

4월 29일 오전, 나와 할머니는 위샹(於洋)을 찾았는데, 위샹는 태도가 매우 나쁘게 우리를 훈계하며 여전히 나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10시가 넘어 우리는 나와서 택시를 타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 후 흰색 승용차가 바싹 뒤따랐는데, 차에는 미행하는 사복경찰이 있었다.

4월 29일 점심, 듣기로는 나의 아버지가 구치소에서 무단장시 공안병원 응급실로 보내졌다고 했다. 당시 나는 매우 놀랐다. 마음속으로 “아버지는 내내 몸도 매우 좋은데 어째서 갑자기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을까?”라고 생각했다. 나와 할머니는 급히 공안병원으로 가서 나의 아버지를 만나고자 요청했다. 무단장 구치소의 여러 명 경찰, 구치소의 감옥의사 원즈위안(溫志遠)을 포함해 모두 공안병원에 있었다. 나는 그중 한 사람이 낮은 소리로 “공안국마저 모르는데 그녀들이 어떻게 왔을까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구치소의 경찰은 우리가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나와 할머니를 쫓아버렸다. 게다가 우리에게 떠나지 않으면 110에 신고해 붙잡겠다고 공갈·협박했고, 또 우리에게 5천 위안(약 85만 원)의 의약비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나와 할머니는 목 놓아 울며 아버지를 보겠다, 아들을 보겠다고 애걸복걸했다. 할머니는 지탱하지 못하고 땅에 쓰러졌으나 그들은 여전히 전혀 무관심했다.

저녁 8시가 넘어 한 무리의 사람이 왔다. 우리 학교의 반주임 교사, 무링진 구역 경찰, 우리 어머니 직장의 두 명의 여성과 무단장시 공안국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와 할머니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은 또 “너의 아버지는 별일 없다. 며칠 지나면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나와 할머니는 강제로 한 대의 청회색 차 안으로 끌려갔는데, 뒤에는 작은 백색 차가 따르고 있었다. 차번호는 흑(黑)C,M7274였다. 경찰은 우리를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사는(거주했던) 곳으로 끌고 갔다. 게다가 우리에게 이튿날 반드시 무링으로 돌아가라고 위협했다. 4월 30일 오전 10시가 넘어서 우리는 무링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2016년 4월 30일 오전 9시쯤, 무링시 바몐퉁진(八面通鎮)의 공안국 장(藏)국장, 국가보안 추이싱궈(崔興國), 무링징 임업공안국의 저우웨이(周偉) 부국장, 국가보안, 구역 경찰 등은 두 대의 차를 몰고 나의 둘째 큰아버지 가오이신(高一信)을 찾아갔다. 그들은 나의 둘째 큰아버지에게 지금 무단장으로 한 번 가자고 하며, 사소한 일이지 무슨 큰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의 둘째 큰아버지가 가지 않겠다고 말하자, 장 국장은 “나에게 체면을 세워주시오, 갑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 국장과 추이싱궈는 억지로 나의 둘째 큰아버지를 차에 끌어올려 무단장으로 갔다.

무단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점심이 되었다. 그들은 퇴근했다며 먼저 밥을 먹으라고 말했다. 밥을 먹을 때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오후 1시가 넘어서 그들은 가자고 말했는데, 또 어디로 가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앞에서 백색 승용차 한 대가 길을 안내해 직접 나의 둘째 큰아버지를 룽펑(龍鳳) 장의사 인근의 산기슭에 인접한 곳으로 끌고 갔다. 둘째 큰아버지가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곧 에워쌌다. 게다가 사면팔방의 여러 각도로 둘째 큰아버지를 녹화하기 시작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당혹스러워 “여기는 어떤 곳입니까? 무엇 때문에 나를 이곳으로 끌고 왔습니까?”라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당신의 남동생 가오이시는 구치소에서 밥을 먹지 않아 공안 병원에서 며칠 동안이나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오늘 아침 5시에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무단장시 셴펑(先鋒) 분국 부국장 인셴펑(殷憲峰)은 “당신이 당신 남동생의 시신을 보도록 하시오. 본 다음에 해부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붙잡아 왔을 때만해도 멀쩡했는데, 왜 죽었습니까? 당신들이 그에게 고문을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 장 국장이 “당신은 좀 냉정하시오.”라고 말하자, 둘째 큰아버지는 “당신들 집에 이런 일이 생기면 당신은 냉정할 수 있습니까? 나를 이곳까지 속여서 데려왔는데, 당신들은 한 사람이라도 좋은 물건 짝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가 밖으로 걸어 나가자 일부 경찰은 에워싸고 떠나가지 못하게 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둘째 큰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나의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알려주었다. 둘째 큰어머니는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촌 언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너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이것이 정말임을 믿지 않았다. 나는 “불가능합니다. 긍정코 별일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막 무단장에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때 나의 둘째 큰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이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해부하려 했음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둘째 큰아버지에게 “그들이 움직이는(마음대로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해부하지 못합니다.”라고 알려주었다. 셴펑 분국 부국장 인셴펑은 나의 둘째 큰아버지의 휴대폰을 껐다. 게다가 휴대폰을 그에게 바치라고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무슨 근거로 당신에게 줘야 합니까? 나의 가족이 와서 연락하기 쉬운데.”라고 말했다. 인셴펑은 뒤쪽에서 둘째 큰아버지의 휴대폰을 한 줌에 빼앗아가서 그가 전화를 걸지 못하게 했다.

장의사의 위층에는 경찰이 가득 서 있었다. 또 녹화 영상을 찍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들은 둘째 큰아버지를 핍박해 벽 구석으로 가게 했다. 검찰원 감옥 검찰과(監所檢察科)의 톈루이성(田瑞生)은 “우리는 법률의 규정에 따라 24시간 이내에 반드시 해부해야 합니다. 게다가 이미 검찰원에 맡겼습니다.”라고 말했다. 톈루이성은 둘째 큰아버지에게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해부하는 데 동의한다고 서명하도록 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나는 서명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게는 결정권이 없습니다. 가족이 온 다음에 다시 봅시다.”라고 말했다. 오후 두 시가 넘어서 나와 큰외삼촌이 룽펑 장의사로 다그쳐 갔을 때, 무단장시 공안국 셴펑(先鋒) 분국 부국장 인셴펑(殷憲峰), 셴펑 분국 리신(立新) 경호실 형사정찰대 부대장 위양과 류췬(劉群), 무단장공안국 국가보안지대 지대장 리쉐쥔(李學軍), 감관지대(監管支隊)의 왕훙웨이(王洪偉), 법의이자 무단장시 검찰원 감옥 검찰과 주임인 톈루이성 등이 모두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의 직장 책임자, 정춘위(鄭春雨), 쉬칭성(徐慶勝)이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들어가서 시신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먼저 가족에게 해부하는 데 동의한다고 서명하도록 협상했다. 그들은 나에게 “너의 어머니는 이미 너의 아버지를 만났다. 오전에 만났다(실제로 나의 어머니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장의사로 끌려왔었음). 너의 어머니는 바로 인근에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어머니를 만나 어머니와 상의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두 명의 여경이 나의 어머니를 지키고 있었는데, 양편에는 모두 특수 경찰이었다. 내가 다가가서 어머니에게 “그들이 말하는 해부를 우리가 동의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누구도 동의할 수 없어요! 움직이지 못합니다!”라고 말하자, 나의 어머니도 동의하지 않았다. 불쌍한 어머니는 인신의 자유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또 약소한 딸, 환난을 당한 남편과의 생이별과 사별을 감당해야 했다. 심각한 충격에 직면하여, 의지할 데 없는 고독한 딸을 직면하여, 그들 강권자의 위협에 직면하여 어머니는 그녀가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한 채, 다만 표정이 굳어져 무표정했다. 나는 어머니가 매우 걱정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이것은 법률 규정입니다. 24시간 이내에 반드시 해부해야 하는 데, 무엇을 말해도 소용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또 “지금은 가족이 동의하지 않아도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당신이 동의하든지 하지 않든지 아무런 소용이 없으며, 반드시 해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서명하지 않자 그들은 곧 우리를 막으며 우리가 시신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한 차나 되는 특수 경찰을 불러서 그곳을 지키게 했다. 들어가서 시신을 볼 수 있는 통로마저 사람이 꽉 차 서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누가 결정해 해부하도록 했는지를 문의하자, 톈루이성은 “이것은 그들 모든 사람이 상의해 결정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어떻게 말해도 그들은 내가 나의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당시 매우 조급해 그들에게 꿇어앉아 빌었다. 나는 줄곧 꿇어앉아 그들에게 빌면서 울었는데, 너무 울어서 입에서 출혈까지 했다. 그 후 그들은 면회하는 데(시신을 보는 데) 동의했다. 두 명의 특수 경찰이 나의 손을 거꾸로 잡아당겨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 나를 데리고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보러 갔는데, 나를 2미터밖에 통제해 놓았다. 나는 “풀어주세요. 나를 좀 접근하게 해 주세요.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고 말해서야 그들은 나를 좀 접근해 보게 했다. 나의 아버지의 시신은 이미 굳어져 버렸다. 나는 나의 아버지가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고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으며, 두 주먹을 꽉 잡고 왼쪽 손은 왼쪽으로 기울어졌음을 보았다. 그리고 오른쪽 손은 좀 높이 들어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고 흉부는 부풀어 올랐으며, 배마저 특별히 훌쭉해졌다. 등은 위로 치켜들어 침대 판자 위에 붙어있지 않았는데, 또 끈으로 묶은 흔적이 뚜렷했다. 두 팔목에는 수갑 흔적이 뚜렷했고 두 손은 시퍼렇게 멍들었으며, 손톱은 청자색을 띠었다. 머리는 멍들었고 다리에는 바늘 자국이 여섯 개나 있었다. 나는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 울면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깨어나세요. 나는 아버지 딸이에요. 아버지 들으셨어요?”라고 외쳤다. 막 두 마디를 외치자, 경찰은 곧 나를 힘껏 끌어갔다. 내가 아버지를 본 시간은 합해서 모두 2분도 되지 않았다. 나는 당시 매우 고통스러웠다. 어찌할 방도가 없는 상황에서 거듭 꿇어앉아 그들에게 “아저씨, 좀 기다려주세요. 저의 막내 고모 그들이 내일이면 다그쳐 와요. 그들에게 저의 아버지를 한 번 보여주시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안 된다고 말했다. 줄곧, 이것은 법률 규정이라고 말했다. 또 가족이 서명하든지 하지 않든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며, 가족이 서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휴대폰을 추켜들고 이 말을 한 경찰을 녹화하자, 즉시 한 특수 경찰이 다가오더니 나의 팔을 등 뒤로 비튼 뒤, 눌러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나의 휴대폰을 빼앗아갔다. 그리고 또 내 가족의 모든 휴대폰을 몰수해 가족이 사진을 찍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가서 그들과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해부실에 들어갔을 때, 법의는 이미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목에서부터 아래로 배까지 모두 해부했다. 나는 안달이 나서 큰 소리로 “움직여서는(해부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소리쳤다. 법의(류징춘, 우펑(吳風))는 깜짝 놀라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두 명의 특수 경찰이 다가와서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내가 “나는 당신들이 어떻게 나의 아버지를 해부하는지를 보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들은 “너는 애라서 이것을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라고 말하고는 나를 힘껏 끌어내갔다. 우리 가족이 허락하지 않은 상황 하에서도 그들은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강제로 해부했다. 해부가 끝난 후, 다들 밖으로 나올 때, 인셴펑이 “이번에는 일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어머니를 또 구치소로 보내 감금했다. 나의 마음이 찢어지듯 슬펐다. 마음속은 그렇듯 괴로웠다……

5월 1일, 나의 막내 고모네 일가족은 외지에서 다그쳐와 나의 아버지의 시신을 한 번 보려했다. 그러나 반드시 무단장 셴펑분국 인셴펑의 비준을 받아야 했다. 가족이 셴펑 분국으로 갔을 때, 한 관리가 된 사람은 “공산당이 지금 흔들흔들 곧 무너지듯 하다고 보지 마시오. 당신들을 혼내는 건 노는 것과 같습니다. 공산당은 종이 호랑이라도 당신을 몇 입 물 수는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인셴펑은 나의 가족에게 “다만 이번만 볼 수 있고, 낮은 소리로 우는 것만 허락합니다. 큰 소리로 울어서는 안 되며, 큰 소리로 우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나의 가족은 “누구 집에서 사람이 죽으면 울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무단장시 공안국의 3~4대의 작은 차가 길을 안내하고 뒷면에서 한 특수 경찰차가 뒤따르는 상황 하에 룽펑 장의사로 왔다. 매번 단지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허락했는데, 시신에 접근함을 허락하지 않아 1미터 밖에서 보게 했다. 우리 가족이 목 놓아 울자 제지당했다.

5월 23일, 가족이 시체 검안 보고를 요구하자 경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후 우리는 또 톈루이성에게 물었는데, 그가 “18일에 나왔습니다. 당신들의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둘째 큰아버지는 “우리에게 통지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는 “어떻게 썼습니까?”라고 물었다. 톈루이성은 “영양불량, 관상동맥경화증으로 사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둘째 큰아버지가 “우리 집 두 세대 사람은 모두 심장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시체 검안 보고를 복사해 우리에게 한부 주세요.”라고 말했는데, 당시 톈루이성은 주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어떻게 사망했는가? 무엇 때문에 임종 때 남겨진 시신의 모습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듯한 모습인가? 무엇 때문에 기어이 강제로 해부하려 했는가? 근근이 열흘 동안 건강하고 선량하던 아버지는 기이하게 사망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구치소에 감금돼 있는데, 여러 방면의 압력과 갑자기 들이닥친 충격에 직면해 어머니의 감당 능력은 극한에 달했다. 둘째 큰 아버지와 고모부가 구치소로 가서 어머니를 면회했을 때, 어머니의 정신상태가 정상적이 아님을 발견했다. 사유가 혼란하고 말에 조리가 없었다. 나의 아버지의 DNA를 달라고 했다가, 또 우리는 시체 검안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말을 가장 많이 한 한마디는 우리는 시체 검안을 하지 않겠다고 한 말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나의 어머니는 피해를 당해 정신이 흐리멍덩해져 나의 마음은 정말 너무 고통스럽다……나는 겨우 16세이다(완정한 가정에서 나의 연령이면 아직도 아이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지금 내가 직면한 것은 아버지가 사망한 뒤처리를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 저의 신변으로 돌아올 수 있나요. 누가 능력이 있으면 저를 도와주세요. 법치 사회여! 나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극도로 비통하여 대성통곡했다……

나의 아버지 가오이시와 어머니 쑨펑샤는 선량한 좋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예전에 성질이 무척 급했고, 늘 친구와 함께 먹고 마시고 놀기를 즐겼으며, 집에서 늘 어머니와 다퉜다. 아버지는 예전에 녹내장에 걸려 두 눈은 0.12도에 달해 거의 실명에 이르렀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부터 눈은 전부 좋아져 시력도 정상이 되었고, 사람 전체가 모두 변했다. 밖에서 먹고 마시고 휩쓸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정에 대해서도 책임졌다. 성질이 나려 할 때면 스스로 어느 것을 잘못했는지를 찾았는데, 그런 다음이면 좋아졌다. 나도 즐거웠다. 아버지는 또 할머니께 효도했다. 나에게 할머니를 동반해 신변에서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도록 했다. 아버지는 또 늘 나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쳤고, 어머니는 매우 온화해 우리 가정은 매우 행복했다. 갑자기 뜻밖의 재난이 닥쳐, 우리 집은 갑자기 나 혼자만 남았다. 아버지 어머니는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동시에 공안에게 납치당했고, 겨우 열흘 사이에 아버지는 사망했고 어머니는 또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원래 나는 학교에서 멀쩡하게 공부를 해야 했으나, 지금 학교에서 안심하고 앉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법을 집행하는 부서에 의해 납치당한 후 애매하게 사망했다. 나는 업무담당 단위와 구치소 등 관련 부서로 가서 그들이 나의 아버지를 납치할 때의 법집행 증명서(執法憑證)(구류증, 수사증, 물건 명세서, 시체 검안 보고 등)를 달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게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좀 보려 한다고 말하자, 구치소 소장 마궈둥(馬國棟)은 “너희들이 볼 자격이 없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가족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알 권리—사망 증명서를 요구해도 없었다.

2015년 5월 1일, 사법의 새로운 정치가 실행되기 시작했다. 베이징의 최고 인민법원에서는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안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심리한다는 통지를 내렸다. 우리는 가족이 사망해 각 관련 부서로 가서 신소하며 사건을 신고하고 나의 아버지의 사망 원인을 똑똑히 조사해 주도록 했는데, 정리에 맞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기관에서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함께 회피하며 입안해 주지 않았다. 한 정부 관원은 “당신들에게 입안해 줄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입안해 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두 판결당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2개월이 넘었다. 이 단락 시간에 우리는 구치소, 검찰원, 인민대표대회,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민원사무실 등 관련 부서로 몇 차례나 뛰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한 부서에서도 우리에게 답해 주지 않았다. 어디로 가든지 모두 전가하고 회피하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또 우리를 미행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누가 우리 집의 불행에 관심 혹은 동정을 표시하면, 모두 생존과 안전 방면에서 다소 곤란해진다. 심지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문안했던 아주머니는 경찰에게 납치당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대대적으로 조화로움, 문명, 공정함, 법치의 사회를 제창하는데, 이런 유의 괴이한 현상은 정말 사람으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렵게 했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을 집행하는 부서의 각종 행위에 대해 의심을 표시하게끔 했다. 나는 너무 높은 요구가 없다. 나는 단지 아버지의 사망원인을 명백하게 알려 했고, 단지 그들에게 나의 어머니를 석방해 주도록 했을 뿐이다. 비록 이미 불완전하지만 나는 가정이 있기만을 바란다.

문장발표: 2016년 7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7/4/3308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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