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네이멍구 보도) 4월 25일, 네이멍구(內蒙古) 바오안자오 감옥에 불법 감금당한 파룬궁수련생 팡칭창(房慶昌)의 아내는 각종 어려움을 극복해 박해로 등이 굽고 피골이 상접해진 남편을 면회했는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팡칭창은 아내를 위로하며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것은 어떠한 죄가 없습니다”고 말했다.
파룬궁수련생 팡칭창은 네이멍구와 안멍(安盟) 우란하오터시(烏蘭浩特市)에서 거주하는데 2014년 11월에 납치됐다. 2015년 10월 15일에 커유첸치(科右前旗)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억울한 5년형 판결을 당했고, 연말에 네이멍구 바오안자오 감옥에 갇혔다. 그의 아내 왕진화는 몸이 줄곧 좋지 않았고 경제력도 좋지 않아 줄곧 그를 면회하러 가지 못했다.
4월 25일, 왕진화가 감옥으로 가서 수속을 다 밟은 뒤 감시구역 대장은 먼저 왕진화와 면담했는데 면회 조건은 ‘팡칭창에게 수련을 포기시키고 안에서 연공하게 하면 안 된다. 일찍 전향하면 일찍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왕진화는 “그는 연공을 해야 합니다. 연공하지 않으면 이곳 조건이 좋지 않아 몸이 견딜 수 없게 됩니다”고 말했다. 대장은 듣고 매우 화를 냈다.
이어서 왕진화는 남편을 보았는데 팡칭창 뒤에 있는 경찰이 거의 그의 몸에 붙어있음을 보았다. 왕진화에게도 역시 한쪽 편에 경찰이 붙어있었다. 기타 죄수 가족 면회에는 경찰 한 사람만 옆에 있었는데 이는 파룬궁 박해의 심각성을 설명한다. 감옥에서는 또 강제로 팡칭창에게 매일 노역을 시켰다.
팡칭창은 예전에 체중이 85kg이고 몸이 매우 건장해 어떤 힘든 일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등이 굽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사람이 수척하고도 작아보였다.
왕진화는 비통함을 억지로 참으며 남편과 말을 했다. 팡칭창은 아내를 격려하며 “진선인(眞善忍)을 믿음은 어떠한 죄가 없고 나는 어떤 나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즉시 제지하며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더 말하면 면회를 취소하겠다고 협박했다.
팡칭창의 아내는 그를 만난 뒤 정말 걱정되어 마음이 답답했다. 자신의 몸도 좋지 않고 아이도 한창 공부하는 시기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근심걱정에 쌓여 눈물을 끊임없이 흘렀다.
사건 회고
2014년 11월 7일, 커유첸치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에서 셰바오인(謝寶音)을 우두머리로 한 악인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 납치했다. 그들은 먼저 파룬궁수련생 팡칭창의 집으로 가서 납치했는데 당시 팡칭창은 아얼산(阿爾山)시로 일처리를 하러 갔기에 집에 없었다. 경찰은 곧 그의 아내 왕진화를 납치했다. 그런 다음 또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진행했다. 그의 아내는 감당하지 못해 남편의 행방을 말했다. 경찰은 차를 몰고 5백 리 밖으로 가서 팡칭창을 납치해 첸치 공안국으로 돌아왔다.
잇달아 파룬궁수련생 중팅쉬안(宗廷選), 자오샤오룽(趙曉榮), 충란제(叢蘭傑), 후옌레이(胡延磊), 중팅쉬안의 언니, 형부가 모두 납치당했는데 합해서 8명이다. 그중 3명은 보름 만에 풀려났고 팡칭창, 중팅쉬안, 자오샤오룽, 충란제, 후옌레이 5명은 불법 체포령을 받았다.
팡칭창, 중팅쉬안, 자오샤오룽은 줄곧 협력하지 않았고 모두 구두자백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다른 사람의 구두자백을 이른바 증거로 제공했다. 팡칭창, 중팅쉬안은 구치소에서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그들이 박해를 반대하고 협력하지 않았던 이유로 팡칭창은 고문 침대[刑床] 위에서 꼬박 7일 동안 있었다. 마음씨 좋은 한 경찰은 보고 견딜 수 없어했다. 그들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이유로 지금 구치소 안에서 매일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있다. 아침밥은 만터우 한 개이고 저녁밥도 만터우 한 개였다. 그들 두 사람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개정하는 날 걸을 때 줄곧 휘청거렸다.
2015년 10월 15일, 파룬궁수련생 팡칭창, 중팅쉬안, 자오샤오룽, 충란제, 후옌레이는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는데 팡칭창, 중팅쉬안은 각각 4년과 6년 형, 자오샤오룽, 충란제, 후옌레이는 3년 징역 판결을 당했다.
문장발표: 2016년 4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4/30/3273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