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쉬잉(徐英, 여)은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하이린(海林)시 즈룽(子榮)초등학교 교사로서 46세다. 2014년 11월 24일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하이린시 공안국 국보과 경찰 왕웨이(王威), 관징웨이(關景偉)에게 납치당해 현재 무단장시 간수소에 불법 감금되어 있다.
납치 당일 7시가 넘어, 하이린 제2파출소 악독한 경찰 왕윈탕(王雲堂) 등 대여섯 명이 함께 쉬잉의 집을 뒤졌다. 당시 쉬잉의 집에는 사람이 없었고 그들은 쉬잉의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었다. 비(畢)씨 성을 가진 경비에게 증명을 서라고 하면서 식칼로 서랍을 비틀어 열고 약간의 현금과 노트북을 빼앗아갔다. 마지막엔 경비에게 한 글자도 없는 백지에다 지장을 찍게 했다. 쉬의 가족들이 경비에게 이 일을 묻자, 경비는 경찰 왕윈탕만 알뿐 그 외 나머지 대여섯 명은 어디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고, 뿐만 아니라 서랍을 비틀어 열고 돈을 빼앗아간 일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흐리멍덩하게 한 장의 흰 종이에다 가짜 증명을 섰던 것이다.
쉬의 칠순 되는 노모와 팔순 되는 시어머니가 하이린 공안국 국보대대에 찾아가 석방을 요구하자 국보대대 대장은 무리하게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돌려주는 것도 거절했다. 쉬의 모친이 체포증과 수색증이 있냐고 따지자 딩위화(丁玉華) 등 사람은 있다고만 말할 뿐 어떠한 증명서도 내놓지 못했다.
쉬잉은 1999년 파룬따파가 박해를 당한 후 파룬따파 수련에 걸어 들어온 사람이다. 중국공산당이 미친 듯이 파룬따파를 박해할 때 쉬잉은 도리어 먹구름이 뒤덮인 속에서 광명을 보았고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왔다. 뿐만 아니라 짧은 몇 년간, 양심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파룬따파가 박해당하는 진상을 알려주기 위해 진상을 알리다가 여러 차례 공안국 국보대대에 의해 불법 가택 수색을 당했고, 한동안 노임까지 지급정지를 당했으며 매달 8백 위안의 생활비만 받았다. 이것은 법률집행인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법을 알면서 법을 지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2012년 8월 14일 8시가 넘어, 쉬잉은 집에 있다가 딩위화, 왕웨이, 진하이주(金海珠) 등에게 하이린 간수소에 납치당했다. 집은 불법수색을 당했고 컴퓨터와 복사기 등 많은 개인 재물이 강탈당했다. 2012년 11월 1일 간수소는 쉬잉을 하얼빈시 챈진노동교양소에 보내 박해했다. 이후 노동교양소가 국제적인 압력에 의해 해체되자 쉬잉은 2013년 8월 17일 자유를 얻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4년 3월 17일, 쉬잉이 직장에 출근하고 있을 때 공안국 국보대대 딩위화와 왕웨이는 쉬잉의 직장 부교장 아이샤오훙(艾曉紅)의 협조 하에 또 다시 쉬잉을 납치했다. 신체검사 후 하이린 임업간수소에 감금됐다. 감금기간 왕웨이와 관징웨이가 몇 번 불법 심문을 했는데 주로는 쉬잉에게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쓰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이린 공안국 형사경찰 장쥔(張君)도 박해에 참여해 쉬잉을 때리고 욕했으며 구둣발로 쉬잉의 얼굴을 밟았고 얼굴에 가래를 뱉었다. 또 얼굴을 때리고 생수를 몸에 쏟았는데 물은 목에서부터 발바닥까지 흘러내렸다.
2014년 4월 16일,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는 이유로 쉬잉을 간수소 뜨락에 불러냈다. 쉬잉은 재차 치치하얼(齊齊哈爾) 격리 봉폐 마약중독자 재활원 내, 610이 불법 주최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세뇌반에서 쉬잉은 아주 많은 고문과 인격모욕을 당했으며 2014년 5월 24일 집으로 돌아왔다.
짧은 2년간 쉬잉은 여러 번 불법 가택수색 박해를 당했으며 그의 가족 특히 칠순 노모와 시어머니는 큰 심신의 상처를 입었다. 두 노인은 여러 차례 하이린 공안국 국보대대에 찾아가 석방을 요구했지만 모두 대답을 얻지 못하고 날마다 걱정으로 침식을 잊고 있다. 외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아들은 더욱 안심하고 학업에 몰두할 수 없다.
문장발표: 2014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2/25/3019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