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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부사장이 안후이 女감옥에서 박해로 두 눈 실명에 마비까지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안후이보도) 주웨잉(朱維英, 여, 60여 세)은 원래 안후이(安徽) 허페이(合肥) 메이산(梅山)식당 부사장으로 엘리트 여성이다. 파룬궁수련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16년 동안 구치소, 노동교양소, 정신병원, 세뇌반, 감옥에 불법 감금돼 강제 ‘전향’박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호랑이 의자에 묶기, 전기봉으로 전기충격, 신발 바닥으로 뺨 때리기, 그리고 악도가 화장실에서 주워온 화장지, 위생종이를 입안에 밀어 넣기 등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다.

2015년 10월, 주웨잉 여사는 안후이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두 눈이 실명하고 경추가 밟혀 부상을 입고 마비되어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안후이 여자감옥에서는 치료를 해주지도 않고 또 석방도 해주려 하지 않았다.

1. 정신병원에 갇혀 끊임없이 약물 박해를 당하다

중공(중국공산당)이 약물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손상을 입히는 것은 굉장히 흔한 일이다. 1999년 12월, 정신 병력이 없는 상황에서 주웨잉은 중공에 의해 강제로 허페이시 제4인민병원으로 보내졌는데, 정신병이라는 명목으로 박해를 행했다.

정신병원에서 악인은 주웨잉에게 입원하지 않는 조건을 내놓았는데 바로 파룬궁수련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주치의는 매일 강제로 그녀에게 약을 먹이고 그녀가 연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또 그녀에게 파룬궁이 ×교임을 승인하도록 했는데, 만약 승인하지 않으면 약의 양을 늘렸다. 이 약들은 모두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것인데 파괴 작용이 매우 컸다.

中共酷刑示意图:用电针电击

중공 고문설명도:전기침으로 전기충격 가하기

2개월이 넘어서 주웨잉은 강제로 대량의 약을 복용당한 뒤, 입술이 떨리고 똑바로 서지 못했으며, 전신 부종 증상, 얼굴색이 누렇게 뜨고 정신이 멍한 증상, 행동이 느리고 대뇌 반응이 느린 상태가 나타났다. 이 기간에 일단 주웨잉이 약 복용을 거부하면 악한 의사는 곧 강제로 그녀에게 전기침이나 주사를 맞혔는데, 다 맞은 뒤에는 땅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몰랐다.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병원에서는 종래로 어떠한 진단 증명을 꺼내 보인 적이 없다.

약물 손상은 단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많은 폭행 중의 하나일 뿐이다. 비록 그것은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박해를 진행함에 사용한 사악한 수단의 전부가 아니지만, 그것은 오히려 이 박해 운동의 악독함과 잔인함을 반영했다.

2. 유랑생활, 반복적인 납치, 가택 수색을 당하다

2000년, 주웨잉은 두 차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두 차례 안후이 허페이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게다가 두 차례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2001년, 주웨잉은 청원하러 갔다가 안후이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돼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그녀의 남편은 허페이 ‘610’에게 위협을 당했고, 연좌 박해가 두려워 주웨잉과 이혼했다.

2002년 5월, 주웨잉은 2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는데 3개월의 기한을 연장당했다. 그녀가 노동교양소에서 나온 뒤, 일부 610 불법 인원은 끊임없이 집으로 찾아와 교란했다. 주웨잉은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2005년 11월 19일 오후 5시, 허페이 국가보안대대 대장 왕루(王璐), 린창(林強)과 다오샹촌(稻香村)가도의 주임 먀오(苗) 씨가 한 무리의 졸개 10여 명을 데리고 길이가 1미터 넘는 쇠몽둥이를 들고 갑자기 주웨잉의 집을 에워쌌다. 악인은 강제로 쇠몽둥이로 그녀 집의 삼도 철문(三道鐵門)을 전부 부수어 열고 강제로 주웨잉을 3층에서 1층으로 끌고 갔다. 주웨잉의 바지는 끌려서 해지고 당겨져 찢어졌으며, 발가락은 끌려 시퍼렇게 멍들었다. 악인은 또 덮어 감추려고 시도하며, 정원 안에서 시민이 구경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렇게 주웨잉은 강제로 안다(安大)세뇌반으로 납치당했다.

그 후에 악인은 또 그녀의 집에서 대법서적, MP3와 VCD 각각 한 대 및 녹음기 한 대를 강탈했다. 세뇌반에서 주웨잉은 경찰의 배치와 명령에 결코 협력하지 않았다. 단식한 13일 동안에 악인은 매일 강제로 호스를 꽂고 1~2차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한 무리의 유다(배신자)와 악인은 그녀를 구타하고 욕하면서 “‘전향’하지 않으면 노동교양소로 보내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가하겠다. 당신을 구타해 죽여도 알 사람이 없는데, 마치 개를 때려죽인 것과 같다.”고 위협했다.

맨 마지막에 주웨잉이 생명이 위험해지자 악인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병원으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서 주웨잉은 재치 있게 마굴에서 벗어났고, 이로부터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2008년 6월 21일 새벽 3시 반, 주웨잉은 유랑생활을 하는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연공을 했는데, 갑자기 건물 꼭대기에서 어떤 사람이 전기톱으로 윗집의 쇠문과 쇠 창문을 톱질하는 소리를 들었다(그녀들이 세 들어 거주한 집은 맨 위층이고 윗면은 복합 건물이었음). 그들은 창문에서 아래를 보았는데, 아래에는 많은 악독한 당의 불법 인원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경찰차와 소방차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방안에 들이닥쳐 주웨잉과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을 뒷짐결박으로 채웠다. 그들이 방을 뒤져 온통 난잡하게 어질러졌고, 모든 재산도 깡그리 강탈당했다. 그리고 두 파룬궁수련생은 허페이시 신위(新宇)여관 세뇌반으로 납치되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3. 호랑이의자, 음식물 주입 등 고문을 경험하다

허페이시 공안국 국장은 직접 현지에 주재해 지키고 지휘하였고, 경찰을 교사해 주웨잉에 대해 끊임없이 뺨을 때리게 했다. 입으로는 또 “당신이 다시 도망쳐 보라!”고 말했다. 이어서 강제로 그녀에게 3박 4일 동안 호랑이의자 고문을 가했다. 이로 인해 주웨잉의 두 발이 허벅지 부위만큼 부어올랐는데도 경찰은 여전히 끊임없이 그녀의 뺨을 때렸고, 매일 두 차례나 야만적인 음식물주입을 진행했다. 주웨잉이 호랑이의자에서 풀려났을 때, 그녀의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 재연:호랑이의자 고문

세뇌반에서 보름 동안 박해를 당한 뒤, 악당 인원은 7월 6일에 주웨잉을 안후이성 여자노동교양소로 보내 계속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7월 9일, 주웨잉은 박해로 급성 맹장염에 걸려 그날 저녁에 무장경찰병원으로 보내져 강제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뒤에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 여자노동교양소로 보내 영창에 가뒀고 3일 후에야 그녀를 풀어줘 숙소로 보냈다(이 기간에 그녀는 줄곧 음식을 먹지 않았음).

허페이 여자노동교양소에서 주웨잉이 경찰의 어떠한 요구에도 협력하지 않자 경찰은 곧 노교범을 시켜 매일 그녀를 방안에서 작업실로 들고 갔다. 그녀는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는데 매일 이러했다. 맨 마지막에 경찰은 그녀가 다시 외칠까 두려워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막은 다음 다시 들고 갔다. 악인은 주웨잉에 대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고 고의적으로 국자를 입안에 넣고 힘껏 찧었다. 이로 인해 그녀의 입안은 모두 부상을 입어 선혈이 줄줄 흘렀다.

여자노동교양소에서 36일 동안 박해를 당했는데, 악당 불법 인원들은 여전히 그만두지 않고 또 주웨잉을 페이시현(肥西縣)구치소로 보내 41일 동안의 잔혹한 박해를 진행했다. 매일 그녀를 병원으로 들고 가서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는데, 호스를 콧구멍에서 위속까지 꽂아 넣고도 뽑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멀쩡하던 사람은 맨 마지막에 박해로 두 눈이 실명하고 두 다리는 설 수 없게 되었으며 사람 전체는 탈상했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재연: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주웨잉은 96일 동안 잔인한 박해를 당하고 마침내 마굴에서 걸어 나와 거듭 유랑생활을 했다. 종전의 박해에서 그녀의 백치 아들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게 되자 경찰은 뜻밖에 그 아들도 함께 세뇌반으로 붙잡아갔다. 아들은 이러한 충격과 학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아 곧 세상을 떠났다.

4. 비밀 판결, 감옥에서 박해로 눈이 실명해 걸을 수 없게 되다

2011년 6월, 주웨잉은 다른 한 파룬궁수련생 정더밍(鄭德明)과 함께 경찰에게 납치됐다. 2011년 12월 13일, 주웨잉은 중공 법원에 의해 비밀리에 법정 심리, 판결을 당했다. 루양구(廬陽區) 공안분국, 검찰원 및 법원에서는 이 사건의 심리 과정 중에 음모를 꾸며 그의 가족에게 어떠한 소식도 주지 않았다.

2013년, 주웨잉의 아들은 안후이 쑤저우(宿州) 제3여자감옥으로 면회하러 갔을 때, 모친이 ‘전향’을 거부해 이미 감옥 경찰에게 박해를 당해 ‘머리를 들지 못하고 앞을 보지 못하며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심각한 병증상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주웨잉의 아들이 모친을 면회할 때 보았던 비참한 상황이다. 당시 주웨잉은 다른 사람에 의해 들것에 실려 나와 만났던 것이다. 감옥의 우두머리는 여전히 “무슨 조건이나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으면 된다. 그러나 ‘전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주웨잉이 박해당한 상세한 상황 및 박해에 참여한 책임자에 대해서는 조사해야 한다. 허페이에서 주웨잉과 우샤오화(吳曉華)교수가 경험한 박해는 모두 매우 처참했다. 그들은 모두 여성 중의 엘리트이며, 모두 ‘진선인(眞善忍)’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공에게 10여 년 동안 박해를 당했다. 구치소에서 정신병원에 이르기까지 노동교양소에서 감옥에 이르기까지, 당국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손상을 입혔는데, 약물 손상, 고문 모욕을 가했다. 그들이 경험하고 감당한 고난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모든 파룬궁수련생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단지 보통 수련생으로서 다른 사람을 자비롭고 선하게 대했다. 파룬궁수련생이 한 일체는 모두 진상을 전파하고, 사람의 양심을 일깨우기 위함인데, 지금 여전히 그들을 박해하는 사람을 포함해서이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24/31955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