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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쥐난현 류화이펑,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 보도) 류화이펑(劉懷鳳.女)은 산둥 쥐난현(莒南縣) 샹거우향(相溝鄉) 양자(楊家) 싼이촌(三義村) 사람으로, 과거 심각한 천식으로 고통당하고 있다가, 1999년 파룬궁(法輪功)을 배우고 나서 천식은 물론 몸의 모든 병이 사라져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심성도 매우 높아졌다.

그녀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16년 이래 파룬궁을 박해하는 과정에서 파룬궁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중공에 납치돼 4차례 유치장에 감금됐고, 2차례 세뇌반에 구금되어 혹독한 고문과 구타 등 모진 학대를 당하며 강제전향을 강요받은 바 있고, 또 동생 류리(劉麗)를 구출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다가 중공의 보복을 당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게 됐다. 그녀가 감금됐을 때 강제로 채혈을 당하는 등 잔인무도한박해를 당했으므로 여러 차례 심한 출혈을 하며 쇼크 상태에 빠지는 등등 생명이 위험한 지경에 까지 이르는 박해를 당했는데, 그는 2016년 1월 10일(섣달 초하루) 48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류화이펑이 사망할 때 그의 여동생 류리(劉麗)는 죄 없이 중공에 납치돼 감옥에 감금된 지 2년이 되었고, 언니 류샤(劉霞) 역시 납치돼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2개월째 린이(臨沂)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79세인 모친 쑹이전은 참담한 심정이다. 셋째 딸 류리는 죄 없이 무고하게 3년 6개월 형을 받고 현재 2개월째 복역 중이고, 큰딸 류샤는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금 중이며, 막내딸 류화이화(劉懷花)는 1개월 넘도록 감금됐다가 겨우 풀려났지만, 딸이 사망하게 됨에 따라 노인은참으로 비참한 심정이었다. 16년 동안 선량한 한 가정의 모친과 딸들이 그처럼 잔혹한 박해를 당한 것이다. 그 가족들의 깊은 상처와 손실은 무엇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큰 비극이다.

류화이펑은 1999년 7월 이후 법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국민의 기본권인 청원과 믿음을견지했다는 이유로 수차례 전 관팡(官坊) 파출소, 베이징 주재 산둥성 사무처, 쥐난현 정부, 현 위원회 ‘610’, 현 공안국, 현 당학교, 현 국가보안대대, 청난(城南) 파출소, 샹거우향(相溝鄉) 정부, 향 당위원회, 무장부, 계획생육 사무실, 향 파출소, 쥔난현 유치장, 현 세뇌반 등등의 많은 기관과 사람들에 의해 불법으로 납치되고 감금됐다. 그들 기관이나 관련기관 사람들은 그녀에게 모함, 믿음박탈, 인신자유박탈, 불법수사, 구류, 모욕과 비난, 강제세뇌,재물갈취, 학대, 고문에 의한 자백을 강요, 고문, 강제채혈 등 일련의 잔혹한 박해를 자행했고, 또 모진 핍박으로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게 했다.

류환펑은 2015년 7월 하순 법률에 따라 최고 인민검찰원, 최고 인민법원에 박해원흉 장쩌민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발송했다. 다음은 고소장에 적시된 일부 내용이다.

나는 1999년 11월 26일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톈안먼에서 파룬궁이 억울하게 모함당한 것에 대해 정당한 호소를 했다. 2000년 여름, 관팡 파출소 경찰관은 나를 납치해 관팡향 세뇌반에 감금한 후 강제전향을 강요했는데, 며칠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했다. 저녁에 부소장 류사오펑(劉少峰)은 고의로 나를 유치실(留置室)에 가둬 모기에 물려 시달리게 하면서 그렇게 4~5일간 불법으로 감금했다.

같은 해 섣달 관팡향 정부 부서기는 쥐난현 공안국 ‘610’ 요원과 함께 나를 납치하여 판취안(板泉) 세뇌반에 감금한 후 박해를 가했다. 그 기간은 바로 장쩌민이 ‘파룬궁 처리 지령’을 내린 기간이었다. 즉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적으로 파탄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시켜라. 육체적 소멸은, 때려죽여도 죄를 묻지 않으며, 때려서 죽었으면 자살로 처리하되, 신원을 조사하지 말고 즉시 화장하라.”라는 것이 장쩌민의 지령이다. 그들은 그 지령의 정책수행에 따라 나를 납치하고, 감금해서 구타하고 고문하며 박해를 가했는데, 그들은 샹거우향 파출소경찰, 현 위원회 ‘610’, 현 정부, 현 공안국, 현 당학교, 현 공안국, 부현장 양원밍(楊文明),현 당학교장, 샹거우향 당위원회, 향 정부, 무장부, 파출소, 계획생육사무실 등의 기관 10여 명이 집단으로 나에게 폭력적인 구타와 고문 박해를 가한 것이다.

그들의 고문 박해 수단은 다양했고 무자비했다. 나를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강제로 앉게 한 후 신을 벗겨 다리를 곧게 펴게 하고, 손바닥을 위로 하게 하여 마구잡이로 구타했는데, 두 손바닥, 머리꼭지, 두 발바닥 등을 가격했고, 귀뺨을 때렸다. 그들은 엄지손가락 굵기의나뭇가지로 구타하기도 했다. 그들은 구타하면서 “구타로 죽어도 상처를 검사해 내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혹심한 구타는 극히 고통스러워 참기 힘들었으며 실진지경에까지 이르렀다.얼굴은 매우 부어올라 입술을 다물지 못했고, 치아는 흔들리고 비틀어졌고, 두 손바닥은 온통 핏자국이었는데 무참하게 죽기 직전이었다. 한번은 나를 구타하던 경찰관이 나의 바짓가랑이를 만지며 성적 고문을 하려고 했다. 또 나의 신발 끈을 한데 묶어서 나의 목 위에 걸쳐 매다는 고문을 가하며 조롱하고 희롱하며 미친 듯 끊임없이 웃어댔다. 그들의 고문 구타는 “파룬궁을 포기하라”는 핍박이었다. 내가 전향하지 않자, 그들은 다시 내가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사정없이 구타했다. 나는 보름 동안 그런 고문과 구타의 시달림을 당하며 사경을 헤맸다.

酷刑演示:拳打脚踢

고문 재연:발로 차고, 주먹으로 치다

나는 이 몇 해 동안 장쩌민의 지령, 그 지령을 받은 ‘610’,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파출소와유치장에서 심각한 고문과 구타의 박해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또 가정에서도 박해를 당했다. 장쩌민의 거짓말에 독해된 남편은 걸핏하면 나를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렸으며, 나의 친정집 가족에 대해서까지 위협을 가했다. 나는 그토록 혹심한 고문 박해를 당해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가 깊어 현재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 여러 해 동안 몸 아래에서 끊임없이하혈을 하는데, 이미 여러 차례 심각할 정도의 큰 출혈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나의 건강상태가 위중하자, 남편이 2015년 5월 병원에서 진찰을 받게 했는데, 의사는“병이 대단히 위중하다.”라는 진단을 내렸다.

문장발표: 2016년 2월 1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2/13/3241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