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전편에 이어서)
3. 육체적 학대와 고문
육체적 학대는 악도들의 가장 기본적인 박해 수단이다. 지난 10여 년간 연변 파룬궁수련생들이 사악의 소굴에서 육체적 학대를 받은 사례는 부지기수다. 가장 흔한 것은 주먹질과 발길질, 그리고 도구를 사용한 폭행이다. 단순하지만 극히 잔인한 학대 방식에는 또 장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고정된 자세로 세워두기 등이 있다.
이밖에도 육체적 학대에는 각종 강제 노동이 포함되는데 이런 각종 고문도 극히 잔인하다. 이번 편에서는 연변 파룬궁수련생들이 연변 현지와 창춘(長春), 지린, 주타이(九台) 등 지역의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받은 박해를 소개한다. 여기에 소개된 것은 전형적인 박해 사례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또 많은 수련생들은 감옥에 갇히기 전, 즉 납치되는 과정이나 자택 혹은 현지 파출소에서 이미 혹독한 폭행으로 심한 육체적 손상을 입었다.
목마 태우기, 등나무 줄기로 후려치기
용정시 파룬궁수련생 김준걸(金俊傑)은 1999년 10월 14일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사당(邪黨) 악인에게 납치되어 창춘으로 이송됐다. 그 후 펀진(奮進) 노동교양소에 1년 동안 불법 감금되어 잔인한 박해를 받았다. 사당 악인은 각종 수단으로 이른바 ‘전향’을 시켰다. 길이 2미터에 너비 2촌 높이 1미터 좀 넘는 의자에 수련생 10여 명을 한꺼번에 앉히고 발이 바닥에 닿지 않게 들고 있게 했는데 ‘목마 태우기’라고 불렀다. 이것은 고통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문으로 엉덩이가 배겨 곧 상처가 나고 욕창이 생겼다. 특히 당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00년 7월 하순이었는데 모두들 가슴과 등이 밀착되어 숨을 쉴 수 없었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이런 고문은 새벽 3시까지 지속됐다. 사당 악인은 그래도 ‘전향’시키지 못하자 창을 꽁꽁 닫아 방안을 더 무덥게 하고는 ‘따사로움을 느끼게 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3월, 김준걸은 차오양거우(朝陽溝) 노동교양소로 이송됐다. 악경(惡警-악독한 경찰)들은 김준걸을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8호 철사를 꼬아 만든 채찍(새끼손가락 굵기)으로 목부터 발까지 사정없이 후려쳤다. 식사 직전에는 한 죄수가 그의 배를 걷어차 밥을 먹을 수 없었고 메스꺼움 등 증상이 타나났다. 김준걸은 학대로 몸무게가 40kg밖에 남지 않았다. 5월 18일부터 형사범 리푸천(李付臣)은 2대대 악경의 지시대로 매일 아침 7시면 등나무 줄기로 김준걸을 혹독하게 구타했다. 김준걸은 매일 수 십 차례 구타당해 손발이 퍼렇게 멍이 들었고 찐빵처럼 부어올랐다. 모진 학대로 그는 식사하러 식당까지 걸어가지도 못했고 저녁에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했다.
고문 재연: 등나무 줄기로 후려치기
과부하 노동과 엄격한 감시
2001년 4월부터 11월까지 연변노동교양소는 60여 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노역과 체벌을 지속했는데 4월에는 혹독한 고문과 학대를 자행했다. 대법제자들은 매일 큰 쇠망치를 들고 고된 노역에 내몰렸는데 식사는 옥수수가루와 잡곡 등이었다. 이에 비해 다른 죄수들은 일을 하면 밀가루 찐빵과 쌀밥이 나왔다. 경찰은 또 죄수들을 이용해 파룬궁수련생을 감시하고 매일 때리고 욕설을 하게 했으며 2개월 이상 체벌을 지속했다. 어떤 수련생은 하루에도 수차례 폭행당했다. 교육과 관리과 악도들은 비인간적인 체벌과 혹독한 폭행을 일삼았고 수련생이 개인 돈으로 간식을 사먹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화장실 갈 때와 식사 시간을 포함해 하루 24시간 엄격히 감시했다.
무자비한 폭행, 플라스틱 파이프로 후려치기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張倍齊)는 2001년 3월 연길노동교양소로 이송되어 독방에 갇혔고 복역 기간이 1년 연장됐다. 한번은 독방 책임자가 주먹으로 머리와 태양혈(관자놀이)을 구타하는 등 무자비한 폭행을 감행해 정신을 잃고 중상을 입었다. 당시 그는 가슴이 답답하면서 호흡 곤란이 왔고 전신에 통증이 심하고 대소변 실금과 극심한 요통 등 증상이 나타났다. 안도현 얼다오바이허(二道白河) 파룬궁수련생 샤오궈빙(肖國兵)은 2001년 6월 연변노동교양소 기숙사 2층 207호에서 구타로 중상을 입었고 안경이 깨졌다. 그 후 1개월 동안 온몸에 검붉은 피멍이 들어 있었다. 플라스틱 파이프로 맞고 주먹질을 당한 후 독방에 갇히고 관리과의 체벌성 노역까지 한 사례도 있다.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자오리탕(趙理堂)은 같은 시기 연변노동교양소 2층 기숙사 207호에 있었는데 꽁꽁 묶인 채 플라스틱 파이프로 8시간 이상 폭행당해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1개월이 지나서야 상처가 낫기 시작했지만 독방에 갇히고 관리과에 의해 추가 체벌을 받았다.
호랑이의자 고문(쇠의자 고문)
파룬궁수련생 궈페이쥔(郭培俊)은 2001년 9월 2일 용정시 팔도진(八道鎭) 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됐고 용정시 구치소에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궈페이쥔은 혹독한 구타로 얼굴에 선혈이 낭자했고 극도의 고통으로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다. 악경은 또 그를 호랑이의자에 묶어놓고 2일 동안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그리하여 궈페이쥔의 옷은 진물과 피로 범벅이 되었고 상처에서는 계속 피가 흘러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張倍齊)는 2004년 3월 재차 납치된 후 심각한 박해를 당해 두 다리가 골절됐다. 그는 안도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악경에게 7일 동안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는 줄곧 호랑이의자에 묶여 있었는데 악도는 수 십cm 굵기의 딱딱한 플라스틱 파이프와 나무 몽둥이로 혹독하게 구타했다. 장페이치는 몇 차례나 기절했는데 그때마다 악경은 냉수를 끼얹었다.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형구: 쇠의자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박귀봉(朴貴峰)은 2004년 4월 조양(朝陽)파출소에 납치됐다. 악경은 박귀봉을 쇠의자(호랑이의자)에 묶어놓고 앞에 또 의자 하나를 놓은 다음 그의 두 다리를 앞 의자 등받이 가름대에 걸쳐 놓고 끈으로 묶었다. 그리고 박귀봉의 몸이 쇠의자에서 떨어지지 못하도록 아랫배 앞에 쇠 파이프를 놓아 고정시켰다. 또 두 손은 V자형으로 쇠의자 등받이에 묶어놓고 나무판자 여러 개를 묶어 팔과 쇠의자 사이에 끼워 넣어 V자형으로 굴곡을 높이는 방식으로 고통을 증가시켰다.
화룡시 팔가자(八家子) 파룬궁수련생 양슈잉(楊秀英)은 2006년 5월 현지 악경에게 납치된 뒤 국가보안대대에 불법 감금됐다. 그 기간 5~6명의 악경에게 쇠의자 고문을 당했다. 쇠의자 양쪽에는 각각 7~8개의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쇠파이프를 꽂아 고문 강도를 조절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양슈잉의 두 발을 앞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고 쇠파이프를 허벅지에 닿게 꽂은 후 한 악경이 그녀 다리 위에 앉아 아래로 누르기도 하고 힘껏 위로 들어올리기도 했다. 머리는 아래로 내리눌렀으며 한쪽 손은 어깨위에서 뒤로, 다른 한쪽 손은 등 뒤로 올려 한데 수갑을 채워놓은 다음 위로 들어올렸다. 다른 한 악경은 또 발로 그녀의 발을 힘껏 밟아 뭉갰다.
겨자가루, 고춧가루 바르기
60대 파룬궁수련생 리(李)씨(여)는 2001년 6월 23일 악경에게 공안국으로 납치되어 수갑을 찬 채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악경은 또 리씨의 눈, 코, 입에 겨자가루를 발랐다.
9월 4일, 훈춘시 파룬궁수련생 천안펑(陳安鳳)은 공안국으로 불법 납치됐다. 악경은 불법 심문 과정에 4일 동안이나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고문하며 괴롭혔다. 이로 인해 천안펑은 얼굴이 변형되고 걷기조차 어려웠으며 얼굴 피부가 거무스름하게 되고 심한 상처가 났으며 두 눈은 충혈됐다. 더욱 심한 것은 천안펑의 눈, 코, 입에 겨자가루와 고춧가루를 바른 것인데 그야말로 잔인무도했다.
2011년 5월, 도문(圖門) 파룬궁수련생 김련화(金蓮花)는 납치되어 취조를 당할 때 역시 호랑이의자 고문을 받았다. 악경은 그녀의 코밑에 겨자가루를 발라놓아 상처를 입혔다.
담배 연기 쏘이기
창춘 파룬궁수련생 장지왕(張寄望)은 2001년 11월 중순 연길시에서 납치됐다. 현지 악경에게 북산(北山) 파출소로 납치된 후 즉시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경찰은 그녀를 의자에 앉히고 두 발을 의자 밑 가름대에 올려놓아 꿇어앉은 자세가 되게 하고 윗몸을 의자 등받이에 묶었다. 두 명의 악경은 그리고 나서 그녀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수 십대나 뺨을 때렸다. 악경은 섬뜩한 웃음을 지으면서 불붙인 담배를 코앞에 갖다 대어 담배 연기를 마시게 했다. 그들은 “당신들 대법제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지? 오늘 당신이 다섯 가지 독소를 모두를 갖추게 해주겠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고문은 2시간 지속됐다. 그 후 그들은 리씨에게 수갑을 풀어주지도 않은 채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서 하룻밤 보내게 했다.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장페이치도 2004년 3월 납치된 후 고문을 당했다. 악경은 역시 호랑이의자에 묶어놓고 담배를 콧구멍에 꽂아 넣어 담배 연기를 마시게 했다.
공산당 불법 감옥의 고문 재연: 담배 연기 쏘이기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김성전(金成全)은 2002년 6월 납치된 후 화룡시 형사경찰대대로 이송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경찰 6명이 번갈아 가며 구타했는데 나중에 지칠 대로 지치자 테이프로 김성전의 입을 막고 두 콧구멍에 불붙인 담배를 꽂아 넣었다. 그렇게 연속 6대를 태워 김성전은 정신을 잃었다. 악경은 즉시 찬물을 끼얹었고 정신을 차리면 또 고문을 들이댔다. 김성전은 그 후 기억력 감퇴 증상이 생겨 과거 일들을 잘 떠올리지 못했다.
벽에 머리 박기, 벌세우기, 매달기
안도현 얼다오바이허 파룬궁수련생 장옥란(張玉蘭)은 2002년 1월 바이허(白河)임업국 구치소로 납치되어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했다. 악경 6명은 그녀를 둘러싸고 발길질 주먹질을 하고 욕설까지 해대며 5시간 동안 잔인하게 학대했다. 그들은 폭행하다 지치면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기절할 때까지 머리를 벽에 박았다. 악경들이 휴식하러 간 후 겨우 정신을 차린 장옥란은 머리가 아파 연공하려 했다. 그런데 1장 공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악경들이 다시 들어와 욕설을 퍼부으며 “연공하고 싶다 이거지. 그러면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을 2시간 해봐”라고 말했다. 2시간이 지난 후 악경들이 또 욕설을 퍼붓고 구타해 장옥란은 또 정신을 잃었다. 악경들은 여전히 화가 잔뜩 나서 “연공한다고? 매달아 놓아도 할 수 있나 보겠어”라고 소리 지르며 그녀를 매달아놓았다. 악경들은 퇴근해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녀가 매달려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었다. 이튿날 아침 출근해서야 그 사실을 알고 장옥란에게 채워진 수갑을 풀려했지만 풀리지 않았는데 2시간 넘어서야 풀 수 있었다. 그 사이 장옥란은 통증으로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
고문 재연: 머리카락을 잡고 벽에 박기
안도현 파룬궁수련생 왕하이화(王海花)는 2004년 3월 4일 한 세차장에서 안도현 국가보안대대 경찰에 납치됐다. 국가보안대대에 도착한 후 악경은 그녀를 발로 걷어차고 얼굴을 구타했으며 머리카락을 잡고 벽에 박았다. 저녁이 되자 그들은 왕하이화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서 있게 하는 고문을 가하면서 계속 구타하고 욕설을 퍼부었는데 바로 서있지 못하면 발로 찼다. 감금된 보름 동안 악경은 두 차례 주먹으로 그녀의 가슴을 구타하는 등 비열하고 저질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뒤로 교차 결박, 다리 찢기, 바늘로 찌르기, 담뱃불로 지지기
연길 파룬궁수련생 류수윈(劉淑雲), 스슈훙(石秀紅)은 2001년 11월 중순 연길시 610사무실(정보과) 치안대대에 납치됐다. 치안대대 악경은 두 사람에게 뒤로 교차 결박하기, 땅바닥에 꿇어앉아 양손 뒤로 하여 수갑 채우기, 두 발을 의자 가름대에 구부려 놓기 등 고문을 가했는데 기절할 때까지 자행했다. 이 밖에도 매달기와 양손에 수갑을 채운 후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게 매달기 고문도 가했다. 그들은 또 두 사람이 기절할 때까지 다리 찢기를 시켰고 바늘로 손, 몸과 다리를 찌르고 담배꽁초로 손목에 심한 화상을 입혔다.
고문 재연: 일자로 다리 찢기
수갑과 족쇄 채우기, 나무 몽둥이와 채찍으로 때리기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김성전과 다른 몇몇 파룬궁수련생은 2002년 6월 7일 새벽 2시 연길시에서 불법 체포된 후 화룡시 형사경찰대대로 이송됐다. 그들은 타협하지 않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경찰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할 때 김성전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우고 25~30cm 굵기의 나무 몽둥이로 마구 내리쳐 몽둥이 2개가 부러졌다. 그들은 또 구둣발로 다리와 발을 마구 밟아 중상을 입혔는데 김성전은 지금까지도 걷지 못하고 있다. 6월 13일 저녁 5시, 김성전은 구치소에 불려 나가 심리를 받았는데, 악경은 그에게 수갑과 족쇄가 한데 연결된 사형수용 형구를 씌웠다. 그들은 화룡에서 60리 떨어진 임업장으로 김성전을 압송한 후 그날 저녁부터 천정에 매달아 놓고 수갑과 족쇄를 풀어주지 않은 채 폭행했다. 수갑은 힘을 받을수록 더욱 조여져 살을 파고 들어가 통증이 극심했다. 거기다 주먹질과 발길질, 몽둥이와 가죽채찍 구타까지 당해 김성전은 한동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특히 왼쪽 신장에 문제가 생겨 부종, 요실금 등 증상이 나타났다. 또 척추가 부러져 15kg 정도의 물건마저 들 수 없었으며 경추 골극 증상으로 신경압박 증상이 있었으며 머리도 계속 아프고 시력도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다.
고문 재연: 매달아 놓고 구타하기
쇠모자 씌워 구타하기, 입에 테이프 붙이기, 굶기기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김영남(金永南)은 2004년 2월 4일 악인에게 신고를 당했다. 자택에서 도문시 월궁가(月宮街) 파출소 경찰들에게 포위되어 도문시 국가보안대대로 붙잡혀 갔는데 거기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경은 고령인 김영남을 6일 동안 혹독하게 박해했다. 잠을 못 자게하고 머리에 쇠모자를 씌운 후 두 명이 번갈아 가며 나무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구타하여 김영납은 머리가 심하게 부어오르고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 입었던 옷은 상하의 모두 피범벅이 되었고 한 쪽 다리는 불구가 됐다. 악경은 또 담배꽁초로 손바닥을 지지고 입에 테이프를 붙여 숨을 쉬지 못하게 했으며, 이쑤시개로 머리의 상처를 찔러 터지게 하는 등 방식으로 학대했다. 그들은 때려죽여도 자살로 치고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며 우쭐댔다. 그들은 6일 동안 김영남에게 밥 한 입, 물 한모금도 주지 않았다.
가슴 눌러 긁기, 머리에 비닐주머니 씌우기, 발바닥 때리기
고문 재연: 머리에 비닐주머니 씌우기
연길시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박귀봉(朴貴峰)은 2004년 4월 6일 오후 직장 회의 도중 조양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됐다. 조양파출소에서 악경들은 그를 쇠의자에 묶어 놓고 학대했고 라이터로 가슴을 힘껏 아래위로 눌러 긁어 가슴에 주먹 크기의 피멍이 생겼다. 악경들은 고문을 반복하며 오전 내내 자백을 강요했다. 오후에는 머리에 검은색 비닐주머니를 씌워 질식시키는 고문을 가했다. 그들은 질식 직전에야 비닐주머니를 풀어주었다가 다시 씌우기를 반복했는데 박귀봉은 심장에 통증을 느끼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악경은 또 그의 입에 찬물을 부어넣었고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아동용 자전거 타이어로 발바닥을 후려치기를 반복했다. 또 길이 60cm 너비 4cm짜리 대나무 막대기로 발가락이 검붉게 될 때까지 때렸다. 박귀봉은 하루 종일 잔인한 학대에 시달린 후 이튿날 저녁 연길시구치소로 이송됐다.
수갑 3개 채우기, 다리 구부려 서있기
왕청현(汪淸縣) 파룬궁수련생 러우추펑(婁秋風)은 2004년 10월 28일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왕청 임업공안국 악경에게 납치됐다. 임업공안국 지역 파출소 악경은 러우추펑이 단호히 협력을 거부하자 고문을 들이댔다. 몇 명의 악경은 러우추펑의 머리카락을 마구 잡아당기고 이마를 찔렀으며 뺨을 심하게 때리고 종아리를 힘껏 걷어찼다. 악경은 러우추펑의 외투를 벗기고 소파에 넘어뜨린 후 등에 올라타고 머리와 몸을 힘껏 누르고 두 손을 등 뒤로 하여 수갑을 채워놓아 더욱 잔혹한 박해를 가하려 했다. 머리가 눌린 러우추펑은 코와 입이 소파에 바싹 닿아 숨을 쉴 수 없어 질식할 뻔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 대치했는데 결국 사악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나중에 그들은 할 수 없이 러우추펑의 양손을 뒤로 하여 수갑을 채웠는데(수갑 3개 채움), 다른 한 쪽은 머리카락과 옷 칼라에 걸어 놓았다. 그리고는 러우추펑에게 다리 구부린 자세로 서있게 했다. 악경들이 수갑을 풀어줄 때 보니 러우추펑의 왼손 동맥이 파열되었다. 왼쪽 엄지손가락은 2개월 후에도 여전히 감각을 찾지 못했다. 러우추펑에 대한 갖은 고문은 저녁 8시부터 이튿날 날이 밝을 때까지 지속됐다.
중국공산당 불법 감옥의 고문 설명: 다리 구부린 자세로 서있기
의자 등받이에 수갑 채우기, 쇠몽둥이로 구타하기
왕청현 천교령(天橋嶺) 임업국 여성 파룬궁수련생 딩하이칭(丁海淸)은 2004년 12월 28일 저녁 자택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인쇄하다가 악인에게 납치되어 제1파출소로 이송됐다. 고문으로 혹독한 구타를 당해 그녀는 하마터면 실명될 뻔했고 오리털 잠바는 곳곳이 찢어졌다. 악인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고 또 그녀를 의자 등받이를 마주하게 앉힌 후 의자 등받이와 함께 두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런 후 악경들은 천을 감은 쇠파이프로 그녀의 등을 심하게 구타했는데 딩하이칭은 심장이 파열되는 통증을 느꼈다. 악경이 문서를 들이밀며 서명을 요구하자 그녀는 서명하는 대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를 썼는데 이 때문에 더욱 잔인한 구타와 학대를 당했고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굶어야 했다. 29일 저녁, 딩하이칭은 구치소로 이송됐는데 구치소 경찰들도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정도로 딩하이칭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음식물 강제 주입
도문시 파룬궁수련생 장수화(張淑華), 쉐슈화(薛秀花)는 2005년 2월에 납치되어 함께 도문시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 안에서 교도관이 연공을 허락하지 않자 두 사람은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기간, 교도관과 의사에게 병원으로 끌려가 호스로 음식물을 강제 주입하는 박해를 당했는데 주입이 끝난 뒤에도 코에 꽂힌 호스를 제때에 제거하지 않았다. 쉐슈화는 악경에게 협력하지 않고 호스를 뽑아버렸는데 이 때문에 또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이렇게 호스를 꽂고 빼기를 세 번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 쉐슈화는 인두 부위를 다쳐 부어오르고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그림)
지난 2001년 6월, 2명의 외지 파룬궁수련생이 훈춘시에서 납치당했을 때, 악경은 공안국에서 그들에게 수 시간 동안 모진 고문을 가한 후 유치장으로 이송했다. 두 사람이 단식으로 항의하자 악경은 그들에게 음식물을 강제주입했다. 그중 한 수련생은 음식물 주입을 당한 뒤 각혈하며 호흡하기 어려워했고 몸이 허약해져 생명이 위독했다.
나무 작대기에 무릎 꿇기, 매달아 구타하기
연길시 고령의 여성 파룬궁수련생 구창즈(賈長芝)는 2005년 4월 말에 지인의 집으로 갔다가 용정시 안민(安民)파출소 악경에게 납치됐다. 파룬궁 진상자료의 출처를 자백 받기 위해 안민파출소 악경은 구창즈를 10여 시간 고문했다. 3명의 악경은 구창즈의 무릎을 있는 힘껏 걷어차고 가늘고 긴 나무 작대기에 꿇어앉혔는데 나무 작대기가 무릎 관절에 배겨 매우 괴로웠다. 그 후 구창즈를 매달고 5명의 악경이 번갈아 가며 악행을 저질렀다. 악경들은 물을 가득 찬 생수병으로 머리를 때리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다.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악경 장나이장(張乃江)은 “이렇게 나이를 먹고 정말 못 봐주겠네. 쓰레기 줍는 사람들을 불러다가 강간시킬까”라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했다. 10여 시간 동안의 고문이 자행된 후 구창즈는 온몸에 시퍼렇고 검붉은 피멍이 들어 성한 곳이 없었다. 특히 두 발은 완전히 검게 변했다. 하지만 악경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이튿날 오후 구창즈에게 가장 무거운 족쇄를 채우고 두 손은 철창과 함께 수갑을 채우고 발끝은 겨우 땅에 닿게 했다. 악경은 외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생수병으로 구창즈의 머리를 때렸는데 구창즈는 눈앞이 아찔했다.
‘말 끌기(一支馬)’ 고문
화룡시 팔가자 파룬궁수련생 양슈잉(楊秀英)은 2006년 5월에 팔가자진 파출소와 화룡 국가보안대대의 악경이 집안에 들이닥치면서 납치됐다. 그 기간 비인간적인 고문 박해를 당했는데 쇠의자 고문 외 뺨 때리기, 생수병으로 구타하기, 머리에 씌우기 등 고문을 가했다. 어느 날 저녁 악경들은 또 새로운 수법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듣기로는 이런 고문을 ‘말 끌기(一支馬)’라고 불렀다. 악경들은 수갑을 찬 양슈잉을 땅바닥에 엎어놓은 다음, 한 명은 수갑을 앞으로 잡아당겼고 또 한 명은 허리를 아래로 내리 눌렀으며, 다른 두 명은 각각 한쪽 다리를 잡고 양쪽으로 벌어지게 잡아당겼다. 다리가 일직선이 되게 당겼는데, 조금 지나자 양슈잉은 고통으로 지쳐서 바닥에 쓰러졌는데 그제야 고문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조금만 더 잡아당겼으면 다리를 곧게 펼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악경들은 꼼짝도 못하고 땅바닥에 쓰려져 있는 양슈잉을 또 쇠의자에 묶어놓고 한바탕 괴롭혔다. 그들은 양슈잉이 호흡을 조금 회복한 것을 보자 또 등 뒤에 서서 그녀의 손을 번갈아 들어 올려 손이 부어오르고 수갑이 살 속까지 패어 들어가게 했다.
‘양 통구이’, 생수병으로 구타하기
돈화시 파룬궁수련생 왕융창(王永强)은 2008년 8월 1일 돈화시공안국 현유진(賢儒鎭) 파출소에 납치돼 악경에게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8월 1일 저녁부터 8월 4일까지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게 하고, 또 머리에 비닐주머니 씌우기, 장시간 모기향 쏘이기, 입과 콧구멍 그리고 성기에 와사비 바르기 등 고문을 자행했다. 더욱 잔인한 것은 연속 이틀 밤 ‘양 통구이’ 고문을 한 것인데 매번 1시간 정도 왕융창을 매달아 놓았다. 왕융창은 고문으로 정신이 혼미하고 사지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악경들은 그의 몸을 발로 마구 걷어차고는 심장 박동이 멈추자 입에 구심환(救心丸) 몇 알을 밀어 넣었다. 왕융창이 정신을 잃을 때마다 악경들은 머리에 냉수를 끼얹고, 정신을 차리면 또 굵은 채찍으로 때리고 명치 등 부위를 난폭하게 주먹질 해댔다. 낮에는 왕융창에게 두 손을 다리를 감싸 앉고 치켜들게 하고는 두 명의 악경이 양쪽에서 왕융창의 다리를 얼굴과 어깨 너머 등까지 눌렀다. 악경은 왕융창에게 장시간 반복적으로 그런 자세를 유지하게 하면서 넘어지면 발길질을 해댔다. 또 3일 내내 물이 든 생수병으로 왕융창의 머리를 수시로 때렸다. 한 악경이 생수병으로 왕융창의 왼쪽 눈을 구타해 심각한 상처를 입었는데 지금도 눈앞에 늘 검은 덩어리가 보인다. 악경은 또 왕융창의 눈에 통증을 유발하는 약물을 발랐는데 이로 인해 왕융창은 여러 차례 정신을 잃었다.
고문 재연: 양 통구이 고문
사지 벌리기, 등 밟기, 전기충격, 몽둥이로 때리기
연길시 파룬궁수련생 리펑윈(李鳳雲)과 남편 선취안후이(申全會)는 2008년 9월 8일 화룡시 두도진(頭道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됐다. 선취안후이는 두도파출소로 납치된 후 여러 명의 악경에게 야만적인 폭행을 당했다. 악경들이 머리, 신체 중요 부위를 마구 걷어차 그는 하마터면 현장에서 사망할 뻔했다. 악경들이 즉시 약물을 주사하는 등 응급조치를 취해서야 그는 다시 살아났다. 화룡 서성(西城)구치소로 이송되어 불법 심문을 받을 때 다시 고문을 당했다. 악경은 그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후, 바닥에 엎어놓고 등에 올라타 사지를 뒤로 잡아 당겼으며 발로 등을 밟기도 했다. 선취안후이는 이 같은 고문으로 3개월 동안 걸을 수 없었고 음식을 먹으면 도로 토했으며 종아리에 감각을 잃었고 전신 통증 특히 가슴 통증에 시달렸다.
리펑윈은 두도진 파출소에서 잔인한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들은 먼저 리펑윈의 손을 등 뒤로 해서 수갑을 채웠다. 그런 다음 리펑윈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뺨을 때리고 주먹질 발길질을 해댔다. 밤에는 또 서 있게 하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그 후 리펑윈이 단호하게 협력하지 않자 화룡시 국가보안대대의 악경은 두 사람씩 번갈아가며 더욱 심하게 구타했다. 지치면 교대하는 식으로 폭행이 지속되어 리펑윈은 생사를 오가야 했다. 그들은 또 리펑윈의 머리에 비닐주머니 씌우고 그 위에서 손으로 입을 막아 질식시켰으며 등 뒤에 있는 두 팔을 힘껏 머리 쪽으로 잡아당기고 손으로 턱 아래 목 부위를 힘껏 눌렀다. 이밖에 땅바닥에 앉혀 놓고 등에 올라타 윗몸을 아래로 누르기도 하고 다리 찢기를 시키도 했으며 몸에 물을 뿌린 다음 전기충격을 가하고 속이 빈 쇠몽둥이가 휠 정도로 무자비하게 구타하기도 했다. 그들은 또 고무로 된 경봉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하반신 구타하기, 라이터로 손 지지기
도문시 석현진(石峴鎭) 파룬궁수련생 류샤오화(劉曉華)는 2011년 3월 4일 자택에서 국가보안대대에 납치되어 불법 감금 기간 고문을 당했다. 악경은 번갈아가며 심문했는데 갖은 잔인한 수법을 모두 동원했다. 석현진파출소의 6명의 악경은 류샤오화의 등을 주먹으로 구타하고 뺨을 때렸으며 담배꽁초로 손가락을 지졌다. 국가보안대대의 악경은 또 몽둥이로 하반신을 때리고 발로 손가락을 밟았으며 뺨을 때리고 눈을 후벼팠다. 그들은 또 라이터로 손을 지졌는데 류샤오화는 손에 온통 화상을 입어 물집까지 생겼다. 또 한 악경은 비닐끈으로 머리카락을 쇠의자 등받이에 묶어놓고 4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류샤오화는 두 차례나 정신을 잃었는데 그 때마다 냉수를 끼얹었다. 그 후 구치소로 이송됐는데 입소 전 신체검사 때 류샤오화의 하반신은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고혈압, 심근 경색, 부정맥 등 진단이 내려졌다.
고문 재연: 손가락 밟아 뭉개기
다리 찢기, 책으로 구타하기
고문 재연: 두 다리를 일자로 찢게 하기
도문 조선족 파룬궁수련생 김련화(金蓮花)는 2011년 5월 29일 중국공산당 경찰에게 납치된 후 화룡으로 이송돼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그녀는 갖은 학대로 생명이 위독해져 연길시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다. 김련화는 다음과 같은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 팔과 다리를 크게 벌리고 장시간 세워 두는 고문, 한 악경이 등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아 양 팔을 뒤로 잡아당기고 다리를 양쪽으로 찢게 하는 고문, 두 팔을 등 뒤로 비틀어 수갑으로 채우고 생수병을 팔 밑에 끼어 넣은 후 팔을 눌러 고통을 늘이는 고문. 이런 고문은 매일 여러 차례, 매번 20~40분씩 지속됐다. 또 손으로 코를 막은 후 입에 물을 주입하는 고문,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손으로 코를 막은 후 비닐주머니까지 머리에 씌우는 고문, 책을 감아쥐고 몽둥이 삼아 머리(100여 차례 구타), 가슴과 배를 마구 구타하는 고문도 있었다. 이런 고문은 상처는 남지 않았으나 매우 고통스럽다. 이밖에 선풍기로 찬바람을 맞게 하고 연속 5일 동안 잠을 못 자게 했다.
(다음에 계속)
문장발표: 2015년 2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2/25/30545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