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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2009년까지 궁주링 감옥의 박해 사실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보도) 지린성 궁주링(公主嶺) 감옥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소굴이다. 다음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궁주링 감옥에서 대법제자를 핍박해 ‘진선인(眞善忍)’ 믿음을 포기시키기 위해 행한 잔혹한 행위다.

감옥에서는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말을 하거나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형사범들은 가능했다. 게다가 다른 형사범이 이런 규정이나 법규를 위반해도 교도원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후바오(互包,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 감시에 이용된 일부 수감자)를 시켜 감시한 동시에 주야 2교대로 4명의 형사범이 주야로 한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또 안바오(暗包: 팀장, 대장, 복도를 지키는 인원, 화장실을 지키는 인원 등)를 배치해 파룬궁수련생이 법공부, 연공, 발정념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단 발견되면 독방에 갇혀 엄혹한 관리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电击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전기 충격

전기 고문 박해: 감옥 측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할 때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가했다. 어떤 이는 동시에 전기봉 3~4개로 한 수련생에게 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수련생의 옷을 완전히 벗기고 수갑으로방열기 파이프 위에 채우고는 머리씌우개를 씌워보지 못하게 했다. 악독한 경찰 몇 명이 동시에 악행을 저질렀는데 고문당한 수련생이 기절하면 냉수를 끼얹고 다시 반복적으로 악행을 저질렀다. 고문을 당한 파룬궁수련생의 몸은 아래 위에 성한 곳이 한 곳이 없었고 모두 전기 충격을 당해 살이 한 뭉텅이씩 청자색을 띠고 탄 상처와 한 덩이로 됐는데 참혹해 차마 볼 수 없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鼻饲)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코로 음식물 주입하기)

음식물 주입 박해: 감옥 안에서 파룬궁수련생들은 불법적이고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했는데 정상적인 고발도 불가능했다. 그들은 단식으로 이런 불법 박해를 저지했다. 그러나 감옥의 악독한 경찰은 악행을 중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강제 음식물 주입 고문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에게 상해를 가했다. 악독한 경찰은 감옥 병원에서 일부 경찰과 죄수를 배치해 전문적으로 단식하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강제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소량의 옥수수가루에 대량의 소금을 사용했는데 반근 쯤 됐다. 뜨거운 물로 뒤섞어 반죽을 만들었다. 그리고 수련생을 쇠의자에 내리 누르고 머리를 의자 등에 내리 누른 다음 4~5명이 함께 힘껏 제압하고는 호스를 코에서부터 위장 속으로 꽂아 넣었다. 이는 호흡 곤란을 조성했는데 극히 고통스러웠다. 사흘에 한 번씩 주입했는데 매번 주입할 때마자 메스꺼워 구토를 했고 다 토한 뒤에는 입안에는 온통 쓰고 짰다. 대량의 소금을 빈 위장 속에 주입해 위 점막에 손상을 입혔다. 셰구이천(謝貴臣)은 2008년에 박해를 당할 때 감옥 안에서 2개월 넘게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그 후 아주 오랜 후에도 여전히구토하며 음식을 잘 먹지 못했다.

 
酷刑演示:死人床(呈“大”字形绑在抻床上)
고문 재연: 사인(死人) 침대 고문(‘()’자형으로 늘여 침대 위에 묶기)

사인(死人) 침대에 묶기 박해: 궁주링 감옥 측은 파룬따파 믿음을 포기함을 거부하거나, 불법적인 박해에 대해 의견을 제출하거나, 이유 없이 박해를 가하는 교도관에게 협력하지 않은 대법수련생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기 위해 독방에 가둬 박해를 진행했다. 독방은 지하실에 있었는데 작은 방이었다. 매 방마다 땅에서 60센티미터 높이로 나무로 만든 침대가 있었고 나무판 위에는 족쇄가 고정되어 있었다.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의 두 발을 족쇄에 꽉 채운 다음 다시 두 손을 늘여 수갑으로 전체 몸이 마치 ‘대(大)’자형으로고정했는데 양쪽에 형사범이 한 사람씩 감시했다. 이런 사인 침대에 채워져 매일 세 차례 밥을 주었는데 그 때마다 10분씩 수갑을 풀어주었을 뿐 족쇄를 24시간대부분 풀어주지 않았다. 몸이 늘려진 고통은 참을 수 없을 정도였고 족쇄가 복사뼈에 박혀 부서질 듯이 아팠는데 정말 시각마다 고통 속에 시달렸다. 감시 죄수 두 명은 늘 대법을 욕하고 대법 사부님을 욕했으며 강제로 수련생에게 욕하게 했다. 수련생이 협력하지 않고 그들을 상대하지 않기만 하면 곧 혹독한 구타와 시달림을 당했다. 옷 한 벌밖에 입지 않은 수련생의 윗옷 단추를 벗겨 배를 추위에 떨게 했고 냉수 한 대야를 배 위에 끼얹었다. 그리고 온몸을 움직일 수 없었는데 소변을 볼 때는 죄수가 받아주었다. 소변을 본 뒤에 죄수는 고의적으로 술로 팬티를 적셔놓아 악취가 코를 찔렀다. 가래가 있어도 뱉지 못하게 하며 반드시 삼켜야 했는데 정말 삼키지 못하게 되면 곧 종이로 닦아주었는데 고의적으로 온 얼굴을 문질렀다. 사인 침대 위에 하루 동안 묶인 뒤 밥을 먹을 때 수갑을 풀어주면 전혀 일어나지 못했다. 몸을 뒤척이려 해도 뒤척이지 못해 마치 죽은 사람 같았다. 정신적인 손상은 더욱 심했다. 궁주링 감옥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정말 피눈물로 얼룩졌는데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파룬궁수련생 양펑(楊峰), 셰구이천(謝貴臣), 가오창숴(高長所), 라오진터우(高長所), 쑨전(孫震) 등이 모두 사인 침대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이상은 단지 5감구 대법수련생이 박해를 당한 일부 진상일 뿐 다른 감구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여전히 모른다. 양펑은 1개월 넘게 수감됐고, 라오진터우는 감옥을 떠날 때까지 두 손이 마비되고 하지가 걷기 어려워 절뚝거렸으며, 가오창숴는 보름 동안 늘어졌고 쑨전은 보름 동안 수감됐다. 그리고 다른 감구 대법제자도 모두 이 고문을 당한 적이 있다.

일부 대법제자가 박해당한 상황

감옥에서 교도관은 모두 얼굴을 내밀지 않고 대법제자를 박해했는데, 모두 형사범과 사오(邪悟)한 사람을 시켜 대법제자를 구타했다. 대법제자가 5서(수련 포기 각서 따위)를 쓰지 않기만 하면 곧 잔혹하게 박해했다. 감금된 모든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의자’ 형벌을 당했다. 의자 높이는 20센티미터쯤이고 직경은 23센티미터쯤이었는데 중간에는 동그란 구멍이 있었고 의자면 위에는 많은 튀어나온 점으로 된 꽃무늬가 있었다. 사람마다 겨우 60센티미터가 되지 않는 네모난 벽돌 범위에 있게 했는데 작은 의자 위에 앉아 두 발과 다리를 한데 모으게 했으며 두 손은 다리 위에 놓게해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고 화장실에 가며 세수하는 외에는 줄곧 작은 의자 위에 앉게 했다. 시간이 오래되면 그 꽃무늬는 마치 못처럼 사람을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게 했다. 움직이기만 하면 바오자와 이른바 교육원은 큰 소리를 질렀다. 평소 그녀들은 또 끊임없이 대법제자에게 유언비어와 거짓말을 주입했다. 그녀들 중 한 사람이 한 대법제자에게 욕설을 퍼붓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도 즉시 따라서 공격했다. 심지어 손찌검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의 둔부가 문드러졌다.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은 대법제자에 대해 그녀들은 차츰 박해를 강화했다. 그녀들은 의자 가운데의 동그란 구멍에 막대기를 꽂아 넣어 절반만 앉게 했다. 더욱 심한 사람은 단지 3분의 1부위, 이를테면 8센티미터도 안 되는 범위에 앉게 했는데, 나머지 부분에 전부 책을 올려놓아 사람은 거의 쭈그려 앉아야 했다. 게다가 의자 다리가 낮아 다리는 힘을 쓸 수 없었는데 그런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들은 ‘전향’하지 않는 확고한 대법제자에 대해 의자 다리가 위로 향하게 하여 의자 다리 중 한 쪽 다리에만 앉게 했다. 파룬궁수련생 청수팡(程淑芳)은 거의 60세 노인으로 그는 의자 다리에 이렇게 앉았다가 넘어져 뼈를 다쳤다. 그녀는 또 구타로 치아 한 대가 부러졌고 또 어느 한 번은 구타로 각혈했는데 악도들은 여전히 그녀의 머리칼을 잡고 큰 물통 안에 빠뜨려 그녀는 질식해 죽을 뻔했다.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은 작은 의자에 앉기 고문이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선을 감는데 사용하는 플라스틱 심지를 꽂아놓았는데 청수팡이 너무 앉아 전부 부러졌다. 그런 다음 그녀들은 쇠기둥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잠을 아주 적게 재우는 외에 줄곧 작은 의자에서 내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화장실 가는 것마저 참을 수 없을 때에야 가도록 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마저 작은 의자에서 내려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이는 심지어 밥공기도 씻지 못하게 했으며, 스스로 휴지로 그릇을 닦게 했다. 대법제자가 ‘전향’하지 않기만 하면 곧 자유를 잃은 감옥 안에서 더욱 자유가 없게 되는데 다른 사람과 말함을 허락받지 못했다.

2015년 6월까지 지린성(吉林省) 여자감옥 안에는 불법 감금당한 대법제자가 대략 120명 쯤 있었다. 6월에 8감구, 2감구에는 또 청궈샹(程國香), 궈원솨이(郭文帥), 치언샹(齊恩香), 주수윈(朱淑雲: 엄격한 관리로 독방에 갇혔음) 등 5~6명은 엄격한 관리 박해를 당했다.

어느 한 수련생은 2014년에 여자감옥으로 보내졌는데당시 감옥은 많은 젊은 교도관을 교체했다. 도대체 언제 바꿨는지 똑똑히 모른다. 정보가 폐쇄된 것 때문에 이것도 단지 궁주링 감옥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궁주링감옥(公主嶺監獄):

감옥장 우(伍) 모씨

공감사무실(攻監辦公室) 주임 장(張) 모씨(남,40세 쯤)

5감구 교도원 뤼(呂) 모씨(남,30여 세)는 모든 박해에 참여했는데 예전에 흉악하게 “음식물 주입을 할 때 소금을 많이 넣으시오. 없으면 내 돈으로 사러 가겠소. 당신들이 파룬궁들을 혼내지 못한다고 믿지 않소”라고 말한 적이 있다.

5감구역 대대장 자오(趙) 모(남,50여 세)

중대장 자밍(賈明)(남,50여 세)

교도관 리(李) 모씨(남,30여 세)

중대장 쭤(左) 모씨(남,50여 세)

2감구 대대 교도관: 양이(楊溢)

8감구 대장: 니(倪) 모씨, 왕(王) 모씨, 치(齊) 모씨

문장발표: 2015년 9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10/31544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