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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충칭 룽창현 부현장 박해로 사망, 여동생 장쩌민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충칭 보도) 2015년 8월 13일, 충칭(重慶)시에 사는 장팡슈(張方秀)가 중국 최고인민 검찰원 사이트로 소송을 신청해 장쩌민(江澤民)이 국민 신앙 박탈죄, 국민 인신자유 박탈죄, 국민 재산 박탈죄, 불법 구금죄, 직권 남용죄, 반(反) 인류죄 등을 저질렀다고 고소했다. 게다가 최고인민 검찰원, 법원에서 법에 따라 그에게 형사 책임과 경제배상 책임 및 기타 관련 책임을 추궁하도록 요구했다.

장팡슈는 고소장 중에서 말했다. “나는오빠[장팡량(張方良: 전 충칭시 룽창현 부현장)]가 파룬궁을 연마한 후 온몸의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어머니는 어려서부터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았다. 특별히 출산한 후 심각한 부인병에 걸렸는데 파룬궁을 연마한 후(98년에 오빠와 함께 파룬궁을 연마했음) 몸이 건강해져 질병이 없이 즐거우셨다. 2000년 3월부터 나도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심각한 위장병과 메니에르 증후군 등 질병에 걸렸었다. 연공 한지 얼마 후내 질병도 매우 기적적으로 나아졌다. 이로부터 걸음걸이도 가볍고 신체가 건강했다.

张方良

전 충칭시 룽창현 부현장 장팡량(張方良)

하지만 1999년 7월, 마음이 좁은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은 1억 군중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 건강을 가져오고 가정이 화목해지며 사회가 조화롭고 안정된 사실을 무시한 채, 거리낌 없이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진선인(眞ㆍ善ㆍ忍)’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라디오, 텔레비전, 신문 등 언론 매체에서는 파룬궁에 대해 천지를 뒤엎을 듯한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독하고 비난하며 공격해 수많은 민중 마음에 심각한 해독을 끼쳤으며,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사건을 꾸며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워 민중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선동했다. 16년 동안의 박해는 우리 가족의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2001년 11월 11일, 나는 룽창현 관인교(觀音橋) 양식장에서 룽창현 구치소로 납치됐다. 1개월 넘게 불법 감금당했으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고 경찰봉으로 혹독하게 구타당했다. 그 기간 스허(石河) 세뇌반으로 옮겨졌다가 또 구치소로 옮겨졌다. 나는 1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해 충칭시 마아자산(茅家山) 여자노동 교양소에서 체벌, 노예 노동을 당했다. 매일 강도를 초과한 노동을 했는데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홍가(紅歌,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강제 전향을 하도록 강요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으면 죄수가 혹독하게 구타했다.

2002년 10월 20일, 노동교양소에서 나와서야 나는 오빠 장팡량이 이미 박해로 사망한 지 몇 개월이 됐음을 알게 됐다. 22일, 나는 고향 판룽으로 가서 오빠 무덤 위에서 제사를 지내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23일, 광순진(廣順鎭) 서기는 몇 사람을 거느리고 판룽으로 와서 나를 창룽 스허 세뇌반으로 납치해 1개월 동안 불법 감금했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내가 막 감옥에서 나와서 또 납치된 것을 보고 몸져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내가 어머니를 병문안하겠다고 강력하게 요구하자 ‘610’은 수갑을 채운 채 압송해 어머니를 문안하게 했다.

2005년, 나는 광순진 고향에서 좁쌀을 수확했다. 어느 날 저녁 10시경에 광순의 원(文) 서기는 한 무리 사람을 거느리고 우리 집에 들이닥쳐 내가 자료를 배포했다는 구실로 강제로 세뇌반으로 납치해 1개월 감금했다.

오빠의 사망은 나에게 깊은 아픔을 주었다. 6월 16일, 나는 광순진 궁런촌(工人村)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교외 파출소에 의해 룽창 파출소로 납치됐다. 경찰은 나에게 무차별 폭력을 가해 내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됐다. 그리고 또 가족에게 돈을 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노동교양을 시키겠다고 위협했다. 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식사 초대를 해서 그들을 대접했는데 1만 위안(약 185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그들은 1개월 후 나를 석방했다.

판룽, 허징(合靖)의 농민들이 오빠 장량팡이 사망한 원인을 묻자 나는 그들에게 오빠가 박해로 사망했다는 진상을 알렸다. 2007년 6월 15일에 다른 사람에게 신고를 당해 판룽 파출소는 나를 납치하고 몸에서 2, 3백 위안(약 55,000원)의 돈을 찾아내 빼앗았다. 나는 또 1년 6개월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아 충칭시 장베이(江北) 여자노동 교양소에 감금됐다. 노동교양소에서는 믿음을 포기시키기 위해 늘 나를 학대하고 혹독하게 구타했다. 그리고 매일 강제 노동을 시켰다.

전 충칭시 룽창현 부현장 장팡량 박해로 사망

오빠 장팡량은 1954년 12월 29일에 출생했다. 오빠는 연공하기 전에 B형 간염, 간경화, 급성 간염으로 몸이 심하게 붓는 등 질병을 앓았다. 곳곳에서 치료했지만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매달 많은 돈을 써서 약을 먹었다. 어느 날은 약을 짓는 데만 2천 위안(약 55만 원)을 썼다.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연공 한지 몇 달 만에 23년 동안 그를 괴롭히던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B형 간염을 앓은 23년 동안 그는 신선로를 한 번도 먹은 적이 없었다. 짧은 몇 달 만에 그는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마침내 신선로를 먹을 수 있었다. 그는 기뻐했다! 그는 “나는 사부님이 계신다. 나는 사부님을 따라 대법을 배우겠다.”라고 말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진선인(眞善忍)에 동화되어 그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승화됐고 몸이 건강해졌으며 도덕이 더욱 고상하게 됐다. 그는 명리를 담담하게 보았으며 청렴하고 공정했다. 요직을 맡았으나 상여금을 받지 않았고 식사 초대를 거절했으며 국가의 이익을 탐내거나 점유하지 않았다. 충칭으로 출장하는 것마저 전용 차량을 거절하고 공공버스로 다녀왔다.

그가 한창 파룬따파가 부여해 준 건강한 몸과 충만된 정신으로 사업에서 재능과 포부를 크게 펼치고 있을 때 이유 없이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1년 10월 6일, 장팡량은 퉁량현(銅梁縣)으로 회의하러 갔다가 일 이외의 시간을 이용해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다가 납치돼 퉁량현 구치소에 감금됐다.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 장팡량은 ‘진선인’ 신앙을 견지해 8개월 넘는 고문 학대를 당했다. 이로 인해 사지가 붓고 말을 할 수 없게 됐으며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없었고서 있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사람마저 알아보지 못했으며 2002년 7월 9일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겨우 48세였다.

2002년 12월, 내가 노동교양소에서 나왔을 때 어머니는 비분해 하며 나에게 알려주셨다. “네 오빠는 독 주사를 맞고 고문을 당했어. 모진 학대를 당해 한 달도 되지 않아 완전히 외모가 변해 우리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어. 2002년 7월 3일, 네 올케가 퉁량 구치소로 가서 강하게 요구해서야 8개월이나 불법 감금당한 장팡량을 볼 수 있었지. 이때 그는 사지가 붓고 서 있을 수 없어 4명의 죄수가 들고 나왔단다. 그러나 사유는 똑똑해 큰소리로 말을 할 수 있었지. 그는 또 몇 차례나 파룬따파를 끝까지 수련함을 표명했어! 네 올케가 재삼 병보석을 요구했으나 퉁량현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의 류(劉) 서기는 구실을 찾아 허락하지 않으며 집으로 돌아가 통지를 기다리라고 했지.”

7월 8일, 올케는 거듭 퉁량현 정법위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이때 오빠는 이미 퉁량현 병원으로 옮겨져 독극물을 주사당하고 있었다. 올케가 병원으로 급히 갔을 때 오빠는 이미 의식이 똑똑하지 못했고 정신이 흐릿해 말을 하지 못했다. 오빠는 올케마저 알아보지 못했다. 참혹해 차마 볼 수 없는 오빠의 모습을 보며 올케는 ‘610’ 요원에게 “우리 가족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당신들은 책임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법위 류서기는 마음이 켕겨 “당신들은 처방을 조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가장 좋은 약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610’ 요원은 오히려 급히 링거 주사를 뽑아버리고(링거병의 약물을 다 주입하지 않았음) 황급히 올케에게 오빠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재촉하며 경찰차로 압송했다. 룽창현에 도착하자 룽창현 정법위 왕 서기가 직접 나서서 교섭한 후급히 떠났다.

오빠는 집으로 돌아온 후 임종 직전에 갑자기 또렷한 의식을 되찾아 사유가 잠깐 명석해 가족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호흡하기 어려웠고 이명이 심했으며 말하기 어려웠다. 저녁 11시, 가족은 급히 그를 룽창현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게 했다. 이튿날 아침 6시, 오빠는 이미 심장 박동을 멈췄다. 병원에서 발급한 사망 진단 결론은 폐렴, 심장 쇠약, 호흡 쇠약이었다. 오빠는 심장, 폐 질환을 앓은 적이 한 번도 없기에 그가 사망한 병 원인은 순전히 박해로 조성된 것이다.

오빠 장팡량이 박해로 사망한 후 ‘610’ 요원은 오히려 유언비어를 날조해 장팡량이 집에서 자살했다고 말했다. 룽창현 국가보안대대는 광순진에서 ‘장 현장은 파룬궁을 연마해 사망했다.’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해 파룬궁수련생을 ‘전향’ 시켰다.

오빠가 생전에 근무한 적이 있는 곳 농민들이 오빠의 비보를 듣고 사면팔방에서 급히 룽창현 장의사로 왔으나 경찰에게 가로막혀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말없이 뒤편에서 판룽 고향까지 따라가서 오빠의 마지막 길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충격으로 정신 이상이 되어 사망

아버지는 경찰의 괴롭힘과 공갈 협박으로 충격을 당하셨다. 그는 늘 이해하지 못했다. ‘아들은 농민 시절부터 공부했고 허징, 판룽, 우자(吳家), 또 청관진으로 가서 근무했으며 1997년에는 농업을 주관하는 부현장으로 발탁됐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농민들을 돌봐주는 좋은 아들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파룬궁을 연마한 후 농촌으로 내려가 근무했는데, 농민 집에서 밥을 먹는 것까지 급식비를 냈고 농민과 함께 밭에서 일했다. 지금은 어찌 된 일인가? 아들이 연공해 몸이 좋아졌는데 어디에 잘못이 있는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정신이 흐릿해지고 정신 이상이 되어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갔다.

우리 집은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죄악으로 두 사람의 생명을 잃었다. 억울한 사건을 파악하려면 반드시 주범을 찾아야 한다. 각계 인사가 공동 노력해 하루빨리 범죄 원흉 장쩌민을 심판대에 올리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9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9/2/3150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