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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다롄시 전 군관 리웨이, 원흉 장쩌민 고소

[밍후이왕] 2015년 7월 7일, 랴오닝성 다롄(大連)시 기율검사위원회 간부 리웨이(李偉)는 최고인민검찰원에 우편으로 고소장을 보내 파룬궁을 박해한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다.

올해 56세인 리웨이는 전업 군관(장교)으로 부영직(副營職, 부과급)이고 소령 계급이다. 전역 후 회사에서 기율검사 업무에 종사했는데 지금은 공무에 종사하고 있다.

리웨이는 1996년 6월 베이징 서점에서 파룬궁 서적을 샀고 이로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아래턱 관절염, 심장병, 피부병, 심각한 불면증, 신경성 두통, 기관지염, 치질, 저혈당 등 질병이 나아져 오늘까지 이미 19년 동안 한 번도 약을 먹은 적이 없다. 심신이 건강해져 온몸이 가벼웠다.

리웨이는 예전에 항운(航運)그룹 다롄컨테이너윤선회사(大連集裝箱輪船公司)의 정치공작부에서 근무했는데, 기율검사업무와 간부 업무를 책임졌다. 근무 중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회사에서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다.

파룬궁이 박해당한 뒤 5차례 납치됐는데 두 차례는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며, 두 차례는 보름 동안 불법적인 행정구류 처분을 당했고 한 차례는 강제로 다롄시 세뇌반에 16일 동안 감금됐고 6차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으며 강제로 보증서를 쓴 적이 있다. 2001년 4월 18일, 회사에서는 ‘무단결근’이라는 이유로 그를 면직시켰다. 2001년 4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그는 줄곧 직업이 없어서 연로하신 모친과 장인의 도움으로 연명했다.

다음은 리웨이가 고소장 중에서 제공한 박해당한 사실이다.

1. 첫 번째 납치

2000년 10월 2일 공휴일, 나는 한 동료 집에 문안 인사를 하러 갔다. 돌아올 때 난스다오가(南石道街) 노부인 교자집 입구에서 시난구 전 난스다오가 파출소의 한 무리 경찰, 그리고 지역사회 사람들에게 납치됐다. 동료의 집은 모두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당했는데 경찰은 어떠한 증명서도 보여주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나는 두 손에 수갑을 차고 쇠의자 위에 꼬박 2일 동안 묶여 있었다. 경찰은 물을 주지 않았고 밥을 먹이지 않았으며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고 불법적으로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나는 강제로 다롄시 마약 중독자 재활원 ‘다롄시 강제전향센터’에 갇혀 16일 동안 강제 세뇌당했다. 매일 작은 걸상에 10여 시간 동안 앉혀놓고 파룬궁을 모독한 라디오 텔레비전을 보도록 강요했다. 예전에 전향을 책임진 다롄 교양원의 대장 가오(高) 씨에게 뺨을 두 대 맞은 적이 있다. 그 후 다롄시 유치장을 보내져 보름 동안 구류 당했다.

2, 두 번째 납치, 다롄시 시난구 공안 분국에 의해 3년 노동교양 처분당하다

2001년 2월 7일,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저녁에 다롄시 기차역 2층에서 전 난스다오가 파출소의 4명 경찰에게 납치됐다. 강제로 수갑을 채워 2층에서부터 기차역에서 5~6m 떨어진 광장까지 끌려가며 구타당했다. 그들은 나를 구타해 넘어뜨리고 내 손을 밟고 내 몸을 걷어찼는데 그날 저녁에 여러 차례 피를 토했다. 박해를 책임진 부소장은 자오윈펑(趙雲峰), 경찰 리(李) 모 씨, 실습 경찰 푸창(付强)이었다.

저녁에 경찰 리 씨는 물총으로 내 얼굴에 술을 뿜었고 강제로 내 외투를 벗겼다. 그날 저녁에 나는 고열 증상이 나타났다. 경찰은 꼬박 2일 동안 물을 주지 않았고 눈 감는 것, 잠자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밤중 1시 후, 경찰 인(尹) 모 씨는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해 기록했다. 나는 다롄 구치소에 60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시난구 공안 분국에 의해 3년 노동교양 처분당했다. 박해당해 건강이 매우 악화했고 고혈압 등 증상이 나타났던 이유로 다롄 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그 후 병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게 됐는데 이로부터 장시간 감시, 괴롭힘을 받았다.

3. 세 번째 납치, 다롄 시난구 공안 분국에 의해 보름 동안 구류 당해

2012년 저녁, 경비원에게 파룬궁 자료를 주었다가 신고당해 전 난스다오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보름 동안 불법 구류 당했다.

4. 네 번째 납치, 다롄시 시난구 공안 분국에 의해 2년 노동교양 처분당해

2003년 7월 10일, 나는 다롄 성리(勝利)광장 지하 상점에서 경비원에게 파룬궁 자료를 주었을 때 신고당해 중산구(中山區) 칭니와(靑泥窪)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적인 가택 수색을 당했다. 업무 담당 경찰은 안둥(安冬)이라고 불렀고, 또 경찰 창(常) 모 씨도 있었다. 내가 갖고 있던 몇십 위안 돈도 강탈당했다.

밤중에 다롄시 구치소에 보내져 20일 동안 감금당한 후 2년 노동교양 처분받아 다롄시 교양원으로 보내져 감금됐다. 교양원에서 두 차례나 ‘독방’에 감금돼 수갑을 찼다. 두 손은 양편 쇠침대에 채워졌는데 수갑은 살 속까지 조여 들어가 매우 아팠다. 아침 5시부터 줄곧 밤중 11시~12시까지 채워졌다. 누계로 1개월 동안 찼다. 죄수 리웨(李岳)는 신바닥으로 내 전신 및 얼굴과 머리 부위를 구타했다. 온몸에는 옴이 가득 생겨나 극심하게 가려워 매우 고통스러웠다. 지금까지 몸에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매일 체벌을 받고 강제 노동했다. 이극관(二極管) 꼬기, 이쑤시개 줍기, 콩 줍기 등 극한을 초과한 노동을 해서 심신이 심각한 박해를 당했다. 감금 기간에 독극물을 주입 당했다.

5. 다섯 번째 납치

2007년 8월 6일, 내가 시난구 러거우(樂購) 상점에 있었는데 아내가 상점으로 물건을 사러 와서 나는 상점 밖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당시 파룬궁수련생 2명과 함께 앉아 있었다. 나는 당시 그녀들을 알지 못했다. 이 2명 파룬궁수련생은 감시당했는데 시난구 국가보안대대와 푸자좡(付家莊) 파출소에선 우리 세 사람을 푸자좡 파출소로 납치했다. 그날 오후 4시가 넘어서 나는 풀려났다.

10여 년 박해는 가족에게 극심한 상처를 주었다. 아내는 정신적인 장애가 나타났다. 한 차례 또 한 차례 납치, 가택 수색, 교란당해 아내는 경찰과 지역사회 사람들을 보기만 하면 두려워했는데 예전에 여러 차례 정신이상이 나타나 입원한 적이 있다.

2015년 5월 말, 가도 지역사회, 인민광장 파출소 경찰이 집으로 와서 교란을 진행했다. 아내는 정신이상이 되어 2015년 6월 15일 입원했고 지금 다롄 제7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문장발표: 2015년 8월 3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8/31/31497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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