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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중공의 박해당한 탕산 대지진 생존자 류구이진,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2015년 11월 19일 밤 10시 15분, 탕산(唐山) 대지진 생존자 류구이진(劉桂錦)이 그녀가 유랑생활하던 셋집 방안에서 일찍이 박해로 불구가 됐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갔다. 향년 65세였다.

刘桂锦

류구이진(劉桂錦)

그녀가 호흡을 멈춘 그 시각,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고 큰 눈이 내렸는데, 류구이진이 자신의 피눈물로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의 피의 빚에 대해 고소를 제기함을 세인들에게 상징했다.

류구이진은 탕산 대지진의 생존자였는데 당시 26세였다. 대지진 중에서 요추 분쇄성골절, 관골골절, 치골 연합골절 증상이 있었고, 오른 다리의 근육은 심각하게 위축돼 불구가 되었는데 18년 동안 배변 기능을 잃었다. 그리고 심각한 뇌진탕 후유증이 있었고, 심장 박동은 1분에 45회로 매우 느린 데다 간헐 증상이 있었다(간헐 시간은 일반적인 환자의 2배였음). 그 후 또 음도암(질암)에 걸렸다. 병고 중에서 시달리던 그녀는 유서를 써놓고 자신의 후사를 준비했다.

1994년 3월, 류구이진이 사망에 이른 시각에 그녀는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하게 됐다. 이는 그녀에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게 했고 또 500도의 근시 안경도 벗어 버렸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류구이진의 위급한 생명을 구했고 그녀에게 새 삶을 주었다.

시연도(演示圖):전기봉으로 전기충격고문을 가하여 강제 ‘전향’을 진행하다

하지만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파룬궁에 대해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진행한 뒤, 그녀에게도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고 그녀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은사님을 모욕하도록 핍박했다. 류구이진은 파룬궁 수련을 견지했다가 중공 당국의 각급 인원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여름날엔 뙤약볕에 쪼이기, 목에 똥통 걸기, 손 위에 벽돌 매달기 고문을 가했으며, 겨울엔 얼리고 굶주렸고, 손에 수갑을 차고 발에 족쇄를 찼으며 또 구타, 1만 볼트 넘는 전기봉을 사용한 전기충격 고문을 당했다. 류구이진은 시달림당해 죽었다가 살아났으나, 또 안캉(安康)병원에 보내져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 당하는 박해를 받아 여러 차례나 불구가 되었는데, 역시 매 차례 연공을 통해 건강을 회복했다.

원촨(汶川) 대지진이 발생한 이튿날인 2008년 5월 13일 저녁, 류구이진은 베이징 순이구(順義區)의 집에서 세 번째로 공안 경찰에게 납치와 강탈당했다. 잇달아 류구이진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는데 베이징 올림픽대회 전에 다른 50여 명의 베이징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랴오닝성 선양시(瀋陽市)의 악명이 극히 높은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박해당했다.

류구이진은 마싼자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마비되었다. 파룬따파 사부님께서 류구이진을 도와주셔서 거듭 병업을 이겨내고 새롭게 일어났으나 걸을 때 두 다리에 전혀 지각이 없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핍박당했으며 작업실에 가서 노동해야 했다. 둔부에는 욕창 증상이 나타났는데 줄곧 노동교양이 만기 될 때까지 그러했다.

류구이진은 온몸이 상처의 흔적이고 불구가 된 몸으로 마싼자 노동교양소를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중공의 불법 무리는 이미 심각한 불구가 된 류구이진을 여전히 가만두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로 불구가 된 류구이진을 문안하러 간 뒤, 류구이진이 계속 파룬궁수련생과 연락한다는 이유로, 많은 경찰을 보내 녹화기를 메고 류구이진을 붙잡으려 했으나 마음씨 좋은 사람이 통보해줘 요행히 벗어났다. 이러한 상황은 여러 차례 발생했다.

류구이진과 그녀의 딸 등 전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류구이진의 두 다리는 걸을 때 지각이 없게 되어 신발이 벗겨졌는지도 몰랐다. 그녀의 딸은 막 아이를 낳았는데, 류구이진이 아이를 안고 있을 때 아이가 조금만 힘을 써도 넘어져 오랫동안 일어설 수도 없었다. 어느 한 번, 아이가 잠이 들자, 류구이진이 정원에 나갔는데, 걷다가 오히려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줄곧 앞으로 나아가다가 다행히 정원의 나무에 부딪혔으나 나무 아래 곤두박질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어떤 행인이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워줬다.

줄곧 회복되지 않았던 욕창은 결국 점점 심각해져 결국 감염에 의한 합병증을 일으켰다. 류구이진은 결국 겁난을 넘기지 못한 채, 2015년 11월 19일밤, 억울하게 사망했다.

류구이진이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에 관해 밍후이왕 보도 ‘신주 큰 재난(神州浩劫) (10):대지진 생존자가 중공에 의해 거듭 시달림을 당해’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18/3206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