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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룽장 여변호사, 610의 박해로 뇌경색 걸려 위독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헤이룽장보도) 여러 차례의 고문학대, 장시간의 박해와 유랑, 수입이 없고 극심한 심리적 압력, 육체와 정신의 이중적 시달림은 류중제(劉忠傑)의 건강을 갈수록 악화되게 했다. 현재 이미 그녀는 이미 스스로 생활할 수 없고 말을 할 수 없으며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됐다.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13년이 넘는 동안, 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톈청(天成) 변호사사무실의 변호사이자 칭안현(慶安縣) 파룬궁수련생 류중제는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 인원에 의해 불법 가택수색, 납치, 노동교양, 불법 감금을 당했고 유랑생활을 한 지 10년이 됐다. 2012년 9월 10일, 칭안현 국가보안대대 왕싱롄(汪興運) 등 악인은 감시, 미행을 진행했고 쑤이화(綏化) ‘610’(중국공산당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의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류중제와 파룬궁수련생 자오민(趙敏)을 납치했는데 쑤이화 구치소에 불법 감금한지 4개월이 넘는다. 2013년 1월 17일 쯤, 류중제는 박해로 혼절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몸은 경련을 일으켰다. 구치소 직원은 책임질까 두려워 가족에게 데려가라고 통지했다. 뒤이어 류중제는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뇌경색 진단이 내려졌다.

2013년 3월 5일, ‘610’ 악독한 경찰은 가족을 위협해 류중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서 원래는 ‘상황을 확인한다’고 했으나 오히려 엉터리 재판을 열었다. 총 20여 분이 걸렸는데 그녀에게 불법적으로 1년 6개월 판결을 내렸다. 류중제의 건강이 심하게 좋지 않자 가족들의 강력한 요구로 이른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나 “다시 연공을 하면 안 된다! 류중제의 오빠와 여동생이 직업으로 담보해야 한다”, “만약 다시 연공하면 그의 오빠와 여동생이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 등을 부가조건으로 걸고 협박해서야 류중제에게 잠시 병보석 치료를 허락했다.

대법수련을 하기 전에 변호사로서 류중제도 예전에 세상 물결치는 대로 흘러가며 의뢰인이 주는 정해진 액수 외의 재물을 받은 적이 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그녀는 대법 표준 ‘진선인(眞ㆍ善ㆍ忍)’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의뢰인의 고뇌를 먼저 놓고 모두 근무 절차에서 최선을 다했다. 사건 대리비를 받는 것도 모두 비교적 낮은 표준에 따랐으며 급식비, 출장비가 충분하면 됐다. 이 외에 그녀는 또 더 받은 사례비를 의뢰인에게 돌려주었다. 파룬따파는 그녀에게 도덕이 고상하고 마음에 거리낌이 없으며 낙관적이고 도량을 넓게 했다.

1999년 10월 29일, 류중제는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청원해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이유로 현지 사당(邪黨) 인원에 의해 중도에 가로막혀 돌아온 후 2개월 반 동안 감금박해를 당했다. 류중제는 변호사 신분을 갖고 있고 중국 헌법과 법률을 능숙하게 파악하고 있었기에 공산당 박해기구는 그녀가 변호사의 신분을 이용해 그들의 불법적인 파룬궁 박해를 폭로할까 매우 두려웠다. 때문에 그녀는 공산당 현지 정부의 중점 박해 대상이 됐고 이로부터 류중제의 생활은 다시는 평온한 날이 없었다.

류중제가 다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감을 불허하기 위해 변호사사무소 주임 주첸춘(朱千春)은 박해 기구와 적극 협력해 몇 차례나 류중제를 모함했다. 아울러 2000년 4월 19일, 악독한 경찰과 결탁해 류중제를 납치해 유치장에 가둬넣고 8개월 동안 박해했다. 이 기간 류중제의 남편과 어린 딸은 또 사당 인원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극심한 심리적 압력을 겪었다. 류중제는 이전에 장시간 불법 감금과 이치에 어긋난 박해에 항의하기 위해 단식으로 박해를 제지했다. 그러자 악독한 경찰 왕즈룽(王至龍), 마장(馬江: 전 유치장 소장)은 그녀를 끈으로 묶어 야만적으로 음식물을 주입하고 강제로 불분명한 액체를 주입했는데 이로 인해 류중제는 월경색이 녹색으로 변하고 몸에 경련을 일으키는 등 극렬한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생명이 위험해져서야 가족이 데려감을 허락했다.

酷刑演示:打毒针(绘画)

고문 재연: 독극물 주사

류중제는 말했다. “7개월 반 동안 불법 감금돼 가족과 갈라져 있어 정신과 육체적 이중 박해를 했는데, 단지 제가 이유 없이 (수련 포기)보증서를 쓰는 것을 거부하고 국민의 ‘청원 자유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민이 보증서를 쓰지 않고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경찰이 사람을 붙잡는단 말입니까? 게다가 무기한 감금했는데 이것은 어느 나라 법률입니까?”

류중제는 유치장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직장에서는 그녀의 출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을 파견해 돌아가며 그녀에 대해 감시, 공갈 협박을 진행했으며 심지어 저녁에 그녀 집으로 자주 찾아왔다.

변호사로서 류중제는 청원해 민의를 반영하러 가는 길이 저지되자 어쩔 수 없이 ‘진상자료’ 방식으로 현지 민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진술했다. 2001년 1월 17일, 류중제는 민중에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파잔향(發展鄉) 파출소에 납치됐다. 1월 22일, 어떠한 법률 수속도 없는 상황에서 구치소 소장 저우톈언(周天恩) 등은 악독한 경찰 왕즈룽(王至龍)의 지시를 받고 류중제와 다른 두 여성 파룬궁수련생을 비밀리에 치치하얼(齊齊哈爾) 솽허(雙合)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노동교양처분을 가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류중제는 대법을 비난하는 보증서에 서명을 거부했다가 악독한 경찰에 의해 독방에 갇혀(죄수에 대해 일종 육체적 학대를 가하는 작고 어두운 방) ‘바오자(包夾-형사범으로 이뤄진 밀착 감시인)’가 며칠 동안 감시하고 관리하는 박해를 진행했다. 10월 26일, 노동교양소에서는 현지 공안국과 결탁해 파룬궁수련생 장수저(張淑哲), 류융쥔안에 대해 고문 박해를 실시했다. 류중제가 일어나서 폭도들의 악행을 저지하자 10여 명 악독한 경찰은 그녀를 건물 아래 작은 방안으로 끌고 갔으며 류중제는 큰 소리로 그들의 죄악을 폭로했다. 악독한 경찰은 악행이 폭로될까 두려워 급히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이어서 류중제는 쇠의자(일종 형구)에 짓눌렀는데 두 명의 악독한 경찰이 톱날이 달린 수갑으로 류중제의 두 손을 의자 뒤로 채워놓아 수갑 톱니를 움직이기만 하면 곧 살 속에 패어들어가 극히 고통스럽게 했다. 이어서 악독한 경찰은 또 류중제의 두 발을 쇠의자 밑의 고정된 두 개 구멍에 밀어 넣었는데 발은 들어가기만 하면 뽑아낼 수 없어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5박6일 동안 연속 고문을 당해 류중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두 손은 만두처럼 부어오르고 두 발도 매우 심하게 부어올랐으며 전신은 감각을 잃고 심장 박동이 쇠약해져 몇 차례나 기절해 사경을 헤맸다. 악독한 경찰은 류중제가 쇠의자 위에서 사망할까 두려워 그제야 고문을 멈췄다.

双手反背铐在椅子上

두 손을 거꾸로 의자에 채우기

2002년 1월, 노동교양소에서는 이미 박해 기한이 거의 만기된 류중제에 대해 불법적으로 형기를 연장하려 했다. 류중제는 단식으로 항의했다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악독한 경찰은 그녀를 침대 위에 묶어놓았고 한쪽에서는 감옥 의사가 플라스틱 호스를 들고 류중제의 코에 꽂아 코에서 출혈하게 했다.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으로 인해 그녀를 몇 차례나 의식을 잃었다. 한쪽에서는 대대장 왕옌(王岩)이 그녀의 손을 누르며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득의양양해 했다! 류중제가 17일 동안 완강하게 항의했던 이유로 형기 연장 박해는 목적을 이루지 못했고 2002년 1월 16일에 새롭게 자유를 얻었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류중제는 그 후 하소연하며 말했다. “제가 예전에 존경하던 책임자 여러분은 당신들의 위법 결정이 저에 대한 상처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무거운지 알고 있습니까? 저는 막 노동교양소에서 나온지 3일 만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몸져누웠습니다. 정신과 육체적으로 본래 상당히 심한 학대를 입어 사경 속에서 요행히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또 무정하게, 일각도 지체하지 않고 저를 해고해 저의 근무권과 경제력을 빼앗아갔습니다. 또 저에게 인생의 이상이 파멸되게 했습니다. 당신들의 행위는 제 가슴에 거듭 깊은 상처를 입혔고 저의 처지는 더욱 설상가상이 됐습니다.”

2002년 1월 17일, 류중제가 마침내 노동교양소의 지옥 같은 박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변호사사무소 주임 주첸춘 등은 이튿날에 곧 사람을 데리고 류중제 집으로 가서 “류중제를 변호사업에서 해고한다. 그녀가 파룬궁 연마를 견지하고 또 노동교양처분을 당한 적이 있으므로 다시 변호사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라고 선포했다. 관련 법규 규정에 근거하면 노동교양과 해고를 함께 처벌할 수 없다.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 말하든지를 막론하고 해고는 모두 위법인 것으로 어떠한 법률적 근거가 없다. 법률에 종사하는 사법국, 변호소사무소 사람들은 오히려 법을 알면서 법률을 위반해 류중제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켰다. 따라간 악독한 경찰 궈(郭)씨는 악독하게 류중제의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빨리 그녀와 이혼하시오! 이런 사람을 당신이 요구해 뭘 하겠소! 그녀는 당신 앞날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온몸에 문둥병에 걸렸는데 전염될까 두렵지도 않으시오?”(류중제는 노동교양 기간에 몸에 옴이 생겼는데 완쾌되지 않았음)

류중제는 말했다. “구치소, 유치장의 정신적 학대를 여러 번 경험했고 또 노동교양소의 고문 학대를 거쳤으며, 또 직업을 박탈당하는 심각한 충격을 거쳐 저는 이미 기력이 초췌해지고 상처투성이가 됐습니다. 그러나 저는 행복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몇 년간 마난에서 가족은 저를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본래 남편과 딸에게 빚진 것을 잘 갚고 평온하게 생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현지 파출소는 ‘610’사무실의 지시 하에 사흘이 멀다 하고 집으로 찾아와서 괴롭힘, 감시, 가택 수색, 무슨 면담을 하고 기록을 진행했다. 그리고 여러 번이나 류중제의 남편을 괴롭히고 위협해 가족에게 평온을 얻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박해는 어린 딸에게 심각한 심리적 상처를 입혔다. 사당 TV방송국에서는 끊임없는 모독하고 유언비어를 조성하며 공포감을 제조해 증오를 선동했는데, 이는 아이 마음속에 그림자가 생기게 하여 차츰 어머니의 처지에 대해 어찌할 방법이 없으며 무섭다고 느끼게 했다.

2003년 4월 13일 오전, 웨진(躍進)파출소 경찰은 또 류중제의 집으로 갔는데 말로는 파룬궁수련생에게 서류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거절당한 뒤 파출소 소장 상만(尚滿)은 칭안현(慶安縣) 국가보안대대 대장 왕싱윈(汪興運)의 지시를 받고 4명의 사복 경찰을 파견해 류중제를 납치했다. 4명은 슬리퍼를 신은 류중제를 잡아당기고 밀어내 강제로 파출소로 납치했으며 그날 저녁으로 유치장에 감금했다. 이 무법천지 박해에 직면해 류중제는 단지 단식으로 항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5일 후에야 그녀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그녀 남편에게 200위안을 갈취했다. 파출소의 한 악독한 경찰은 또 대중 앞에서 “만약 당신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나는 당신을 꼭 괴롭혀 죽이고 말거야!”고 큰소리쳤다.

류중제는 말했다. “제가 평온한 생활을 갈망하지만 유혈 박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거짓말을 여전히 퍼뜨리고 있으며 진상은 여전히 금지되고 있습니다. 대법에서 이로움을 얻은 사람으로서 제가 침묵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침묵은 바로 악에 대한 방임입니다. 악에 대해 반드시 폭로해야 하며 거짓말에 대해 반드시 폭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끊임없이 세인에게 진상을 알리고 전단지를 배포합니다.”

2003년 7월 25일, 파룬궁을 박해해 민중에게 조성한 해독을 폭로하기 위해 류중제는 수련생과 함께 층층의 봉쇄를 뚫고 압력을 무릅쓰고 현지 환성향(歡勝鄉)에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환성향 파출소에 납치됐다. 그날 저녁 류중제는 수갑을 찬 채 기회를 틈타 담을 뛰어넘어 벗어났는데 핍박에 못이겨 장시간 유랑생활을 했다….

2012년 9월 10일, 유랑생활을 한지 10년이 된 류중제는 다른 한 수련생과 함께 쑤이화(綏化)시에서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돼 쑤이화 구치소에 의해 4개월 넘게 박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2013년 1월 17일, 류중제는 구치소에서 심각한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다. 구치소 인원은 책임질까 두려워 가족에게 통지를 내려 류중제를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받게 했으며 뇌경색 진단이 내려졌다. 그 기간에 현지 ‘610’의 악독한 경찰은 또 여러 차례 류중제에게 수련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가족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베린구(北林區) ‘610’ 불법 기구는 거듭 나쁜 짓을 저질러 류중제가 왕싱롄 등 악독한 경찰에게 미행당하고 지명수배당한 자오민(趙敏)을 감싸준다고 모독했다. 베이린구 ‘610’ 악독한 경찰 왕수보(王樹波), 류쿤밍(劉坤明), 리젠페이(李建飛) 등은 자료를 수집해 베이린구 검찰원, 법원을 조종해 박해에 참여시켰으며 류중제의 가족을 협박해 그녀를 검찰원으로 데려와 이른바 ‘상황을 확인’시키라며 가족에게 납치하지 않음을 보증했다.

하지만 쑤이화 ‘610’은 이랬다저랬다 하며 2013년 3월 5일 오후 2시가 넘어서 쑤이화시 베이린구 법원 판사 장루이(張銳), 배심원 차오훙위안(曹洪源), 서기(여) 및 베이린구 검찰원 장롄성(張連生) 등 5명은 베이린구 법원 형사1청에서 류중제, 자오민에 대해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그들은 낮은 소리로 속도가 빠르게 얼버무리며 그들이 수집한 이른바 ‘자료’를 낭독했다. 어떠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류중제에 대해 1년 6개월 유기징역을 판결한다고 선포했다.

이 기간, 사당 인원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공갈협박은 또 류중제의 남편에게 큰 심리 압력을 조성했다. 결국 남편은 그녀와 이혼했고 어린 딸은 상상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류중제는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저는 한 차례 또 한 차례 유혈 박해를 경험했습니다. 이 매번 박해는 박해자의 사악함과 잔혹함을 기록했고 박해자의 매 차례 범죄를 기록했습니다. 박해자에 대해 저는 반드시 국민의 고소권과 각 항 소송권을 행사할 것입니다.” “몇 해 동안 ‘진선인(眞ㆍ善ㆍ忍)’의 빛은 제가 가는 진리의 길을 비춰주어 한길에서 걸어가며 한길에서 외쳤습니다. 인권을 수호함을 외쳤고 법률의 존엄을 수호함을 외쳤으며, 양심이 중화대지에 되돌아올 것을 외쳤고 정의가 인간세상에서 지속되기를 외쳤습니다……”

문장발표: 2015년 3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3/20/30645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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