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산둥(山東)성 핑두(平度) 파룬궁수련생 겅슈제(庚修傑)는 핑두 제2직업중등전문학교 부교장이다.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후 그는 핑두 국가보안의 중점 박해대상이 됐고 납치와 감금을 당했다. 원래 그에게 주었던 고급교사 직함도 취소당했다. 겅슈제는 2015년 7월 13일, 장쩌민을 고소한 ‘형사 고소장’을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발송했다.
다음은 겅슈제가 서술한 납치, 고문학대 당한 경험이다.
2006년 11월 중순, 핑두시 란디진(蘭底鎭) 파출소 경찰, 핑두시 제2직업 중등전문학교 주임이 고향 후이보진(灰卜鎭)에 들이닥쳐 란디진 파출소로 나를 납치했다. 나를 핍박해 다른 대법제자의 신상을 캐내기 위해 파출소 소장은 주먹으로내 아래턱을 구타해치아가전부흔들렸다. 이후 나를 쇠의자에 꼬박 4일 동안 채워뒀다. 또 핑두 정보과 과장 스웨이빙(石維兵)도내 뺨을 혹독하게 때렸다. 셋째 날, 정보과 부과장 위빈(于斌)이내 눈을 구타해 출혈했다. 넷째 날에 나를 핑두공안국으로 보냈는데 공안국 국급(局級) 직원과 정보과 부과장 위빈이 나를 둘러싸고는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날리며 우레 같은 큰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자 그들은무차별폭력을 가했다. 5분도 되지 않아 나는 기절했다. 내가 약간 지각이 있을 때도 다만 온몸이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킴을 감각했을 뿐이었고, 눈은 부어올라 앞을 똑똑히 볼 수 없었다. 두 시간 뒤, 그들은 그래도 나를 핑두구치소에 집어넣었다.
감금 열흘쯤이 됐을 때 나는 또 공안국 남쪽건물 4층에서 수갑과 족쇄를 찬 채 박해를 당했다. 그들은 며칠 전 나를 기절시킨 그 악독한 경찰 5명이었다. 그중 한 경찰은 나에게 “어제 국(局)에서 당신 문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회의했는데 당신은 반드시 문제를 설명해야 해. 이전 단계에 어디에 갔으며 누구와 함께 있었지? 당신이 입을 굳게 닫아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 말귀를 알아들었으면 즉시 설명해.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결과를 책임져야 해”라고 말했다.
이 5명은 돌아가며 나를 괴롭혔다. 나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을 못 자게 했고 매일 옥수수떡 하나만 주었는데 춥고 배고프고 기운도 없었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경찰들은 지독하게 꾸짖었다. 내가 화장실에 갈지라도 그들은 나를 채운 수갑을 단단히 잡았다. 다섯째 날 위빈이 또 나쁜 짓을 저지를 차례가 됐다. 그는 나를 4층 복도 북쪽 안으로 끌고 가서 북쪽 창문 가까이에 있는 난방스팀기에 채워두었는데 서있을 수도 없고 쭈그려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북쪽 창문에는 유리가 없었고 난방기는 따뜻한 열기도 없었다. 살이 에이는 듯 북풍이 차가왔는데 정말 사는 게 죽느니 만도 못했다. 위빈은 여전히 그만두지 않고내 머리를 혹독히 구타했다. 이렇게 나는 또 기절했다. 내가 지각을 회복하지 못했는데도 그들은나를 구치소로 끌고갔다.
구치소에서도 역시 3~4일에 한 차례씩 심문을 받았다. 맨 마지막 한 차례 심문을 한 사람은 정보과 과장 스웨이빙과 졸개 위빈이었다. 그들은 나에 대해 판결을 내리겠다며 ‘전향’하면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며 “그럼태도를 표시하시오”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펜을 나에게 준 동시에 나를 심문한 기록을 내 쪽으로 밀었다. 나는 수갑을 찬 손으로 펜을 잡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이며 정부에서 파룬궁을 단속함은 잘못이다’라고 썼다. 위빈은 즉시 내가 쓴 것을 가져갔는데 나를 괴롭힐 근거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나는 쭈츄(足球) 구치소에 꼬박 1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 학교에서는 나를데려가서는 곧 철거할 작은 방안에 감금했는데 자물쇠로 문을 잠그고는 난로를 피우지도 않았다. 매일 아내가 나에게 밥을 보낼 때에야 문을 열었다. 2001년 1월 23일 섣달 그믐날까지 나를 가두고 나서야 집으로 돌려보냈다.
공산당은경제 박해도 멈추지 않았다. 2000년 10월부터 4개월 동안의 급여를 공제했고 이후는 나에게 매달 300위안의 생활비만 지급했을 뿐이다. 2012년에 이르러서야 제한적으로 급여가 회복됐다. 그러나 내가 가진 유일한 고급교사 직함이 감금으로 인해 더 승급하지 못했기 때문에 같은 조건의 교사에 비하면 급여 차이가 컸다. 이것도 나에 대한 장쩌민의 경제적 박해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17/3125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