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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西安) 국가보안대대 경찰 옌메이밍의 악행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시 보도) 옌메이밍(閻楣明)은 시안 옌타이(雁塔) 공안분국 국가보안대대장 재직 중 여러 해 동안 장쩌민 집단의 뒤를 따라 파룬궁(法輪功)수련생을 박해했다. 그는 16년 동안 현지 파룬궁수련생들을 불법으로 납치, 감금, 노동교양처분을 받게 하거나 불법으로 법원의 판결을 받게 하여 감옥으로 보내는 등 혹독한 박해를 했는데, 심지어 그 과정에서 박해받던 사람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했다.

다음은 옌메이밍이 박해를 가했던 전형적인 사례다

박해받아 사망한 리창잉

2005년 9월 시안 안탑 공안 분국 국가보안대대장 옌메이밍은 더우샤오저우(竇小周) 등 일단의 경찰관들을 대동하고 리창잉(李長英) 집을 급습하여 가택 수색과 함께 리창잉을 납치하여장안구 노동자 요양원에 감금한 후 경찰관들이 교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으로 정신적 육체적인 고문 박해를 가했는데, 그 방법이 지극히 파렴치하고 악랄했다. 그들은 다시 리창잉을 연탑 구치소로 이송한 후 3개월간 감금했다가 시안 여자노동 교양소로 이송 감금하여 혹독한 고문 박해를 가했으므로 생명이 경각에 이르러 위급한 상황이 되자 풀어줬다.

李长英

리창잉(李長英)의 모습

리창잉은 석방되어 집에 돌아왔으나 시안 장가 마을 동사무소 훙옌 단지에서 ‘중점인물’로 지정되어 철저하게 시달림을 당하는 감시 대상이 됐다. 그는 훙옌 단지 책임자인 주임 천수핑(陳淑萍)으로부터 끊임없는 감시와 행패의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감시자 천수핑은 세뇌를 시킨다며 리창잉과 가족들을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혔는데, 결국 시달림을 견디지 못한 리창잉은 2007년 8월 31일 오전 5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옌메이밍은 이렇듯 미친 듯이 불법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는데, “자신이 몇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잡았다.”라며 자랑을 늘어놓기까지 했다. 그가 납치한 파룬궁수련생 중 불법으로 8년형과 10년형을 각각 받고 수감된 허난 출신 대학생 2명이 있는데, 옌메이밍은 그들 2명의 대학생 사진을 지니고 다니면서 “자기가 잡아넣은 대학생”이라며 자랑을 했다.

마윈화, 불법으로 7년형을 받아

2013년 3월 마윈화(馬蘊華)는 옌메이밍 등에게 납치돼 시안시 북교 선평원 세뇌반에서 박해받았다. 그녀는 시안시 파룬궁수련생으로, 사악한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1999년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1999년 10월 베이징에서 대법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불법으로 중공에 납치돼 신청 구치소에 15일간 감금됐고, 2000년 3월 9일 1년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감금된 후, 33년 동안 공직에 근무하여 정년퇴직이 임박한 상태에서 무단으로 해고당해 경제적인 생활 여건을 잃었다. 그러므로 60여 세가 되도록 일생을 바친 직장에서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2001년 4월 다시 납치되어 3년의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감금됐지만, 다행히 몸을 피해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무궁현에서 다시 납치되어 7년형을 받고 수감돼 혹독한 고문 박해를 당했다. 2008년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시2010년과 2012년 납치되어 1개월에서 6개월간 세뇌반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며 사건을 조작

옌메이밍은 자신이 사건을 기획하고 사람을 조직한 후 시안시 연탑구 쿤밍로 파출소, 국가보안대대 경찰관들을 지휘하여 2014년 7월 17일 새벽 농업야생과 생태농업 유한회사를 급습 파룬궁수련생 위안광우(袁光武)와 아내 장추이추이(張翠翠), 숭즈(宋智), 펑신청(馮新成), 장셴빈(張顯斌), 양옌윈(楊燕雲)과 남편(류 씨, 수련생이 아님)을 전격으로 납치했다. 그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불법으로 납치하면서 회사와 지역 주민들에게는 “살인범을 검거하는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러면서 닥치는 대로 수색하여 회사 물품까지 전부 강탈해갔으므로 정상적인 회사 운영이 어려워 휴업 상태로 만들었다.

7월 19일 오전, 위안광우의 아들과 딸, 친척이 쿤밍로 파출소를 찾아가 불법으로 납치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경찰관들에게 폭행을 당해 위안광우의 아들 옷이 찢겨지고 등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두 딸은 파출소에 감금됐다. 위안광우 아내는 1,500 위안(약 27만 원)을 현장에서 강탈당하기도 했다.

酷刑演示:死人床

혹형 시연 – 사인(死人)침대수련생을 침대에 묶어놓고, 두 손을 머리 위쪽에 있는 침대 난간에 수갑으로 채운 후, 다시 가는 나일론 끈으로 두 다리를 묶는다. 그런 후 그 나일론 끈으로 수련생을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단단하게 침대에 묶어 둔다. 끈을 조이게 묶어 호흡도 곤란하고, 감각을 잃는다.

위안광우는 사건을 조작하는 경찰관에게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두 손은 수갑에 채워지고, 발은 40근 무게의 족쇄에 채워져 밤낮 40여 일 동안 묶여 있었다. 장기간 그런 고문으로 한쪽 팔은 완전히 마비됐다. 그곳에 감금돼 있는 동안 ‘사인침대’의 고문을 두 차례나 당하여 결국 실신하게 되자, 악경(사악한 경찰)들은 얼굴에 찬물을 퍼부었다. 또 4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3일 동안 물을 주지 않아 갈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본 악경들은 물을 갖고 와서 마시지 못하게 한 후 코로 주입시키다가 질식사 직전에 살아나기도 했다.

시안 연탑 국가보안대대의 옌메이밍과 마오준싱(毛尊興) 등은 수하 경찰관들을 시켜 4명의파룬궁수련생을 고문하여 범죄 증거를 조작해서 수집했다. 그래도 증거가 되지 않자, 사건증거 수집을 위해 송치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하면서 증거를 조작했지만, 결국 연탑검찰원으로부터 사건 접수가 5번이나 반송됐다.

장링 등 4명 파룬궁수련생을 모함하다

파룬궁수련생 장링은,2011년 말 연탑구의 한 지역에서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붙이며 파룬궁 진상을 설명하다가 단지 경비에게 불법으로 납치되어 구류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의 오빠 장윈선(張雲深) 역시 여동생을 구하러 갔다가 구류 처분을 당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동료수련생 타오메이이(陶美衣)가 달려가 관련 경찰관에게 진상을 알려주면서 남매의 석방을 요구하다가 그 역시 악경에게 납치됐다. 그렇게 3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불법으로 납치 감금한 옌메이밍은 수하를 거느리고 3명의 수련생 집에 찾아가 무단으로 가택을 수색한 후 그 집에 세 들어 사는 파룬궁수련생 허창화를 또 납치했다. 옌메이밍은 자신이 납치한 장링 등 4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없는 죄를 조작해 만들어검찰원으로 송치했다.

옌메이밍은 또 2012년 1월 수하를 거느리고 충칭 위중구 국가보안대대 경찰들과 합세하여 파룬궁수련생 타오메이이 어머니와 언니를 찾아가 협박하는 등 온갖 행패를 부림에 따라, 타이메이 모친이 죄 없이 겁에 질려 우울증 등 심신의 타격을 받게 하여 병원에 입원하게만들었다.

연탑구 검찰원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세 번이나 불기소 의견서와 관련 자료를 연탑구 국가보안대대에 돌려보냈지만, 옌메이밍은 그래도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옌메이밍은, 2009년 9월 9일 수하 경찰관들을 거느리고 파룬궁수련생 천사오둥을 납치하고, 천사오둥의 가택을 수색하여 진상 자료를 압수한 후 3년 노동교양처분을 받게 했다. 그러나 천사오둥이 납치 감금된 후 혹심한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그의 아내가 강력하게 항의함에 따라 악인들이 어쩔 수 없이 천사오둥을 보석 형식으로 석방했다. 천사오둥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2012년 3월 30일 오후, 시안 파룬궁수련생 자오자비(趙家璧.70)는 2012년 3월 30일 오후한 곳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옌메이밍 등 악인에게 납치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는데, 아들이 사방으로 찾아다니다가 후에 시안 북교 선평원 한 농원에 설치한 세뇌반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지금도 중공의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11/3189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