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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로 뼈만 남았던 리아이잉이 또 납치돼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11월 4일 저녁 11시, 치치하얼(齊齊哈爾)시 젠화구(建華區) 형사경찰대대의 한 무리 경찰은 파룬궁수련생 리아이잉(李愛英)의 집 문을 세게 두드렸다. 문을 열어주지 않자 만능열쇠로 문을 열어 이른바 ‘도주 중’이란 명목으로 납치하며 속옷만 입은 리아이잉을 둥쓰(東四) 파출소로 강제 납치했고 다음날 5일에 장안(江岸) 파출소로 옮겼다. 지금은 리아이잉을 구치소에 불법 감금해 계속 박해를 가하고 있다. 구치소 측은 2013년의 ‘병보석’ 때문이라고 한다.

李爱英
리아이잉(李愛英)

치치하얼시 경찰은 미행, 전화 감청 및 불법적인 가택 침입 등 비열한 수단을 취해 2013년 9월 27일 쯤 파룬궁수련생 여러 명을 납치했다. 장안 파출소에서는 신허(新合) 주택단지에서 리아이잉을 집 현관에서 납치했다. 게다가 그녀를 학대해 뼈만 남게 만들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그녀에게 ‘병보석’ 수속을 밟아주었고 또 가족에게 1만 위안을 갈취했다. 장안 파출소는 또 이유 없이 리 씨에게 매일 파출소로 가서 ‘보고’를 하도록 요구했다. 리아이잉이 건강을 회복한 후 보고를 하러 가지 않자 장안 파출소에서는 곧 가족에게 또 1만 위안의 이른바 ‘벌금’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도주 중’이란 글자 그대로 바로 도망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리아이잉은 밤중에 자기 집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 무리에게 납치됐는데 그럼 ‘도주 중’이란 말을 어디에서 온 것인가?! 게다가 그녀는 ‘진선인(眞ㆍ善ㆍ忍)’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기에 절대로 죄수가 아니며 더욱이 도망칠 이유도 없다. ‘헌법’에는 ‘국민은 신앙이 자유다’ ‘국민의 인신자유는 침범을 받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는데 공안 경찰은 공공연히 헌법을 짓밟고 있다.

리아이잉은 수년간 당한 박해를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나는 치치하얼시 파룬궁수련생이다.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 나는 선천성 폐결핵에 걸렸다. 게다가 천성이 단순해 서로 속고 속이는 세태를 눈에 거슬려 했다. 30세인 그 해, 나는 운이 좋게도 ‘전법륜(轉法輪)’을 보았는데 이 세상에 이런 법이 있다니 정말 너무나 진귀함을 느꼈다! 나는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하기 시작해 인생의 참뜻과 삶의 의의를 깨달았다. 나는 ‘진선인(眞ㆍ善ㆍ忍)’의 원칙에 따라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심성의 승화, 사람으로 되는 경지가 제고됨에 따라 내 몸은 좋아졌고 성격도 좋아져 마치 새 사람으로 바뀐 듯 했다. 이 책은 나의 운명을 개변했다.

첫 번째 불법 노동교양 처분 ‘독방 감금, 끈 묶기, 수갑 거꾸로 채우기’

그러나 1999년 7월, 사악한 중국공산당은 언론을 이용해 천지를 뒤엎을 듯 파룬궁을 모독했고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들을 광적으로 박해했다. 나는 국민의 합법적인 청원 권리를 이행해 톈안먼으로 가서 청원하고 사실을 밝혔다가 오히려 치치하얼시 후빈(湖濱) 파출소로 납치됐고 1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1999년 12월, 나는 치치하얼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99년 12월 20일, 내가 연공했다는 이유로 대대장 리웨이제(李維傑)는 두 남자 경찰을 거느리고 나를 예전에 닭장이던 단층집으로 끌고갔다. 그리고 내 솜옷을 벗기고 끈으로 묶어 괴롭혔다. 몸 전체를 끈으로 한 바퀴 한 바퀴씩 조였고 두 손은 거꾸로 목 부위까지 채워놓았다. 장시간 끈에 묶었다가 풀어준 뒤, 두 사람은 한 편에 한 사람씩 내 팔을 잡아당겨 힘껏 늘렸는데 나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그 후 그들은 또 나를 끈으로 묶어 괴롭혔다.

中共酷刑示意图:“上绳”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끈으로 묶기

북방의 겨울은 찬바람이 살을 에듯 했는데 창틀만 있고 유리도 없으며 난방 설비도 없는 닭장이었던 단층집에서 나는 홑옷만 입었다. 두 손은 침대 위에 거꾸로 채워졌는데 또 나에게 침대 머리에 쭈그려 앉도록 핍박해 눈을 감지도 못하게 하고 앉지도 못하게 하며 꼬박 3일 동안 괴롭혔다. 그 후 나는 가슴 부위와 팔이 늘어져 오랫동안 아팠다.

酷刑演示:双手反铐在铁床上
고문 재연: 두 손을 쇠 침대 위에 거꾸로 채우다

2000년 11월, 내가 몇 명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한창 연공하고 있는데, 형사 죄수는 나를 침대에서 잡아당겨 내렸다. 이튿날 대대장 장즈제(張志捷)는 내가 연공했다는 이유로 나를 독방에 가두기, 체벌, 꼬박 10일 동안 거꾸로 채우기 고문을 가했다.

전 세계 파룬궁수련생의 SOS 긴급구조 활동과 세계 정의로운 단체들의 호소로 치치하얼 노동교양소에서는 잇따라 형기가 만기되고 기한이 초과해 불법 감금한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했다. 나는 2001년 10월 16일에 석방됐는데 그들은 1년 동안의 감금에 또 불법적으로 11개월 반이나 기한을 초과해 감금했다.

두 번째 불법 노동교양처분 ‘온 머리가 백발로 변하다’

‘자유’를 얻은 후 후빈 파출소와 원화로(文化路) 파출소의 경찰 톈(田)씨 등은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나는 핍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2002년 4월에 집을 떠나 푸라얼지구(富拉爾基區)의 한 파룬궁수련생을 찾아갔다. 나는 그 수련생의 이웃에게 그의 집 주소를 문의했다가 오히려 그 사람에게 고발을 당했다. 이어서 푸라얼지구 싱푸(幸福) 파출소 경찰 리광밍(李光明)과 다른 한 경찰이 나를 납치했다. 그들은 나를 싱푸 파출소로 끌어다가 거꾸로 채웠다. 그리고 내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구타했으며 또 라이터로 내 손을 태웠다. 게다가 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위협했다. 그들은 칼을 휘두르며 또 흉악하게 “말해, 책은 누가 주었지? 누구를 찾으러 왔어? 말하지 않으면 당신의 귀를 베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온 밤 진상을 알려 그들에게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그들은 뜻밖에 나에게 3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내렸다.

나는 다시 치치하얼 노동교양소로 보내졌다. 2003년 5월, 나는 강제로 전향하는 독방에 갇혔다. 그들은 나를 핍박해 ‘4서(수련 포기각서 따위)’를 쓰게 하려고 망상했다. 그녀들은 윤번으로 나에게 그들이 읽는 대법을 모함하고 비난하는 말을 듣도록 핍박했다. 74일째 되는 날, 내가 독방에서 나올 때 내 검었던 온 머리는 백발로 됐다. 이때 나와 쉬훙메이(徐宏梅, 이미 칭윈가(靑雲街) 파출소 이잔후이(衣湛輝) 등은 박해로 사망)는 함께 갇혔다.

2004년 2월 16일, 치치하얼 노동교양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해 이른바 ‘얼음 깨기 행동(破冰行動)’을 모의했다. 노동교양소의 두목 왕위펑이 총 기획하여 학습을 조직하고, 오랫동안 모의한 뒤 전체 경찰에게 주야로 박해를 가하도록 지시했는데 극히 날뛰었다. 대대장 장즈제가 총 지휘하며 경찰을 거느리고 천으로 파룬궁수련생의 눈을 가렸으며, 대장 왕메이가 대법을 모함하는 말을 읽었다. 두 사람이 나를 4층으로 끌고 갔는데 전체 홀에는 흉물스러운 모습을 한 남자 경찰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정위 왕위펑은 ‘전향하겠는가, 안 하겠는가? 오늘은 전향하지 않으려 해도 전향해야 한다’고 소란을 피웠다. 나는 전향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잇달아 한 방안으로 끌려가 거꾸로 채워지고 온종일 쭈그려 앉혀졌다. 저녁에는 쇠의자 위에 채워졌다.

酷刑演示:野蛮灌食(绘画)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내가 단식으로 박해를 항의하자 그들은 나에게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게다가 음식물에 독극물을 투입했다. 나는 오장육부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했다. 다리는 너무 쭈그려 앉혀져 걸을 수 없었다. 그들의 위협과 강압 하에 나는 핍박에 못 이겨 마음을 어기고 이른바 ‘전향’을 했다. 이때부터 나는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정신은 강렬한 충격을 받아 흐리멍덩해졌다. 예전에는 대법의 은혜와 덕택을 받았는데 오늘 오히려 대법을 멀리한 생명이 됐다고 생각하니 살아서 또 무슨 의의가 있는지 몰랐다. 일하는 작업실에서 나는 늘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하게 합니까?!”라고 외쳤고 누구를 만나든지를 막론하고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하게 합니까?!”고 묻곤 했다. 어느 날 나는 왕위펑을 잡아당기며 그에게 무엇 때문에 이렇게 우리를 박해하는지 물었는데 그는 몸을 돌려 가버렸다. 나는 노동교양소 책임자에게 강제 전향을 폐기한다는 성명을 써서 주었고 왕위펑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비인간적인 박해를 호되게 질책했다. 나의 의지는 철저히 무너뜨려졌고 심신은 지쳐 머리가 어지러웠다……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 일을 하도록 강요했고 형기를 4개월 연장했는데 나는 정말 내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를 알 수 없었다.

2004년 말, 전 노동교양소의 남녀 대대에서 회의를 열었다. 대장은 강단에서 업무를 종합했는데 말로는 파룬궁수련생의 전향률은 98%이며 한 사람도 사망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일어나서 “나는 전향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샤오(肖) 대장은 무척 화가 나서 “그녀를 영창실에 가두고 3개월 기한을 연장하라”고 말했다.

2005년 7월, 남편과 아이는 노동교양소로 와서 나를 마중해 집으로 돌아갈 때 온 머리가 백발이 되고 정신이 흐리멍덩하며 쇠약하고 몹시 초췌해진 나를 보았다. 그들은 뜻밖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며 “이 사람이 나의 아내입니까?!”라고 말했다.

장안 파출소에서 ‘학대로 뼈만 남다’

2013년 9월 27일 오후 3시경,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막 건물 문에서 밀고 가다가 갑자기 뛰어나온 사복 경찰 몇 명에게 강제 납치를 당했다. 그들은 불법적으로 내 가방을 뒤져 열쇠를 수색했다. 그리고는 불법적으로 집에 들이닥쳐 대법서적 등 사유 재산을 강탈했고 나를 장안 파출소로 납치했다.

파출소에서 한 경찰은 걸레로 나무 가지를 싸서 나의 입안에 꽂아 넣고 나에 대해 검사를 진행했다. 나는 나무 가지를 물어서 끊었다. 그는 “이번에 나는 쇠를 사용하겠는데 당신의 치아가 대단한지 아니면 쇠가 단단한지를 보겠다”고 말하면서 악독하게 천으로 싼 쇠꼬챙이를 나의 입안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내 목은 쇠꼬챙이에 꽂혀져 온 입안이 피투성이였다. 나는 한바탕 메스꺼워 끊임없이 토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2시에 또 나를 치치하얼시 구치소로 납치해 계속 박해를 가했다.

酷刑演示:毒打
고문 재연: 혹독한 구타

구치소에서 나는 죄수복 입기를 거부했다. 여 교도관 한(韓)씨는 죄수에게 지시를 내려 나를 에워싸고 내 뺨을 때렸다. 한씨는 흉악하게 내 머리칼을 잡고 나를 감방에서 끌어내고는 무척 화가 나서 내 발을 밟았다. 그리고 또 죄수에게 명령을 내려 나를 로비로 데려가 구치소 책임자 4~5명 앞에서 “이곳에 오면 내 말을 들어야 해. 우리는 무장 경찰이야!”라고 큰 소리쳤다. 나는 “나는 죄가 없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마치 축구를 차듯 광적으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그들은 내 등을 걷어차 부상을 입혔고 척추도 다쳤다. 그리고 또 내 두 발에 25kg 무게인 족쇄를 짓눌러 놓았고 두 손에는 수갑을 채워 감방으로 끌고 돌아갔다.

29일 오전 11시, 장안 파출소 경찰이 구치소로 와서 나를 ‘심문’했는데 내가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던 이유로, 여 보조 경찰 어(鄂)씨는 죄수에게 명령을 내려 땅바닥 위에서 내 옷을 잡고 나를 끌고 가게 했으며 나의 머리는 옷 속에 묻혔다. 그 후 허리가 드러나고 바지는 잡아당겨져 거의 벗겨지게 됐으며 팬티도 끌려 해졌는데 나는 이렇게 묵직한 족쇄 수갑을 차고 ‘심문실’로 끌려갔다. 장안 파출소 경찰은 나에게 OO 파룬궁수련생을 아는지를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들은 또 나를 감방으로 끌고 돌아왔다.

中共酷刑示意图:拖拽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잡아끌기

장안 파출소에서 목이 심각하게 꽂혀 부상을 입었던 이유로 음식물을 먹을 수 없었다. 이틀 뒤에 아픔을 참으며 물을 마시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는데 또 끊임없이 구토했다. 더군다나 구타하고 잡아끌려져 심신이 손상을 입어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됐다. 정상적으로 음식물을 먹을 수 없게 되어 먹은 대로 다 토했다. 감옥 의사가 링거를 맞혔는데 약물 반응이 강렬해 위가 발효되는 듯 견디기 어려웠다. 게다가 이따금 메스꺼워 약물과 피를 대량으로 토했다.

20여 일 후, 나는 이미 탈진했는데 학대로 뼈만 남았고 생명이 매우 위독했다. 10월 24일, 안장 파출소와 구치소에서는 책임을 벗어나기 위해 그제야 나를 구치소에서 밀어냈다.

(역주: 박해 부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7/3192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