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칭하이성 시닝시에서 74명(56사례)이 최고 검찰원, 최고 법원에 장쩌민을 고소한 고소장을 제출해 최고 검찰기관에서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의 박해 범죄를 입건하고 법에 따라 책임을 추궁할 것을 독촉했다.
금년 84세인 자오위란(趙玉蘭)은 장쩌민 및 그 추종자들이 아들과 며느리를 박해해 살해한 이유로 고소했다.
허완지와 자오샹중 부부
자오위란의 아들 허완지(賀萬吉)는 시닝(西寧) 철도분국 공안처 경찰로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박해를 받았다. 칭하이성 노동교양소에 수감됐다가 나온 후 칭하이성 시닝 철로 공안국에 의해 공직에서 해고당했고, 2002년 7월에는 칭하이성과 간쑤성 TV에 파룬궁 진상 삽입 방송에 참여한 이유로 2002년 12월 30일 17년 형에 언도돼 하이베이저우(海北州) 하오먼(浩門) 감옥에 불법적으로 투옥 됐다. 2003년 5월 28일 감옥은 갑자기 가족에게 허완지가 뇌출혈로 치료가 소용 없어 사망했다는 통지를 보냈다. 그의 아내 자오샹중(趙香忠)은 네 차례 칭하이 여자 노동교양소에 불법적으로 붙잡혀 들어갔고 2003년 2월 20일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피고인 장쩌민이 발동하고 유지한 이번의 집단학살성 박해는 1억에 달하는 파룬궁수련자와 그들의 가족에게 커다란 고난을 주었다. 동시에 무구한 좋은 사람에 대한 이번 박해는 중국의 법치를 갈수록 암흑에 빠지게 했고 공산당 관리들을 갈수록 부패하게 했으며 중국 사회의 도덕성을 갈수록 타락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모든 중국인은 모두 이번 박해의 피해자다.
2015년 5월 말부터 10월 27일에 이르기까지, 밍후이왕은 이미 20만 파룬궁수련생 및 가족이 중국 최고검찰원, 법원, 공안부 등 관련 부서에 보낸 고소장 사본을 받았다. 파룬궁수련생의 장쩌민 고소는 피해자를 위해 공정함을 받아낼 뿐만 아니라 또한 사회 정의를 선양하고 모든 중국인이 좋은 사람이 되는 권리를 수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회 각계에서도 이번 장쩌민 고소 열풍을 성원해주시길 바란다.
자오위란은 고소장에서 말했다. “며느리 자오샹중은 칭하이 여자 노동교양소에 4차례 불법적으로 붙잡혀 들어갔다. 마지막 한 차례는 2002년 ‘16대’ 전이었는데 경찰차 6대가 아들 허완지의 집을 포위하고 온 가족을 납치하고 수감했다. 그 중에는 아들 집에 있던 친척집 두 아이가 포함됐는데 12살 정도의 여자아이와 두 살 된 아기를 모두 열 몇 시간 동안 가둬놓았다. 며느리는 여자 노동교양소 독방에 갇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얼음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잤고 20여일 후 석방됐지만 이미 걷지 못했다. 하반신은 감각을 잃었고 흉부는 통증이 극심해 음식을 먹을 수 없었으며 뼈만 앙상하니 자리에 마비된 채 누웠는데 생명이 위독했다.”
“2004년 5월 13일 새벽 3시, 칭하이성 황중현 공안국과 현지 파출소의 6명 경찰(그 중 2명은 성이 장씨, 한 명은 성이 자오씨)이 아무 연고 없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 물건을 뒤엎으며 수색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당신들 밤중에 뭘 하는 거죠?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당신들을 이토록 긴장하게 만들었나요?! 당신들 왜 대낮에 오지 않죠? 낮에 오면 당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게 아닌가요! 당신들 밤중에 오는 건 무슨 알리지 못할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요!” 그들은 할 말이 없게 되자 무지막지하게 나에게 수갑을 채우고는 경찰차에 밀어 넣었다. 그들은 70여세 늙은이를 마치 흉악한 강도를 대하듯 수갑을 찬 손을 마구 끌고 갔다. 내 두 손은 수갑에 살이 패여 피가 흥건했다. 우리 집에 있던 서적과 진상 자료는 그들이 전부 몰수했다. 나는 15일 동안 불법 수감 당했다. 뿐만 아니라 150위안을 강탈당했다. 남편 허서우안(賀壽安) 역시 수련생인데 내가 강제로 차에 태워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아들과 며느리가 박해로 사망하는 등 일련의 충격으로 2004년 초에 가슴속에 비분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자아오란은 또 말했다. “나는 다만 아주 보통 농촌 여성이고 파룬궁을 수련한 것 역시 건강과 승화를 위해서일 뿐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렇게 많은 박해와 시달림을 받았다. 내 경험 역시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박해에서 얼마나 많은 가정이 파멸되고 얼마나 많은 혈육이 흩어졌는가. 이는 모두 장쩌민이 혼자서 저지른 것이다. 대법에서 이로움을 받은 나 이 시골 늙은이는 비단 나 자신을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생명을 잃은 우리 가족을 위해 나서서 장쩌민을 고소하며 수천수만 파룬궁 제자를 위해 억울한 사정을 하소연한다. 바라건대 당국의 집법자는 우리 백성의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원흉 장쩌민을 엄벌하고 사부님과 파룬따파의 결백함을 회복시키고, 인간세상의 정의를 회복하는 동시에 이번 박해 중 나의 모든 손해를 배상해주기 바란다.”
57살인 거옌화(葛延華)는 원래 콩팥에 물이 고였으며 심장병이 있었는데 1999년 2월 파룬궁을 수련한 후 관절염 등 각종 질병이 자취를 감추고 다 나았으며 사상과 정신에 아주 큰 승화를 얻었다.
그녀는 고소장에서 말했다. “2009년 9월 9일 오후, 집에서 법공부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문을 열었더니 국보대대, 공안국, 또 현지 파출소 경찰이 쏟아 들어와 집을 수색하고 우리 집 컴퓨터 등 각종 물품을 약탈해갔다. 또 나를 국보대대에 납치해 윤번으로 심문했고 죄목을 나열하면서 법률실시 파괴죄로 나를 5년 징역형에 언도했다. 감옥에서 나를 전향시키고 신앙을 포기하게 하려고 경찰 4명이 발로 나를 짓밟고 모욕했으며 전기봉으로 온몸에 충격을 주어 경찰 사무실은 살이 타는 냄새로 가득 찼고 내 온몸은 전기 충격으로 군데군데 시커멓게 됐다. 이후에 또 나를 빈 방에 감금하고 어떠한 사람과의 연락도 다 끊어 버렸으며 황씨라는 마약범을 보내 나의 일체 행적을 감시하게 했다. 죄수는 나를 때리면서 자지 못하게 했고 나를 또 독방에 가두고 두 손을 바닥에 잠가 놓고 머리는 벽에 대게 했는데 이런 고문은 설 수도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어 그저 쭈그려 앉을 수밖에 없는데 손과 발, 팔, 다리는 모두 찐빵처럼 부었다. 독방은 아주 추웠고 온 몸이 얼었으며 피부를 가리기 어려웠다. 이런 고문으로 나를 34일이나 괴롭혔다. 경찰은 내가더는 사람모양 같지 않게 되어서야 나를 풀어놓았고 풀어놓은 후에도 하루 종일 나에게 그들의 왜문사도를 읽게 하면서 강제적인 세뇌를 진행했다. 2014년 1월 9일에 와서야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집에 돌아와도 편치 못했고 늘 경찰이 집에 와서 문을 두드리며 소란을 피웠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부득불 고향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60세인 철도 퇴직 직원인 묘마오링(苗茂玲)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사상경지가 제고되어 이전의 모든 나쁜 습관을 다 고치고(술을 마시고 마작을 하며 성격이 불같은 등) 남을 배려할 줄 알며 일을 함에 남을 고려했다.
그녀는 고소장에서 말했다. “2002년 12월 18일 오후 2시, 당시 교도원 장원징(張文靜)을 선두로 나와 탄잉춘(談迎春), 천지핑(陳繼萍), 리위안핑(李元萍) 4명의 파룬궁수련생에게 달리거나 서는 벌을 주었다. 먼저 탄잉춘이 위층에 끌려가더니 아주 오래 돼서야 돌아왔는데 모두들 그녀가 고문을 받았음을 알았다. 그런 다음 장원징과 경찰 류사가 나를 3층 사무실로 데려다 솜옷을 벗게 하고는 내 두 손을 뒤로 해 수갑을 채웠다. 장원징은 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린 후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고 류사와 동시에 양쪽에서 동시에 내 척추에 전기 충격을 10분 동안 가했다. 내 머리는 자기도 모르게 바닥에 끊임없이 부딪혀 뒤통수에는 큰 혹이 생겼다. 전기충격 중 나는 입에 거품을 가득 물었다. 내 등 피부는 그을려 통증을 참을 수 없었다. 장씨는 끊임없이 말했다. ‘너 전향할 테냐 안 할 테냐, 전향 안 하면 그냥 때릴 테다.’ 나는 또 맞아서 바닥에서 뒹굴었고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전기가 다 소모되자 류사는 충전하러 갔다, 두 사람은 또 내 두 귀를 충격해 두 귀는 부어서 당근 같았다. 사악한 경찰은 내가 굴복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를 핍박해 무슨 자살하지 않으며, 스스로 불구가 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게 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행패였다. 천칭화는 노동교양소 위생소 의사다. 그는 나를 2층 사무실에 불러 놓고는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물었다. ‘당신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고는 대번에 흉악한 모습을 드러냈다. ‘전향하지 않으면 형벌을 가할 거야!’ 이 기간 매 파룬궁수련생마다 모두 여러 정도의 시달림을 받았고 그 중 탄잉춘은 2002년 12월 29일 새벽 4시경에 악독한 경찰의 박해로 사망했다.”
중국공산당 고문 시연도: 전기충격
묘마오링은 또 말했다, “나는 단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고난과 시달림을 당했다. 여러 해 동안, 장쩌민을 우두머리로 한 사악한 자들은 선량을 박해하고 백성을 우롱했으며, 하나 또 하나의 거짓말을 날조해 사람들을 선량함과 원수로 되게 했으며 사악과 한데 휩쓸리게 해서 백성을 천재인화의 도탄에 빠지게 했으며 도덕의 한계선이 없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가짜 상품, 탐관오리가 범람하고 중국은 희망이 보이지 않으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사법 공무원으로서 우리는 더욱 자손 후대를 생각해야 하고 중국의 사법 제도의 건전함을 위해 생각해야 하며 선량함을 보호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5년 12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6/32010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