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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뉴구이펀 모녀가 박해로 사망한 과정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종합보도)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운동 중에서 신장(新疆) 하완현(沙灣縣) 당국은 강제로 뉴구이펀(牛桂芬) 부부의 집 두 채를 강제로 빼앗아서 그들 일가족에게 머무를 곳이 없게 했고, 퇴직 보상금을 불법적으로 박탈해 그들 일가족의 경제력을 끊어놓았으며, 겨우 30살인 딸을 무참히 박해해 살해했다! 단지 그들이 ‘진선인(眞ㆍ善ㆍ忍)’ 표준에 부합된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신장, 산둥(山東), 베이징을 전전했고, 노동교양소, 감옥, 구치소 등의 14년 동안 박해를 경험한 후 뉴구이친은 2013년 11월 21일(음력 10월 19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세였다.

뉴구이펀은 1947년에 출생했고 본적은 산둥성 라이저우(萊州)시이며 생전에 신장 사완현에서 거주했다. 1997년 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대법의 박해한 법리 및 그 초범적인 현상으로 인해 남편과 두 딸도 1997년에 연이어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뉴구이펀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으로 사완현에서 광범위하게 중생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전파해 많은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수련으로 들어서게 했다.

1999년 7.20을 이어서 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사악 집단은 파룬궁에 대해 천지를 뒤엎을 듯이 광적인 탄압을 가했다. 사완현 공안 국가보안,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구)도 이 무고한 가정에 사악한 박해를 실시했다. 그 후 사완현 국가보안, 610, 가도, 부녀 연합 등 일련의 부서에서는 매일 수차례나 집으로 찾아와 교란, 핍박, 공갈 협박을 감행했다. 순식간에 행복하던 가정은 사악이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대상이 됐다.

1999년 10월, 뉴구이펀은 고향 산둥 라이저우로 돌아와 모친을 문안했다. 사완현 악독한 경찰은 라이저우 공안국에 통지를 내려 고향 라이저우에서 뉴구이펀을 납치했다. 게다가 그녀를 라이저우 구치소에 일주일 쯤 불법 감금했다. 그 후 뉴구이펀은 사완현 악독한 경찰에게 신장으로 납치돼 돌아갔다가 두 달 넘게 무고하게 감금됐다. 나온 후 사완현 610, 국가보안대대, 가도위원회의 지속적인 교란을 당해, 일가족은 핍박에 못 이겨 집을 떠나 유랑생활을 했다.

2000년 4월, 뉴구이친은 지난(濟南)에서 납치돼 신장 제1여자 노동교양소에서 2년 3개월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뉴구이친은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굳은 믿음을 움직이지 않고 사악의 어떠한 명령과 지시에도 협력하지 않았다. 신장 제1여자 노동교양소의 악독한 경찰은 그녀에 대해 잔혹한 박해를 해 연속 18일 동안 그녀에게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물을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수차례 구타로 기절시켰다. 그러나 악독한 경찰은 오히려 그녀가 고의적으로 죽는 것처럼 꾸민다고 말하며 각종 혹독한 형벌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장시간의 잔혹한 박해 및 손상으로 그녀는 심신에 극심한 상처를 입고 몸에는 여러 가지 합병증이 나타났다.

2004년 일가족은 유랑생활을 하다가 거듭 고향인 산둥성 라이저우로 돌아왔다. 2005년 4월 12일에 ‘9평공산당’을 만드는 과정 중에 라이저우시 610 두목 류×룽(劉×榮), 위안수린(原書森), 국가보안 위즈빈(于治斌), 류징빙(劉京兵), 청강로(城港路) 분국의 왕쩡원(王曾文), 주유(朱由) 파출소 등 20여 명이 납치돼 가택 수색을 당했다. 불법 인원들은 뉴구이친, 남편 장지전(張繼臻, 엔지니어), 딸 장리위안(張力元) 3명을 함께 납치했고 현금은 약 3만 4천 위안 및 모든 관련 설비를 강탈했다.

라이저우 구치소에서 악독한 경찰은 남편 장지전의 머리를 두 손을 이용해 벽에 사납게 부딪쳤는데 장지전은 기절해 인사불성이 됐으며 병원에 보내 응급처지를 받고 위험에서 벗어났다. 또 뉴구이펀과 딸 장리위안 두 사람을 왕춘(王村) 노동교양소로 보내 계속 박해를 가하려 했으나, 이들의 몸이 극도로 허약해져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을 거부했다. 이들은 라이저우 구치소로 돌아온 후 또 9월 말까지 불법 감금됐다.

라이저우에서 6개월 넘게 불법 감금된 사이에 뉴구이펀과 장리위안은 장시간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해 몸이 극도로 악화됐다. 라이저우 공안국과 610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부득이 석방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이 겨우 30세인 장리위안은 라이저우 구치소에서 나온 후 4개월도 되지 않아 2006년 음력 정월 14일에 세상을 떠났다.

뉴구이친의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늘 일정기간 간격으로 10여 명의 악독한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와 집안을 순시하고 한바탕 공갈 협박을 했다. 경찰의 장기간 괴롭힘 때문에 뉴구이펀 부부는 딸을 잃은 후 어쩔 수 없이 베이징 친척집으로 이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7년 가을, 뉴구이펀은 베이징 창핑구에서 한 주민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창핑구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는데 2개월 후에 풀려났다. 2008년 올림픽 전야에 창핑구 악독한 경찰은 문을 부수고 들어와 뉴구이펀을 납치했다. 게다가 순식간에 4년 6개월 불법 판결을 선고하고 신장 여자감옥으로 보내 박해를 가했다.

원래 심신이 건강하던 뉴구이펀은 중국공산당에게 여러 차례 감금 박해와 수년간의 유랑생활을 당하고 또 딸이 박해로 사망해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었다. 신장 여자감옥으로 보낼 때 암 말기 증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신장 여자감옥에서는 여전히 뉴구이친을 계속 박해했다. 불법 감금을 당한 기간, 뉴구이친은 사악의 명령과 지시를 협력하지 않고, 매일 감옥 위층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높이 외쳐 불법 감금당한 수련생에게 정념을 보탰고 유력하게 사악을 저지해 많은 악독한 경찰들로 하여금 다시는 악행을 저지르지 않게 했다.

4년 6개월 고난의 세월을 경험한 뉴구이펀은 2012년 10월에 출소했다. 장시간 불법 감금 등 박해를 당한 이유로 그녀는 출소할 때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결국 2013년 음력 10월 19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죄지은 자는 결코 법망을 벗어나지 못한다! 신장 사완현 610, 공안 국가보안, 신장 여자노동교양소, 신장 여자감옥, 산둥 라이저우 610, 공안 국가보안대대, 청강로(城港路) 분국, 라이저우 주유파출소 측은 이유 없이 선량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책임이 있는바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산둥성 라이저우시에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박해에 참여한 일부 관련 인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라이저우 610 주임: 양쉬안디(楊玄迪) 사무실 직원: 자오수훙(趙淑紅), 위안루(袁璐)청강로(城港路) 가도 정법위원회 서기: 위안수린(原書森)청강로 가도 파출소 소장: 왕쩡원(王增文), 부소장 쑨진밍(孫金銘), 바오리췬(鮑利群)국가보안대대: 위즈빈(于治斌), 류징빙(劉京兵)일을 책임진 경찰: 마취안중(馬全中, 경찰 번호: 04665), 다주스촌(大朱石村)의 장천광(張晨光)

문장발표: 2015년 1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16/3032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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