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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무죄 변호, 검사는 할 말이 없었다

-랴오닝성 선양시 선허구 법원에서 3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법정 심리

[밍후이왕] 2015년 3월 19일,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瀋陽市) 선허구(沈河區)법원에서는 3명 파룬궁수련생 충밍(叢明), 궈훙옌(郭鴻雁), 중옌춘(宗豔春)에 대해 법정 심리를 진행했다. 불법적인 법정 심리는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12시 반까지 지속되고 끝났는데, 3시간이나 걸렸다.

郭鸿雁

(사진 설명): 궈훙옌(郭鴻雁)

궈훙옌의 변호인은 그녀의 모친 마슈란(馬秀蘭) 여사이고, 중옌춘의 두 명 변호사는 모두 선양의 현지 변호사이며, 충밍의 변호사는 베이징 변호사 후구이윈(胡桂雲)여사이고 변호인은 그의 누나였다. 궈훙옌이 제1피고여서 마슈란 여사는 제1변호인이었다.

법정 심리 때, 검사 리쿠이(李魁)가 핸드폰을 구매하고 위키 사이트(維基站)를 구매해 파룬궁을 선전한 것으로, 궈훙옌 여사를 기소했는데, 궈 여사는 이에 대해 전부 부정했다.

검사 리쿠이는 진상전화를 거는 핸드폰 4부, 50여 장의 시디를 만들어 배포하고, 위키 사이트를 연계하여 사람을 찾아서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중옌춘을 기소했다. 2명의 선양 현지 변호사는 중옌춘을 위해 무죄 변호 및 죄상을 줄이는 변호를 했다.

검사 리쿠이는 장레이(張雷, 이미 집행 유예를 판결 당했음)에게 축전지를 제공한 일로 충밍을 기소했다. 충밍은, 장레이가 축전지로 무엇을 하는지를 몰랐고, 위키 사이트의 일도 그는 근본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후구이윈 변호사는 충밍을 위해 무죄변호를 하여, 현장에서 신앙 자유, 파룬궁을 수련함은 무죄임을 진술했다. 그녀는 검사에게 “당신은 ‘사교조직을 이용해 법률의 실시를 파괴했음’으로 저의 당사자를 기소했는데, 누가 파룬궁은 ×라고 정했습니까? 무슨 법률적 근거가 있습니까? 저의 당사자는 또 어느 조목의 법률실시를 파괴했습니까?”고 질문했다. 그녀의 일련의 질문에 대해 검사는 시종 모두 대답할 방법이 없었다. 검사 리쿠이는 대답할 말이 없었고 시종 모두 기운이 없었다.

맨 마지막에 법정은 휴정을 선포했고 합의청에서 합의했다.

법정 내의 모든 사람은 모두 후구이윈의 변호사가 진행한 무죄변호에 대해 깊은 감동을 받았다. 많은 가족은 베이징 변호사를 칭찬했고, 선양의 2명 현지 변호사의 표현에 대해서는 모두 불만족해했다. 법정 심리가 끝난 뒤 중옌춘의 가족은 선양의 현지 변호사를 선임한 것을 후회하며, 역시 베이징의 변호사를 선임해 변호를 해야 함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궈훙옌의 부모도 깊은 감동을 받고 역시 베이징 변호사가 좋다고 말했다.

선양 파룬궁수련생 충밍, 궈훙옌, 중옌춘은 2014년 4월에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이미 11개월이나 지났다.

충밍은 예전에 중공에 의해 9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고, 쌍둥이 남동생은 4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다. 부모님은 모두 박해 중 비분해 세상을 떠났다.

경찰에게 납치, 강탈, 불법 체포를 당해

2014년 4월 23일, 충밍은 집에 돌아가는 도중 차가 소재한 주택 단지에 도착한 뒤, 10여 명의 사복 경찰에게 위훙(於洪) 공안분국으로 납치됐다. 2층의 심문실 안에서 경찰은 충밍에 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꼬박 2일 동안 잠을 못 자게하고 밥을 주지도 않았다. 어떤 경찰은 충밍의 얼굴 부위와 목을 구타했으며, 또 광천수병으로 충밍의 몸 위에 냉수를 끼얹었다. 시 공안국 국가보안이라고 자칭하는 한 경찰(40여 세, 170cm쯤)은 충밍에 대해 폭력적인 구타를 가했다. 충밍의 승용차, 은행 카드, 현금 등 개인 재물은 불법적으로 압수되었다. 충밍은 선양 제1구치소에 감금됐다.

쌍둥이 남동생 충량(叢亮)도 이튿날에 형의 직장으로 갔다가 납치돼 1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선허구(沈河區) 공안분국, 선허구 검찰에서는 공모해 충밍에 대해 불법 체포하여 그와 파룬궁수련생 궈훙옌, 쑹옌춘의 죄를 뒤집어 씌워 좋은 사람들을 모함하려고 망상했다. 충밍의 누나 및 남동생은 여러 차례 석방을 요구했는데, 이들은 찾아간 사람들을 속이고 서로 책임을 미루며 석방을 거부했다.

중공의 박해로 집과 가족을 잃다

충밍(1978년 출생)은 선양시 랴오중현(遼中縣) 사람이다. 1996년에 쌍둥이 남동생 충량과 함께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한 이후, 두 형제는 각 방면에서 ‘진선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너그럽고 선량했으며, 무릇 손해를 보고 참고 양보하려 했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했다.

2001년 5월, 충밍은 선양 둥링 공안분국의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그후 불법적으로 9년의 무거운 판결을 당했다. 먼저 다롄(大連) 와팡뎬(瓦房店)감옥에 불법 감금당했다가, 2007년 12월에 또 다롄 난관링(南關嶺)감옥으로 납치됐다. 그 기간에 고문으로 괴로움을 당했고 족쇄를 3개월 넘게 찼다.

2001년 7월, 남동생 충량은 둥링구 난타(南塔)파출소 경찰의 핍박으로 6층 건물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는데 (경찰이 떨어지게 함), 11일 동안 혼미 상태에 처했고 온몸의 여러 곳의 뼈가 부러졌다. 그 후 충량은 연공을 통해 몸은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丛亮

충량(叢亮)

두 아들의 불행에 처해 충밍의 부친은 이 극심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늘 술에 의지해 살다가 결국 2002년 갑자기 심장 경색으로 비분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2008년 8월 10일, 충량은 또 다둥구 공안분국 경찰에 의해 납치됐는데, 그후 다둥구 법원에 의해 4년 6개월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충량이 납치당한 뒤, 창안(長安) 파출소 경찰은 그의 집에서 잠복 감시를 하며, 충량의 모친 마수윈(馬淑芸)을 층집에서 쫓아냈다. 노인은 핍박에 못 이겨 환경이 좋지 못한 단층집에서 거주했는데, 난방 설비가 없어서 방안은 추웠다. 두 아들이 감옥에 갇히자, 노인은 충격을 감당하지 못해 몸져누웠고 더욱더 감옥의 아들을 그리워했다. 집주인은 노인이 셋집에서 사망할까 두려워 노인을 쫓아냈다. 마수윈은 10월 29일에 박해 중 억울하게 사망했다. 노인의 출상 당일, 마침 선양시 사당 인원이 다둥구 법원을 조종해 충량에 대해 불법 개정을 진행하는 날이었으나, 가족은 방청하러 갈 사람이 없었다.

2010년, 충밍은 9년의 억울한 재판이 만기돼 집을 돌아왔다. 부모님이 세상을 뜨고 친동생이 여전히 감옥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충민은 비통 속에서 더욱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고, 적극적으로 생활을 대면했다. 그는 자신의 성실한 노력으로, 남동생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좋은 생활과 근무하는 환경을 개창해주기 위해 형으로서의 책임을 다 했다. 2012년, 충밍은 마침내 남동생과 한자리에 모였다.

하지만 두 형제는 겨우 만난 지 2년 만에 또 거듭 사당의 박해를 당했다.

선양시 파룬궁수련생 궈훙옌 여사는 2014년 4월 24일에 자신이 새로 개업한 케이크 점에서 몇 명의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에 의해 납치됐다. 그후 선양시 구치소로 납치돼 여태껏 불법 감금당했다.

4월 24일 오전 9~10시, 궈훙옌은 매일과 같이 스스로 새로 개업한 케이크 점으로 와서 막 문을 열고 가게로 들어갔는데, 자동차 번호판이 없는 차안에서 3명의 남자가 내려왔다. 이 몇 명의 신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궈훙옌을 차에 오르게 했으나 그녀는 거부했다. 궈훙옌이 부모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자, 이 몇 사람은 다짜고짜로 궈훙옌을 자동차 번호판이 없는 차로 직접 잡아당겨갔다. 궈훙옌은 높은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

인근의 상가와 행인은 이 폭행을 목격하고 마음속으로 매우 분개해하며, 중공 사당 인원들이 인간성이 없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궈훙옌은 지혜롭고 차분하고 선량한 여사로, 올해 40여 세이다. 예전에 선허구에서 후이리라이(惠利來) 케이크 점을 경영했다. 파룬궁을 다년간 수련했는데, 그녀는 심신의 건강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더욱 원기가 왕성해졌다. 일상적인 경영 중에 그녀는 상도의를 지키며 장사를 하고 성실하게 사람을 대해, 인근의 직장, 주민들은 그녀 가게로 와서 식품을 구매하기를 원했다.

2009년 9월 9일, 궈후옌은 선허 국가보안인원에게 납치당한 동시에 가택 수색을 당했다. 궈훙옌의 부친과 한 점원은 함께 얼징(二經)파출소로 납치됐다. 그날 저녁 8시, 궈씨 부친은 선허 국가보안경찰에게 협박당해 2장의 공백 수사명세서 위에 서명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궈훙옌은 다년간의 저축과 영업·운영 자금 그리고 대량의 개인 재물을 강탈당했다. 가족이 이 재물들을 철저히 점검하려하자 선허 국가보안경찰은 뜻밖에 무리하게도 거부했다. 게다가 가족에게 뒷날 판결서를 보라고 알려주었다. 궈훙옌은 선양 장스(張士)세뇌반, 선양시 구치소를 전전하며 불법 감금당했고, 1년의 불법 판결을 당했다.

2014년 4월 24일, 궈훙옌은 거듭 납치당했다. 부모님은 심신이 피곤해 케이크 점을 경영할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새로 개업한 케이크 점을 낮은 가격으로 임대했다. 부모는 딸이 하루 빨리 집으로 돌아와 한자리에 모이기를 바랐다.

관련 박해 단위와 인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문장발표: 2015년 3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25/3066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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