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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5일까지 밍후이왕에서는 329명의 장쩌민 소송장 사본 접수

[밍후이왕] (밍후이왕기자 종합보도) 6월 3일부터 5일까지 밍후이왕에서는 또 중국 대륙 20여 개 성과 4개 직할시에서 총 329명이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江澤民) 관련 소송 사본을 접수했다. 이 소송장들은 파룬궁수련생과 그들 가족 및 친구에게서 온 것으로 이미 우편을 통해 최고인민검찰원과 최고인민법원에 발송됐으며, 사법 기구에게 입안하고 법률에 근거해 16년간 소멸성 박해를 발동하고 유지한 원흉 장쩌민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하도록 요구했다.

1999년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망당망국(亡黨亡國)’이란 구실로 전 국가기구를 동원해 직접 박차를 가하며 전면적인 파룬궁 탄압 결정을 내렸다. 군대, 언론사, 공안, 경찰, 무장경찰, 국가보안, 사법계, 인민대표대회, 외교, 가짜 종교단체 등을 포함해 전력을 다해 천지를 뒤엎을 듯 파룬궁을 수련해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민중에게 소멸성 박해를 진행했다. 한 방면으로는 언론을 이용해 파룬궁을 모독하고 비난했다. 더욱이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건을 상연해 국민을 속여, 전 국민이 파룬궁에 대한 증오심을 일으키게 조장했다. 다른 한 방면으로는 610 불법 기구를 설립해 법률 위에 군림하며 폭력 기구를 동원해 무고한 파룬궁수련생을 붙잡고 감금했으며, 또 노동교양, 판결 및 고문 학대와 폭력 세뇌를 통해 수련생에게 자신의 믿음을 포기하도로 핍박했다. 더군다나 연좌제를 사용해 파룬궁수련생과 그들 가족이 사회에서 비난받게 함으로써 그들의 기본 생존권을 박탈했으며, 심지어 원래 화목하던 많은 가정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다.

장쩌민이 발동한 이번 박해가 파룬궁수련생과 그들 가족에게 조성한 피해는 우리가 329명이 부쳐온 장쩌민 고소장에서 볼 수 있다. 이 329명은 허베이성(河北省), 산둥성(山東省), 랴오닝성(遼寧省), 지린성(吉林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후난성(湖南省), 허난성(河南省), 쓰촨성(四川省), 충칭시(重慶市), 닝샤(寧夏), 산시성(陝西省), 후베이성(湖北省), 베이징시(北京市), 광둥성(廣東省), 장쑤성(江蘇省), 장시성(江西省), 안후이성(安徽省), 간쑤성(甘肅省), 상하이시(上海市), 톈진시(天津市), 네이멍구(內蒙古), 광시(廣西), 저장성(浙江省)과 구이저우성(貴州省)에서 왔다. 그들 중에는 회사 직원, 교사, 엔지니어, 노동자, 농민, 정부 공무원, 철도 노동자, 국방부 공무원, 의사, 기율검사사무실 주임, 은행 직원, 상인, 은행원, 당무 비서, 교통국 직원, 사법소 직원, 공상국 간부, 퇴직 간부, 지질대 직원, 기술감독국 국장, 광물채굴 엔지니어, 정유 노동자 등이 있다. 그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은 19세인 지린시 녜웨이젠(聶威暕)이고, 가장 연령이 높은 사람은 93세인 산둥성 자오위안(招遠)시의 셰후메이(謝淑美)이다. 연령 분포는 아래 도표와 같다.

그들 중 19세부터 69세인 사람이 81%이고 40세부터 69세인 사람은 74%이다. 그들은 모두 사회 중 중견 인사들이다.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진행하기 전 그들은 모두 청장년(24세부터 53세 사이)으로 지난 16년은 본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되어야 했으나 오히려 장쩌민이 발동한 박해를 당했다.

이 329명 중 파룬궁수련생의 가족, 친구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24명의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여러 형식의 박해를 당했다. 이 324명 중 이전에 납치 및 유치장이거나 구치소에 불법 구금당한 사람은 265명으로 82%를 차지했고, 230명은 가택 수색이나 다른 경제적 박해(예컨대 재물 갈취, 불법 해고, 월급, 장려금, 퇴직금 등을 공제 당함)를 당한 사람은 71%를 차지했으며, 감금 기간에 혹독한 구타나 전기 고문,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매달기 고문, 쇠의자 위에 채워지기, 수면 박탈 등 고문 학대를 당한 사람은 157명으로 48%를 차지했다. 그리고 노동교양 박해를 당한 사람은 134명이고, 세뇌반에 갇혀 박해를 당한 사람은 117명으로 36%를 차지했으며, 불법 징역형 판결을 당한 사람은 49명으로 15%를 차지했다.

이 파룬궁수련생들은 소송 중에서 모두, 파룬궁이 그들을 건강해지게 했고 도덕성을 향상시켰다고 언급했다. 예컨대 올해 43세인 헤이룽장성 빈현(賓縣) 마중보(馬忠波)는 소송 중에서 말했다.

“27세인 그해 나는 양측 대퇴골 괴사가 매우 심각했다. 동시에 또 동맥경화증, 오십견, 담낭염 등 10여 종류의 병에 걸렸는데 다리가 아팠을 뿐만 아니라 팔 등 몸 전체가 모두 아팠다. 오른팔은 펼 수 없어 물건을 들 수 없었고,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마저 다른 사람이 보살펴야 했다. 마지막에는 쌍지팡이를 짚고도 걸을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이 업어야 했고 땅바닥에서 기어야 했다. 나는 정말 그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약을 먹고 자살하려 했다. 파룬궁을 연마한 외할머니가 들으신 후 나에게 파룬궁을 연마하게 하셨다. 나는 ‘뼈마저 문드러졌는데 연공하면 다시 자라나나요? 더군다나 큰 병원들에서도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연공해서 좋아지겠어요?’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전법륜(轉法輪)’을 가져다가 보여주셨다. 다 본 뒤 나는 세상에 어찌 이렇게 좋은 책이 있을까, 왜 지금껏 나에게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까, 이것은 속인이 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이틀 반 시간을 들여 이 책을 봤다. 두 사촌 남동생은 매일 저녁에 차로 나를 밀고 다니며 연공장으로 가서 연공을 시켰다. 단지 사흘 저녁을 갔는데 나흘 째 되는 아침에 나는 곧 신발을 신고 땅을 밟고 걸을 수 있었다. 나는 기뻐서 크게 외치며 웃었다. ‘제가 좋아졌어요. 전 걸을 수 있어요. 아프지 않아요. 저는 정말 좋아졌어요!’ 아버지는 내가 정말 좋아진 것을 보고 놀라면서 ‘이것은 진정한 부처님께서 하사하신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올해 19세인 지린성 지린시 녜웨이젠은 소송 중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저는 어릴 적에 간질병에 걸려 출생한 후 하마터면 죽을 뻔 했습니다. 조부와 조모, 그리고 부모님은 의사의 말을 듣고 저를 포기하려 했습니다. 외할머니는 파룬궁을 수련했는데 급히 도착한 후 제지하셨습니다. 외할머니 때문에 어려서부터 저는 이 우주의 고덕(高德) 대법을 접촉했습니다. 10세 되는 해 저는 처음으로 파룬궁 사부님께서 해외에서 하신 설법을 보았는데, 이는 저를 깊이 빠져들게 했습니다. 이 책을 다 보고 저는 곧 외할머니에게 세계를 뒤흔든 기서(奇書) ‘전법륜(轉法輪)’을 달라고 했고 이로부터 수련의 길을 걸었습니다. 수련한 후 선천적인 질병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전부 사라졌습니다. 두통, 열이 오르는 등 잔병이 근본적으로 없어졌습니다.”

올해 52세인 지린성 융지현(永吉縣) 푸수화는 고소장 중에서 말했다.

“1998년 겨울, 모친의 영향으로 저도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단체 중에 들어섰습니다. 대법을 얻기 전 저는 누가 저를 건드리지 않으면 저도 남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누가 저를 건드리면 반드시 복수했습니다. 부인병이 있었던 이유로 일 년 내내 끊임없이 약을 먹었고 늘 다른 사람과 모순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도박하는 나쁜 습관에 물들었는데 가족은 누구도 저를 상관할 수 없었습니다. 파룬따파는 저를 구원해 돌아오게 했고 저로 하여금 인생의 의의를 깨닫게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대법 중에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서부터 심성을 제고하며, 때려도 되받아치지 않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않으며, 또 모순이 있으면 안으로 찾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사를 다른 사람을 위해 고려하고 명리정을 담담히 보며, 더욱 큰 사랑과 자비로 세인을 대해 차츰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수련을 통해 제 몸의 질병은 없어졌고 도박하는 나쁜 고질병도 고쳐버렸습니다. 마음이 정화되고 도덕이 승화되어 가정도 화목해졌습니다.”

하지만 장쩌민은 오히려 파룬궁 수련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얻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명의적으로 더럽히고, 경제적으로 파산시키며, 육체적으로 소멸한다’, ‘구타해 죽으면 자살로 친다’, ‘신체검사를 하지 않고 직접 화장한다’는 소멸성 정책을 실시했다.

위 문장에서 언급한 마중보는 2000년에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당해 완자(萬家) 노동교양소에 갇혀 두 차례나 강제 전향 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그녀는 소송장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경은 매우 악독하게 내 머리칼을 틀어쥐고 내 팔을 잡아당겨 모래 위에서 달렸다. 내 등과 두 발꿈치는 모두 끌려서 피가 흘렀고 신도 벗겨졌다……그들은 나를 남자 10대대로 끌고 갔다. 남자 대대에 도착한 뒤 나는 체벌을 당했는데 2박1일 동안 바닥에 두 발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내 오른 발은 문드러지기 시작했고 발은 부어올라 신발보다 더 컸다. 내가 쭈그려 앉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내 두 팔을 벽에 매달아 하루 동안 세워두었다. 그리고 나에게 딱딱한 의자에 앉도록 강요했는데 한 번 앉히면 꼬박 며칠 동안 앉혀놓아 둔부까지 문드러졌다. 농혈은 팬티와 한데 엉겨 붙었는데 씻는 것과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고문 학대를 9일 동안 받은 후 나는 여자 대대로 돌아왔다. 발은 문드러져 걸을 수 없었다……”

올해 45세인 닝샤 파룬궁수련생 마즈우(馬智武)는 소송장 중에서 말했다.

“99년 7.20 이후부터 나는 2년 노동교양처분을 당했고 두 차례 판결을 당했는데, 한 차례는 6년, 한 차례는 3년 6개월이었다. 세뇌반에 구금당해 있던 2개월 넘는 동안 전후로 11년 넘게 중국공산당의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 세뇌반에서 보냈다. 첫 번째는 닝샤(寧夏) 노동교양소, 우중(吳忠) 감옥에서 각종 고문 학대 ‘호랑이 의자 앉히기’, ‘아오잉(熬鷹: 수면박탈 고문)’, ‘사인침대(死人床)’, ‘늘이기 침대’, ‘매달기’, ‘걸상에 앉히기’, 각종 도구로 혹독하게 구타하기, 장시간 욕설을 퍼붓기, ‘콧구멍으로 음식 먹이기’, ‘끌기 고문(拖刑)’ 등 박해를 당했다.”

이 파룬궁수련생과 그들의 가족, 친구는 소송장 중에서 사법 기구에 법에 근거해 장쩌민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하며 피해자의 손실을 배상하도록 요구했다.

문장발표: 2015년 6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10/3106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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