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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진다,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강제로 독극물 주입당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哈爾濱市) 아청구(阿城區) 파룬궁수련생 셰진다(謝金達) 는 2010년에 3년의 불법판결, 선고를 받아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당했다. 2013년 1월에 셰진다는 집으로 돌아왔다.

감옥에 있던 기간, 셰진다는 간질병을 치료한다며 강제로 독극물을 주입 당해 그녀의 기억력이 확연히 감퇴되었다.

2010년 7월 7일, 파룬궁수련생 셰진다와 정궈린(鄭國林, 박해로 이미 사망했음), 쉐위샤(薛玉霞)는 하얼빈 다오와이(道外) 융위안진(永源鎮, 원래는 아청(阿城)의 담당에 귀속됨)에서 진상을 배포하다가 악인에게 모함당했다. 그들은 현지 파출소에 의해 불법으로 체포당해 그날 저녁 하얼빈 제2구치소로 보내졌다. 그런 다음 하얼빈 다오와이 국가보안대대, 다오와이 검찰원, 다오와이 법원 측은 연합하여 그들 3명을 모함한 동시에 억울한 재판을 했다. 셰진다는 3년의 억울하고 불법적인 재판으로 헤이룽장 여자감옥에 보내졌다. 헤이룽장 여자감옥의 7감구역, 9감구역과 13감구역에 불법 감금당했다. 13감구역은 감옥 병원에 속한다.

셰진다가 불법 감금당한 후, 가족은 그녀의 건강상태가 매우 걱정되어 면회를 갔다. 그러나 하얼빈 다오와이분국 국가보안대대는 단호하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 번은 그녀 남편이 셰진다에게 물건을 보냈는데, 구치소 경찰이 ‘비정상적인 사람’인지를 물어 남편은 셰진다의 지병이 재발했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은 더욱 걱정되었다. 이 때문에 늘 감옥 측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는 경찰은 모두 귀찮아하며 “우리도 그녀를 이곳에 있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녀가 이곳에 있으면 우리는 또 그녀를 관리해야 하며, 늘 병이 재발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라고 말했다.

셰진다는 불법체포를 당한 뒤, 정신적으로 매우 큰 압력을 받아 구치소에서 발작하기 시작했는데, 감옥에 도착한 뒤 더욱 심각해졌다. 그녀가 병이 발작하기만 하면 감옥 측은 곧 약을 먹였다. 셰진다가 먹지 않으면 그들은 곧 그녀에게 강제로 먹였는데, 다 먹은 뒤에 셰진다는 구토하기 시작했다. 약을 다 먹은 다음 병 증세는 줄지 않고, 또 점점 심각해졌는데, 마지막은 하루 사이에 2~3차례나 발작했다. 사람들이 속칭하는 간질병인데, 경련을 일으키면 매우 놀랍다. 가족은 여러 차례 석방을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이리저리 시간을 끌었다. 마지막에는 발작하는 횟수가 정말 너무 많고 발작하면 정말 너무 놀랍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그들은 6개월 앞당겨 셰진다를 석방했다.

2013년 1월, 셰진다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얼굴에는 발작으로 쓰러지면서 멍든 흔적이 있었다. 가족은 그녀가 멍청한 것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어도 기억하지 못했고 기억력이 뚜렷이 감퇴되어 있었다. 이것은 분명 감옥 측에서 셰진다에게 독극물을 먹여 조성된 것이었다.

2년 동안 가족의 세심한 보살핌으로 셰진다는 정상적인 건강을 회복했으나, 기억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파룬궁을 수련해 건강을 회복하다

셰진다(여, 1977년생)는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구(阿城區) 다링향(大嶺鄉) 롄다오완촌(鐮刀灣村) 농민이다. 1998년 여름에 그녀는 남편 류즈민(劉志敏)과 결혼했다. 결혼 뒤 그녀는 남편의 성질이 매우 많이 변한 것을 발견했다. 예전에는 늘 시아버지와 다투던 그가 지금은 참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웃으면서 발생한 일체에 직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이 일체의 개변은 모두 자신이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이며,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모순에 부딪히면 무조건 안으로 찾아 화를 내면 안 되고 참도록 가르친다고 알려주었다. 남편은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고 변화가 매우 컸다. 이것은 그녀에게 파룬궁이 내심 사람을 개변하는 정말 좋은 공법이라고 느끼게 했다. 그래서 그녀도 따라서 배우기 시작했다.

결혼 전 셰진다는 간질병에 걸렸는데, 발작하기 시작하면 가족은 곧 약을 먹였다. 그러나 약을 먹어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이는 그녀와 가족을 모두 매우 고민스럽게 하여 전 가족의 마음의 병이 되었다. 셰진다는 수련한 뒤 약을 중지했다. 그러나 발작하는 횟수는 오히려 점점 적어졌고 그녀의 몸은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1999년 4월 23일, 딸의 출생은 이 가정에 또 행복과 기쁨을 더해 주었다.

예전에 당한 박해

이 가정에서 평정하고 상화로운 생활을 보낼 때인 1999년 ‘7ㆍ20’에 중공 사당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천지를 뒤엎을 듯한 박해가 시작됐다. 이후 그녀의 가정은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원래 그녀 집 앞은 바로 파룬궁수련생의 연공장이었는데, 박해가 발생한 뒤, 그녀의 집은 박해대상의 초점이 되었다. 박해가 막 시작됐을 때, 주민 센터, 경찰은 사흘이 멀다 하고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 남편 그리고 시어머니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갔던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 그녀들을 보면 모두 미안해하며, 모두 그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의 정상적인 생활을 교란했음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상부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그녀들은 갈 때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었고, 명절 때면 또 콩기름, 밀가루 같은 것을 선사했다. 그들이 작은 선심을 베푸는 목적은 그녀와 남편을 위로하여 그들이 베이징으로 가지 못하게 한 것인데, 주민 센터, 경찰은 업무와 이익에 연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2000년 설 전날, 주민센터와 경찰은 또 그녀의 집으로 와서 그녀와 남편에게 베이징으로 가는지를 물었다. 그녀 남편은 그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들은 확신이 없자 돌아갔다가, 그날 밤에 곧 남편과 시누이를 납치해 아청 제2구치소에 감금했다. 셰진다의 딸이 1살도 되지 않아 젖을 먹여야 했기에 셰진다는 이 재난을 피할 수 있었다. 남편은 그들에 의해 64일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시누이는 3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해서야 풀려났다. 그녀는 스스로 어린 딸과 두 노인을 모시고 하루를 일 년같이 우울하게 보냈다.

2005년 5월 26일, 남편은 파룬궁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악인에게 모함당해 불법납치를 당했고, 아울러 4년의 불법판결을 당했다. 이후 그녀의 집은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셰진다는 어린 딸을 부양하고 또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했을 뿐만 아니라, 또 나가서 일해 돈을 벌어 가까스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전 가족은 모두 정신, 경제와 육체적인 손상과 시달림을 당했다. 남편이 억울한 재판을 당한 뒤부터 주민센터와 경찰은 약간의 변화가 있기만 하면 그녀의 집으로 가서 교란, 공갈 협박했다. 2008년 4월, 시어머니는 감옥으로 그녀 남편을 면회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셰진다는 이 극심한 압력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지병인 간질병이 재발하여 또 발작하기 시작했다.

2009년 5월 25일,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의 격려로 셰진다는 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몸은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문장발표: 2015년 3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26/3067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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