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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커우시 시민 백명, 연대 서명하여 장쩌민을 고발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베이 보도) 장자커우시 천윈촨 일가는 장쩌민과 610계통의 사람들에 의해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현지 파룬궁수련생들은 생전의 천윈촨 가족 사진을 첨부하여 비참한 박해 사례를 편지로 써서천 씨 가족을 위한 장쩌민 고발 서명을 (시민들로부터) 받았다.

陈家合影:父亲陈运川、母亲王连荣、大儿子陈爱忠、二儿子陈爱立、大女儿陈淑兰、小女儿陈洪平

천 씨 가족사진: 부친 천윈촨, 모친 왕롄룽, 큰아들 천아이중, 둘째아들 천아이리, 큰딸 천수란, 작은딸 천훙핑

사람들에게 서명을 부탁할 때 천씨 일가가 박해 받은 전형적인 사례를 알리면서 “이는 박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아직도 수백만 가정이 박해 때문에불행을 겪고있으며 장쩌민 일당들이 잔인하게도 파룬궁수련생을 생체장기적출하여 폭리를 얻고 있다”라고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듣고 분개하며 “이런 일도 있습니까? 그들이 사람입니까? 장쩌민 그 자식이 죽었습니까? 벌써 죽어야 할 놈인데. 그를 고소(고발)해요. 동의합니다! 벌써 그 나쁜 놈을 고소해야 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한 가지 좋은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 사회를 무슨 꼴로 부패시켰는가 보세요. 장쩌민을 붙잡으면 천하가 태평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며칠 사이에 선량한 시민 백 명이 서명했다. 10월 23일 백 명의 시민이 공동으로 장쩌민 및 610계통이 천윈촨 일가를 참혹하게 박해한 사실을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최고검찰원에 편지로 부쳤는데 이미 접수되었다.

또 11월 28일 121명이 서명하여 최고검찰원에 재차 고발편지를 부쳤다.

중공 장쩌민 집단의 파룬궁 박해에서 화이라이현 신바오향 찬팡잉촌의 천윈촨 일가 6명은 여러 차례 납치되어 감금과 혹형의 고문을 당했는데 천 씨 가족 4명의 아들딸 중에 3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큰아들 천아이중은 불법적인 3년 노동교양을 받아 2001년 9월 20일 탕산시 허화컹 노동교양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작은딸 천훙핑은 고문으로 두 다리가 부러진 후에도 불법적인 노동교양을 받았다. 2003년 3월 5일 고양노동교도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둘째아들 천아이리는 탕산 펑난현 지둥감옥에서 박해 받아 생명이 위태로웠는데 2004년 11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큰딸 천수란은 2002년 9월 17일에 어머니와 함께 납치된 후 불법적으로 7년 6개월이란 판결을 고 천수란의 딸 리잉도 마찬가지로 많은 고난을 겪었다. 베이징 창핑구 ‘610’에 의해 경로원에 2년 넘게 잡혀있었다.

천윈촨 노부부는 어쩔 수 없이 1년 6개월이 넘도록 도처를 떠돌아다니는 고달픈 생활을 하다가 아내 왕롄룽은 2006년 8월 4일 유리걸식 중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2007년 가을, 내내 본명을 숨기고 타향에서 살던 부친 천윈촨은 여러 해 동안 만나보지 못한 딸 천수란을 보려고 베이징 여자 감옥에 면회 갔는데 감옥경찰은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노인이 딸에게 옷과 돈을 남기고 가겠다고 했지만 허락하지 않았다. 2009년 1월 고희가 된 천노인은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천수란은 2010년 감옥에서 나온 후 각종 고난을 거쳐서야 거의 8년이나 헤어져있던 딸을 찾았다. 모녀가 만난 지 겨우 1년 6개월 되는 2012년 12월에 천수란은 또 창핑쑹위안 파출소로 납치됐고 2013년 8월 2일 4년의 불법적인 판결을 받았다. 딸 리잉은 어머니를 구출하려다가 2013년 10월 31일 납치되어 베이징 차오양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되었는데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다.

천윈촨 일가의 박해 사례는 밍후이왕에서 보도한 ‘중원의 큰 재난(4): 여섯 식구 중에 한 사람밖에 남지 않았다.’ ‘8년 동안의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던 베이징 창핑의 천수란이 재차 납치되다’ 등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문장 발표: 2015년 12월 4일
문장 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 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2/4/31998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