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베이징보도) 올해 51세인 파룬궁수련생 가오슈잉(高秀英)은 베이징에서 교사 생활을 했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근무했고, 진실하고 상냥했으며, 또 차근차근 잘 일깨워주는 교사로서의 품성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인정받고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가오슈잉은 2014년 6월 4일에 창핑구(昌平區) 바이먀오촌(白廟村市) 시장에서 진상을 잘 알지 못한 악인에게 신고를 당해 현지 경찰에 납치됐다. 지금 창핑(昌平)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는데, 가족은 여태껏 면회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가오슈잉(高秀英)
불법 감금당한 기간, 가오슈잉은 줄곧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신앙을 가지는 것은 무죄임을 견지했으며 불법 심문을 저지했다. 2014년 8월 중순, 가오슈잉의 여동생은 창핑 구치소 예심 두젠궈(杜建國)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당신의 언니가 당신에게 전화번호를 주었는가?”라며 함정 질문을 했다. 가족은 이를 진짜로 믿고 가오슈잉의 이름을 말했다. 그 후에 예심에서 배치한 사람임을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자기가 나가게 되면 가오슈잉 대신에 가족에게 말을 전해주겠다는 거짓말로 그의 여동생의 전화번호를 얻어냈던 것이다.
이튿날, 가오슈잉의 가족은 구치소로 갔다. 예심을 담당한 두젠궈는 가오 씨 가족에게 서명을 하라면서 서류에 서명하지 않으면 보낼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족은 서명을 거부했다. 가족이 가오슈잉에게 물건을 남기려 하자 경찰은 이름이 없기에 물건을 남길 수 없다며 거부했다.
대략 9월, 두젠궈는 거듭해서 가오슈잉의 여동생에게 가족의 면회를 허락한다는 전화를 걸었다. 도착한 뒤, 두젠궈는 정문을 사이에 두고 보게 했는데, 서있는 6~7명 중 어느 사람이 언니인지를 물으며 동영상 촬영을 했다. 가족이 들어가서 면회를 하겠다고 하자 두젠궈는 “당신이 (가오슈잉이) 누구인지 확인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오슈잉의 여동생은 한 사람이 좀 비슷하다고 말했다. 가오슈잉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는데, 몸이 허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족은 가오슈잉에게 위험이 나타난다면 책임을 질 수 있는지를 질문했다. 두젠궈는 “책임질 수 있다. 밥을 먹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방법이 있다. 그녀를 굶어 죽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두젠궈는 일부 내용을 써서 가오슈잉의 여동생에게 서명하라며 “당신의 언니임을 증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가오슈잉의 여동생은 “상황을 잘 모른다. 내가 서명한 뒤, 당신들은 다시 다른 것들을 보충하고 거듭 가족이 동의한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서명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두젠궈는 즉시 격노하며 “당신은 정말 사리를 구분할 줄 모른다. 나는 힘들게 당신의 언니를 면회시켰다”고 말했다. 가오 씨 여동생은 “우리 언니는 나쁜 사람도 아니다. 파군궁을 연마했을 뿐이 아닌가. 백여 개 국가에서 모두 연마하는데 무엇이 나쁜가?”라고 물었다. 두젠궈는 가오 씨 여동생에게 “당신 후회하지 마라”고 공갈 협박했다.
10월, 창핑구 공안국에서는 가오슈잉의 고향 헤이룽장(黑龍江) 무링(穆稜) 임업국으로 갔다. 그리고 동영상을 찍으며 가오슈잉의 올케에게 가오슈잉인지를 확인시켰다. 가오 씨의 가족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며 이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그 후에 그들은 또 가오슈잉의 둘째 올케를 찾아 확인시켰으며 또 동영상을 찍고 서명시켰다.
12월, 가오슈잉은 불법 체포령을 받았으며, 아울러 서류를 헤이룽장 무링 임업국 가오슈잉의 둘째 오빠에게 보냈다.
가오슈잉의 조카딸은 두젠궈에게 전화를 걸어 가오슈잉의 상황을 문의했다. 두젠궈는 극히 난폭하게 “당신과 말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2015년 1월, 가오 씨 여동생은 거듭 창핑 구치소로 가서 상황을 문의했고, 근무자에게서 차오양(朝陽) 제1구치소로 보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찾아가자 그곳의 근무자는 “이곳으로 보내지 말아야 한다. 이곳에는 모두 중범이다”라고 말했다.
2월 12일, 가족은 변호사를 따라 차오양 제1구치소로 가서 기록을 조사했는데, 또 창핑 구치소로 옮긴 것이었다. 변호사는 창핑 구치소로 찾아가서 또 두젠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오슈잉의 서류를 검찰원으로 보냈는데, 증거가 부족해 반송되어 2월 2일에 또 창핑구치소로 옮겼음을 알게 되었다.
2월 16일, 변호사는 가오슈잉을 만났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사람은 수척했고 40kg이 좀 넘었으며 반응이 일부 느렸다. 가오슈잉은 누구도 감히 쉽게 믿지 못해 변호사에 대해서도 의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3월 중순, 가족은 가오슈잉에게 저축한 돈을 주러 갔다가 막 석방돼 나온 사람과 마주쳤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가오슈잉은 안에서 어떤 물건도 쓸 수 없었는데, 교도관 장랴오사(張遼沙)는 온갖 방법을 다해 가오슈잉을 괴롭히고 기본적인 용품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가오슈잉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4월 7일, 가오슈잉의 어머니(90세)는 딸을 보러 헤이룽장에서 기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다그쳐갔다. 베이징에서 또 3시간 넘게 차를 타고 창핑 구치소로 갔다. 두젠궈는 “내가 책임자에게 물어 보았는데, 금요일 전에 당신들에게 답신하겠다”고 말했다. 금요일이 되자 한 여성 사무원이 전화를 걸어 “안 된다.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4월 13일, 가오 씨의 노모와 가족은 거듭 창핑 구치소로 가서 예심 담당인 두젠궈를 찾았다. 당직 인원은 두젠궈가 휴가를 교체해 내일 출근한다고 말했다. 가오 씨 가족은 인근의 여관에서 묵었다. 이튿날 오전, 거듭 두젠궈를 찾았는데, 예심과의 한 여성 사무원은 두젠궈가 외출했다며 가족이 들어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오슈잉의 90세 노모와 가족은 밖에서 오후 2시까지 기다렸는데, 두젠궈가 정문어귀에서 전화를 거는 것을 보고 곧 그를 찾아 “당신은 외출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두젠궈는 금방 돌아와서 자료를 또 검찰원에 보냈다며 그의 관할에 속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은 증거가 부족한데 왜 또 검찰원에 보내려 하는지를 질문했다. 두젠궈는 하찮게 여기며 “상부 규정이 있는데, 당신들에게 말할 수 없다”고 표시했다. 가오 씨 가족은 거듭 “무슨 규정인가. 헌법에는 또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규정하지 않는가? 가오슈잉은 죄가 없는데, 당신들은 거의 일 년 동안 기한을 초과해 감금했다”고 말했다. 두젠궈는 회피하며 “나는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는 몸을 돌려 떠나버렸다.
가오 씨 가족은 또 창핑에서 이틀 동안 묵으면서 줄곧 창핑 구치소 문 앞에서 지켰다. 그들은 시종 가족이 가오슈잉을 면회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은 끊임없이 지나가는 경찰에게 “당신들의 책임자는 누구인가?”라고 물었는데 그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가오 씨 가족은 “당신들은 이런 식으로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가? 당신들은 범죄 조직인가? 90세 노인을 문밖에서 막으면서 왜 답변도 주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어떤 사람은 “당신들은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건의했다.
가오 씨의 가족은 구치소 인근의 변호사 사무소를 몇 군데 찾았는데, 그들은 모두 감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다가 “살인방화라면 받아들이는데, 파룬궁 사건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공안국에서 우리들에게 누가 파룬궁 사건을 받아들이면 곧 변호사 자격을 취소할 것이라고 통지를 내렸다”고 말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우리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사실 파룬궁을 연마함은 죄가 없다. 우리 변호사에 종사하는 사람은 매우 똑똑히 알고 있다. 그들은 매우 선량하다. 한 노인이 거리에 쓰러지면 상관하는 사람이 없으나,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상관한다. 후……”고 표시했다.
가오슈잉의 본적은 헤이룽장성 무링시 무링 임업국이다. 1999년부터 장쩌민(江澤民) 깡패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서 지금 16년째다. 중공(중국공산당) 베이징 공안은 온갖 계책을 다 써서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가오슈잉의 납치 박해사건은 단지 무수하게 많은 박해 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박해 관련 단위와 인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5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19/3096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