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위 문장에 이어서)
6. 악인악행에 대한인과응보는 착오가 없다
불법(佛法)은 중생에 대해 자비하고 선을 지향하는 모든 생명을 소중히 아끼는 동시에 불법의 위엄도 존재함으로, 바른 믿음을 박해하는 사악한 악도들을 한 명도 방임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명은 아름답고 사람의 본성은 선량한 것인데 후천적인 오염과 주입으로 일부 사람들이 명리를 위해 선량한 본성을 잃게 됐고, 심지어 사람과 신이 모두 분노하는 많은 일들을 함으로써 자신의 생명도 위험에 처하게 됐다.
사실 중국 5천 년 문명의 역사는 사람들에게 경험과 교훈을 참으로 많이 남겨줬다. 이 교훈들은 매 사람이 명석하고 이지적으로 자신의 인생길을 충분히 잘 걷게 할 수 있게 했다. 선행에는 선과요. 악행에는 악과로다. 그러므로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언제든지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천벌을 받게 될 것이다. 지금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이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상을 알리며 사악을 폭로하고, 반박해하는 등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마치 역사상 상나라의 탕왕이 하나라의 걸왕을 소멸하고,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의 주왕을 토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덕행이 있는 사람이 무도한 자를 치는 정의로운 행동은 진정 세인에게 칭송되고 칭찬되는 것인바, 역사책에 영원히 기재되는 것이다.
(1) 악인의 악행
중국공산당 체제 사회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어느 날 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심지어 양심을 파는 것조차 생각해보지 않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다른 사람을 박해했다.
1999년 7월 20일부터 장쩌민 정치 불량배 집단과 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기계로 전락한 공안, 검찰, 법원, 사법, 경찰, 군대 등 모든 권력기구가 총동원돼 전력을 다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졸개로서의 선두적 역할을 하게 됐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이처럼 사악한 중국공산당 체제에서 승진하고 혹은 부자가 되기 위해, 파룬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끝까지 협력해 박해했는데, 설사 진상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밥그릇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 본의와는 달리 박해에 참여했다. 15년간 연변 각지에서 박해에 참여한 흉악한 경찰과 악도들은 소수의 작당만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당을 뒤따라 소위 법률을 집행하면서 법을 위반하고 ‘진선인(眞善忍)’을 연마하는 보통 민중을 마구 체포하면서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미친 듯이 살해했다. 국내외 정의로운 인사들이 규탄하는 각종 악행을 저질렀다. 그것들의 만행은 남겨놓은 단지 짧은 기록 중에서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훈춘(琿春)시 공안국 부국장 리주쩌(李柱澤)는 2001년 7월 23일 오전 10시경 사복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경찰차량에 7, 8명의 사복경찰을 대동해 허난제(河南街)의 60대 파룬궁수련생 리(李, 여)를 자택에서 강제로 납치하려 시도했다. 그러자 이 수련생은 악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문을 닫아 잠궈 집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러자 부국장 리주쩌는 공안국에 연락해 만능열쇠를 가져오게 하여 강제로 문을 열고 들이닥쳐 그녀를 납치한 후 무단으로 가택수색을 했을 뿐만 아니라,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 딸까지 납치해 끌고 가서 심문했다. 그것들은 “만약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의 행방을 진술한다면 어머니를 석방하겠다”고 딸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그러나 그녀의 딸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자 불법적으로 하룻밤 수감시켰으며, 이튿날 그녀의 모친은 시 공안국 노동교양소로 이송됐다.
시 공안국장 옌리화(嚴利華)와 부국장 리주쩌의 계획 하에 시 공안국은 물론 산하 파출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안기관들이 총동원되어 각종 수단과 방법으로 현지 파룬궁수련생들을 박해했다. “누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하는 말만 들으면 즉시 불법적으로 체포해 노동교양처분을 내려 감금 박해를 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어떤 수련생은 할 수 없이 몸을 피해 외지에서 떠돌이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자 사악들은 또 외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는 파룬궁수련생들에 대해 ‘공개지명 수배령’을 내렸다. 그러므로 온 훈춘시의 버스정류소와 기차역은 물론 골목마다 파룬궁수련생의 수배사진이 나붙었는데, 심지어 공안국 파출소는 “누가 파룬궁수련생을 위해 사정하려면 그가 돈을 내라”는 문구까지 공개적으로 붙였다.
▲돈화(敦化)시 공안국장 김 모씨를 비롯한 시 형사대와 각 부서 흉악한 경찰과 악인들은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가했다. “파룬궁수련생을 1명 잡으면 장려금 3천 위안”이라는 포상금에 마음이 동해 그들 악도들은 법률을 무시하고 함부로 혹형을 가하며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 파룬궁수련생을 백방으로 괴롭히고 박해했다. 수사과장 볜원하이(邊文海)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죽도록 때려라, 맞아죽으면 밖으로 집어던져라!”하고 떠들어댔다. 그들은 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하루 종일 전기봉으로 전기고문을 가하고 철제 쓰레받기를 머리에 씌우고 몽둥이로 사정없이 힘껏 내려쳐 뇌진탕을 일으키게 해서 끊임없이 구토하게 만들었고, 또 어떤 수련생은 극심한 구타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몇 번이나 정신을 잃게 했다. 흉악한 경찰은 나중에 사람을 시켜 실신한 수련생을 업게 하여 시 공안국구치소로 이송했다. 구치소장 장쭤천(張左臣), 류스밍(劉是明) 역시 각 공안관련 기관들을 비호하고 서로 결탁하며 나쁜 짓을 했다.
민주 파출소장 런쥔펑(任俊峰), 리원쭝(李文宗)은 더욱 사악했다. 그들은 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할 때 느닷없이 6, 7명 악인들과 함께 덮쳐 마구잡이로 집단 구타하다가 실신하면 냉수를 퍼붓고, 줄로 묶거나 비닐주머니로 씌운 후 전기봉, 수갑, 족쇄 등 온갖 극악무도한 수단을 다 동원해 고문박해를 가했다. 악인들은 수련생의 심신이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고문을 가한 후 구치소로 압송해 감금했으며, 듣지도 묻지도 않고 수련생의 상처가 사라질 때까지 면회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들은 “내가 바로 법률이다!”고 떠들어대면서 개인적으로 혹형을 마음대로 자행한다. 그것들은 파룬궁수련생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일명 ‘사망자의 침대(死人床)’에 고정시켰다. 그렇게 혹독한 고문박해로 파룬궁 수련생의 정신은 온전치 못하게 되고 두 다리가 마비됐다. 그들은 누가 파룬궁을 연마했었다는 말만 들게 되면 당장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단행했다. 만약 대법책을 찾아내거나 진상자료를 찾아내면 중범죄로 취급해 노동교양 처분이나 형을 선고해 감금조치를 취한다. 그들은 그러는 과정에서 한 파룬궁수련생에게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교대하도록 하여 결국 그 수련생의 온 가족의 남녀노소를 모두 불법 수감한 후 1~3만 위안씩을 뜯어냈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건강상의 이유로 노동교양소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때도 석방하거나 귀가조치를 시키지 않고 계속 (임의로) 감금하는 등 사람의 목숨을 완전히 무시했다. 이와 같은 악행은 부지기수다.
▲연길시 옌시(延西) 파출소 흉악한 경찰 왕롄창(王蓮强), 왕리궈(王立國) 등은 2001년 9월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체포했다. 그들은 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직접 정치보위과로 이송해 수감됐는데, 수련생은 최(崔)씨라는 자의 한 무리 흉악한 경찰들에게 참혹한 매질을 당했다. 머리채를 잡고 뺨을 때리며 무릎을 차는 등 전신을 마구잡이로 구타했다. 혹독한 구타로 얼굴이 변형되고 머리카락이 1/3이나 빠졌다. 그처럼 잔혹한 구타와 고문박해는 5, 6시간이 넘게 가해졌다. 그런 후 수련생을 헤이쭈이쯔(黑嘴子) 노동교양소로 이송 감금됐다.
▲전 연변 노동교양소 교육과장 리원빈(李文彬)은 “노동교양소의 ‘4대 악인’ 중의 한 사람”이라고 자칭했다. 리원빈 등은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함부로 욕하고, 모욕하고, 구타하고, 체벌하는 것 등등이 규정위반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으면서도 나중에는 “사람을 때려죽일 수도 있다!”고 떠들어댔다. 리원빈은 명백한 직권남용자다. “교도관에게 말대꾸를 하며 (정신)개조에 대항한다”는 이유로 파룬궁수련생의 변호권, 상소권, 해석권을 박탈했으며,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격리시켰다. 그는 “‘경문’을 돌려가며 읽으면서 정신개조를 반대하는 여론을 유포시킨다“는 이유로 자오리탕(趙理堂), 차이푸천(蔡福臣), 샤오궈빙(蕭國兵) 등 파룬궁수련생을 심문하며 고문을 가했다. 건강상 체크를 위한 수련생의 신체검사를 할 때, 리원빈은 고문학대로 상처를 받은 수련생에게 ”말하지 말라!“고 강요했으며, 고문을 당해 상처투성이가 된 수련생을 격리시켜 자신의 죄행을 덮어 감추기도 했다.
리원빈은 또한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며 발언권마저 박탈했다. 설령 같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수련생 상호간에도 말하지 못하게 하면서 말을 하려면 “보고형식을 취하라”고 하면서 이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가했다. 점심시간 휴식을 취소하고 매일 10여 시간 앉아 있게 하면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욕하고 구타했다. 장기간 습기 찬 지면에 한 자세로 앉아있어야 했기 때문에 많은 수련생의 엉덩이에 욕창 증세가 나타났다. 식사조차 제한시켜 쌀이나 밀가루 식재료 반입을 취소시켰고, 심지어 강제 중노동 노역자에게 지급되는 쌀과 밀가루 보조조차 임의로 취소시켰다. 그리고는 식당책임자를 사주해 파룬궁수련생의 음식량을 적게 공급하도록 부추기고, 따라서 음식물을 구매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또 ‘완고하게 전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련생에게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으면서 마음대로 수련생을 구타하며 체벌을 가했다.
▲연길시 흉악한 경찰 류신원(劉新文)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있는 힘을 다해 진쉐(進學) 파출소의 하급 경찰관 신분에서 차오양(朝陽) 파출소장으로 승진 발탁됐다. 그는 일찍이 2000년 ‘610’ 및 관련 정부기관과 공모해 도문 석현(石峴)에 세뇌반을 설립했다. 류신원은 이 과정에서 승진과 축재를 위해 모든 수단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주민위원회 주임을 대동하고 도처로 다니며 파룬궁수련생을 찾는데 혈안이 됐으며, 찾아낸 수련생에 대해 강제세뇌를 단행했는데, 심지어 해산한 지 1개월도 안 된 임산부 수련생까지 가만두지 않았다. 류신원, 그는 차오양 파출소장으로 승진한 뒤에 자신은 물론 파출소 직원들에게까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도록 박차를 가하며 유난을 떨었다. 2003년 3월 연길시에 13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어 잔혹한 박해를 받았는데, 그 때 차오양 파출소에서 체포한 파룬궁수련생이 40여 명에 달했다. 차오양 파출소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고 박해하는 데는 관할 구역을 따지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자신의 관할이든 아니든지를 가리지 않고 그들은 파룬궁수련생을 알아내기만 하면 어디서든지 납치했다.
차오양 파출소의 흉악한 경찰들은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히는데도 잔인무도했다. 혹독하게 때리고, 비닐주머니로 씌우고, 끈으로 묶고(上繩-두 손을 모두 수갑으로 채우고 두 다리 혹은 한 다리를 족쇄로 채우고 반공중에 매달아놓고 모든 체중이 두 손에 있게 함), 약물을 주입해 자백을 강요하고, 호랑이 의자에 앉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등등 사람으로서는 할 수도 없고 견딜 수도 없는 수단과 방법으로 수련생을 괴롭히며 모욕했다. 그런 다음 수련생을 구류하고 노동교양처분을 시키고, 판결로 형을 선고하게 하는 등등 온갖 수단으로 고문과 박해를 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수련생의 가족을 속이고 협박했고 또 돈까지 뜯어냈다.
▲전 연변주 공안국 정치보위과 처장 리둥주(李東洙)는 전심전력으로 파룬궁을 박해해 장쩌민 집단에 의해 연길시 공안국의 파룬궁을 박해하는 부국장으로 발탁됐다. 2002년 12월 그는 더욱 박차를 가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면서 돈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이 됐다. “파룬궁수련생 1명을 고발하면 500위안의 포상금을 주겠다.”, “파룬궁수련생 1명을 잡으면 1천 위안을 포상한다”는 박해 통고문을 작성해 요소마다 게시했다. 그런 후 통고문이 게시된 인근에 사복 경찰관을 배치해 잠복근무를 시킨 후 “파룬궁수련생이 통고게시문을 뜯거나 훼손할 때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연길시 전체 대법제자의 강한 정념으로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1천여 장의 그 통고게시물이 전부 찢겨나갔다. 리둥주는 이에 기분이 상해서 다시 경찰관들에게 지시해 다시 그 통고문을 붙인 후 각 파출소와 각 주민위원회 주임이 책임지고 잠복근무로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되자 각 파출소에서는 지시 명령에 따라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하게 되면서, 어떤 파출소에서는 자진해서 박해에 한 발 더 나가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는 현수막, 포고문 등을 걸었으므로 진상을 모르는 일부 민중을 매우 심하게 해치게 했다. 이 때문에 더욱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납치당하고, 판결을 받았으며,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공갈과 협박을 당했으므로 어쩔 수 없이 믿음을 포기하고 양심을 팔아먹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안도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정치보위과) 흉악한 경찰 김진산(金鎭山)은 협박, 납치, 공갈 등 각종 비열한 수단으로 현지 파룬궁수련생에게 교란과 박해를 가했다. 2003년 7~8월에 김진산은 불법적으로 수감된 파룬궁수련생 장위펑(張玉鳳)을 굵은 몽둥이, 가죽벨트 등으로 혹독하게 마구 때려 몽둥이가 부러졌다. 구타당한 장위펑은 입에서 피를 토했고 온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했다. 그래도 김진산은 구타를 멈추지 않고 장위펑의 아랫배를 발길로 차는 바람에 장위펑은 바지에 소변을 보면서 기절해 쓰러졌다.
▲리웨이신(李維新-지린성 연길시 공업무역업 회사[하급 단위에 연길 담배공장이 있음]의 주요 책임자)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직원에게 ‘수련하지 않는다’는 소위 보증서라는 걸 쓰라고 독려하면서 “보증서를 제출하지 않는다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300위안의 임금 밖에 지급하지 않겠다”는 엄명을 내렸다. 이 회사의 보통 근로자의 임금은 1천 위안 이상이었다. 보증서를 제출하지 않은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몇 차례 진상전단지를 주면서 그가 양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랐다. 그런데 그는 수련생의 필체를 알아보고 사악하게도 공안국에게 수련생을 고발했다. 그러므로 이 파룬궁수련생은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게 됐으며 오지에서 유랑생활을 하게 됐다.
▲연변주 ‘610’ 주임 우징린(吳景林)은 1999년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부터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하는 데 직접 지휘하고 참여하면서 무자비하게 파룬궁수련생을 구타하면서 온갖 고문학대를 가했다. 악인 우징린의 지시와 지휘로 박해당한 파룬궁수련생은 궈페이쥔(郭培俊), 박홍권(朴洪權), 하오잉창(郝迎強), 신연쥔(辛延俊), 김성권(金成權), 장페이치(張倍齊) 등이 있다. 2005년까지 연변지역 민간에서 확인된바 의하면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10여 명이나 됐다. 박해당해 사망한 사건은 모두 우징린이 참여하고 지휘한 것과 관련이 있다. 현지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은 중형선고를 받았으며, 그 외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노동교양소에 감금돼 박해를 받고 있는데 모두 우징린이 참여해 지휘한 사건에 의한 것이다. 특히 2001년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하오잉창이 용정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기간에 우징린은 스스로 주 공안국의 몇 명 흉악한 경찰을 대동하고 구치소로 가서 하오잉창에 대해 야만적으로 고문 박해를 가했는데 매우 사악했다.
우징린의 지시로 경찰과 교도소 악인은 하오잉창를 악독하게 때리고 고문하는 바람에 하오잉창의 온몸이 상처로 피투성이로 됐는데도 계속해서 호랑이 의자에 묶어놓고 전기봉으로 전기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그렇게 고문박해를 가하는 한편 하오잉창에게 수면 박탈, 물과 음식물 지급 금지, 화장실 못 가게 하기 등 가혹한 박해를 가했다. 이런 고문박해로 연속해서 꼬박 사흘 동안 괴롭히다가 연길시 구치소로 송치했다. 그렇게 8개월 간 감금해 고문박해를 가한 후 죄명을 조작해 비밀재판에 회부해 8년형을 선고한 후 지린 교도소에 수감했다. 하오잉창은 2003년 지린 교도소의 고문박해를 받다가 간경화 말기증세로 복수가 차서 병보석 형식으로 풀려나왔다. 그 후 2005년 2월 하오잉창이 자신이 용정시와 연길시 그리고 지린 교도소에 당한 고문박해사실을 밍후이왕에서 폭로하자 화가 난 우징린은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연길시 ‘610’, 지린 교도소, 흉악한 경찰 등 관계자들과 결탁해 2005년 3월 10일 하오잉창이 창춘 헤이쭈이쯔 교도소에 장기수로 수감돼 있는 양밍팡(楊明芳)을 면회하는 기회를 이용 현장에서 하오잉창을 납치해 지린교도소에 감금했는데, 당시 그는 아직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문시 왕청(月淸)진 곡수(曲水)촌 전 촌장이며 현 사당서기인 팡리(方利)는 몇 년 동안 줄곧 장쩌민 집단을 바싹 따라서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여러 번 파룬궁을 창시하신 분을 비방하며 악의로 대법 진상자료를 찢고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하고 협박했다. 그가 재직하던 기간에 촌의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 세뇌, 수감당하고, 노동교양처분으로 감금됐다. 이미 1999년 말에는 한 번에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불법적으로 체포했다. 팡리는 그렇게 몇 년간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돈을 축적해 촌장에서 공산당 서기로 발탁됐다. 그는 계속 위로 올라가는 영달을 위해 ‘상부명령’이라면 무조건 따르며 집행하면서 있는 힘을 아끼지 않고 참여하면서 파룬궁을 박해했다. 본 마을의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업보를 받지 않으려면 악행을 계속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자중할 것을 권했으나 그는 “보응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머리를 (당장)떨어뜨리게 한다면 믿겠다”라고 대꾸했다. 심지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속하게 강제로 여자 파룬궁수련생의 얼굴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그때 수련생이 엄숙하게 “장쩌민을 따라서 나쁜 짓을 배우지 말라!”고 하자 그는 오히려 “공산사당을 따라가는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염치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금 여자를 취하는 것은 별 일이 아니야. 어쨌든 그녀들은 부끄러워서 감히 말하지 못하지”라고 말했다. 팡리, 그 자는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괴롭히고, 납치하고, 경제적인 파탄을 가하고,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리며 모욕을 주는 등등 적극적이고 야비한 수법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참여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여러 방법으로 그에게 진상을 알리며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소멸할 때 후회하지 않겠는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당의 깃발 아래에서 맹세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마사오위(馬紹玉, 한족, 50대)는 1999년 전에는 시 정부의 후방 근무자였다. 그러다가 2005년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하게 되면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상부로부터 주임직에 발탁됐고, 현지의 불법적인 조직의 ‘610’ 두목이 됐다. 마사오위는 해마다 한두 번씩 세뇌반을 설립해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는 것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했다. 주민센터, 지역사회, 직장의 일부 악인으로 조직한 일련의 집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게 했으며, 동시에 믿음을 견지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을 노동교양소로 보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마사오위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수단은 점차 발전했다. 그는 국가보안, 각 파출소에 지시해 소위 ‘민감한 날’ 혹은 ‘옌다(嚴打- 범죄 활동에 대해 준엄한 타격을 가함)’ 시기가 되면 수집한 정보에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하고 납치했는데 지금 이미 10여 명이 그에 의해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처분 또는 판결을 받게 되어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뿐만 아니라 노동교양처분으로 감금되어 고문박해를 받고 만기 출소해 집으로 돌아온 파룬궁수련생에 대해서까지 가만두지 않았다. 항상 찾아가 괴롭혔고 정기적으로 소위 사상보고라는 것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런 시달림에 견디지 못한 어떤 수련생은 할 수 없이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하게 됐다. 본시에서 발생한 큰 파룬궁 박해 사건[예를 들어 파룬궁수련생 리펑윈(李鳳雲), 선취안후이(申全会)에 대한 불법적인 판결] 등은 모두 마사오위가 참여한 사건이었다.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생은 지금까지 이미 1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 그 사건 전부에서 마사오위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연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쉬샤오펑(許曉峰)은 연길시 형사팀 대장과 국가보안대장으로 보직된 이래, 승진하고 축재하기 위해 박해조직을 만들어 직접 파룬궁을 적극적으로 박해했다. 쉬샤오펑은 최근 몇 년래 종교신앙을 박해하는 500여 건의 사건과 관련되는데, 그 중 8건은 파룬궁을 박해한 비교적 큰 사건이었다. 그는 26개 파룬궁 자료점을 파괴하는 데 참여했고 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이생활을 하는 부펑잉(卜鳳英), 류춘리(劉春立) 등 파룬궁수련생 35명을 불법 체포했다. 기초적인 통계자료에 따르면 쉬샤오펑 등이 박해를 주도해 이미 2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중형을 선고받았으며, 10여 명은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그 외 다수 수련생들이 박해를 받다가 사망했다. 2006년 2월 28일 쉬샤오펑은 샤오빈(肖彬)과 모의해 연길시 국가보안대대에서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다. 이처럼 파룬궁을 박해한 쉬샤오펑은 승진하고 축재해 부자가 됐을 뿐만 아니라 2006년 사당으로부터 ‘10대 경찰’이란 장려상까지 받음으로써 더욱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전심전력을 다 했다.
▲도문시 국가보안대대 흉악한 경찰 전용철(全勇哲)은 몇 년간에 걸쳐 명리의 유혹에 빠져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앞잡이가 됐다. 그가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죄악의 사건은 10여 건이 되지만 여기에서 단 몇 가지 실례만 든다. 2008년 3월 9일 도문시 석현(石峴) 파룬궁수련생 장영란(張英蘭), 자오옌핑(趙延平), 왕시즈(王錫芝), 장칭쥔(張慶軍), 저우구이링(周桂苓), 궁슈잉(宮秀英) 등을 납치하는데 참여했고, 납치해온 수련생에 대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 그는 장칭쥔, 장영란 등 노인에 대해 잇따라 6, 7회 뺨을 때리고 발로 연속해서 몇 번을 차는 등 1시간 넘게 폭력을 행사하다가 스스로 온몸의 지처서 힘이 빠지자, 의자에 주저앉으면서 흉악스럽게 대법제자에게 눈알을 부라리며 끊임없이 욕설을 해댔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감금당해 있는 기간 내내 경찰용 전기봉으로 각종 저질스러운 동작으로 만행을 저질렀는데, 여성 파룬궁수련생 저우구이링의 복부와 심지어 음부를 찌르기도 했다. 결국 고압전기고문을 당한 저우구이링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고 그 때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됐다. 그녀는 아랫배와 음부의 통증이 1주일 동안 지속됐는데, 팔과 허벅지 등은 전기충격과 몽둥이로 구타해 시퍼렇게 멍들었는데, 그 참상은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2008년 12월 중순 전용철은 도문시 국가보안대대 악독한 경찰과 함께 곡수촌(曲水村) 파룬궁수련생 류산전(劉善眞)의 집을 급습해 가택수색을 하고, 류산전을 납치해 혹심한 구타와 고문을 가해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됐는데도 계속 구타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입게 했다. 그렇게 골절상을 입은 류산전을 며칠간 방치한 후에야 겨우 병원으로 보내 접골치료를 받도록 했다. 그는 자신이 가한 고문죄악을 감추기 위해 “류산전이 ‘자살’하려고 층집에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다”는 거짓말을 했다. 전용철은 그 후 며칠이 지나서 곡수촌 파룬궁수련생 멍판친(孟繁琴)에게 4시간에 걸쳐 자백을 강요하는 구타와 고문을 가해 멍판친의 온몸을 성한 데가 없이 만들어 놓아 나중에 만나게 된 가족마저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2009년 3월 30일 도문시 곡수촌 농촌 금옥순(金玉順, 여, 72)은 자택에서 웨궁(月宮) 파출소의 한 무리 흉악한 경찰에게 납치당했는데, 당일 전용철은 오후 1시경부터 밤 9시까지 김옥순 노인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고문구타를 자행했다. 좌우로 노인의 뺨을 연속 때리는가하면 주먹으로 아래턱을 올려쳐 강타하고, 머리를 내리치고, 발로 허리와 다리를 차고, 손으로 머리채를 잡아당겨 휘두르는 등 잔악한 폭력을 가했다. 노인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낭자했다. 그런데도 전용철은 “내게 고문당한 사람은 들어올 때는 걸어서 왔지만 나갈 때는 모두 누워서 나가는 것이다”라며 소리를 질렀다.
▲전 연변주 정법위서기 가오제(高傑)는 재임 당시 중국공산당 장쩌민 집단을 바싹 따라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해 교도소와 노동교양소 그리고 세뇌반 등등의 소굴에 감금시켜 정신적 육체적인 박해를 심하게 받게 했고, 그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하여 가정을 파괴했으며, 심지어 가족이 죽었고, 또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집을 떠나 떠돌이생활을 하게 만들었다. 2009년 12월 2일 연변주 화룡시 법원은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리펑윈(李鳳雲)에게 불법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리기 위해 개정했는데, 정의로운 변호사가 무죄변론을 하자 판사는 자신의 (재판)행위가 이치에 닿지 않아 말문이 막히게 되어 마지막에는 대충대충 재판을 진행하다가 휴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불법적인 재판과정 중에 방청했던 많은 법률관계 집행요원들이 진상을 안 후 모두 웃음을 지었다. 이 법정사건은 중국공산당 고위층의 심기를 건드리는 계기가 됐다. 그러므로 이 사건이 있은 후 사당의 중앙 ‘610’ 부주임이 연길에 위치해 있으면서 직접 파룬궁박해를 지휘했다. 따라서 주 정법위서기 가오제는 주 전체 ‘610’ 회의에서 “이 일을 가장 엄중하게 가장 빨리 처리하겠다”고 천명한 후, 연변지역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미친 듯이 박해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흉악한 경찰과 결탁해 법원에서 리펑윈을 재판할 당시 은밀히 촬영한 녹화필름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을 가려낸 후, 파룬궁수련생을 개별적으로 미행하고 잠복하여 감시하다가, 가택을 급습해 금품을 약탈하고, 납치해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처분과 법원의 선고형식으로 감금하는 박해를 가했다. 연변주 정법위 등 관련 기관에서는 이처럼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육체적으로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더욱 엄중하게는 그들의 마음을 짓밟았던 것이다. 최근에 연변 각 지역에는 정신적으로 박해를 가하는 소위 세뇌반을 여러 차례 설립했는데, 그것들은 바로 그곳에서 파룬궁수련생을 전향시키기기 위해 끊임없이 박해를 가했다. 이로 인해 납치당한 파룬궁수련생은 10여 명에 달하며 또 이런 것 때문에 아직도 많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집을 떠나 떠돌이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화룡시 팔가자(八家子) 임업국 ‘610’주임 장원신(張文信)은 몇 년 동안 중국공산당 장쩌민 정치깡패 집단을 바싹 따라 악행을 저질렀다. 그는 일신의 영달과 축재를 위해 전력을 다해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에 참여하며 조직력을 강화했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잘 대해주는 척 위선을 보이면서, 은밀하게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노동교양 처분을 받게 하거나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도록 계획했다. 그렇게 한 후 모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밀어버리는 수법을 썼다. 팔가자 임업국 파룬궁수련생이 당한 박해는 대부분 모두 장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2010년 6월 9일, 팔가자 지역과 각 삼림농장 등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됐는데, 연변주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전문요원이 직접 지휘하고 장원신 등은 그들에게 협조 하는 식으로 참여해 야둥 저수지(亞東水庫) 세뇌반에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해 박해를 가했다. 그들이 이런 작태를 자행하면서 매일 소모한 자금은 1만 위안에 달했다. 예전에 장구이친(張桂琴)은 장원신에게 진상을 알리며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지 말라”고 알려준 적이 있으나 그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장구이친을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해 박해를 가했다. 결국 장구이친은 그들에게 여러 차례 교란당하고 납치당하는 박해를 당해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게 되어 2013년 5월 23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장원신 등은 지금까지도 계속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공안국 국가보안대장 자오즈쿠이(趙志奎, 남, 40)는 10여 년 동안 줄곧 장쩌민 집단을 바싹 따르며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일반경찰 직급에서 국가보안대장으로 발탁 진급됐으며, 이로서 더욱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전문적인 졸개가 됐다. 자오즈쿠이는 2006년 잠복감시, 미행, 가택침입, 납치를 일삼았고 증거조작을 위해 파룬궁수련생을 협박하고 구타하고 고문했다. 그런 수법으로 4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구류됐는데 그 중 20여 명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또 2008년 올림픽 전야에는 리옌성(李延勝),장구이친(張桂琴),우펑셴(吳鳳賢),쑨칭쥐(孫慶菊) 등이 납치됐는데, 그 중 우펑셴과 리옌성은 불법적인 노동교양 처분 2년을 받았다. 자오즈쿠이는 계속해서 2010년 초 파룬궁수련생 류쥔(劉俊), 팡펑셴(龎鳳仙), 중웨이쥔(鍾偉君), 리잉화(李英華), 류위바오(劉玉寳), 리룽춘(李龍春), 왕웨이핑(王偉平) 등을 납치해 법원으로부터 2~7년형을 선고받게 했고, 2010년 9 월 야둥 저수지에 세뇌반을 조직해 장허우청(張厚成) 부부, 류밍루이(劉明睿), 웨더저우(岳德洲), 왕위제(王玉傑) 부부, 왕옌춘(王艶春), 팡쉐메이(房雪梅), 인위화(尹玉華), 노년의 리(李)씨 부부 등 10여 명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해 감금시켰다. 2011년 1월 4일 연길시 팔가자 파룬궁수련생 정무전(鄭慕珍)이 오빠의 집에서 납치되어 4년6개월형을 선고 받게 했고, 2011년 11월 12일 자오즈쿠이는 허룽시 국가보안대 및 연변주(延邊州) 공안국 일행 4명과 함께 창춘시의 한 집의 방문을 강제로 부수고 들이닥쳐 방안에 있던 파룬궁수련생 추이옌링(崔艶玲)을 납치해 화룡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한 후 불법적으로 유죄판결을 받게 하기 위해 사건을 꾸몄다.
▲전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장 리푸(李夫)는 몇 년 동안 중국공산당을 바싹 따라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적극적으로 박해했다. 그는 일찍이 훈춘 임업국에서 근무할 때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직접 사람을 배치하고 관할 지역 파룬궁수련생 납치하는 등 광적인 박해를 가했다. 2001년 11월 29일 정오, 정법위 서기와 리푸 등이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황자전(黄家珍)을 속여 문밖으로 유인한 후 납치했다. 그들은 외부인들에게 “그녀가 베이징으로 (청원하러)가려 한다”는 유언비어를 조작해 퍼뜨렸다. 그 후 황자전은 매우 잔혹한 학대를 받았다. 리푸는 이처럼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한 공로로 팔가자 임업국장으로 발탁 진급된 것이다. 그는 진급되자마자 임업국 내에서 “사람마다 모두 한 관문을 넘는 소위 ‘약속카드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파룬궁수련생 한 명이 적발되기만 하면 여지없이 세뇌반에 감금했는데 그런 후 임업국은 8천 위안(약 145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불법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관리·감시하는 요원은 매 끼니마다 4가지 반찬과 국을 먹을 수 있었으며 또 월급을 지급받았다. 2012년 봄 임업국장 리푸는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기 위해 직업 없이 놀고 있는 사람을 모집선발한 후, 그들을 화룡시로 보내서 어떻게 (파룬궁수련자) 박해에 참여하는지 수법을 배우게 한 후, 매달 8백 위안(약 15만원)의 월급을 지급해주었다. 2012년 5월 그들에 의해 6명 파룬궁수련생들이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됐는데 그중 쑨칭쥐(孫慶菊)는 잔혹하게 학대를 당하며 7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다가, 2012년 12월 26일 팔가자 임업국 법원에 의해 억울하게 3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가족이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그는 변호사가 참여치 못하도록 협박했다. 이 모든 박해 사건은 전부 리푸의 명령과 지시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연길시 국가보안대대 중대장 정철수(鄭哲洙)는 1999년 7월 이래 줄곧 중공 장쩌민 깡패집단을 바싹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현지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한 매번 사건은 모두 그의 책임 하에 이뤄진 것이다. 그는 각종 사악한 수단을 이용해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정철수, 그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해 잔인한 수법으로 고문을 가했다. 예를 들면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가 넘을 때까지 수갑을 채워 놓고 온갖 고문을 가했는데 그의 수법은 매우 악랄했다. 파룬궁수련생을 고문 틀 의자에 앉힌 후 양다리를 묶어서 앞쪽 의자로 등판을 삼았다. 그런 다음 두 손을 등 뒤에서 함께 묶고, 또 뒤편 의자의 등판으로 받쳤다. 정철수는 두 조수에게 지시해 고문 틀에 수련생을 고정시킨 후 정철수 자신이 한편에 앉아 작은 유리병으로 파룬궁수련생의 가슴부위와 늑골에 압박을 가하며 문질렀다. 마찰로 물집이 생기고 여러 곳의 피부가 벗겨지고 터졌다.
정철수는 계속해서 납치해온 파룬궁수련생을 세뇌반에 보낸 후 일부 ‘불법자료’를 꾸미고 만들어내 수련생을 노동교양소로 보내거나 재판으로 중형을 받게 했다. 예를 들면, 2012년 4월 리기옥(李奇玉), 김순선(金順善), 태호(泰浩), 류춘리(劉春利), 박문철(朴文哲) 등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한 후 시 공안국 지하실(고문실)에서 전기 고문 등 학대를 가했는데, 그 고통의 참혹한 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두 노년 여성인 리기옥과 김순선도 예외 없이 모두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고문으로 호흡이 끊어져 죽음에 이르게 되자 급히 병원으로 후송해 응급처치를 했다. 병원의 응급처치로 많은 돈이 들게 되자 먼저 리기옥을 석방했다. 그러나 김순선은 곧바로 장의사 인근에 설립한 세뇌반으로 끌고 가 감금했다. 김순선 노인은 세뇌반이 끝난 후 다시 들려서 구치소로 옮겨졌는데 구치소에 감금된 후에도 계속 생명이 위독했다. 정철수 등은 또 불법적으로 증거자료를 위조해 태호, 류춘리, 박문철 등 파룬궁수련생에게 불법적인 유죄판결을 받게 했다. 악인 정철수, 그는 그처럼 몇 년 전부터 중국공산당을 위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지만 지금까지도 그 악행을 그치지 않고 있다. 2014년 연길시 파룬궁 수련생 조영록(趙永祿)을 납치해 불법적인 재판을 받게 한 것까지 모두 그 자의 참여와 계획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화룡시 정법위서기 리춘직(李春直)은 장쩌민 깡패집단을 바싹 뒤따라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주요한 책임자로, 세뇌반 설립을 계획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2012년 7월, 화룡시 ‘610’은 야둥 저수지에서 세뇌반을 조직했는데, 리춘직은 세뇌반의 정치부 주임직에 있으면서 세뇌반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생을 고문으로 괴롭혔다. 7월 22일 화룡시 서성진(西城鎭) 촌민인 파룬궁수련생 펑메이(馮梅)가 이 세뇌반으로 납치됐을 때 장형(丈刑)을 당하기도 했는데 그는 혹심한 고문박해와 위협으로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리다가 다리가 복합골절이 됐고 요추가 골절되는 등 중상을 입었다. 2014년 8월 말 화룡시 ‘610’ 악도는 야둥 저수지에서 세뇌반을 조직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역시 리춘직이 여전히 그곳에서 박해를 주도하며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도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장 오길룡(吳吉龍)은 일찍이 도문시 공안국 월궁가(月宮街) 파출소에서 소장을 역임했다. 그는 도문시 곡수촌(曲水村) 파룬궁수련생 장수셴(張淑賢)을 학살한 원흉이다. 2014년 8월 7일, 오길룡은 사람을 시켜 전화로 장수셴을 속여 집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게 했다. 경찰들을 지휘해 기다리고 있던 그는 차량으로 버스를 추적하다가 장수셴이 버스에서 내릴 때 납치해 변방지역에 위치한 향상(向上) 파출소로 끌고 갔다. 흉악한 경찰들은 수갑에 채워진 장수셴을 덮쳐 집단으로 무차별 폭력을 가했으며, 전기봉으로 아랫배 부위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혹독한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는데 그렇게 고문을 가한 지 1시간이 되지 않아 장수셴은 사망했다. 고문을 가했던 악도들은 장수셴이 사망하자 모두 당황했으나 악독한 오길룡은 오히려 음험한 수단을 생각해 냈다. 우선 사망한 장수셴을 빨리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누가 물으면, 갑자기 그녀의 심장병이 도져 시 병원에서 응급처치를 받고 있다는 식으로 둘러대라”라고 했다. 이후에 장수셴의 가족이 사망원인에 대해 확실히 의문점이 있음을 발견하고 사인과 범인을 가려내기 위한 조사를 실시하려 했다. 그러자 악독한 오길룡은 자신들의 추악한 살인행위가 들통 날 것이 두려워 시 ‘610’ 사무실의 지휘 하에 매일 경찰차 두 대와 여러 명의 경찰을 파견해 사망자 장씨 집 앞을 지키며 감시했다. 더구나 장수셴의 집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해 가족과 다른 사람과의 연락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오길룡 등 흉악한 경찰들은 또 “외지인이 와서 사망자 시신을 촬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누구도 장수셴의 집에 접근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위반자는 곧 체포 구금한다!”고 큰소리쳤다.
(2) 악인의 업보
1999년 7월 이래,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하고 협력한 악경과 악인 중에서 확실히 어떤 사람은 돈을 벌었고 관직이 높아졌으나, 그들은 그런 돈과 영달의 배후에는 ‘목숨을 잃는 재앙’이 그들과 그들의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다.’ 아직도 악행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은 빨리 벼랑 끝에서 고삐를 당겨 말을 세워라. 자신의 범죄 행각을 멈춰 빨리 저지른 만행의 손실을 되돌려 놓지 못한다면 보응이 내릴 때 후회해도 이미 늦을 것이다. ‘하늘의 그물이 매우 넓고 성글지만 빠뜨리지 않는다.’ 파룬궁을 박해해 보응을 받은 사례는 이미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한때 기세 등등했던 왕리쥔(王立軍), 보시라이(薄熙來), 리둥성(李東生), 쉬차이허우(徐才厚), 저우융캉(周永康) 등도 파룬궁을 박해하는 바람에 악운이 닥친 것이다.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죄를 범한 자들이 받은 (응보의) 참극은 연변 대지에서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보고 들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반성해 다시는 중국공산당 사당의 순장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이펑페이(代鵬飛, 남)은 안도현 량빙(亮兵)진 파출소직원으로 1999년 7월 20일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하자마자 차를 몰고 각 마을을 찾아다니며 파룬궁 서적을 몰수해 차에 가득 싣고 왔다. 어떤 곳에서는 책을 몰수해 차에 싣고 가려고 했으나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쓰다가 한참을 밀어서야 겨우 시동이 걸리기도 했다. 량빙진 파출소장 정시퉁(鄭錫銅)은 파룬궁수련생을 잡아서 구류소로 보내기도 했다. 2000년 3월, 인민대표대회 기간에 다이펑페이와 정시퉁은 차를 몰고 안도로 가는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다이펑페이는 현장에서 즉사했고, 정시퉁은 늑골 4개가 부러지는 골절상을 당했다.
▲리바오밍(李寶明, 남)은 전 안도현 바이허(白河) 임업국 훙위안(洪源) 목업 사당서기로 2001년 1월 5일 기만과 강제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스옌(石硯)의 인적 없는 산골짜기에 있는 양노원에 설립한 세뇌반으로 끌고 가서 감금했고, 1월 20일 또 4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한 후 구류소에서 박해를 가했다. 리바오밍은 2개월 후에 업보를 당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쉬원장(徐文江, 남)은 연변 노동교양소에 수감된 범인으로 악독한 경찰의 사주를 받아 파룬궁수련생을 단속하며 괴롭혔다. 2001년 4월부터 노동교양소에서는 60여 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일정한 정도의 노역과 체벌을 실시하다가 4월부터는 강도 높은 노역과 고문학대를 가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강제노역에 동원돼 매일 망치질을 해야 했는데, 끊임없이 부과되는 초과달성의 육체노동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음식물은 제대로 제공하지 않고 다만 옥수수와 밀가루만 먹게 했다. 쉬원장은 다른 범죄자들을 교사해 수련생을 매일 때리고 욕하게 하는 등 혹심한 체벌을 가했는데 그런 학대가 2개월 넘게 지속됐다. 어떤 수련생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구타당했다. 그러다가 범인 쉬원장은 2001년 6월 말에 석방됐지만 얼마 안 돼서 업보를 당해 열차에 깔려 죽었다.
▲자오셴인(趙顯林-음역, 남)은 연길시 차오양(朝陽) 파출소 흉악한 경찰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매우 열심이어서 상부로부터 업무지시가 없을 때도 스스로 늘 관할 지역으로 가서 잠복근무를 하며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했다. 그는 그런 열성으로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해 노동교양소로 보냈으므로 상부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해 심한 복합골절상을 당해 수 개월 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있게 됐다.
▲연길시 차오양제에 한 70대 조선족 여성이 있는데 그녀는 공산사령의 나쁜 영향을 받아 2002년 파룬궁 진상자료를 찢어버리고 나서 며칠 뒤에 곧바로 신장병(신장이 괴사) 수술을 받아 2만 위안의 거금을 날렸지만 건강이 계속 좋지 못했다. 그녀는 이후에 파룬궁수련생이 알려주는 진상 내용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서야 점차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연길시 진쉐(進學)가의 한 60대 한족 여성은, 2003년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하고 진상자료를 찢어버리는 바람에 업보를 당해 이튿날 바로 사망했다. 또 연변의 60대 조선족 여성은 대법 호신부를 태워 재앙을 당했는데 며칠 후 갑자기 그녀의 아들이 사망했다.
▲샤오빈(肖彬, 남)은 연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부대장으로 ‘웃는 얼굴의 호랑이’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을 대할 때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한’ 척 위선적인 얼굴을 보였지만 실상은 극히 음험하고 교활한 자였다. 그가 파룬궁수련생을 혹독하게 때리는 장면은 볼 수 없었지만 그는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고문하고 박해하게 하는 배후조종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몇 년 동안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 방법과 ‘방안’은 거의 다 그가 계획하고 작성한 것이었다. 역시 선악의 보응이 있음은 하늘의 이치다. 샤오빈은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참여한 후부터 재난이 끊이지 않았으니 위장병, 당뇨병, 심장병 등 여러 질병에 시달렸고 특히 2002년에는 현관문에서 나오다가 느닷없이 계단에서 넘어져 늑골 3개개 부러지는 골절상을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집안에 끝없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해 용하다는 사람을 찾아 부적을 붙이며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망상에 빠졌지만 여의치 않은 상태다.
▲왕푸성(王福生, 남)은 연길 구치소의 교도관이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다 업보를 당해 2003년 중풍에 걸려 입원했고 심지어 몇 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출근할 수 없는 지경에 처했다.
▲쉬원화(徐文華, 남)는 안도현 바이허 임업국 ‘610 사무실’ 주임으로 수단을 가리지 않고 경찰에게 지시해 파룬궁수련생을 때리게 했다. 이 자는 또 위칭(于慶)과 함께 노동교양소를 찾아가서 불법적으로 노동교양 처분을 받고 감금돼 있는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미리 석방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후에 악인 쉬원화는 심근 경색에 결려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바 있고,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악행을 저지른 보응으로 한 쪽 눈이 실명됐는데, 나머지 눈마저도 온전하게 보전하기 힘든 상태다.
▲양훙빈(揚洪斌, 남)은 안도현 바이허 임업국 사당서기로 파룬궁수련생의 박해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그의 계략으로 파룬궁수련생 36명이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처분을 당했으며, 한 명은 법원의 판결형식으로 중형을 받게 했고, 50명은 구류처분을 받게 했으며, 58명은 세뇌반에 감금시켜 박해를 가했다. 또 파룬궁수련생 왕톄쑹(王鐵松), 장위란(張玉蘭) 등은 그들의 고문박해로 사망했다. 그 악인 양훙빈은 이미 업보를 당해 백혈병에 걸려 혈소판 수혈을 받으면서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청리천(程里臣, 남)은 안도현 바이허 임업국 서비스회사 서기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대법사부님을 함부로 욕했다. 결국 교통사고로 늑골 2개가 골절됐는데 여전히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다가 이후에는 결국 독직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돼 판결을 받은 후 현재 병보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장슈량(張秀量, 남, 30대)은 2003년 12월 31일 오전 6시경 푸둥(福洞)진 푸둥가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있는 화룡시 파룬궁수련생 푸춘옌(付春艷)을 몰래 미행하다가 고발해 현장에서 납치당하게 한 자다. 그는 2004년 1월 초 걸어가다가 갑자기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창자가 끊어져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8천 위안을 쓰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정말로 악행에는 보응이 있다.
▲위안칭리(袁淸利, 남, 50대)는 안도현 푸싱(福興)향 ‘610’ 사무실의 전직 요원으로, 몇 년 동안 줄곧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참여했는데 2004년 말 간암으로 죽었다.
▲리성숙(李成淑)은 연길시 허난제 비수이(碧水) 지역사회 치안안보 전직 주임이다. 그 몇 년 동안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여러 차례 참여했는데 2004년 1월 병에 걸려 급사했다.
▲왕펑지(王鳳芝, 여, 48)는 안도현 얼도바이허(二道白河) 임업국 주민센터 직원이다. 그는 주임으로 재직하던 기간에 관할 경찰과 함께 파룬궁수련생을 여러 차례 박해했는데, 직접 파룬궁수련생 집까지 찾아가 가택을 수색하며 사람을 납치했다. 그는 직업이 없는 노년 여성들을 조직원으로 편성한 후 순찰하고 감시하게 하면서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면서 여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하고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하고 납치했다. 그는 2004년 7월 24일 저녁에 귀가하는 길에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왕펑지의 남편 류전핑(劉振平)은 왕펑지 영안실에서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해 욕설을 퍼부으면서 “파룬궁수련생이 사람을 죽였다”고 떠들어댔다. 그의 아내, 즉 왕펑지가 죽은 지 100일도 안 돼서 그의 남편 류전핑도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길에서 사망했다.
▲박욱동(朴旭東, 남)은 전 연길시 공안국 국장으로 1999년 장쩌민 정치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서부터 적극적으로 박해에 참여했다. 그는 불법적으로 여러 명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해 노동교양소로 보내는 박해에 앞장섰다. 박욱동은 그 공로로 2000년 주 공안국의 부국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인과응보는 하늘의 이치다. 그는 너무 많은 악행을 저질러 신장괴사 병에 걸려 상하이 병원에서 7,80만 위안의 거금을 들여 신장이식 수술(신장의 제공은 명확하지 않음)을 받았지만 반년 만인 2004년에 사망했다.
▲량창하오(梁昌浩, 남)는 용정시 차오양촨(朝陽川)진 룽푸(龍浦)촌의 촌민으로, 사당의 거짓말에 속아 자주 파룬궁 진상전단지를 찢어 업보를 당해 중병에 걸려 6,7천 위안의 병원비를 쓰고도 치료하지 못했으므로 현재 조금이라도 힘든 일은 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해졌다. 용정시 라우터우거우(老頭溝)진 룽푸(龍浦)의 양계장 책임자 둘째 아들 허우난(侯男)은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을 듣고 대법진상 스티커를 훼손하다 업보를 받아 출혈성 열병에 걸려 거액의 치료비를 낭비했다.
▲장루장(張汝江, 남)은 용정시 용문가 파출소장으로 1999년 7.20 이후 장쩌민 집단을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다가 여러 번 업보를 당했다. 한번은 그가 파룬궁수련생을 폭행하면서 “보자, 무엇이 업보라고?”라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댔는데 곧바로 손이 아파서 들지 못하게 됐고 입과 얼굴이 전부 부어올라와 즉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으나 그래도 낫지 않았다. 그는 이튿날 구치소로 달려가 수련생에게 “아프게 않게 해달라”며 용서를 빌었다. 그런 다음 연변 병원에 한동안 입원했으나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또 한 번은 대대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할 때 장루장은 역시 적극적으로 참여해 악행을 부렸다. 그런데 그 후 얼마 안 돼서 탈북자 용의자를 체포할 때 메고 있던 총의 끈이 갑자기 끊어져 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오발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동료가 방광에 관통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해 징계처분을 받았다.
▲쾅산(匡山, 남)은 돈화시 국가보안대대 교도원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매우 큰 죄악을 저질렀다. 2005년 1월 6일 쾅산은 미니버스를 몰고 사건을 처리하러 가다가 큰 나무에 부딪혀 현장에서 급사했다. 당시 차에 3명이 타고 있었지만 다른 2명은 부상을 당했을 뿐이다.
▲장머우라는 남자는 연길시 비수이(碧水) 지역사회 주임과 당서기직에 있을 때 사당선전에 속아 적극적으로 공안계통에 협력해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그는 파룬궁수련생의 가택을 불법적으로 수색해 컴퓨터, 대법서적 등 금품을 강탈했고, 심지어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 진상을 알리는 노년 파룬궁수련생을 파출소로 끌려가게 했다(포상금은 받지 못함). 장머우는 그런 악행으로 이미 현직에 있을 때 두 번이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여전히 깨달을 줄 몰랐다. 그는 퇴직 후 집에서 편안한 날을 며칠 보내지도 못한 채 2005년 말 갑자기 불치병에 걸려 입원한 지 며칠 만에 죽었다.
▲김기봉(金基峰, 남, 52)은 용정시 공안국 전 부국장으로, 전문적으로 형사구류처분을 담당하는 직책에 있었다. 1999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부터 용정시 공안국은 파룬궁에 대해 매우 심하게 박해를 가하면서 인근 많은 지역 파룬궁수련생들도 용정으로 납치돼 고문을 받았는데 그 고문박해정도는 상당히 혹독하고 처참했다. 그 악행은 전부 악인 김기봉과 관계가 있었다. 악인 김기봉은 2006년 8월 50여 세의 젊은 나이에 식도암으로 죽었다.
▲마핑례(馬平烈, 남, 40대)는 전 연길시 구류소장으로 재임당시 1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했는데, 연길시 ‘610’, 국가보안대대 흉악한 경찰 샤오빈과 결탁해 60여 세 파룬궁수련생 판수잉(番淑英)을 불법적으로 납치해 창춘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로 보내 박해를 가중시키는 바람에 결국 그 노인은 그곳에서 박해받다가 중풍 증상이 나타나 사망했다. 마핑례는 악행의 업보로 2006년 겨울 뇌출혈로 식물인간으로 됐다가 2007년 봄에 사망했다.
▲쉬샤오펑(許曉峰, 남)은 연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로 몇 년 동안 승진과 축재를 위해 전심전력으로 파룬궁을 박해했다. 그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적극 참여해 현지에서 납치하고 구류처분하고, 노동교양처분하고, 법원의 판결을 받게 하여 혹독한 고초를 겪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사망까지 했다. 대략 2002~2003년 경, 쉬샤오펑의 젊은 아내가 뇌혈전에 걸렸는데 왼손을 쓰지 못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러나 이 경고에도 쉬샤오펑이 반성하거나 회개하지 못한 채 계속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2007년 1월 17일 오전 9시 40분, 쉬샤오펑의 79세 노모 장(張) 씨가 집 부근 베이다(北大) 주유소 쪽에서 길을 건너다가 자동차에 치어 쓰러졌다. 사고를 낸 운전자가 그대로 현장을 떠나는 바람에 1시간 넘게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바닥에 피가 흘렀음에도 현장에서 구경하는 행인도 많았지만 누구도 다가가 살펴보거나 구해주려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과다출혈로 응급처치도 소용없이 죽고 말았다. 쉬샤오펑이 온갖 나쁜 짓을 다하자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친 것이었다.
▲쉬옌산(徐延山, 남)은 도문시 석연진 교통경찰관으로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CD를 줬을 때 그는 듣지 않고 그 자리에서 CD를 꺾어버렸다. 결국 며칠 안 되서 쉬옌산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가 깨지고 다리가 부러져 사망했다. 같은 차에 7명이 함께 타고 있었지만 진상을 명백히 안 세 명은 모두 무사했으나 죽은 네 명은 생전에 모두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다.
▲주지청(祝吉成)은 화룡시 팔가자 공안국 국가보안과장으로 2006년 8월 21일 팔가자 파룬궁수련생 정무즈(鄭幕芝)를 납치해 팔가자로 돌아가는 도중에 그들이 탄 경찰차가 농민 트랙터와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해 트랙터가 심하게 훼손됐다. 당시 트랙터에는 4명의 농민이 타고 있었는데 3명이 현장에서 즉사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응급실로 보냈으나 생사가 불분명했다. 이 4명의 농민들 가족은 주지청 등 악인을 법원에 고소했다.
▲허광석(許光石, 남, 53)은 연길시 교육위원회 주임, 부시장, 시 인민대표 부주임 등을 역임한 자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연길시 부시장 직에 있으면서 문화와 교육을 주관하는 기간에, 장쩌민 정치깡패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집행하면서 소위 파룬궁수련생 ‘전향’ 시책을 추진했다. 그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교재와 소책자를 편집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참여했으며, 또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조직을 구성해 파룬궁을 비방하는 서명운동 등을 전개시켰다. 그는 또 연길시 당국에서 파룬궁을 모함하는 사진전시회를 열고 대법을 욕하고 공격함으로써 세인을 해쳤다. 결국 온갖 악행을 다 저지른 허광석은 끝내 하늘의 징벌을 받아 2007년 2월 27일 저녁 10시경 운전을 하다가 자신의 차고 안에서 폭사했다.
▲김인옥(金仁玉, 여)은 연길시 창칭(長靑) 지역사회 창룽가(長龍街) 치안보위 주임으로, 늘 파룬궁수련생을 욕했고 대법서적을 몰수했으며 상부에 파룬궁수련생을 고발하고 모함했는데 “파룬궁수련생을 교도소로 보내 박해하겠다”고 기세를 부렸다. 김인옥은 또 남편과 함께 삽으로 파룬궁 진상자료를 훼손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만약 CD라면 발로 밟고, 만약 전단지라면 찢어 쓰레기통에 넣어라”며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악행을 부린 부부는 모두 보응을 받았다. 김인옥의 남편은 당뇨병에 걸려 몇 만 위안의 치료비를 썼지만 낫지 않았고, 김인옥은 심장병, 간질환 등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상샤(商霞, 여, 50대)는 연변주 ‘610’ 문서 담당자로. 몇 년 동안 중국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파룬궁을 모욕하는 관련 자료들을 적극적으로 작성해 대량으로 생산 정리하여 배포하게 했고, 여러 차례 세뇌반의 ‘전향’ 박해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는 파룬궁을 박해하는 유혈 박해 중에서 사악한 중국공산당의 공모자가 됐다. 그녀는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이미 천벌을 받았다. 그녀는 병원에서 장암 진단을 받고 이미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 공산당을 도와 잔악하게 박해를 가했는데 역시 업보가 끊이지 않았다. 암세포가 장에서 간장으로 전이됐고 2007년에는 또 폐로 전이됐다. 현재 병고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한 지경이다.
▲사오잔밍(邵战明, 남, 52)은 석연 파출소장을 역임하다가 이후에 도문시 안산(安山) 구치소장으로 발탁됐다. 재직 기간에 연길과 도문의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도문시 안산 구치소에 수감됐었는데, 그곳에서 극히 사악한 박해를 가했다. 도문 파룬궁수련생 최명숙이 2006년 3월 도문시 안산 구치소에 수감된 후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100여 일 간 단식을 단행했는데, 구치소는 생명이 위급한 최명숙에 대해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강제로 주입하고 약물주사를 놓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핍박해 돈을 영치시키라고 했다. 앙상하게 빼만 남은 최명숙을 다시 창춘 여자교도소로 보내 계속 박해했다. 2008년 3월 말, 악인 사오잔밍은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 전에 그는 당뇨병에 걸려 병고의 시달림도 받았다.
▲돤아이쥔(斷愛軍, 남, 38)은 전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로 1999년 7.20 이후 줄곧 중국공산당 사당을 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파룬궁수련생을 미행하고 감시하며 납치하고 고문 등을 자행했다. 단아이쥔이 처리한 현지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박해사건은 40여 건이나 된다. 그가 노동교양소에 보낸 수련생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 갔다. 1999년 8월 단아이쥔은 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적으로 10일 동안 심문했는데, 이는 이 수련생으로부터 많은 정보를 찾아내 다른 파룬궁수련생들을 납치해 박해하려는 속셈이었다. 심문 기간 동안 수련생을 널판자로 때리고 발로 차는 등 매우 악랄한 폭력수단을 사용했다. 이 수련생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그는 결국 고문과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2008년 3월, 40세도 안 된 악인 단아이쥔은 업보를 당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리웨이(李偉, 남)는 원래 용정시 공안국에서 일했고 1999년 전에 ‘전법륜(轉法輪)’도 읽은 적이 있으나 사악이 박해하기 시작한 후 리웨이 부부는 중국공산당을 바싹 따라 파룬궁을 비방했다. 중국공산당 제16차 전국대표대회 기간에 한 파룬궁수련생이 자주 리웨이 집에 가서 진상을 알렸지만 리웨이는 그를 공안국에 고발했고 경찰들을 대동하고 그 수련생 집을 수색했고, 또 수련생을 구류처분을 시켜 수련을 포기하게 했다. 몇 개월 후 리웨이는 업보를 당해 해고됐다. 그러나 리웨이의 악행의 화는 가족에게까지 연루됐다. 그의 장인도 수련을 했었지만 사악의 거짓말을 믿고 2000년 제야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죽었다. 리웨이의 어머니도 파룬궁을 연마해 신체가 건강해졌는데, 박해가 시작되자 자진해서 경찰관을 데리고 집집마다 다니며 대법서적을 수색해 걷어갔다. 그녀는 이후에 골다공증에 결려 반신불수가 됐다. 치료 기간에 파룬궁수련생이 그녀에게 호신부를 주고 진상을 알려주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읽으라고 알려줬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호신부를 태워버렸다. 결국 리웨이의 어머니는 2007년에 사망했다. 리웨이의 외아들도 27세밖에 안 됐는데 2008년 초 갑자기 사망했다.
▲최송철(崔松哲, 남, 40대)은 일찍이 구치소의 회계사와 교도원 그리고 부소장직을 역임했다. 그는 2001년 9월 불법적으로 수감된 여자 파룬궁수련생 3명에 대해 잔혹한 고문을 자행했다. 18~19시간 동안 수갑을 채워 매달아놓았다. 그 중 나이가 연로한 사람은 1시간 넘게 매달려 있다가 혼절하여 내려놓았으나, 손목에 수갑을 채운 상처는 한 달이 넘도록 아물지 않았다. 2009년 1월 30일 최송철과 아내가 차를 몰고 공항까지 사람을 바래다준 후 아내가 운전해 도문으로 돌아오다가 길가의 한 시설물을 들이박는 바람에 승용차가 폭발해 완전히 전소됐는데, 교통사고처리 담당자가 현장을 확인한 바에 의하면 이 부부는 완전히 새까맣게 타죽었다. 나쁜 짓을 한 최송철은 업보를 당해 죽었고 그의 죄악이 아내까지 미친 것이다.
▲최종덕(崔宗德, 남, 56)은 연길시 ‘610’ 주민센터 순찰대원이다. 중국공산당의 압박으로, ‘자신은 공산사당 요원이므로 당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박해에 참여했고, 도처로 다니며 파룬궁 진상자료 스티커 등을 찢었다. 결국 2007년 6월 26일, 최종덕은 업보를 당해 미니버스에 부딪혀 연길병원에 입원했다.
▲장춘옌(姜春岩)은 안도현 ‘610’ 사무실 부주임으로 그는 2004년 안도현 검찰원 반탐국에서 안도현 ‘610’사무실로 전근돼 온 자다. 그는 사당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곳곳에서 “파룬궁은 ‘반동조직’이다”라는 선전을 했고, 대법사부님을 욕하면서 “파룬궁 조직을 소멸하겠다”고 기세 높게 떠들어대기도 했다. 파룬궁을 박해하기 싫어하는 향진과 말단조직에 압력을 가하며 기한 내에 성과를 올리라는 압박을 가했다. 2007년 9월 26일, 장춘옌은 갑자기 하반신이 말을 안 듣고 말을 똑똑하게 하지 못하게 돼 안도현 병원에 갔는데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
▲김창권(金昌權, 남)은 전 연변주 ‘610’ 사무실 부주임으로 몇 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유혈 박해를 가하는 중에 그 박해의 공모자 역할을 했다. 몇 개월 전에 김창권은 자택 화장실에서 넘어졌는데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그러나 2007년 9월 19일경 갑자기 손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급히 연변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외상성 뇌출혈이라는 진단과 함께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9월 29일 재수술을 하고 연변병원에 입원했다.
▲셰지민(解志民, 남, 51)은 용정시 주민이다. 이전에 파룬궁을 배워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얻었지만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하자 사당의 ‘일언당’ 거짓말 선전을 믿고 파룬궁수련을 포기해 다시 심각한 병세가 나타나 위독하게 됐다. 이때 어떤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대법이 좋다는 것만 기억하면 사부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다”라고 알려줬다. 그러자 셰지민은 말대로 해서 과연 목숨을 지켜냈다. 그러나 그는 파룬궁 사부님께서 주신 그 소중한 기회를 소중히 아낄 줄 몰랐다. 주민센터에서 순찰하는 일을 했고 공안의 비밀명령을 집행했으며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는 일을 했다. 또 대법 진상표어에 페인트칠을 했고 대법진상 자료를 몰수해 공안국에 바쳤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이 그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했을 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선악유보를 믿지 않았으며 한 달에 500위안 버는 것만 매우 중시했다. 결국 셰지민은 하늘의 징벌을 받아 2007년 9월 22일 일을 마친 후 질병이 도져 이틀 후에 바로 숨졌다.
▲쉬안(玄) 모씨는 46세로 용정시 카이산툰(開山屯)진 사당서기 겸 진장이다.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고 박해하는데 여러 번 참여한 후 2007년 10월말 업보를 당해 뇌출혈로 급사했다.
▲장잉라오(姜英勞, 남, 55)는 전 용정시 공안국 정치보위과 과장직에 있었고, 이후에 연길시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로 전근됐다. 그는 파룬궁을 박해하는데 매우 힘을 기울였는데 특히 파룬궁 내부에 매수한 사람을 침투시켜 특무(스파이) 노릇을 하게 하여 진상자료를 보내는 형식으로 파룬궁수련생을 가려내 체포하려 했다. 그의 음모를 파룬궁수련생들이 이미 알아차리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용정 지역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모든 사건은 전부 장잉라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지금 장잉라오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몇 년 전 운전하다가 대낮에 다른 차량과 부딪혀 다리가 부러지고 차량이 파손됐으나 가해차량을 찾지 못했다. 그의 악행으로 인한 화는 가족까지 미쳤는데 그의 아내는 신장이 모두 괴사해 하나는 절단하고 출근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에서 눈물로 지새며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고 있다.
▲장원신(張文信, 남)은 화룡시 팔가자 임업국 정법위 사무실 주임으로 ‘610’두목이다. 여러 차례 파룬궁수련생 납치를 계획하고 실행했으며 세뇌반을 꾸리고 노동교양처분 방식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2011년 5월, 장원신은 발을 심하게 삐어 골절됐다. ‘610’ 사악 계통이 조직한 계획된 여행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리중친(李忠勤, 남, 58)은 전 연변주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를 주관하는 부국장이었다. 그는 연변주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차장직에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장쩌민 집단을 따라 온 주 지역 국가보안, 파출소 등 공안부문 기관을 독려하고 지휘해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하고 박해하는 조직을 구성했으며, 박해를 위한 계획과 음모를 꾸며 파룬궁수련생을 납치, 구류, 노동교양, 판결 등 잔혹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이 사람이 전심전력으로 파룬궁을 박해해 중국공산당 사당으로부터 신임을 받아 연변주 공안국 국가보안대대를 주관하는 부국장으로 승진 발탁된 것이다. 10여 년 동안 연변 지역에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악독한 사건은 모두 리중친이 직접 계획하고 꾸민 사건이다. 그는 2011년 6월 17일 오후 60세가 안 되는 나이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리바오샹(李寶祥, 남)은 훈춘시 춘화진 사당위 서기로 재직기간에 현지 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2011년 6명의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는데 그 중 4명이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았고, 2명이 세뇌반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춘화진은 인구가 1만 명도 안 되는 작은 지역인데 리바오샹은 위로 상납해야하는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다. 그는 결국 최종적으로 보응을 받았다. 2011년 11월경 그가 몰던 차가 량수이(凉水) 대교 아래로 떨어졌다. 며칠 후가 돼서야 양을 방목하는 사람에게 발견됐다.
▲량웨이(梁偉, 남)는 훈춘시 춘화(春化)진 파출소장으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파룬궁수련생을 1명을 박해하면 5천 위안의 포상금을 받았는데 전부 혼자 독식했다. 2013년 이제 겨우 30세가 넘은 량웨이는 중풍에 걸려 출근하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다.
▲두커친(杜克琴, 여, 50여세)은 팔가자 살림공안국 감독대대의 교도원으로 대대장, 허베이 파출소장 등의 직을 연이어 맡았다. 그는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데 여러 번 참여했다. 2008년 올림픽 전야에 공안국 국가보안대와 협력해 현지 파룬궁수련생 리옌성(李延勝), 장구이친(張桂琴), 우펑셴(吳鳳賢), 쑨칭쥐(孫慶菊) 등 4명을 납치했다. 그 중 쑨칭쥐, 리옌성은 불법적인 노동교양처분을 받게 했고, 쑨칭쥐는 정신병원으로 보내 박해를 가했다. 그는 결국 2013년 업보를 당해 폐암에 걸려 고통을 받다가 견디지 못하고 2014년 8월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맺음말
1999년~2014년, 붉은 재앙이 중국대지에서 기승을 부려 수많은 파룬궁수련생이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다가 잔혹한 탄압과 박해를 받았는데, 인신의 자유를 잃었고 생활터전과 수단을 잃었으며 심지어 건강과 생명까지 잃었다. 귀중한 중국인, 연변 고향 사람들이여, 직접 혜택을 받은 파룬궁수련생으로서 우리는 당신들에게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신체를 건강하게 하고, 도덕이 승화되게 하는 진상을 알려줄 책임이 있다. 그러나 보통 백성인 당신들도 파룬궁수련생이 믿음을 견지하다가 잔혹하게 박해당한 진상을 알 권리가 있다. 박해당한 사람이 아마 당신의 가족, 친구, 동료, 동창 등일지도 모른다. 설령 아무런 관계나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같은 땅에서 자란 같은 고향사람이고 같은 민족의 동포들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아직까지 중국공산당을 따라 박해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권고한다. 신과 인민들이 준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자신이 ‘믿음’ 혹은 ‘박해’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파룬궁 진상을 알아보길 바란다. 정의를 선택하면 바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전편 문장 끝)
문장발표: 2015년 2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8/3054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