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16세 소녀 “저도 장쩌민을 고소하겠습니다”

글/ 궁위(宮宇)

[밍후이왕] 외할머니에게 들었는데 내가 아직 출생하기 전인 2000년 2월 18일, 아버지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셨다가 납치돼 고향으로 돌아와 34일 동안 감금됐다고 했다. 아버지의 직장 책임자, 보위처, 파출소에선 여러 차례 우리 집으로 와서 위협, 공갈 협박, 교란했는데, 이를테면 2000년 정월, 경찰 15명이 우리 집으로 와서 말로는 어머니를 건물에서 떨어뜨리겠고 협박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강력하게 반항했던 덕분이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참혹하게 살해됐을 것이다!

2000년 7월 15일, 어머니는 체중이 2.6kg인 나, 궁위(宮宇)를 출산하셨다. 내가 출생한 후 18일째 되는 날, 경찰 20여 명은 또 한 차례 우리 집으로 와 샅샅이 뒤져 철저하게 조사했고 저질스러운 말을 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납치해 보름 동안 감금했다. 집에는 단지 나와 어머니만 남았을 뿐이다.

2000년 12월 25일, 또 많은 사람이 우리 집을 감시하려 했는데 또 그들은 기어이 부모님과 영아인 나의 일거일동을 알아보려 했다.

2000년 12월 26일, 부모님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고 겨우 5개월인 나를 데리고 또 베이징으로 가서 청원하셨다.

2000년 12월 31일, 광장에서 우리 일가족 세 식구를 재차 납치해 베이징 펑타이(豊台) 구치소까지 갔고,어머니는 나를 안고 3일 동안 감금당해서야 풀려났다. 이란(依蘭)탄광 측이 텔레비전에서 유언비어를 조성해 어머니를 도주범이라고 말했고, 아울러 대량의 인원을 풀어 그녀를 붙잡으려 했던 이유로 어머니는 나를 안고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6개월 동안 밖에서 유랑하는 수밖에 없으셨다. 아버지는 베이징 펑타이 구치소에 24일 동안 감금당하고 현지 구치소로 돌려보냈다.

2001년 1월 23일, 아버지는 이란 구치소에서 2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2년 노동교양처분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구치소에서 학대로 사경을 헤맸고 온몸에 전염성 부스럼이 가득 생겨나 어쩔 수 없이 ‘보석’ 받아 집으로 돌아오셨다.

2003년 9월, 아버지는 직장의 공직에서 해고당하셨다.

2006년 12월 12일, 아버지는 또 집에서 납치됐는데 그 후 불법적으로 5년 징역형 판결을 당하셨다. 어머니는 현장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 장시기 밖에서 유랑하시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붙잡히고 어머니도 떠나 집에는 단지 7살인 나만 남아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를 외할머니 집으로 데려가셨다. 나는 당시 무엇 때문에 파룬궁을 연마하면 붙잡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외할머니 집에서 나는 매일 아버지, 어머니를 그렸다. 상심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의 주요 생활이었다. 내가 8세가 되어 마침내 어머니를 보았다. 나는 그녀가 어머니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모두 이모라고 말했다. 나는 ‘이모’와 함께 사진을 찍고 공원에서 놀았다.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따스함과 친절함을 체험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수시로 환상했던 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짧은 하루 동안이었다. 나는 또 어찌할 방도가 없이 어머니를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9세가 된 어느 날, 외할머니가 갑자기 내게 아버지가 세상을 곧 떠나신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울었다! “저는 아버지를 보러 가겠습니다. 그분이 제 아버지입니까?”라고 외쳤다! 아버지는 피골이 상접했고 얼굴색이 어두웠으며 두 눈은 감고 있었으며 손목 위엔 수갑에 채워져 조여진 상처흔적이 역력했다. 누가 내 아버지를 이렇게 한숨만 남기고 상처투성인 시신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눈물이 비 오듯 했다. 그러나 또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가족의 가호로 아버지는 마침내 살아났다. 그러나 정신이상이 되어 말할 줄 모르셨고 늘 침을 흘렸으며 기억이 없고 또 내가 자신의 딸인지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지금 내가 16세가 될 때까지 부모님은 여전히 주거가 불안정한 생활을 하셨다. 부모님은 도처에서 노동해 내 학비를 마련해주셨다. 이러한 나날이 언제면 끝날 수 있겠는가. 나는 예전에 부모님을 납치한 그 사람들, 또 그들을 학대한 사람을 미워한 적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들이 장쩌민의 지시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마도 그들은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믿었거나, 혹은 ‘1400 사례’ 거짓말을 믿었기에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런 일들을 했을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이 몇 해 사이에 나도 파룬궁을 연마하는 많은 아저씨, 아주머니를 접촉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일심으로 다른 사람을 고려해 주며, 또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영향으로 나도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으로 되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다시는 그 경찰들과 악인을 미워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진상을 안 후에 다시는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하지 말기를 바랐는데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나는 장쩌민만 고소한다. 그건 다음의 것을 위해서다.

1. 다시는 모든 아이가 나처럼 그런 어린 시절의 불행을 당하지 말기를 위해서다.

2. 좋은 아들딸을 납치해 연로하신 노인들(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처럼)이 상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3. 다시는 파룬궁을 연마하는 무고한 좋은 사람들에게 구타, 욕설, 학대를 가하거나 상처 입히고 불구로 만들며 심지어 생명을 잃게 하지 말기를 위해서다.

4. 피비린내 나는 폭력이 다시 나타나지 않게 하며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한 범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징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6/31640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