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윗 문장에 이어)
2012년
2012년, 중국공산당 박해 세력은 사분오열 형세에 직면했는데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충칭(重慶)에서 일어난 ‘왕리쥔(王立軍) 사건’이다.
2012년 2월 6일 저녁, 충칭 전 공안국장 왕리쥔이 청두(成都) 주재 미국 영사관으로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3월 15일, 보시라이(薄熙來)의 충칭시 당서기 직무가 면직됐다. 보시라이는 장쩌민 집단이 저우융캉(周永康)을 인계해 박해정책을 유지하려 선정한 ‘후계자’였다. 하지만 보시라이가 면직당하고 그의 졸개들이 조사 처리 받게 됐으며 거기에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저우융캉이 물러서자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장쩌민 집단의 후계자가 없어지고 이후로 사분오열되고 최후의 청산에 직면하고 있다.
국내 반(反)박해 형세는 뚜렷하게 좋아졌다. 아래는 일부분 사례다.
▼파룬궁수련생이 법정에서 공산당원 기피신청 요구, 변호사는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해
2012년 5월 28일 솽청(雙城)법원은 파룬궁수련생 장샤오옌(姜曉燕), 뤄옌제(駱豔傑), 톈샤오핑(田曉平), 거신(葛新), 웨바오칭(嶽寶慶), 캉창장(康長江) 등에 대해 불법 공판을 진행했다. 변호사 5명이 출석해 이들에 대한 무죄변론을 펼쳤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방청객도 있었다. 공판이 시작되자 판사는 파룬궁수련생 6명에게 기피 신청을 할 수 있다고 공지했다. 판사의 공지에 따라 수련생 전원은 동시에 이 사건과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공산당원에 대한 기피’를 신청했다. 법관은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면서 5분간 휴정을 선포하고 상부에 보고한 다음 다시 개정했다. 한 변호사는 이는 파룬궁 사건에서 전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들은 파룬궁수련생 6명의 정념과 바른 믿음, 신앙을 견지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에 감동했고 진심으로 “파룬궁수련생은 대단하다”라고 말했다. 방청객도 매우 큰 감동을 받았다.
▼변호사 5명이 무죄변호, 경찰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2013년 3월 27일, 하얼빈시 아청구(阿城區) 법원이 파룬궁수련생 자오위안(趙玉安), 장바오성(張寶勝), 왕진위(王金玉), 청바오잉(程寶英)에게 불법적인 법정 심리를 감행했다. 이에 변호사 둥첸융(董前勇), 셰옌이(謝燕益), 왕촨장(王全璋), 장촨리(張傳利), 궈롄후이(郭蓮輝) 5명은 강력히 무죄변호를 하며 “우리들은 파룬궁수련생이 진리를 수호하고 믿음에 확고하며, 불굴하고 평화로우며 이성적으로 청원해 몇 년 동안 잔혹한 박해를 당했음에도 여전히 믿음을 견지해 도덕과 양심을 지켜 좋은 사람이 되려함을 보았다. 우리들은 파룬궁의 불굴의 정신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변호사들의 변호에 방청하던 가족들은 격려와 위안을 받았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며 속닥거렸다.
▼변호사가 법관에게 공산당의 위법행위를 받아들여 책임을 전가 받지 말라고 경고
2012년 8월 10일, 허베이성 탕산(唐山)시 카이핑구(開平區) 정좡쯔(鄭莊子) 중심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리원둥(李文東), 웨창춘(岳長存), 장궈천(張國臣), 양정(楊正)에 대한 불법 법정심리가 진행됐다. 셰옌이(謝燕益) 등 변호사는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무죄 변호했다.
법정에서 셰옌이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건이 조작된 사건으로, 사람을 먼저 구속하고 이후 증거를 수집했다. 리원둥 등 파룬궁수련생은 개인적인 믿음으로 인해 붙잡혀 약 6개월 동안 불법구금을 당했다. 형법은 절대로 소수의 불법 관리가 ‘가상적인 정치임무’를 완수해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무고한 국민을 일부 사람들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인혈로 만두를 빚듯 이용해서는 안 된다.”
셰 변호사는 또 법정에서 법관을 교육했다. “법률을 제정한 유일한 목적은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위함이고 법정을 설립한 최종 목적은 사회의 정의를 주장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법정에서 사건 판결은 반드시 정의에 의거해야 한다. 판사가 필요한 것은 바로 정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다. 때문에 가장 전통적이며 가장 현대적인 법정에서 사건을 판결함은 바로 사람의 양심에 근거해야 한다. 양심은 법률의 가장 높은 표준이면서도 역시 사건을 판결하는 최종 방법이다. 법관은 내면의 소리를 경청해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의연하고 결연하게 선택해, 위법행위를 위해 배서하지 않고 (중국공산당의) 역사적 채무를 위해 책임지지 말아야 한다.”
셰 변호사는 또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형사법으로 신앙인을 탄압, 박해하는 것은 천리, 국법, 정의, 인심을 위배하는 것이다. 이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는 곧 끝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 중에서 어떠한 명의로 당사자를 불법감금, 형사 처분을 했는지 상관없이, 관련책임자는 모두 이미 직권남용, 불법구금에 대한 법을 어기고 기소한 죄,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 불법 행위를 한 죄, 법을 어겨 재판한 죄 및 종교신앙 자유를 박해한 죄 등 범죄행위에 연루된다.”
▼민중의 지장이 중난하이(中南海)를 뒤흔들다
2012년 2월 25일 이른 아침, 허베이성 바이터우(泊頭)시 푸진(富鎭) 저우관툰(周官屯)의 파룬궁수련생 왕샤오둥(王曉東, 남, 42세, 대졸, 교사)은 무고하게 보터우시 공안국 국보대대에게 가택 수색을 당했다. 집에는 7살 어린이와 70여 세 노모가 있었다. 이 마을과 이웃마을 사람들이 분개해 나서서 연대서명해 진정서에 서명하고 저우관툰 마을 주임이 마을위원회의 큰 도장을 찍고 좋은 사람 왕샤오둥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300여 명이 연대서명하고 지장을 찍은 이 한 통의 진정서는 당 중앙정치국을 놀라게 했고 공산당은 상무위원회에서 내부 자료로 돌려보게 했다. 이 사건은 중난하이를 뒤흔들어 놓았고 국제 언론에 널리 보도돼 2012판 ‘샤오강(小崗) 사건’으로 불렸다.
당국에서는 사람들의 호소를 고려하지 않고 왕샤오둥에 대해 불법적인 재판을 해서 3년 징역 판결을 내렸다. 현지 민중은 다시 의분이 가슴에 가득 차 또 587명이 공개적으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으며 계속 파룬궁수련생 왕샤오둥을 지지한다는 마음을 표시했다.
300여 가정의 마을 사람들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고 촌위원회의 큰 도장을 찍어 파룬궁수련생 왕샤오둥 석방을 요구
왕샤오둥 구원을 위한 허베이 민중의 2차 서명
서명활동에 참여한 현지의 한 사람은 말하는데 사람들이 진상을 알아보는 과정 중 표현한 매우 많은 말과 정기(正氣)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오랫동안 중국공산당 당서기를 했던 한 사람은 왕샤오둥 사건 경과를 듣고 매우 정중하게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는 또 “공산당이 곧 끝장날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벌써부터 삼퇴하고 싶었어요. 오늘 마침 파룬궁수련생을 만났는데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시켜주세요”라고 했다.
진(鎭) 정부의 한 공무원은 장쩌민 사당(邪黨)이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과 서명운동하고 왕샤오둥을 구하는 사실을 듣고, “이미 몇 명의 대법제자가 이 방면에 관한 진상을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9평’도 이미 봤고 자주 인터넷에 접속합니다. 공산당은 확실히 너무 부패해 구할 약이 없습니다. 진상자료가 말한 것은 모두 진실이고 대법제자는 모두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했고 명확하게 사당에서 탈퇴하겠다고 했으며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현지 한 농민은 서명운동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진상을 들은 후 솔직하게 “일찍부터 ‘진선인(眞善忍)’을 들었고 대법이 좋고 대법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번에 드디어 파룬궁수련생을 만났네요. 빨리 사당의 소선대에서 탈퇴해주세요. 대법제자에게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며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진상을 알릴 때 젊은 와공(瓦工)을 만났는데 이 젊은이는 진상을 명백하게 안 후 주먹을 쥐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쳤고 통쾌하게 사당의 소선대에서 탈퇴하겠다고 응낙했고 서명하고 지장을 찍었다.
▼랴오닝서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자 600명 이웃 마을 사람들이 서명으로 구출
랴오닝성 푸순(撫順)시 파룬궁수련생 자오지웨이(趙積偉)는 2012년 4월 15일 납치돼 8개월 넘게 구치소에 감금당해 박해를 당하던 중 간염이 재발했다. 신빈현 주민들은 자오지웨이가 구치소의 박해로 생명이 위중한 상태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격분하며 자오지웨이를 구출하기로 결심하고 주민 모두가 연대서명 용지를 푸순시 공안국에 제출하고 자오지웨이를 무조건 즉시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허베이 탕산 민중이 서명하고 장밍펑과 장구이즈를 석방할 것을 요구
2012년 8월 20일, 탕산(唐山)시 펑룬구(豊潤區) 법원이 법률을 짓밟으며 예순이 넘은 두 선량한 노인에 대해 비밀리에 불법 재판을 열었다. 법원 형사2청의 재판장인 쉬톈펑(徐天鵬)이 불법적으로 장밍펑(張明鳳)에게 3년, 장구이즈(張桂芝)에게 4년이란 억울한 판결을 내려 이들은 지금 스자좡(石家莊) 여자감옥에 감금됐다. 이 두 노인이 파룬궁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 판결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탕산 지역 많은 민중은 잇따라 공동서명에 동참해 이들을 구출할 것을 지지, 호소했다. 순식간에 404명이 서명했고 이후에 또 1485명이 서명해 총 인원은 1889명에 이르렀다.
400명 민중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장밍펑과 장구이즈 지지
서명하는 많은 주민은 “모두들 파룬궁처럼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면 이 사회는 좋겠는데…… 섭섭하게도 좋은 사람도 붙잡는구나, 섭섭하다!”라고 했고 어떤 주민은 “이 좋은 사람 두 분을 나오게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서명하겠어요. 이것은 좋은 일을 하는 것이므로 서명하겠어요. 우리는 모두 대법제자를 지지해요”라고 말했다. 이전에 서명했던 민중은 석방이 됐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탕산의 많은 재래시장의 일부 민중은 진상을 알고는 분개해 “중국공산당 관리는 무법천지이고 탐관오리입니다. 국민이 좋은 사람이 되기조차 어려운데, 중국 법률은 바로 공염불이고 국민은 인권이 없습니다. 우리는 지지합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원합니다!”라고 했다.
이외에 법을 어긴 법관 쉬톈펑(徐天鵬)은 이미 파룬궁수련생 4명에게 고소당했다.
▼랴오닝 칭위안현 류리잉이 납치당하자 주민들이 서명하고 석방 요구
2012년 9월 25일, 푸순시 칭위안(淸原)현 파룬궁수련생 류리잉(劉麗英)과 남편이 경찰에게 납치당한 뒤 마을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석방하고 강탈한 개인 물품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아래는 주민들의 서명과 지장이다.
▼허베이 민중이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대서명 지장을 3번 찍어 정샹싱 구원
2012년 2월 25일에 허베이성 탕하이현(唐海縣)의 성실한 상인 정샹싱(鄭祥星)이 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됐다. 정샹싱은 원래 현지 이름난 망나니였고 경찰을 때려 수감을 당했는데 수감당한 파룬궁수련생의 높은 경지의 품행을 보고 마음속으로부터 감동해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이후 착한 일과 남을 돕기를 좋아하게 됐고 말없이 많은 좋은 일을 해 누구나 다 칭찬하는 성실한 상인으로 변했다.
정샹싱이 납치됐다는 소식을 들은 후 탕하이현 10농장, 11농장의 562명 민중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정샹싱 석방을 요구했다. 이것은 ‘562 지장사건’이라고 불렸다.
정샹싱이 납치당한 뒤 학대로 생명이 위독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허베이 탕산, 친황다오 두개 현, 8개 향과 진의 1201명 주민이 거듭 서명해 좋은 사람 정샹싱을 석방하도록 요구했다.
탕산시 친황다오(秦皇島)에서 정샹싱 구명을 지지하는 더 많은 민중의 서명이 1202명에 달했다.
이후에 정의로운 두 변호사가 법정에서 근거와 이치를 갖고 정샹싱을 위해 무죄 변호하자 법관과 검사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지장 사건’을 보복하기 위해 2012년 7월, 허베이 탕하이현 공산당 법원에서 정샹싱에게 10년 징역형을 선포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현지 민중의 강렬한 분노를 일으켰고 제3차 정샹싱을 구하는 지장,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이번에 서명한 인원은 한번은 979명, 한번은 387명이었다.
탕산6개 향과 진에서 979명 민중이 다시 연대서명해 정샹싱 석방을 요구
한 현(縣), 4개 향진(鄕鎭)의 정의로운 민중 387명이 다시 연대서명해 대법 수련생 정샹싱 구원을 성원
2012년 10월 28일, 바오딩(保定) 감옥의 엄격하게 관리하는 대대에서 정샹싱이 구타당해 왼쪽 측두골이 골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탕산 및 주변 지역 민중은 놀라서 다시 연대서명하고 바오딩 감옥에서 정샹싱을 박해한 원흉을 처벌할 것을 요구하고 정샹싱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번 서명하고 지장을 찍은 사람은 4011명이었다.
2012년 12월 16일부터 2013년 3월 10일까지 탕산 두개 구의 5개현 및 친황다오 지역에 또 3311명 민중이 서명하고 바오딩 감옥에 정샹싱을 박해한 책임을 추궁하고 정샹싱을 석방하며 범죄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정샹싱을 구출하는 연대서명 인원은 만여 명에 달했다.
이것은 최근 중국에서 3번째로 만 명이 서명해 중국공산당 당국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사건을 반대한 것이었다.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용감히 나서서 성원하고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 정책을 거부하는 것은 대륙 민중이 거짓말 속에서 각성했고 폭정 하에 일어난 용감한 정신을 보여줬다.
서명 과정 중 어떤 사람은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며 “지장을 찍으면 자신의 목숨을 여기에 바치는 것과 같아요”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서명하고 “이 지장을 찍으면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 대륙 민중이 사당의 마성에 대해 똑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고 동시에 죽음을 대면할 지라도 공정한 말을 하는 정기를 체현하기도 했다.
20여살의 한 젊은 여성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으려는데 잉크가 없자 그녀는 “바늘을 주세요. 찔러 피로 찍을게요”라고 했다. 이 젊고 약한 여성이 혈서로 파룬궁 수련생을 위해 담보하겠다고 하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정샹싱 아내, 자녀가 감옥 바깥에서 8개월 동안 힘겹게 항의하는 이야기는 갈수록 많은 민중의 동정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SNS에서 관심을 표했고 어떤 사람은 정샹싱 아내와 아이에게 전화를 했으며 어떤 사람은 바오딩에 와서 모자를 방문했는데 인권운동가 캉쑤핑, 네티즌 ‘산둥라오쿵셴성(山東老孔先生)’이 그 중 두 분이었다.
인권운동가 캉쑤핑(康素萍)과 정샹싱의 가족
캉쑤핑과 정샹싱 아내가 바오딩 감옥 앞에서 사진을 찍다.
네티즌 ‘산둥라오쿵셴성’이 바오딩에 쑨쑤윈(孫素雲) 모자를 보러 왔고 민중이 현장에서 모자에게 큰 위로를 주자 그녀의 얼굴에 오래간만의 웃음이 피었다.
▼경찰이 각성해 파룬궁수련생 체포 거절
밍후이왕 2012년 8월 8일 소식에 의하면 한 지역 ‘610’은 소위 ‘사회질서 안정’ 명의로 경찰에게 현지 소위 파룬궁수련생 중점인물에 대해 납치하고 박해하도록 지시했다. 한 진상을 명백하게 안 경찰은 상사가 그에게 그의 관할 지역 파룬궁수련생을 잡아오라고 하자 “(파룬궁수련생을 가리킴) 모두 좋은 사람인데 잡아와 뭘 합니까? 잡으러 가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의 상사는 “가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겠다”라고 했다. 그는 상사의 태도를 보자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파룬궁수련생에게 소식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경찰들은 파룬궁수련생들을 붙잡으러 갔지만 허탕을 치고 말았다.
2013년
2013년 중국공산당 박해세력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고 박해 때문에 명성이 나쁘게 된 노동교양제도는 할 수 없이 폐지하게 됐으며 박해정책을 책임지던 ‘정법위’는 권력을 빼앗기고 해체에 직면하고 있다. 장쩌민 집단의 주요 구성원이자 중요한 박해 범죄자 보시라이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610’의 두목 리둥성도 체포당했다. 보도에 따르면 박해 원흉 중 하나인 저우융캉은 이미 체포돼 심사를 받고 있다고 하며 원흉 장쩌민의 ‘사무실’도 폐쇄를 선포했다. 이 모든 것은 박해 범죄에 대해 최후의 청산 시간이 멀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국내 반박해 형세는 갈수록 밝아졌다. 아래는 일부분 사례다.
▼변호사가 공무원들의 직권남용죄를 고소하자 법원이 타협
2013년 5월 31일, 윈난성 루펑현(祿豐縣) 법원은 갑자기 파룬궁을 수련하는 류샤오핑(劉曉萍), 류추이센(劉翠仙), 펑쉐핑(彭學萍), 란샤오만(冉曉曼) 선량한 여성 4명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고 개정 전까지도 당사자들이 변호사를 못 만나게 했다. 사건 서류를 보거나 복사하지 못하게 하자 변호사들은 또 다시 관련 상급 부서에 루펑현 법원을 직무유기죄, 직권남용죄로 고소했다. 루철현 법원은 압력을 받아 다시 개정(5월 3일의 강제 법정심리는 무효)한다고 통지했고 변호사가 면회할 수 있고 사건 서류를 복사하거나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롄의 억울한 사건에서 변호사 12명이 변호사단을 형성하고 정의 실현
2013년 6월 21일,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파룬궁수련생 13명은 시강(西崗)법원에서 불법심리를 받았다. 당시 변호사 12명이 출정(방청하는 변호사도 포함)해 이 사건은 여러 방면의 관심(세계 언론을 포함해)을 이끌었다. 중국 사법부, 랴오닝 고급검찰원, 고급법원 등에서 사람을 파견해 이번 법정심리에 참가했다. 이전에 다롄 경찰이 불법적으로 사람을 때린 ‘4.12사건’이 일어나자 변호사는 대량의 고소를 통해 다롄 경찰이 이번 개정 때 공개적으로 사람을 체포하고 때리지 못하게 했다. 법정심리는 저녁까지 진행되다 휴정하고 7월 5일 다롄 중산구 법원에서 계속 개정한다고 했으나 중산구 법원이 사법절차를 위반하고 개정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변호사단은 단체로 출정을 거부했다. 당일 오후 변호사들의 항의 하에 중산 법원 판사는 다음날을 선택해 개정할 것을 결정했다. 이번 다롄의 억울한 사건과 변호는 변호사단의 진용이 강대하고 기세가 당당해 변호사계가 반박해에 참여하는 단호한 결심과 강대한 힘을 보여줬으며 또한 반박해 형세가 진일보 호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뉴구이팡의 변호사 박해자 고발 “그들이 국가의 진정한 적”
2013년 6월,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뉴구이팡의 변호사는 선양시 검찰원에게 가서 뉴구이팡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관련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공무원을 고발했다. 이 정의로운 변호사는 고발 편지에서 뉴구이팡을 포함한 파룬궁수련생은 다만 신앙을 견지했기 때문에 노동교양, 판결 등을 받았고 각종 박해는 모두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법을 위반한 행위다. 그들(공검법 공무원)이 누구든지 지위가 얼마나 높든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국가의 적이다!”라고 지적했다.
당일 변호사는 선양시 검찰원 호소과에 가서 ‘고발편지’를 왕씨 직원에게 줬는데 왕씨는 보고 한쪽에 놔두고 도망쳤다. 변호사는 또 기율검사과에 가서 고소했는데 류씨 직원이 호소과의 처장 장씨를 연락했다. 변호사는 장 처장에게 자신이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법률 원조하는 과정 중에 이 선량한 단체가 박해를 받아 발생한 엄중한 재난, 사회혼란 및 박해가 천리를 배반했고 국가법률, 공공 도덕, 사람의 마음을 배반했다고 지적했다.
장 처장은 변호사를 보고 악담을 하는 것이라고 했고 또 변호사에게 “현실적으로 생각하시오!”라고 말했다. 변호사는 “악담을 하는 것이 아니고 책임감 있는 한 법률사무 종사자와 양심이 있는 국민으로서 이번 사건에서 발생한 사실에 대해 진실한 말을 할 의무가 있고 정의도덕을 위해, 국민의 권리를 위해 말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 심지어 사건을 정치화 하려는 부서, 개인이 이것으로 인해 역사적 빚을 지지 말고 헌법을 위반하고 양심을 배반하며 더욱 큰 인위적인 재난을 만들어 더욱 큰 대가를 이르지 말라는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변호사가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을 항의하자 법관은 부득이 휴정
2013년 9월 11일 오전, 광둥성 산터우(汕頭) 청하이구(澄海區) 법원은 파룬궁수련생 왕챠(王洽)에 대해 불법적인 재판을 감행했는데 왕챠는 법정에서 악독한 경찰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처참한 과정을 폭로했다. 왕챠가 이렇게 잔인무도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사실과 원래 건강하고 패기 있고 낙관적이던 왕챠가 고문과 과부하 노역노동으로 얼굴이 초췌하고 볼품없이 수척해진 모습에 방청석 친구들은 모두 분개했다. 현장에 있던 일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직원들마저 매우 놀랐다. 왕챠를 위해 무죄변호를 하던 두 베이징 변호사는 왕챠의 진술을 듣고 현장에서 변호 절차 퇴장을 선포함으로써 악독한 경찰의 폭행에 항의했다. 이에 청하이 법원은 부득이 휴정을 선포하는 수밖에 없었다.
▼변호사, 세뇌반에 사람을 석방하고 범죄 중단하라고 외쳐
2013년 12월 5일, 중국의 인권변호사 4명과 파룬궁수련생 가족은 헤이룽장(黑龍江) 젠싼장(建三江) 관리국 칭룽산(靑龍山) 세뇌반 정문 앞에서 이런 말을 외쳤다. “팡웨춘, 불법 감금한 사람을 즉시 석방하라! 팡웨춘, 당신은 죄를 범하고 있다!” 세뇌반 대문을 꼭 닫고 악인은 감히 응대하지 못했다.
이 일이 있기 전인 11월 14일, 젠싼장 파룬궁수련생 스멍창(石孟昌), 한수쥐안(韓淑娟) 부부 가족과 변호사 4명은 칭룽산 세뇌반에 가서 즉시 스멍창 등 불법 감금한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변호사와 가족은 세뇌반 소굴을 향해 저녁 무렵까지 외쳤다. 세뇌반 인원은 대문을 꼭 닫고 안에 움츠리고 있으면서 감히 전등을 켜지 못했다. 변호사들은 밖에서 큰 소리로 안을 향해 “팡웨춘, 타오화(陶華), 팡슈메이(房秀梅), 진옌펑(金言鵬), 저우징펑(周景峰) 당신들은 죄를 범했다. 팡웨춘, 당신은 오늘 법률절차를 무시하고 타인을 불법 구금했는데, 내일의 쌍규(雙規, 당원을 구금해 조사하는 것)를 기다려라. 당신은 지금 자신의 신분을 믿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또 지금 저지른 행위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지 마라. 우리가 오늘 온 것은 바로 당신이 즉시 서둘러 사람을 석방하길 바라서다. 우리는 당신이 국민을 불법 구금한 행위를 고소할 것이다”고 외쳤다.(팡웨춘은 칭룽산농장 공안국 부국장, ‘610’ 두목이며, 칭룽산 세뇌반 주임이다.)
▼스자좡에서 만 명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리란쿠이 성원
2012년 6월, 허베이성 정딩현(正定縣) 시핑러진(西平樂鎭) 둥안펑촌(東安豐村) 파룬궁수련생 리란쿠이(李蘭奎)는 이유 없이 사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리란쿠이는 공정하게 장사하고 사람을 도와주기 좋아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좀 이름이 있었다. 현지 민중은 자발적으로 리란쿠이 구원을 성원했다. 그리하여 700여명 민중은 자발적으로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리란쿠이를 구원하는 ‘7백 개 지장’ 사건이 발생했고 해외 언론의 관심으로 보도가 됐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근본적으로 사실과 민심을 고려하지 않고 고집스레 리란쿠이를 박해하자 현지 민중은 3차 서명으로 그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 후 또 4차례나 끊임없이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7백 개 지장 사건’을 성원했으며 납치당한 구즈장(賈志江) 등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할 것을 호소했다. 최후 서명한 총 인원은 1만 9백 55명에 달했다.
허베이성 903명 주민들이 리란쿠이를 성원하는 3차 서명
‘7백 개 지장 사건’ 이후 제6차로 6564명이 서명했고 현재 누계 서명 인원은 이미 1만 9백 55명에 달한다.
▼지장 사건이 끊이지 않았고 강대한 민심 막을 수 없어
2013년 5월 6일 보도, 3백 명 민중이 서명한 뒤를 이어 또 황메이현(黃梅縣) 민중 1861명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다이메이샤(戴美霞)의 석방을 요구했다. 후베이 황메이현 법원은 다이메이샤에 대해 무고한 5년형 판결을 내렸다. 다이메이샤는 황강시(黃岡市) 중급인민법원에 상소했고 베이징과 광저우(廣州)의 두 변호사가 계속 다이메이샤를 위해 무죄변호를 했다.
1861명 민중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다이메이샤 구출 요구
▼허베이 626명 민중이 서명해 페이원하이 석방 요구
허베이성 쑤닝현(肅寧縣) 푸쭤향(付佐鄉) 마을 사람들이 공인하는 효자이자 파룬궁수련생인 페이원하이(裴文海)는 시장에 갔다가 납치돼 불법 감금된지 4개월이 넘었고 88세 모친은 현재 병상에 누워 밤낮 아들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현지에서 이미 선량한 민중 626명이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즉시 페이원하이의 무죄 석방을 요구했다.
▼우한(武漢)시 900명 사람들이 서명하고 류진즈를 석방할 것 요구
2013년 6월 1일, 우한시 장샤(江夏)구 파룬궁수련생 류진즈(柳金枝)와 다른 파룬궁수련생 3명이 납치당했는데 가족이 선임한 변호사가 정당한 사법절차를 밟자 흉악한 국가보안 경찰이 계속 방해했다. 그래서 현지 장샤구 사람들은 서명하고 지장을 찍어 선량한 류진즈를 구원하고 집으로 돌아가도록 지지했다.
류진즈를 위해 청원한 장샤구 세인 900명의 서명과 지장
▼후베이 민중이 서명해 레이성리 구원
2013년 1월 10일, 후베이성 퉁청현(通城縣) 법원은 파룬궁 여 수련생 레이성리(雷勝利)에 대해 3년 무고판결을 내렸다. 리무성(黎木生)은 아내를 구원하는 과정 중 중국공산당의 사법의 암흑함과 무도함을 대면하고 사회를 향해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지장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약 400여명이 지장을 찍어 성원했다.
약 4백 명이 기명하고 지장을 찍어 파룬궁수련생 레이성리를 구출하다 |
▼경찰이 파룬궁수련생을 석방하다
2013년 7월 31일, 노인 파룬궁수련생 몇 명이 농촌에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촌에 들어가자 농민들은 너도나도 션윈CD, 진상소책자를 갖고 싶어했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한 사람이 파출소에 고발하자 경찰차가 신속히 왔다.
두 노인은 농민 집에 들어가 숨어있을 수 있었지만 농민에게 번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숨지 않았다. 이때 경찰차에서 경찰 두 명이 내려오더니 “두 분 차에 올라가세요”라고 했다. 노인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차에 타지 않겠다고 했으며 그들에게 파룬궁은 좋고 박해를 받은 것이라고 알려줬다.
경찰은 “고발하는 사람이 있어 오지 않으면 안 돼요. 먼저 차에 오르시고 좀 지나면 풀어줄 겁니다”라고 하자 노인은 “말한 대로 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예, 아주머니들은 제 엄마와 연세가 비슷해요”라고 했다.
두 노인은 차에 오르고 계속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대법제자는 좋은 사람이고 진선인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얻을 것입니다. 보세요, 70세 다 됐는데 몸이 얼마나 좋습니까, 이는 대법이 준 것입니다. 우리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기에 금방 한 말을 실행해야 합니다”라고 했다.
경찰은 전화로 현 경찰에게 “오지 마, 그녀들은 도망갔다”라고 하고 그녀들을 놔주자 두 노인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바로 ‘평안하게 진상을 알려 경찰의 마음 밝아졌네. 대법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 중생이 함께 노래하네’라는 것이다.
▼경찰이 고발인을 비난
2013년 12월 16일 밍후이왕 보도에 의하면 화동지역 한 촌에 파룬궁수련생의 법공부 거점이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어떤 사람이 경찰에게 파룬궁수련생이 집회를 한다고 고발했다. 전화를 10번 해서야 경찰이 왔는데 파룬궁수련생의 법공부 거점을 찾지 않고 악의적으로 고발한 사람을 찾아 “거짓말로 고발비를 얻어내려 합니까? 이후에 이런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지 마세요!”라고 훈계했다!
▼허베이 한 현의 정법위는 인심이 불안해서 ‘당서기’ 후임이 없다
소식에 따르면 허베이성 한 현에 정법위 서기가 전임해갔는데 새로 부임할 사람이 없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정법위는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 박해를 유지하는 주요 책임 부서이고 10여 년 동안 죄행이 산더미와 같다. 지금 ‘당서기’의 직위가 비어 있다는 것을 봐도 인심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 확실하다.
정법위 직원은 인심이 불안해서 자신에게 퇴로를 찾느라 바쁘다. 어떤 사람이 정법위의 편제를 철거한다는 소문을 말하자 정법위는 다시는 법원 사건의 심사에 참여하지 않았고 법원은 독립적으로 심판할 수 있었다. 정법위는 비록 대외 법률과 소송 관련 부서를 설립했지만 청원하는 사람을 접대하지 않고 다만 장식이기 때문에 직원 스스로도 매우 부끄러워했다.
사무실 현장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진상을 똑똑히 알리자 한 정법위 관리는 더욱 청성해졌고 매우 자연스럽게 ‘삼퇴(중국공산당의 당, 단, 대에서 탈퇴)’를 했다.
▼형세가 크게 변하자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교도관 두려워해
파룬궁 박해 원흉 장쩌민의 세력이 끊임없이 약화되고 보시라이가 감옥에 들어가 징역살이를 하고 저우융캉도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자 지금 출세하고 돈 벌 생각만 하고 장쩌민을 따라서 파룬궁을 박해하고 목숨을 바쳐 일하던 악인은 하나하나 종말이 닥쳐오는 느낌이 들어 몹시 두려워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고 언젠가는 청산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후베이 뤼톈(羅田)현 파룬궁 여 수련생 난민(南民)은 10년간 두 차례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 2013년 8월 14일 난민이 출옥하기 전에 그녀를 박해하는데 참여한 교도관은 제발 저린다고 두려워 그녀에게 “나간 후 저를 고소할 겁니까?”라고 물었다. 이는 박해자 마음속의 두려움과 간담이 서늘하다는 것을 충분히 표현했다.
▼고소의 추세가 되면 악인은 도피하기 어렵다
지금 갈수록 더욱 많은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이 나서서 중국공산당의 박해자를 고소했는데 고소는 대략 아래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 박해(이유 없이 해고하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에 참여한 직장을 고소. 예를 들어 스자좡 파룬궁수련생 양인차오(楊銀橋-음역)는 스자좡시 신화(新華)구 법원에 시 정치협회 접대소가 이유 없이 그녀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고소했고 법원은 입건했다.
둘째, 납치하고 불법 구금한 경찰을 고소. 예를 들어 선양(瀋陽)시 파룬궁수련생은 한춘룽(韓春龍)의 가족은 한춘룽이 랴오닝성 단둥(丹東)시에 출장을 간 기간에 경찰에게 납치당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사람을 때리고 불법적으로 수감한 사건을 변호사를 선임해 단둥시 관련 부서에 고소했다. 우한(武漢)시 파룬궁수련생 추이하이(崔海)는 무고하게 불법으로 수감되어 1년 넘게 괴롭힘 당해 2013년에 두 번이나 변호사를 선임해 법을 위반했다고 박해자를 고소했다. 네이멍구 원쥐(文菊) 등 파룬궁수련생은 납치되자 가족이 사악한 경찰을 고소했다. 랴오닝 푸순시 파룬궁수련생 류펑란(劉鳳蘭)은 불법 체포되어 손자가 둥저우(東州) 공안국 분국 경찰을 고소했다. 지린 눙안(農安)시 사오궈(燒鍋)진 파룬궁수련생 푸구이화(付貴華) 모녀, 쑨옌샤(孫艶霞), 한젠핑(韓建平) 부부는 눙안 국가보안 경찰에게 야만적으로 납치당했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해 가족은 눙안현 검찰원에 가서 불법 경찰을 고소했다. 허베이성 싱타이(邢臺)시 닝진(寧晋)현 샤오짜오(小棗)촌 파룬궁수련생은 리즈친(李志勤)은 국가보안 선젠중(申建中) 등 경찰에게 구타당해 사망해 가족은 지속적으로 경찰을 고소했다.
셋째, 노동교양소의 불법 노동교양을 고소. 예를 들어 네이멍구 시린하오터(錫林浩特)시 대법제자 창위친(常玉芹)은 시멍(錫盟) 노동교양관리위원회를 고소했다. 베이징 파룬궁수련생 차오둥(曹東)은 변호사 리슝빙(黎雄兵)을 선임해 베이징시 인민정부 노동교양관리원회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에 따라 노동교양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넷째, 법원이 불법 판결한다고 고소. 예를 들어 쓰촨 더양(德陽)시 파룬궁수련생 젠이총(簡以叢)은 변호사를 선임해 중급 법관 쉬빈(許斌)이 변호권을 침범했다고 정식으로 고소해 쉬빈은 제2심을 개정하지 않는다고 타협했고 변호사가 문건을 보는 것을 허락했다. 스자좡의 60세 노인 니전쉬안(倪振選)은 불법적인 판결을 받아 가족은 창안구 법원 관련 책임자가 법을 위반하고 판결한다고 고소했다. 헤이룽장 파룬궁수련생 장푸허(張普賀)는 자무쓰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위독하게 되어 가족은 자무쓰 샹양(向陽)구 법원에 입안해달라고 형사 상고했는데 입안과의 판사가 입안을 거절해 가족은 양궈천(楊國臣)의 불법 행위를 고소했다.
다섯째, 수감 장소에서 고문으로 학대한다고 고소. 예를 들어 파룬궁수련생 류융왕(劉永旺)은 지둥(冀東) 감옥의 불법 교도관 정야쥔(鄭亞軍)을 고소했다. 산둥 옌타이 파룬궁수련생 비젠훙(畢建紅)은 산둥 여자 감옥의 박해를 받아 위독하게 되어 그녀 어머니는 여러 국가 기관에 편지를 써서 감옥 교도관의 폭행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헤이룽장 파룬궁수련생 린쩌화(林澤華)는 박해를 받아 4년 반 동안 반신불수가 되어 가족은 변호사를 선임해 자무쓰 감옥의 교도관을 고소했다.
여섯째, ‘610’ 등 불법 기구를 고소. 예를 들어 산시성 바오지(寶鷄)시 치산(岐山)현 파룬궁수련생 류훙수(劉宏書)는 그에 대한 ‘610’이 박해를 고소했고, 허베이 융칭현 파룬궁수련생 허춘성(何春生), 하오즈펀(郝志芬) 부부가 ‘610’ 주임 스환진(石焕瑾), 국가보안 대대장 위롄싱(于連興)의 박해를 고소했으며, 허베이 바오딩(寶定) 파룬궁수련생 왕강(王剛)이 박해로 사망하자 아내는 여러 부서의 범죄행위를 고소했고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유혈 사건은 산더미와 같고 억울한 사건은 바다와 같다. 고소의 대세가 일단 펼쳐지면 박해자는 법에 따라 처벌당할 것이고 악인은 도망갈 곳이 없을 것이다.
후기
14년 동안 파룬궁 진상을 명백하게 안 세인은 갈수록 많아졌고 사람들은 파룬궁수련생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다 알게 됐으므로 잇달아 각종 방식으로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를 저지했다. 이 민중의 반박해 이야기는 정말로 감격적이고 눈물겨웠을 뿐만 아니라 이 한 단락 위대한 역사를 증명했으며 또한 세인들에게 중국의 희망을 보여줬다!
14년 동안의 반박해 과정 중 중화민족에서 온 인류에 이르기까지 이 한 차례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잔혹한 박해운동 중에서 있어야 할 양심과 용기를 표현했고 이 한 단락 역사에 부끄럽지 않았다. 앞으로 가면 역사의 대세는 이미 명확하다. 사악은 꼭 청산을 당하고 정의는 실현될 것이다! 아직도 악행을 부리는데 사로잡힌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서 잘 처리하길 바란다! 남은 기회는 정말로 많지 않다! 스스로 구하고 싶은가 싶지 않는가는 완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문장발표: 2013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대륙종합소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3/12/24/28433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