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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조선족 대법제자 조련화가 생전에 당한 박해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성 연길(延吉)시 대법제자 조련화(趙蓮花, 여, 46, 조선족, 1964년생)는 원래 몸이 매우 좋지 않았다. 의사가 예전에 가장 오래 산다고 해도 39세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98년에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그제야 건강한 몸을 얻을 수 있었고 희망이 생기게 됐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한 후, 조련화는 강제로 수련 환경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박해를 당해 집에도 돌아갈 수 없게 되어 정신적, 심리적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녀는 결국 2009년 10월 30일에 사망했다.

1999년 중국공산당 사당 두목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탄압하자 조련화는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2000년 2월 20일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는 길에 올랐는데 그녀는 청원을 가로막는 연길시 공안국 보위과 과장 경찰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베이징에서 납치된 지 며칠 후 납치당한 다른 파룬궁수련생과 함께 연길시로 납치돼 돌아왔다. 그 후 연길시 구치소에 감금됐고 악랄한 환경 속에서 몸에 좋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 불법 감금 18일 만에 석방됐다.

석방된 후 연길시 공안국 정보과의 악독한 경찰들은 매일 조련화의 집으로 찾아가 괴롭히며 그녀에게 결렬서를 쓰도록 핍박했다. 경찰들은 결렬서를 쓰게 하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조련화를 납치해 세뇌반으로 보냈다. 때문에 조련화 일가족은 어쩔 수 없이 따스한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련화는 줄곧 사망하기 전까지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했으며 집이 있어도 돌아갈 수 없었다.

2000년, 중국공산당의 거짓말 선전으로 속은 세인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조련화는 노투구진(老頭溝鎭)으로 가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불행하게도 노투구진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몸이 여위고 작은 조련화는 파출소 안에서 몇 명의 우람한 사내들에게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당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조련화에게 이름과 주소를 말하게 하기 위해 극히 야만적인 방식을 전부 사용했으며 조련화의 얼굴 등을 구타했다.

조련화의 얼굴은 즉시 구타로 만두처럼 부어올랐고 몸은 구타로 시퍼렇게 멍들어 전혀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조련화는 기회를 틈타 파출소 2층에서 탈출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그녀는 부상당한 다리를 이끌며 이를 악물고 파출소를 벗어났다. 다시 노투구진 보흥(寶興)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신고를 당했으나 (경찰의) 추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련화를 찾지 못한 연길시 공안국 정보과에서는 도처에서 그녀의 행방을 뒤쫓았고 많은 인력과 자금을 들여 암암리에 조련화의 친척 관계를 조사했다. 연길시 정보과의 악독한 경찰들은 1년 6개월을 거쳐 2001년 말에 끝내 조련화 아들의 학교를 찾아냈고 그 후 아들을 미행했다.

결국 악독한 경찰은 외지에서 거주하고 있는 조련화의 집을 찾아냈으며 악독한 경찰들 7~8명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녀를 납치했고 집은 수색을 당해 이리저리 난잡하게 어질러졌다. 이 사건은 마침 성장하고 있는 아들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조련화는 다시 연길시 구치소에 갇혀 구치소 안에서 다른 수련생과 함께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악독한 경찰들은 조련화가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고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석방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단념하지 않은 연길시 정보과의 악독한 경찰들은 또 조련화의 몸이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재차 납치해 직접 창춘(長春) 헤이쭈이쯔(黑嘴子) 여자 노동교양소로 압송해 박해를 가했다.

하지만 몸에 심한 손상을 입은 조련화는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에서 며칠이 되지 않아 병세가 위독해졌다. 조련화는 공안 병원으로 보내져 응급처치를 받았다. 조련화가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에 갇힌 지 16일 째 되던 날, 남편이 공안 병원으로부터 2600위안을 갈취당한 후 그녀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후 2002년부터 조련화는 악당의 박해를 피하기 위해 또 유랑생활을 했다. 1999년 7.20에 중국공산당 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부터 조련화 일가족은 하루라도 편안한 생활을 보낸 적이 없이 매일 경찰에게 추격을 당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활동 범위도 심한 제한을 받았고 일가족의 정상적인 생활은 전부 방해를 받았다. 조련화는 박해를 당한 이후부터 또 출근한 적이 없다.

중국공산당 사당의 10년 넘는 파룬궁 박해로 조련화는 줄곧 건강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얼마 되지 않아 억울하게 사망했다. 이것은 조련화의 남편과 아들에게 큰 충격이 됐다. 그들은 가족을 잃은 비통함을 억지로 참으며 조련화의 시신을 화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중국공산당 사당의 파룬궁에 대한 잔혹하고 사악한 박해 중에서 연변 지역에서는 이미 3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이 사망했다. 원래 행복했던 많은 가정이 이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지고 집과 가족을 전부 잃었다. 그러나 사당은 또 이 난세를 태평성세로 꾸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지금은 중국 인권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한다. 중국은 중국공산당과 같지 않으며 애국은 애당(愛黨)과 같지 않다. 중국 인민이 이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똑똑히 가려 중국공산당 사당을 간파하고 이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악마를 멀리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09년 11월 2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22/213071.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html/articles/2009/11/28/1126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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