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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이수이현 초등학교 교장, 박해 원흉 장쩌민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산둥성 보도) 산둥성 이수이(沂水)현 이수이진 원쭤촌(穩坐村)에 사는 저우구이썬(周桂森, 55)은 전 초등학교 교사이자 교장으로, 최근 파룬궁 박해의 원흉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했다. 그는 말했다. “(박해는) 사람의 정의와 양심을 소멸해 악인을 창궐하게 했고 좋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권선징악하고 정의를 주장하기 위해 장쩌민을 반드시 법정에 올려 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저우구이썬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파룬따파 연마한 후 신기하게 건강을 회복했다. 저우구이썬은 파룬궁은 고덕(高德) 대법임을 깊이 체험했다. 그의 인생 중 의문점과 난제는 파룬궁의책 중에서 모두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생은 다시는 망연하지 않았고 삶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다.

저우구이썬은 파룬궁에서 제창한 ‘진(眞)ㆍ선(善)ㆍ인(忍)’에 따라 심성을 수련해 덕을 중히 여기고 심성 수련을 중히 여겼으며, 근무와 생활 중 적극성으로 충만하여 근무에 더욱 부지런했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서 대가를 추구하지 않았다. 수련으로 도덕성이 향상되어 사회와 근무 중 크게 인정을 받았다.

1999년 7·20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개시했는데 저우구이썬은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1999년 12월, 가족이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가다가 도중에 납치돼 돌아왔던 이유로 우자와진(武家窪鎭) 당위원회 서기는 저우구이썬에게 이 일을 알고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가 알고 있었다고 답하자 서기는 저우구이썬의 교장 직무를 박탈하고 지원 사업만 하게 했다. 아울러 보증금 5천 위안(약 93만원)을 내게 했다.

저우구이썬은 박해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술했다.

2001년 1월 16일, 나는 베이징 톈안먼으로 가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실증했다가 경찰에 의해 쉬안우구(宣武區) 구치소에 7일 동안 감금된 뒤 이수이현 펑자좡(馮家莊)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경찰은 종합치안관리사무실 주임을 파견해 나를 혹독하게 구타해 치아가 흔들렸고,경찰은솜옷 속에 찬 냉수를 주입한 후 바닥에 엎드려 있게 했다.

8일 후인 2001년 1월 31일, 이수이현 구치소로 보내져 32일 동안 심한 학대를 당했다. 국가보안경찰은 우리 집을 수사해(어떠한 증명서를 보여주지 않았음) 대법 서적을 강탈했다. 그 후 또 펑자좡 세뇌반으로 옮겨 거의 3개월간 감금했다. 그리고 관리비 1,200위안(약 22만 원), 보증금 5천 위안, 교통비 1,800위안을 달라고 했고 3개월 동안 월급 지급을 공제했다.

2002년 3월 28일, 이수이현 국가보안 경찰은 사건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나를 학교에서 펑자좡 세뇌반으로 끌고 가 36일 동안 감금했고 월급 중에서 관리비 3천 위안(약 55만 원)을 강탈했다.

2002년 7월 20일, 이수이진 당위원회에서는 나를 학교에서 쑹펑(松峰) 관리구역으로 속여 데려갔다. 이튿날 나를 산둥성 왕촌(王村) 법제양성센터로 보냈는데 직장 책임자 한 명이 함께 가서 강제로 나를 전향시켰고, 수면을 허락지 않고 방안을 나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30일 동안 감금하고는 관리비 3천 위안, 교통비 5백 위안을 받아갔다.

2006년 4월 6일, 이수이현 국가보안경찰은 우리 집에 들이닥쳐 어떠한 증명서를 보여주지 않고 강제로 대법책 세 권을 수색해 강탈했다. 나를 이수이현 구치소에 36일 동안 감금시킨 뒤 산둥성 제2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노동교양을 시켰고 강제 전향, 강제 노동시켰으며 교통비 1천 위안을 가져갔고 1년 치 월급을 공제했다.

2009년 2월 5일, 이수이진 파출소 경찰은 우리 집에 들이닥쳐 증명서도 없이 강제로 수사를 진행해 CD롬 한 대, 공CD 1백 장, 핸드폰 한 부, 음악 플레이어 한 대, 대법서적 2권을 강탈했다. 또 강제로 나를 이수이현 구치소에 37일 동안 가둔 후 린이(臨沂) 법제양성센터로 옮겨 강제 전향을 진행했다. 40일 동안 3,300위안을 가져갔으며, 노동교양처분 1년 6개월을 내린 후 밖에서 집행했다.출근을 허락하지 않고 월급 지급을 중지했다. 나는 여러 차례 각급 책임자를 찾았으나 그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연구해야 한다, 상의해야 한다며 이리저리 지연하며 근무를 허락지 않았다. 2014년 3월 처분을 기록한 후에야 출근을 허락했지만 월급이 줄었고 학교에서 가장 낮았다(막 학교 근무에 참가했을 때와 같았음).

2011년 10월, 또 노동교양 임무를 하달했는데 치안대장 경찰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어떠한 절차도 없이 강제 수색을 진행해 대법서적과 핸드폰을 강탈했다. 그리고 가족을 치안대대로 납치해 산둥성 여자 노동교양소로 보내 1년 노동교양을 시켰다. 당시 나는 집에 없었는데 그들은 꼭 나를 붙잡겠다고 큰소리쳤다. 나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하게 되어 팔순 노 모친을 보살펴 드릴 수 없었다.

이번 박해는 우리 가족에게 매우 큰 상처를 입혔고 나는 더구나 심신을 고문당했으며 또 각급 공안, 검찰, 법원 사람들이 집행 중에 죄를 저지르게 했다. 그 때문에 각급 사법부에서 즉시 범죄 혐의자 장쩌민을 구류시키고 입안해 심사하며, 법률에 근거해 그가 저지른 범죄를 추궁하기 바란다. 범죄 혐의자 장쩌민에 대해 최고인민법원에 공소를 제기하며, 법에 근거해 그의 형사 범죄와 기타 관련 범죄를 추궁하도록 최고인민검찰원에 간청한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0/3127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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