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 보도) 밍후이왕 통계에 따르면, 윈난성 쿤밍(昆明)시에서 5월 27일부터 9월 1일까지 총 659명(612건)이 중국 최고인민 검찰기구에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했고,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 범죄에 대해 입건해 공소하도록 재촉했다.
5월 말부터 8월 27일까지 밍후이왕에서는 이미 총 16만 명이 넘는 파룬궁수련생과 가족이 최고인민 검찰원, 법원, 공안부 등 관련 부서에 넘긴 고소장 사본을 받았다. 그중 100,420명의 고소장은 최고인민 검찰원, 최고인민 법원에서 수신했다는 서명 혹은 우체국에서 적절하게 배달했다는 회신을 받았다. 이 파룬궁수련생들은 사회 각 계층에서 왔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파룬따파를 수련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나 오히려 납치, 가택 수색, 노동교양처분, 불법 판결을 당했고, 또 불법감금 중에 전기 충격, 각종 고문 등 박해를 당한 것이다.
윈난 체육운동 직업기술 대학의 80세 퇴직 부교수 리즈추(李治初)는 고소장 중에서 말했다. “나는 1951년에 시난대학 의학계 시험에 합격해 좋은 의사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1952년에 시난구 운동회에 참여해 여자 200미터 국제 기록을 깼다는 이유로 허룽(賀龍) 원수가 직접 시난 군구 체공대[體工隊, 전투대(戰鬪隊)]로 파견하라는 지시를 하여 체육 전사가 됐다. 1953년에는 중국 육상계로 파견됐다……국가를 위해 적잖은 우수한 운동선수를 배양했고 ‘전국 노동모범’ 칭호를 수여받았다.” “건강이 악화된 이유로 나는 1988년에 부득이 일찍 퇴직하는 수밖에 없었다. 건강을 위해 나는 예전에 여러 기공을 연마한 적이 있었는데 뚜렷한 효과는 없었다. 1998년에 한 동료의 도움 하에 운 좋게 대법을 얻어 수련해 파룬궁수련생이 됐다. 이로부터 차츰 만성 질환에서 벗어나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고 즐겁고 건강한 노부인이 됐다.”
“그러나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1999년 7월 20일 이후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진행했다. 우리 이 ‘진선인(眞ㆍ善ㆍ忍)’을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오히려 16년이 넘는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2014년 11월 12일 오후 2시가 넘어 갑자기 대학 보위처 처장 왕옌융(王延勇)이 문을 두드려 일이 있다며 나를 찾았는데 그의 뒤에는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략 6명 있었다. 그들은 집에 들어선 후 즉시 곳곳을 두리번거렸다. 내 컴퓨터와 프린터를 발견한 후 마치 무슨 범죄 증거라도 얻은 것 같았다……내 파룬따파(法輪大法) 경서, 각종 진상 자료 및 컴퓨터 본체, 노트북 컴퓨터, 프린터 두 대, 시디 알더블유(CD-RW)를 몽땅 강탈했다. 단지 나에게 수색 영장(남기지도 않았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80세의 고독한 노부인은 가족과 인터넷, 전화상 연계를 잃었는데 이 나날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이튿날 보위처 처장 왕옌융과 노 간부처 책임자 산옌링(單燕玲)이 집으로 찾아와 나에게 이 일을 정확하게 대하기를 바랐으며 아울러 최근 대학에서 우수평가 활동이 있어서 모든 직원이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평가조건 중 한 가지 규정은 바로 파룬궁 문제에 관한 일인데, 만약 적당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일표부결(一票否決, 반대표가 한 장이라도 있으면 이 사람은 부결당함)’하겠다며 내가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이 일이 그야말로 너무 황당하다고 느꼈다. 80세 노부인이 파룬궁을 수련해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는데, 오히려 한 직장의 몇백 명 노동자 복지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됐고 안전하지 못한 요소가 됐다. 한 정권이 만약 정말 강대하다면 그것이 정말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기구로 된다면, 무엇 때문에 국민이 진선인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됨을 두려워하는가?”
쿤밍시 안닝(安寧)시의 60세 퇴직 의사 수전훙(舒振鴻)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05년 2월 말, 나는 윈난 뤼펑현(綠豐縣) 다핑바(大平壩)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2년 동안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후 44일 동안 기한이 연장됐다.” “대대장은 전 대대에서 가장 건장한 마약 복용범 리춘(李春)을 시켜 나를 감시시켰고 나에게 전향할 것을 강요했다. 내가 전향하지 않자 무차별 폭력을 가했는데 늑골, 간 부위, 위장 부위를 구타했다. 몇 차례나 나는 구타의 고통으로 숨을 쉬지 못했고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어느 한 번은 하마터면 나를 2층에서 던져버릴 뻔했는데 마침 마약 복용범 펑(馮) 모씨가 발견해 권고하자 리춘은 ‘당신이 죽어도 이미 문의하는 사람이 없을 거야’라고 말했다. 그 후 그는 내 뺨을 때려 왼쪽 귀가 부어올랐는데 의사는 나에게서 많은 어혈을 뽑았다.(나는 지금 왼쪽 귀가 여전히 붓고 기형으로 되어 이어폰을 꽂을 수 없음)”
“내가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기간에 우리 가정은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직장에서는 나에게 월급 지급을 중단했고 집에서는 주요 경제력을 잃어 생활이 곤궁했다. 쿤밍 중수잉(宗樹營) 주택 단지에 있는 집은 대부금(매달 몇 백 위안)을 갚지 못했던 이유로 싸게 팔아 대부금을 갚았으며, 5살인 아들은 직접 아버지가 납치당하고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함을 보고 극도의 충격을 당했고 학교에서 차별을 받아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또 경제력이 사라져 신체 건강, 발육에 손상을 입었다. 그리고 아내는 매달 500위안(약 91,000원)밖에 되지 않은 퇴직 양로금으로 가정생활을 유지하고 아이를 부양했는데 무거운 부담을 견딜 수 없었다. 모친은 슬픔이 병으로 되어 아들이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비애와 기쁨이 지나쳐 뇌출혈이 도져 사망하셨다.”
쿤밍시 관두구(官渡區)의 49세인 묘족 여성 우즈잉(吳治英)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12년 5월 7일 저녁 7시가 넘어서 나는 친구 후궈란(胡國蘭)이 이사하는 것을 도와주러 갔다가 쿤밍시 관두구 국가보안대대, 판룽구(盤龍區) 국가보안대대에게 납치됐다. 나와 후궈란은 강제로 판룽구 국가보안대대로 끌려가 밤중까지 불법 심문을 당했다. 그 후 강제로 판룽구 제1구치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양가의 여성은 일생동안 지울 수 없는 엄청난 모욕을 당했다. 바로 이 구치소에서 판룽구, 관두구와 구치소 경찰 3명과 여경 2명이 강제로 나에게 그들 앞에서 옷을 완전히 벗도록 강요했는데 말로는 신체검사라고 했다. 내가 거부하며 그들의 깡패 행위를 지적하자 현장에 있던 남자 경찰 3명은 ‘당신이 벗지 않는데 고통을 맛보려고 하는가? 당신이 협력하지 않는데 우리가 직접 손을 써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강요에 못 이겨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에서 옷을 벗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도 생각하면 여전히 치욕스러움을 참기 어렵고 마음에 그림자가 여전히 가셔지지 않는다.”
쿤밍시 우화구(五華區)의 78세인 이족 노인 스완창(施萬昌)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아내 팡메이셴(方美仙)은 2002년과 2009년에 두 차례 훙산(虹山)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 납치, 구금, 심문을 당했는데 매번 나에게 서명시켜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리 집도 늘 경찰이 찾아와 괴롭혔는데 우리 생활에 많은 방해와 불편함을 가져왔다. 우리 전 가족의 정신적 압력은 매우 컸는데, 온종일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생활했다. 우리가 당한 이런 억울함도 모두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한 후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에 대해 형사고소를 제기하려 한다.”
윈난 농업 대학의 71세 퇴직 교사 주야밍(朱亞明)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14년 1월 11일, 나와 아들은 쿤밍시 판룽 분국으로 불려가 재차 심문을 당했다. 나는 녹화, 녹음을 당했고 나에게 기타 파룬궁수련생을 배반하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나를 강요해 파룬궁 연마를 허락하지 않고 수련을 포기하도록 했으며, 파룬궁 진상 자료 배포를 허락하지 않는다며 그렇지 않으면 판결해 감옥에 넣겠다고 협박했다. 5월 20일, 나는 쿤밍시 판룽구 검찰원에 의해 불법 기소를 당했고 쿤밍시 판룽구 법원에 넘겨졌다. 6월 20일, 판룽구 법원에서는 거주지 감시 결정문을 하달했는데 기한은 6개월이었다. 그중 그들은 여전히 6가지를 규정해 내 인신 자유를 제한했다……7월 15일, 쿤밍시 판룽구 법원은 형사 판결문을 하달했고 나는 ‘유기징역 3년, 집행유예 3년’을 무고하게 판결당했다.” “각종 박해는 나의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조성했다. 그리고 내 인격에 대해 엄청난 모욕을 조성했다. 그들은 내 아들의 돈을 갈취해 아들의 심신에도 깊은 상처를 입혔다.”
59세인 농촌 여성 가오펑잉(高鳳英)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14년 4월 19일, 아들 가오콰치(高誇柒)가 류머티즘이 도졌던 이유로 일가족은 친구와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있었는데 한 무리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덮쳐들어 남편 천러우창(陳婁昌)과 조카 양쯔샹(楊自祥, 장애 군인)을 끌고 갔다. 나는 곧 뒤따라가서 울면서 그들에게, 우리가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는데 무슨 법을 위반했는지 물었다. 이때 큰 사위 후페이성(伏培生)은 퇴근해 돌아와 막 집에 들어가다가 경찰 몇 명에게 입구로 끌려가서 땅바닥에 넘어뜨러졌다. 어떤 이는 그의 머리를 발로 걷어찼고, 어떤 이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구타하고 발로 걷어찼다. 내가 급히 다가가서 그를 잡아당기려 하자 두 경찰이 힘껏 내 손을 비틀었다……2014년 12월 9일, 스린현 인민 법원에서 나의 네 아이 가우추이롄(高翠蓮), 가오콰치(高誇柒), 가오추이팡(高翠芳), 가오츙팡(高瓊芳), 그리고 친구 양쯔샹(장애 군인)에 대해 불법 개정을 진행해서야, 2014년 4월 9일 저녁에 그들이 폭력으로 납치를 진행했음을 알게 됐다. 남성 경찰 10여 명은 딸 가오추이팡의 발을 거꾸로 들고 백 여 미터를 끌고 가서 경찰차에 태웠다. 그리고 수면을 박탈했고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해 증거를 얻으려 했으며 당사자와 변호사가 면회하는 권리를 박탈했다. 가오추이팡과 가오츙팡은 각각 3년형 불법 판결을 당했고, 가오추이롄과 가오콰치, 양쯔샹은 각각 3년 6개월형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았다. 2015년 6월 9일 오전 8시 반쯤, 경찰, 검찰원과 법원 사람 27명은 촌에 들이닥쳐 불구인 아들 가오콰치를 납치했다. 그 후 하체가 불구로 된지 20여 년이 되는 큰딸 가오추이롄이 차린 ‘연수방(蓮繡坊)’ 십자수 가게 안에서 강제로 납치당했다. 경찰은 그들을 따로따로 쿤밍시 제1감옥 5감구, 쿤밍시 제2여자감옥 8감구에 가둬넣었는데 지금까지 면회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쿤밍 강철지후유한회사 룽산광(龍山礦) 퇴직 노동자 노부인 양즈젠(楊志堅)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04년 8월 15일, 고소인은 전주취안(珍珠泉) 인근에서 산책을 하다가 본 직장 보위과의 리싱쿠이(李興奎)에게 원취안(溫泉) 파출소 경찰에게 지목당했다. 그래서 경찰에게 납치돼 몸을 수색당했으며 원취안 파출소로 끌려가 안닝(安寧) 국가보안대대 리항위(李航宇)에게 불법 심문을 당한 동시에 구류 처분을 받았다……1개월 동안 감금한 후 어떠한 법률적 근거와 법률 절차가 없는 상황에서 고소인은 윈난 여자 노동교양소로 보내져 2년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핍박으로 대법을 모함하고 비난한 텔레비전과 서적을 보았고 강제 노동을 했으며, 또 인분을 메고 쓰레기 및 비닐 주머니를 주었다. 그리고 각종 수공일을 했고 풀을 뽑고 김을 맸으며 또 한 번은 끌려가 채혈을 당했다.”
44세인 어우쉐윈(歐雪昀)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파룬궁수련생으로서 나는 더욱 선량하고 더욱 너그럽고 더욱 진실하게 변해 직장에서 호평을 얻었다. 파룬따파 수련은 나에게 충실한 정신세계와 건강한 몸을 주었고 수년간 각종 병고는 모두 치료하지 않아도 완쾌됐다. 나는 자신의 돈으로 진상 자료를 배포해 세인에게 이로움을 주었다. 2009년 3월 14일에 다리시(大理市) 공안국에 의해 불법 형사구류, 불법 가택 수색을 당했다……그 후 나에 대해 불법 체포를 내린 동시에 3년 불법 판결을 선고했다. 2009년 10월, 나는 윈난성 제2여자감옥으로 보내져 엄혹한 관리를 당했다. 감옥에서는 죄수 두 명을 파견해 매일 24시간 동안 나를 감시했고 아울러 나에게 세뇌 박해를 진행했다. 매일 강제로 자세를 유지해 14시간 동안 ‘작은 걸상’에 앉혔고, 화장실로 가고 목욕하며 잠자고 생활 용품을 구매함을 제한했다. 그리고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고, 감시 인원 외의 사람과 말을 하는 등 일체 행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나는 다리가 마비되고 지각이 없었으며 둔부가 붕괴됐다……불법 감금 기간, 나는 자신의 몸의 고통과 상처 때문에 괴로움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또 각종 모욕과 인격을 모욕하는 대우 및 다른 학대를 당했다……연로하신 부모님은 보살펴 드릴 사람이 없었고 어린 딸은 모성애를 잃었다……아버지는 각 방면의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파룬궁에 대한 불공정한 대우를 감당하지 못했던 이유로 결국 2013년에 억울하게 사망하셨다.”
77세인 왕구이룽(王貴榮) 노인은 다음과 같이 고소했다. “2007년 1월 26일, 가택 수색을 또 당해 대법 서적, MP3, 밍후이 주간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했고, 불법적인 3년형 판결을 받았다. 윈난성 남자 1감옥에서 죄수 4명이 나를 감시했고 강제로 시간을 초과한 노동을 시켰다. 매일 30킬로그램인 타마린드를 포장했는데 완수하지 못하면 족쇄와 수갑을 차야 했다. 어느 한 번은 설사해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곧 강제로 나에게 꼬박 2일 동안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시간 동안의 박해로 류머티즘성 관절염이 도져 발도 부어오르고 얼굴도 부어올라 핍박에 못 이겨 1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2015년 5월 13일 오전, 불법 납치를 당했는데 경찰은 나를 핍박해 서명시켰다. 내가 협력하지 않자 그들은 곧 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했고 또 주사로 내 손가락 끝을 찔렀다. 당시 나는 너무도 슬픈 나머지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이로 인해 내 손은 지금까지도 민첩하지 못하게 됐다. 그리고 혈압은 180~120으로 급증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예전에 나는 듯이 걸었는데 지금은 걷게 되면 매우 힘든 감을 느낀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6/3152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