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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억울한 재판, 지린 쉬후이젠 박해로 사망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 보도) 지린성(吉林省) 파룬궁수련생 쉬후이젠(徐會建,徐慧建)은 10년의 억울한 옥살이로 시달림을 당해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수척해지고 심각한 결핵 증상이 나타났다. 그 후에는 흉부가 심각하게 변형되었는데, 결국 2014년 12월 24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41세였다.

徐会建出狱回家后
쉬후이젠(徐會建)이 출소해 집으로 돌아간 후의 모습

徐会建身上的伤痕
쉬후이젠 신체의 상처 흔적

쉬후이젠(남)은 지린성 바이산시(白山市) 장위안구(江源區)에 거주하며, 90년대 중반 창춘(長春) 광지(光機)학원에서 공부한 적이 있다. 파룬궁을 수련한 뒤,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자신의 품격을 갖추고 학업성적이 뛰어난 좋은 학생이어서 학교에서는 이미 그가 졸업하기도 전부터 교사로 채용하려고 결정했다. 이것은 농촌에서 온 아이로 말하면 얻기 어려운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졸업 전야에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집단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다. 학교 측에서는 학교에 남겨 교편을 잡게 하는 일로 그와 면담하였는데 조건은 반드시 파룬따파(法輪大法)수련을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쉬후이젠은 의연히 학교 측에 그는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2001년 4월 12일, 쉬후이젠 등 파룬궁수련생은 진상자료를 인쇄 제작하다가 경찰에게 발각되었다. 그들은 어떠한 법률 절차도 없이 문을 비틀어 열고 사사로이 민가에 들이닥쳐 강제로 사람을 붙잡아가고 귀중한 물품을 깡그리 강탈해갔는데, 그중에 사존님 법신상, 복사기, 자화 정수기, 핸드폰, 삐삐, 전자레인지, 트렁크 두 개(그 중에 귀중한 옷은 가져가고 나머지 옷은 던져 버렸음)를 포함했다.

그가 실종된 지 2년 후, 가족들은 우연히 한 장의 신문에서 그의 소식을 보았는데 그가 납치당해 이미 2002년 10월, 10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 받아 지린 감옥에 감금됐음을 알게 되었다. 가족은 감옥으로 면회하러 갔다가 그가 이미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야위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 몇 해 동안 그가 어떠한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당했는지를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쉬후이젠은 창춘 톄베이(鐵北)감옥으로 옮겨졌다. 톄베이 감옥에는 가족이 면회하려면 반드시 현지 610의 소개장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면회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610으로 가서 소개장을 받아오려면 또 반드시 대대, 공사(公社)의 소개장이어야 했다. 이렇게 되어 그의 부모는 아들을 한 번 만나기 위해 여러 곳을 차례로 뛰어다녀야 했다. 이곳을 찾고 저곳을 찾아 층층의 검문소를 지난 뒤에야 겨우 아들을 만났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예전에 비해 더욱 수척해진 것을 발견했는데 마치 뼈에 종이를 붙인 것 같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고 말했다. 쉬후이젠은 부모가 자신 때문에 걱정할 까 염려되어 시종 자신이 감옥에서 어떠한 시달림을 당했는지도 폭로하지 않았다.

몇 달 후, 쉬후이젠은 극히 악명이 높은 궁주링(公主嶺) 감옥으로 옮겨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새로 감옥에 들어간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입감대(入監隊)’에서 이른바 ‘엄한 관리 학습’을 받아야 하고 강제로 ‘감옥 규정’을 외워야 했다. 이른바 ‘전향서’를 쓰지 않은 사람은 각 감구역에 ‘분배’해 내려 보내지 않았고, 매일 몸을 똑바로 펴고 그곳에 ‘좌반(坐板)’을 하고 앉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없었는데, 명분은 ‘반성’이라고 했으나 사실 체벌이었다. 강제로 장시간 딱딱한 판자 위에 너무 오래 앉아있어 어떤 사람은 둔부마저 손상을 입었는데, 이른바 ‘전향’을 할 때까지 앉아있었다.

궁주링 감옥에서는 수감인원에게 강제 노역 노동을 시켰는데,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도 없었고 법정 명절 휴가마저 늘 강제 노역 노동을 시켰다. 오랫동안 호된 관리제도의 정신적 강압 하에 더군다나 영양실조가 나타나고 또 노동시간이 길어 많은 사람의 몸이 극히 허약했다. 이로 인해 면역력이떨어져 폐결핵을 앓는 사람들이 많았다. 2008년 초, 가족은 쉬후이젠이 이미 박해로 폐결핵에 걸려 의료구역으로 옮겨졌다고 들었다. 가족이 면회하러 갔는데, 현지 610의 소개장이 없다고 문밖에서 거부당했다. 그러나 현지 610은 또 상부의 이런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소개장을 발급하지 않았다.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쉬후이젠은 여러 차례 고문 박해를 당했다. 게다가 생활 조건이 아주 열악하고 심리적 압력이 극심히 컸던 이유로, 그는 폐결핵에 감염되어 심각할 때면 여러 차례 각혈했다. 2011년 4월 출소해 집으로 돌아간 뒤, 쉬후이젠은 아직 완전히 회복할 수 없었고 줄곧 기침을 하며 각혈을 했다. 그 후 그의 흉부는 이미 심각하게 변형되어 오른 쪽으로 눕거나 반듯하게 누울 수 없고 겨우 왼쪽으로 누울 수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매우 고통스러워 잠을 자지 못하고 새벽에 잠깐 잠을 자는 수밖에 없었다.

2014년 12월 24일 오전, 한 차례 매우 심각하게 각혈한 뒤, 쉬후이젠은 호흡을 멈추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문장발표: 2015년 1월 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1/7/302856.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15/1/9/147901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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