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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박해로 사망, 리쥐메이는 또 납치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 보도) 10월 23일 오후 4시경, 후난성(湖南省) 천저우시(郴州市) 자허현(嘉禾縣) 파룬궁수련생 리쥐메이(李菊梅)가 한창 거리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고할 때 갑자기 두 대의 승용차가 왔다. 차에서 국가보안인원 4명이 내려오더니 리쥐메이를 납치해 차에 태웠고 그 후로 행방불명이 되었다. 가족은 여기 저기 알아보다가 리쥐메이가 이미 천저우시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를 당하고 있음을 알았다.

리쥐메이의 남편 궈후이성(郭會生)은 자허현 정부 법제사무실 간부로서 2009년에 불법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을 구출했다는 이유로 납치돼 혹독한 구타로 사망했다.

郭会生

궈후이성(郭會生)

소식에 따르면, 리쥐메이가 이번에 박해를 당함은 천저우시 상무 부서기 리야빈(李亞斌)이 ‘성과를 내려’고 한 것에서 발단되었다. 최근 몇 달째, 자허현에서 백 명에 달하는 사람이 장 모 고소 대조에 열렬히 참여했다. 리야빈과 리쥐메이는 고향이 같은데, 리쥐메이와 고향 사람들의 장 모 고소 행위가 리야빈 자신의 벼슬길에 영향을 주어 그에게 상부 앞에서 체면이 서지 못하게 했다고 여겼다. 이 때문에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리야빈은 여러 차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회의에서 리쥐메이와 자허현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욕설을 퍼붓고 말끝마다 리쥐메이를 감옥에 수감시키겠다고 했다.

리야빈은 현지 고향에 임직했을 때 평가가 매우 좋지 않았다. 늘 민중이 제출하는 요구를 소홀히 여겨 단체 사건을 일으켰다. 리야빈은 천저우시 정법위 상무 부서기로 부임된 뒤, 득의양양하게 다른 사람에게 ‘이번에 올라왔으니 성과를 내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것으로 가문을 빛내려 했다. 사실은 바로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한 것이다.

리쥐메이는 자허현 주취안완샤오(珠泉完小)의 교사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전, 리쥐메이는 성 정부 소재지 병원에서 ‘골암’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곳곳에서 병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병마의 시달림은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지게 했다. 바로 그녀가 살려 해도 살 수 없고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는 상황에 행운스럽게 파룬따파를 수련했다. 1개월도 되지 않아 기적이 나타나 병 증상이 전부 사라졌다. 약물과 병독으로 괴사되었던 손톱과 머리카락도 전부 새롭게 자라났다. 3개월 뒤, 리쥐메이는 성 정부 소재지 병원으로 되돌아와 검사를 받았다. 결과 몸의 각종 지표가 정상적으로 나왔다! 리쥐메이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곧 ‘파룬따파가 나의 생명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알고 있는 많은 사람은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쥐메이는 파룬궁을 수련해 이로움을 얻은 수많은 중국인 중 한 명으로, 수련한 후부터 국가의 의료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근무함에 부지런하고 성실해 학생과 학부모의 환영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법을 준수하는 이 국민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룻밤 사이에 함부로 유린당하는 죄수가 되어 끊임없이 박해를 당했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뒤, 리쥐메이는 여러 차례 현지 정법위, ‘610’ 및 국가보안에게 박해를 당했고, 두 차례나 후난 천저우 바이마룽(白馬壟) 여자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손상을 입었다. 리쥐메이는 일찍이 퇴직 나이가 넘었으나 정법위에서는 통제해 그녀가 퇴직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2009년 7월 6일, 파룬궁수련생 샤오쓰란(肖四蘭)은 후난 융저우시(永州市) 란산현(藍山縣) 타이핑쉬(太平墟)에서 현지 공안에게 납치됐고, 란산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궈후이성과 그의 아내 리쥐메이는 법에 따라 란산현 공안국 국장 시샤오강(席小剛)에게 진상 전화를 걸고 권선 편지(勸善信)를 써 샤오쓰란을 구출해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궈후이성 부부의 이 선량한 행동에 시샤오강은 뜻밖에도 후난성 ‘610’에 악의적으로 신고했다. 이 때문에 후난성 천저우 및 자허 ‘610’에 의해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2009년 8월 6일, 궈후이성은 국가보안대대 교도원 후융후이(胡永輝), 어우즈빈(歐志斌) 등 악독한 경찰 4명에 의해 집에서 두 팔을 거꾸로 묶이고 땅바닥에 눌려 구타를 당했다. 구타로 온 머리, 온 얼굴마저 선혈 투성이였다. 그런 다음 4~5명이 파출소로 들고 갔다. 머리는 반쯤 가려져 있었고 전신의 위아래는 모두 혈흔이었다. 10월 6일, 궈후이성은 구치소에서 혼미 상태가 나타나 현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 처치를 받았다. 뇌수술을 받고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결국 10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궈후이성이 박해로 사망한 뒤, 리쥐메이는 계속 불법 감금됐다. 2010년 1월 12일, 자허현 법원에서는 가족에게 통지도 내리지 않고 리쥐메이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고 판결을 내렸다. 리쥐메이는 법정에서 이치가 맞고 근거가 있게 자신을 위해 무죄 변호를 진행했고,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으로 판사와 재판 인원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을 진술했다. 게다가 재판 인원에게 되도록 빨리 ‘당, 단, 대(黨,團,隊)’에서 탈퇴하여 미래를 소유한 사람이 되라고 했다. 맨 마지막에 판사는 퇴정을 선포했다.

2010년 1월 18일,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한 리쥐메이는 갑자기 하체 대출혈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는 기절해 현 중의원으로 보내져 응급 처치를 받았다. 한 의사는 “아마 2~3개월도 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후과를 감당할까 두려웠던 탓에 당국은 어쩔 수 없이 ‘병보석’의 명목으로 리쥐메이를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러나 여전히 엄밀하게 감시했다.

리쥐메이는 사망 상태에서 신기하게 건강을 회복한 뒤, 대법이 거듭 그녀에게 생명을 주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세상을 떠났을 수 있었다. 그 후에 그녀는 끊임없이 세인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진술함으로 세인의 양심을 깨우쳤고 세인을 구도했다.

관련 박해 단위와 인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11월 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4/3185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