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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랴오닝 링하이시 검찰관이 박해 원흉 장쩌민을 고소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종합 보도) 전 랴오닝성(遼寧省) 링하이시(凌海市) 인민 검찰원 감옥 검찰과 검찰관 리이창(李義強)은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에 대한 운동을 발기해 그와 가족이 박해를 당했다고 고소했다. 그리고 최고인민 검찰원에서 장쩌민에 대해 입안해 수사할 것을 신청함과 동시에 최고인민 검찰원에 공소를 제기해 장에 대해 형사 책임, 경제와 정신적 배상 책임을 추궁할 것을 요구했다.

고소인 리이창(李義強)은 다음과 말했다. “나는 1995년 5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공을 하고 얼마 안 돼 건강에 뚜렷한 개선이 있었는데, 수년간 앓았던 오른쪽 다리 류머티즘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화를 내는 고질병을 고쳐 가족마저 내가 연공한 뒤 사람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각 방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해 주었고, 업무 중에서 공정함을 받들어 사건을 처리했으며,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고 뇌물을 받지 않아 연속 4년 동안 링하이시 인민 검찰원에 의해 선진 공작자로 평가받았습니다.”

고소당한 장쩌민은 1999년 7월 22일부터 권력을 이용해 전국의 텔레비전, 방송, 신문 등 매체를 통제하고, 천지를 뒤엎을 듯이 장황하게 중앙텔레비전에서 꾸민 이른바 ‘1천4백 명이 파룬궁을 연마해 자살, 사망한 사례’ 등 가짜 뉴스를 연이어 방송해 파룬궁에 먹칠하고 모함 선전을 했다. 뒤이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각종 박해를 했다.

고소인 리이창은 그가 당한 박해를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2000년 2월 4일, 장쩌민이 통제한 매체가 파룬궁을 모함하고 먹칠하며 선전하기에 나는 국민의 합법적인 권리를 행사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서 정부에 파룬궁의 진실한 상황을 알려야겠다고 결정했다. 막 천안문 광장에 도착했을 때, 곧 사복 경찰에게 첸먼(前門) 파출소로 강제로 끌려갔다가 그 후 창핑(昌平) 유치장에 불법 감금당했다. 2월 8일, 나는 현지 경찰에 의해 링하이시로 돌아와 링하이시 다링허(大凌河) 공안 분국에서 불법 심문을 당했다. 그 후 불법 행정 구류를 45일 동안 당했는데, 그 기간에 링하이시 인민 검찰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공직에서 해고당했다.

2001년 12월 25일, 나는 집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다링허 공안 분국 경찰 쉬리신(徐立新), 멍판구이(孟凡貴), 류런(劉仞)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나에게 아직도 연공을 하는지를 물었다. 내가 “연마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쉬 모 씨 등 3명이 나를 다링허 공안 분국으로 납치해 ‘사회질서를 교란’한다는 죄명으로 행정구류 15일을 선포했다. 내가 구류 결정에 서명하지 않고 또 행정 재의를 신청했으나 그들은 모른 체하고 또 직접 경찰차로 나를 링하이시 유치장으로 보냈다.

유치장에서 나는 밥을 먹을 수 없었다. 소장 왕훙위(王洪余)의 직접적인 지휘 하에 그들은 폭력적인 수단으로 나에 대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진행했다. 5~6명이 나를 땅바닥에 내리누르고 사지를 단단히 막아놓아 움직일 수 없었다. 한 간호사는 기다란 고무호스를 나의 콧구멍에 꽂아 넣었는데, 기관에 꽂혀서 당시 매스꺼워 구토하고 거의 질식할뻔 했다. 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현장에 있던 유치장의 부소장은 연속하여 급히 “기관!”하고 말했다. 간호사는 그제야 고무호스를 뽑았는데, 나는 겨우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이미 온몸을 떨고 눈앞이 까맣게 되었다. 호스를 꽂은 간호사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러나 소장 왕훙위는 오히려 “계속 주입하라.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진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는 강제로 5번 음식물 주입 학대를 당했다. 몸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극도로 허약해졌다. 유치장에서는 인명 사고가 생길까 두려워 2002년 3월에 부득이하게 나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6월 18일 저녁, 나는 자전거를 타고 친척 집으로 놀러 가다가 도중에 다링허 공안 분국의 경찰 왕(王) 모에게 가로막혔다. 그는 캐물으며 기어이 나를 공안 분국으로 데려가려 했다. 링하이시 제2초등학교 남쪽 주택을 지날 때, 왕 모는 갑자기 민가 주택 대문 옆에 붙어 있는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찢어냈고, 내가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서 나의 자전거 뒷 받침대 위에 놓았다. 내가 눈치 채고 그에게 질문하자 그는 전단지를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나를 모함하려고 도모했던 것을 이룰 수 없었다.

다링허 공안 분국에 도착한 뒤, 왕 모와 당직을 서는 경찰 쉬옌밍(許彥明)은 나에 대해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내가 무고하게 당신들에게 붙잡혀 왔다고 대답하자, 그들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내며 나의 뺨을 때렸다. 쉬 모는 고무 경찰봉을 들어서 나의 머리, 등, 어깨를 5~6번 구타했다. 이로 인해 나는 등, 어깨 여러 곳이 시퍼렇게 멍들고, 왼쪽 팔은 보름 동안 들지 못했다. 그들은 잇달아 어떠한 수속도 이행하지 않고 어떠한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고 우리 집을 불법 수색했다. 그들의 이른바 ‘증거’를 찾지 못했고, 그제야 나를 석방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10/31218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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