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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에서 겨우 목숨 건진 엔지니어, 장쩌민 고소로 다시 납치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보도) 2월 25일 오전 8시 경, 자오위안(招遠)시 610사무실, 국가보안 및 멍즈(夢芝)파출소 경찰 7,8명은 카오자(考家)촌 엔지니어 카오푸취안(考富全.63)의 자택에 들이닥쳐 그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그가 장쩌민을 최고인민검찰원에 고소했기 때문이다.

중공(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16년 간 지속되는 가운데 카오푸취안은 극심한 박해를 받아 사경에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

60대인 카우푸취안은 수갑과 족쇄를 차고 심문을 당했고 15일간 구류한다는 판결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그는 이를 거부했지만 자오위안시 구치소로 옮겨져 불법 감금됐고 갖고 있던 60위안도 빼앗겼다. 경찰들은 장쩌민을 고소한 8,9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모두 잡아들이겠다고 위협했다.

이번 납치 사건은 그동안 파룬궁수련생 박해에 적극적이었던 악독한 경찰 멍즈파출소의 리젠광(李建光)이 주도했다. 3대의 경찰차를 타고 출동한 경찰들은 카오푸취안의 집에서 서랍, 옷궤 등 가구를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찾으려던 물품은 없었고, 가족들이 지켜보고 있어 다른 물건들도 가져가지 못했다.

카오푸취안은 자오위안 금광전기공장 공장장을, 자오위안은 동력전기연구소 소장을 맡은 적이 있다. 1994년 7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여러 가지 질병이 스스로 나아 건강을 회복했으며 지혜도 열리게 됐다. 1999년까지 그는 여러 번 발명 특허를 얻고 신제품 기술을 개발했는데 전동침대, 전동최면침대, 안마침대, 에너지 절약 직교류 전기용접기, 에너지 절약 변압기, 금속유리제품, 다원소 선광(選鑛)설비 등과 분리추출기술, 대용량 쾌속 충전기 등 발명품과 기술로 국제 3등상, 국가 은상 등 상을 수상했다.

카오푸취안은 말했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저는 두각을 나타내서 가문을 빛내려 했고 집착스럽게 명리를 추구하는 심태로 과학연구를 하고 기업을 경영했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저의 인생관은 철저히 개변되었습니다. 명리를 위하지 않고 늘 다른 사람을 배려했으며 사회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공헌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는 또 말했다. “저의 영예와 성과들은 모두 대법을 수련한 덕분입니다. 그것은 모두 아름답고 신기한 대법에서 온 것임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렸던 이 병든 몸은 기본적인 생활마저 돌볼 수 없었을 것인데 어찌 발명과 혁신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1999년 7월,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하면서 경찰은 신앙을 포기하게 하기 위해 카오푸취안에게 각종 고문을 들이댔다. 아래 그의 장쩌민 고소장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그가 당했던 박해를 폭로한다.

전기 충격으로 수차례 실신, 밧줄에 묶여 전신 마비

酷刑演示:电棍电击

고문재연: 전기충격

지난 2001년 정월 16일, 자오위안 610사무실 수사대, 공안정보(政保)과와 멍즈파출소는 5대의 경찰차와 경찰 20여 명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우리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납치하고 집안을 불법 수색했다. 집은 아수라장이 됐고 많은 물건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나를 멍즈파출소로 납치한 후 고무 도구인 ‘호랑이의자’에 앉히고 높낮이 조절 철판으로 나의 허벅지를 힘껏 눌렀다. 또 나의 허리를 쇠사슬로 고정하고 양손에는 수갑을 채운 후 역시 의자 손잡이에 고정시켰으며 두 발에도 족쇄를 채웠다. 그러고 나서 독이 잔뜩 오른 경찰은 특별 제작한 1만 볼트짜리 자동조절 강력 전기충격 형구로 나의 머리, 귀, 등, 가슴, 다리 등 신체 민감한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당시 나는 손가락, 손목, 피부와 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전기가 통하지 않으면 그들은 소금물을 바르고 다시 시도했다. 장시간 초고압의 강한 전류를 통과시키면서 살이 타는 냄새가 심하게 났지만 그들은 내가 실신할 때까지 계속했다(지금도 나의 손목에는 흔적이 있다). 나는 그 경찰이 책임자에게 지쳐서 땀까지 났다고 보고하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 그들은 형구 하나로 나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는데 가끔은 스스로 감전되기도 했다. 그들은 누전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후 또 한 대를 갖고 왔지만 똑같이 감전되어 아프다고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한 경찰은 “전기를 연구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전기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酷刑演示:上绳

고문재연: 밧줄로 묶는 고문

악독한 경찰들은 또 젓가락만큼 굵은 끈으로 두 손을 등에 묶어놓았고 발로 밟고 손으로 잡아당기며 전신도 단단히 조여 놓았다. 그리고는 나를 한 쪽에 방치했는데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은 밧줄로 묶기 고문이었는데 오전 내내 묶어놓고서야 풀어주었다. 장시간 혈이 통하지 않아 나는 전신이 마비되었고 손발이 말을 듣지 않았다. 땅바닥에서 그처럼 오래 누워있었는데 악독한 경찰들은 또 나를 ‘호랑이 의자’로 끌고 갔다.

중점 탄압 대상이 되었는데, 죽여도 된다는 지침 있어

자오위안 610사무실과 공안은 나를 완고한 파룬궁 수련생, 중점 탄압 대상으로 분류했다. 게다가 때려 죽여도 된다는 행동 지침이 있다며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이를 갈았다. 나는 파룬궁은 무고한 박해를 받고 나 역시 무고하게 박해 받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짓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나는 화장실에 갈 때 담장을 넘어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부상이 너무 심해 성공하지 못했다. 나를 추격해 온 경찰들은 나의 머리카락과 귀를 잡고 나의 팔을 비튼 후 질질 끌고 다시 파출소로 데려갔다.

파출소에 들어서자마자 몇 명의 악독한 경찰이 사납게 덮쳐들어 구타하여 나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그래도 그들은 멈추지 않고 또 수갑으로 나의 두 손을 단단히 조인 후 나를 천정에 매달았는데 발은 바닥에 겨우 닿았다. 얼마나 오래 매달렸는지 모르지만 내가 실신하여 생명이 위급해서야 풀어주었다.

中共酷刑示意图:吊铐

고문 설명: 매달기 고문

이튿날, 610 전문 수사팀의 한 경찰은 나에게 “당신은 왜 도망쳤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맞아 죽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다른 한 경찰은 언제 갖고 왔는지 불갈고리를 들고 나의 다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는 한편으로는 구타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갈며 “다리를 분질러 놓겠다. 다시 도망쳐 보지.”라고 말했다. 그렇게 연속 몇 번 구타했는데 직경이 10mm정도인 불갈고리가 몇 곳이나 구부러져 있었다. 그는 매우 고소해 하며 “다리가 정말 튼튼하군”라고 한마디 했다. 말을 마치고는 수갑으로 나의 손을 채우고 땅바닥에 앉게 한 후 무릎을 굽혀 양팔 안에 놓이게 했다. 그리고 5~6cm 굵기에 길이 1m가 넘는 나무로 오른 팔과 발목에서부터 왼 팔과 발목 밑으로 꿰어 나를 매달리게 한 후 책상 가름대와 의자 사이에 걸쳐놓았다. 그들은 내가 위험할 때까지 그렇게 매달아 놓았다.

나는 고문과 학대로 몇 차례나 실신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실신할 때마다 악독한 경찰들은 나를 땅바닥이나 호랑이 의자에 던져놓고 생사 여부도 알아보지 않았다. 그들은 화로를 에워싸고 해바라기 씨를 까고 술을 마시면서 한담하다가 내가 깨어나면 다시 구타하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매달고를 반복했다. 고문을 가하지 않을 때에는 내 귀에다 솜을 틀어넣었는데 내가 그들의 말을 들을까봐 두려워했다. 또 내 입은 손수건으로 틀어막았는데 내가 진실한 말을 할까 두려워했다.

그들은 내가 실신하자 담배꽁초로 지져댔고 라이터로 화상을 입혀 깨어나게 했다. 그들은 나의 생명을 갖고 장난치면서 수법을 바꿔가며 나를 괴롭히고 모욕했다.

난로 뚜껑으로 얼굴 지지고, 몽둥이 폭행으로 온몸에 상처

하루는 610경찰의 고문으로 고열이 났다. 파출소 취사실 직원 왕(王) 씨는 주전자에 끓는 물을 들고 와서 “춥습니까? 뜨거운 물을 끼얹어 따뜻하게 해주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뜨거운 물을 내려놓더니 바가지로 냉수를 떠다가 나의 옷 안에 쏟아 넣었다. 그때 610 수사팀 경찰도 나를 따뜻하게 해준다며 벌겋게 달궈진 석탄 난로 뚜껑을 들어 나의 얼굴을 지지려 했다. 나는 그것을 손으로 막아 2곳에 화상을 입어 순식간에 큰 수포가 생겨났고 살타는 냄새도 났다. 그것을 보더니 그들은 가버렸다. 화상으로 인한 통증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酷刑演示:火烫(绘画)

고문 재연:불로 지지기(회화)

멍즈 파출소에서 당한 박해로 나는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전문 수사팀 팀장 린타오(林濤)는 “그들이 어떻게 당신을 대했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계속 수련하면 여기서도 큰 고비가 있을 것입니다. 전기 충격이 좋은가요, 몽둥이로 40대 맞는 게 좋은가요?”라고 빈정댔다. 그러면서 직경 4~5cm 굵기에 길이 1m가 넘는 몽둥이로 숫자를 세면서 있는 힘껏 혹독하게 구타했다. 나는 그가 나를 때리면서 지쳐서 연속 몇 번이나 “안 되겠다, 안 되겠다, 그만해야지.”라고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나는 몽둥이 고문을 당한 뒤, 몸이 매우 허약해져 화장실에 가다가 갑자기 쓰러져 인사불성이 되었다. 얼굴이 바닥에 부딪치면서 콧등에 콩알 크기의 시멘트 조각이 박혀 들어간 것도 나는 몰랐다. 나는 온몸이 상처였고 피부는 검붉게 변해 끔찍했다.

이렇게 나는 전문수사팀과 멍즈 파출소 경찰들에게 9박9일을 고문당했다. 정월 25일 저녁, 즉 우리 시의 대법제자 장리잉(姜麗英)이 폭행으로 사망한 날 그들은 나에 대한 고문과 학대를 멈추고 자오위안시 구치소로 보내 불법 감금했다.

2001년 청명절 기간, 나는 3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아 산둥성 제2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신체와 정신적인 박해로 나는 무너졌고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조차 없었다. 심각한 신경 손상과 근육 위축으로 한쪽 신체를 움직이기 힘들었으며 화장실에 가려해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노동교양소의 의사는 내가 일부러 꾸미고 있다고 비난하며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제지시켰다. 그는 수하를 시켜 나의 혈압을 재게 했는데, 왼쪽 맥박은 151이고 오른쪽 맥박은 180이 넘었다. 그 후 여러 곳에서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모두 나를 치료할 수 없다는 결론 내렸다. 노동교양소 측은 내가 안에서 죽어 책임을 져야 할까봐 두려웠고, 또 내가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느꼈는지 신경 손상으로 노동능력을 잃었다는 사유로 나의 가족에게 900위안을 갈취한 후 2002년 12월, 이른바 병보석 수속을 밟게 하고는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정체불명의 약물 주입, 발길질에 골절되고 채찍질에 살 문드러져

2010년 5월 8일 오전 8시 30분, 산둥 자오위안 610사무실은 듣기로는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3만 위안의 거금으로 쑹더샤(宋德霞)를 매수했다. 그녀를 시켜 한 기업가가 1억 위안을 투자해 나와 함께 ‘황금·귀금속 분리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게 한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속아 약속대로 그녀의 채소밭으로 갔다. 자오위안시 남부 우자쭈이(吳家嘴)촌 난강딩(南巷頂)까지 걸어갔는데, 그곳에 매복했던 경찰 리젠광(李建光), 쑹사오창(宋少昌), 사오저우짠(邵周讚), 궈(郭) 모(경찰번호047047) 등 10여 명이 나를 납치했다. 당시 몇 사람이 동시에 달려드는 것을 보고 나는 오토바이를 길옆에 놔두고 도망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붙잡혔고 구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발길질에 늑골 2개가 부러지면서 안으로 꺼져 들어갔는데(나중에 지난 감옥에 수감돼 신체검사 받을 때 의사가 물어봐서야 알았음) 나는 통증 때문에 숨을 쉬지도 움직이지도 못했으며 말도 할 수도 없었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나는 자오위안시 ‘법제양성센터’로 납치됐다.

老虎椅

호랑이 의자 고문

‘법제양성센터’(610사무실이 파룬궁수련생을 고문하며 전향시키는 세뇌반으로 사실 불법 감옥이다)는 둥베이산링난금광산의 한 폐기된 건물 안에 있는데 공안이 매일 24시간 보초를 서며 엄밀하게 감시했다. 세뇌반은 2층 복도 옆 동쪽으로 향해 있는 문 안에 있었고 복도 북쪽에는 고문실이 있었다. 고문실 안에는 특별 제조된 쇠고랑과 족쇄가 달려있고 앉는 곳이 철판으로 된 ‘호랑이 의자’가 있었는데, 4~5명이 나를 거기로 끌고 가서 쇠고랑을 허리에 채웠다. 그리고 전깃줄로 나의 손을 의자 등받이에 묶어놓고 족쇄에 발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 그때 나는 골절됐는지 몰랐지만 너무 아파서 숨을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경찰이 내게 질문해도 대답할 수 없었는데, 그들은 일부러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더욱 화가 나서 야단이었다. 한 경찰이 호주머니에서 경찰 신분증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리젠광이라는 경찰이었다. 그는 나에게 “저를 압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머리를 흔들자 그는 “저는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은 지 오래됐지요.”라고 거드름을 피며 말했다.

그가 손을 흔들자 4~5명이 밖에서 약물을 묻힌 담배를 들고 들어오더니 동시에 불을 붙이고는 내 얼굴에 대고 연기를 내뿜었다. 나는 숨이 막혔지만 기침을 할 수 없었고 숨도 잘 쉴 수 없었는데, 또 두 사람이 연기 한 모금을 내 얼굴에 내뿜었다. 그렇게 피우고 내뿜고를 반복하여 작은 방안이 연기로 가득 차서야 그들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짙은 담배 연기가 가득 찬 방안에서 나는 실신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는데 20대로 보이는 여 의사 두(杜) 씨가 들어와 맥을 짚어보며 나를 깨웠다. 눈을 떠보니 방안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녀는 혈압을 잰 후 나에게 정체불명의 약물을 먹였는데 내가 저항하며 마시지 않자 몇 사람이 달려들어 코를 막고 강제로 대량 주입했다. 조금 뒤 2명의 졸개가 직경 3cm에 길이 4~50cm 되는 나무 몽둥이를 들고 ‘채찍으로 당나귀를 몰겠다’고 하며 양쪽에서 나를 구타했다. 그들은 나의 목, 손, 허벅지, 발을 차례로 구타했고 손가락도 하나씩 차례로 내리쳐 심하게 부어올랐다. 그들은 저녁 11시까지 자신들이 지칠 대로 지쳐서야 폭행을 멈췄다. 의사와 경찰들은 곧 사망할 것 같아 보이자 병원으로 보냈다. 검진 후 의사는 경찰에게 “대뇌는 문제없는데 경추에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또 나를 끌고 돌아와서 계속 혹독하게 구타하고 정체불명의 약물을 주입했다. 그 후 나는 머리를 들지 못했는데 리젠광은 또 여 의사를 불러다가 약물을 주입하여 나를 또 실신하게 했다.

또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는데 악독한 경찰 쑹사오창은 여러 가닥의 전깃줄을 모아 만든 형구로 나의 허벅지를 구타했다. 살이 문드러질 정도로 때려도 그들은 한을 풀지 못한 듯 계속 구타했다. 그리고는 구둣발로 내 발가락을 짓밟고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반응을 보았다. 며칠 뒤에 내가 소변을 보려하자 경찰들은 그제야 쇠고랑을 풀어주며 두 사람이 부축해 소변을 보게 했다. 그러나 나는 배설하지 못했다. 그들은 다시 나를 ‘호랑이 의자’에 앉혔다. 그중 나를 부축했던 젊은이는 나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5박5일 동안 나는 그 쇠 의자 위에서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눈을 감기만 하면 옷깃에 나무대가 꽂혔고 그것이 땅에 떨어지면 그들은 달려들어 구타했다. 2인조의 졸개들이 2시간에 한번씩 번갈아 가며 나를 지켰는데 ‘매 괴롭히기(熬鷹)’ 고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갖은 악독한 수법으로 고문을 들이대며 누가 우리 집에 왔는지 말하게 했지만 나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누가 우리 집에 찾아 오거나 내가 다른 사람의 집에 찾아가는 것이 법에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27/3246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