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평어:장원거는 2015년 6월 29일 EMS로 보낸 고소장이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착오 없이 배달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날 밍후이왕에 장을 고소했다고 등록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1996년에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건강이 매우 좋았다. 이를테면 병을 없애기 위해 파룬궁을 수련한 것은 아니었다. 수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파룬궁의 주요 저작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단번에 사람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들에 대해 나는 종래로 답안을 생각하지 못했는데, 단번에 모두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수련하지 않고 또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당시 나의 근무 단위는 중국 농업대학이었다. 대법을 얻어 수련한 뒤, 단번에 나의 생활 방식에 매우 큰 변화가 생겼다. 원래 나는 또 수시로 담배를 좀 피웠고 가끔 술도 좀 마셨다. 대법을 배운 뒤부터 이 습관들을 전부 고쳐버렸다. 예전에 일부 피부염은 늘 치료를 해도 완쾌되지 않았는데 한동안 수련한 뒤 전부 나았다! 사람이 일단 수련생으로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도리를 깨달은후심신의 변화는 거대한 것이다. 정신적으로도 더는 생활과 근무 중의 일로 고민하지 않았다! 다시는 명리의 부추김 때문에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다. 사람은 더욱더 차분하고 선량해졌으며 참고 견뎠다.
마침 이때 나는 중국과학기술원의 박사연구생에 합격했는데, 이것은 수련이 가져다준 근무상의 첫 번째 큰 변화였다. 일에 필요하기만 하면 나는 얼마나 바쁘든지를 막론하고 시간을 짜내 가서 했고, 더군다나 사람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각도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2002년 후, 나의 업무 임무, 특히 과학 연구 임무는 이상하게 바빴기에 나도 미루거나 구실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힘껏 자신의 능력을 다 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업무를 다 완수했다.
다음은 내가 박해당한 주요한 경험이다.
2000년 4월 24일, 나는 베이징시 공안국 14처의 공안에 의해 불법적인 체포를 당했다. 파룬따파가 중국에서 당한 불공평한 대우 때문에 나는 2000년 2월에 천안문 광장에 가서 ‘파룬따파하오’ 현수막을 들었다. 이 일로 1년의 불법 노동교양처분 당했다. 대략 2000년 6월 1일, 나는 베이징 노동교양직원에 의해 파견처(調遣處)에 감금당했다. 그곳에서는 나를 핍박해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두 차례나 강압 전기봉 여러 개로 내게 전기 충격, 고문 학대했다. 이 일로 나는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베이징 퇀허(團河) 노교소에서는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나를 핍박하며 장시간 군대 자세로 쭈그려 앉기, 장시간 나무 걸상에 앉기, 수면 시간을 감소하는 고문 학대를 했다.
2003년 9월 19일, 나는 베이징 하이뎬구(海澱區) 완서쓰(萬壽寺) 파출소의 경찰에 의해 하이뎬 구치소로 납치됐다. 그리고 파룬궁수련을 견지한 것 때문에 오히려 나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렸다. 그 기간 파룬궁에 대한 나의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2003년 12월 사이, 나를 베이징 법제 양성센터의 한 개인 감금실에 감금했다. 밖에서는 무장 경찰이 초소를 지키며 24시간 동안 나의 일거일동을 감시했다. 대소변 누는 것까지 제한했는데, 대소변을 볼 때 뒤에서 역시 무장 경찰이 감시하며 나에게 고문 학대를 진행했다. 가장 길게 제한한 것은 대소변을 하루에 한 번만 치르게 한 것으로서 나의 몸에 극심한 상해를 조성했다. 그 후 대소변을 보려 해도 즉시 소변을 누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는데, 몸이 오랜 시간에 적응해야 했다. 베이징 첸진(前進) 감옥에서는 파룬궁에 대한 나의 믿음을 포기시키려고 독방에서 장시간 걸상에 앉혀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고문 학대를 진행했다. 이런 걸상에 앉힌 뒤에 두 발은 땅에서 떼고 있게 하여 두 다리에 매우 큰 압력을 조성했는데, 시간이 길어지면 매우 쉽게 부어올라 심신에 상해를 조성한다.
2005년 나도 모르게 중국 농업대학에서 나를 불법으로 해고하고, 내가 임시 거주했던 숙소마저 회수했다. 2006년, 장모님은 심각한 뇌출혈 증상이 나타났는데, 또 내가 당한 박해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2008년 5월 20일, 나는 베이징시 스징산구(石景山區) 바바오산(八寶山)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1개월 뒤, 2년 6개월의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6월 말, 나는 베이징 노교 직원 파견처로 옮겨져 감금당했다. 내게 파룬궁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파견처 집중훈련대의 한 대대장 천(陳) 모와 부대대장 옌(嚴) 모 및 다른 노교 경찰과 일반 노동교양요원은 집중훈련대대에서 여러 개의 강압 전기봉으로 나에게 장시간 고문 학대를 진행해 극심한 상해를 입혔다. 목에 생긴 물집은 약 2주의 시간이 되어서야 아물었는데, 목에는 아직도 전기 충격으로 생긴 상흔이 있다. 이 외에 또 대소변을 금지하고 동시에 수면까지 박탈하는 고문 학대를 진행했고, 장시간 걸상에 앉혀놓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고문 학대를 채용했다. 이런 작은 걸상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둔부의 근육과 피부에 매우 큰 상해를 입는다!
2008년, 나의 모친은 내가 여러 차례 박해당함을 감당할 수 없어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당한 박해는 완전히 장쩌민이 독단적으로 실시한 대법에 대한 박해로 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반드시 장쩌민을 고소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9/31206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