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헤이룽장 미산시 쑨위산, 억울한 옥살이 7년 박해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무단장(牡丹江)감옥에서 7년 박해당한 쑨위산(孫玉山)은 2012년 3월 15일 집으로 돌아왔다. 교도관은 악독한 죄수에게 지시해 그에 대해 폭력적인 구타를 진행하였고, 이로써 그의 두 귀에는 후유증이 남았다. 감옥에서의 폭력적인 ‘전향’은 특히 그를 고통스럽게 했다. 7년의 억울한 판결로 아내와 아이는 집의 주요한 노동력을 잃어 생활함이 간난하고 고통스러웠다.

대법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되다

쑨위산은 미산시(密山市) 청쯔허향(承紫河鄉)에서 거주한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에 심각한 위병이 있고 성격도 좋지 않았다. 1997년 3월, 쑨위산은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해 위병이 나아지고 성격도 좋아졌다. 직장 안에서 무거운 일과 지저분한 일을 그는 모두 다퉈가며 했다.

특히 직장에서 간부를 발탁하는 일은 4명의 경리 중에서 한 명을 선발해야 했는데, 직공의 눈에는 그 한 명이 꼭 쑨위산이었다. 그러나 책임자는 오히려 다른 사람으로 결정해 직공들은 모두 쑨위산을 위해 불평했다. 그러나 쑨위산은 원망하지 않았다. 1998년, 직장에서 인원을 줄일 때, 구매원 2명에서 한 명만 남기게 되었는데, 쑨위산은 그 한 명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했다. 직장 책임자마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선량하다고 말했다. 쑨위산은계절마다 선진 근무자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늘 계통 선진근무자로 평가받았다.

여러 차례 교란, 갈취, 납치당하다

1999년 7월 23일, 미산시 청쯔허향 파출소 610의 장슈펑(姜秀峰), 창위펑(常宇鵬), 궈융쿤(郭永坤), 류위허(劉玉河), 리쑹충(李嵩崇) 등 10여 명은 쑨위산의 집으로 와서, 그의 대법책과 사부님의 법상을 강탈한 후 곧 사흘이 멀다 하고 쑨위산의 집으로 가서 교란을 진행했다.

1999년 12월 26일, 청쯔허샹 파출소 소장 류위허(劉玉河)는 또 쑨위산 일가족이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6백 위안(약 10만 원)을 갈취했다(쑨위산과 아내, 딸 각각 2백 위안임).

무단장 감옥에서 7년 박해당하다

1. 납치, 갈취

2006년 3월 16일, 미산시 공안국의 한 경찰과 청쯔허향 610, 파출소의 리쑹충은 쑨위산의 집으로 가서 어떠한 증명서와 수속을 꺼내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함부로 집을 뒤지고 그의 집 물품을 합해서 대략 7천여 위안(약 120만 원)을 강탈했다.

미산시 국가보안대대의 리강(李剛)과 가오스밍(高士明)은 쑨위산을 미산시 공안국으로 끌고가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강제로 그에게 허리를 굽히게 하고, 책을 그의 등에 업게 하여 책이 떨어짐을 허락지 않았는데, 대략 한 시간 넘게 지속했다.

2. 7년 무고한 판결 당하다

미산시 국가보안대대의 리강과 가오스밍은 또 검찰원 리구이더(李貴德)와 리쯔중(李子忠), 법원 자오웨차오(趙悅超), 장잉(張瑩), 진창(金強), 왕카이펑(王凱峰)과 결탁해 쑨위산에 대해 7년의 무고한 판결을 내렸다. 2006년 9월 7일, 쑨위산은 무단장 감옥으로 보내져 박해당했다.

3. 무단장 감옥:두 귀를 맹렬하게 치기, 독방에 가두기 등

2007년 5월, 무단장감옥과 610인원이 결탁해 쑨위산에 대해 세뇌를 진행했다. 쑨위산이 그들을 따르지 않자, 그들은 곧 두 명의 죄수를 이용해 강제로 쑨위산을 중간에 끼워놓아 쑨위산이 말함을 허락지 않으며 강제로 몇 시간 동안 세뇌를 진행했다.

2008년 4월 30일, 대대장 장(姜) 씨와 부대장 양(楊) 씨는 감구역의 대법제자에 대해 강제로 대법책을 수색했으나 헛수고였다. 그들은 곧 수감인원 자오리밍(趙立明), 장리춘(張玉春)을 이용해 강제로 쑨위산에게 책을 요구했다. 쑨위산이 주지 않자 그들은 곧 쑨위산의 이불을 전부 찢은 뒤, 대법책 7권과 MP4를 모두 빼앗아갔다.

그리고 자오리밍은 쑨위산에 대해 혹독하게 무차별 폭력을 진행했고, 또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쑨위산의 두 귀를 맹렬하게 쳤다. 쑨위산은 구타로 하늘땅이 핑핑 돌고 눈앞이 캄캄해져 하마터면 땅에 쓰러질 뻔했다. 이때 교도관 장 씨가 큰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그만두라고 해서야 그는 손을 멈추었다. 이 일로 쑨위산의 두 귀에는 후유증이 남아 늘 다른 사람의 말이 똑똑히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쑨위산은 독방에 갇혔다. 그곳은 찬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으며, 또 음침하고 축축했다. 독방 안에는 쑨위산과 다른 한 사람을 감금했는데, 매일 두 끼만 주었다. 끼니마다 찐빵 한 개(한 개에 두 냥임)를 주어 두 사람이 나눠먹게 했다. 끼니마다 쑨위산은 찐빵을 반 이상 그 사람에게 주고 반도 되지 않은 양만 먹었다.

쑨위산은 독방에 보름 동안 감금당했는데, 독방 안에서 모두 세 사람을 바꿨다. 죄수 왕(王) 씨는 눈물을 흘리며 “당신들 파룬궁은 정말 모두 좋은 사람이군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모두 자원해 중공(중국공산당) 악당의 조직에서 탈당했다.

2009년 10월, 쑨위산은 17감구역에 감금됐다. 대대장 중구이(鐘貴), 교도원 겅레이(耿磊)의 지시로 수감인원 장위춘(張玉春), 스강(石剛), 나빈(那彬)을 이용해 쑨위산에 대해 ‘전향’박해를 진행할 때, 쑨위산에게 “어떤 감구역에서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을 묶어 구타하고, 또 어떤 감구역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을 쇠문 위에 묶어놓고 물을 끼얹어 구타했으며, 어떤 감구역에서는 밤낮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는다.”며 위협했다. 사흘 후, 쑨위산은 위협당해 ‘전향’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2012년 3월 15일, 쑨위산은 집으로 돌아왔다. 쑨위산이 7년 동안 불법 감금당한 사이에 그의 남동생이 사망했는데도, 감옥에서는 쑨위산에게 한 번 만나보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아내와 아이는 가정의 주요한 노동력을 잃어 생활함이 매우 간난하고 고통스러웠다.

문장발표: 2016년 6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6/13/3299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